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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만의 문제 아냐, 전국 36개 부랑인 시설 전수조사해야”
[아듀2017-⑤] 또 다시 해 넘기는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국회 앞 농성장 피해자들의 바램
등록일 [ 2017년12월27일 11시32분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국회 앞을 찾아간 지난 19일. 전날 내린 눈이 조금씩 녹고 있던 오후 시간,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가 농성 천막을 손질하고 있었다. 전날 페이스북으로 확인했을 때만 해도 그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부산에 내려간다고 했다. 어떻게 하루 만에 올라오셨냐고 묻는 말에 그는 “여기가 내 집이니까”라고 답한다. 보름치 약을 미리 받아와야 할 정도로 위궤양이 심해졌음에도, 농성 첫날부터 43일째가 되던 이날까지 거의 매일을 국회 앞에서 숙식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엔 벌써 50일을 넘겼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이미 지난 9월 6일부터 27일까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알리기 위해 22일에 걸친 국토대장정을 진행해 몸이 상할 대로 상했다. 피해생존자 모임의 대표 한종선 씨는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간 바로 다음날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거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국토대장정 마지막 날 청와대 행정관을 만나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에 대한 청와대 차원의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는 답을 얻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화답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다시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75년부터 88년까지 공식기록으로만 551명이 사망하고 시신은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팔려가던 곳, 어린 아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거리의 사람들을 ‘부랑인’이라 낙인찍고 납치·감금·폭행·강제노역을 자행하던 죽음의 수용소, 형제복지원. 그곳에서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은 형제복지원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5년 전 국회 앞에 홀로 섰다. 5년간 240명의 피해생존자가 모이고, 1인 시위, 농성, 국토대장정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과거사 진상규명은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이들의 호소를 외면했다. 20대 국회에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을 통해 형제복지원을 포함한 과거사 사건 진상규명 방안을 논의해 기대를 모았지만, 올해 통과는 물 건너갔다. 


그러나 농성장에서 만난 한종선 대표와 최승우 씨의 얼굴엔 패배감보다 단단한 웃음이 가득했다. 오히려 피해당사자의 운동이 단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과거사 진상규명 운동의 ‘큰 크림’까지 보여줬다. 그들은 인터뷰 내내 국가가 그들에게 강요한 ‘피해자’라는 수동적 자리를 넘어, ‘피해당사자 운동’이라는 능동적 위치를 스스로 개척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아래는 한종선, 최승우 씨와의 일문일답.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난 최승우 씨(왼쪽)와 한종선 씨(오른쪽).
 

- 9월 27일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바로 또 농성에 돌입했다. 몸 추스릴 시간도 없었을텐데 농성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종선) 국토대장정 마무리할 때 청와대 행정관과 면담을 했다. 우리는 당신들과 싸우러 온 게 아니고, 적폐청산을 하겠다는 정부를, 피해당사자로서 지지하러 왔다고 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진상규명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는 것이 어렵다면, 행정관이 문 대통령에게 우리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해 주시고 청와대 차원의 입장을 내도록 해달라 요구했다. 행정관도 그 정도는 가능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아무런 답이 없다. 그래서 다시 농성이다. 그나마 우리가 농성한지 한 달이 되니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해야 한다고 권고가 나온 거다.


- 인권위 권고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한종선) 아주 당연한 일을 이제야 했다. 일단은 잘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 엄청난 인권침해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던 인권위에 실망감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갓난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옹알이 하는 아이한테 뛰어다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과거사 진상규명을 다루기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아래 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지난 11월 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 통과가 기대되었지만 결국 ‘정부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사실상 내년으로 미뤄졌다. 이를 보면서 또 실망이 컸을텐데.


(한종선) 애초에 이게 쉽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요즘 분위기는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우리를 만나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대놓고 반대하는 의원들은 없다. 올 해 안에 통과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다.


- 청와대의 입장 발표, 국회의 법안 통과와 같은 물리적인 성과를 아직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피해생존자들이 22일간의 국토대장정을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해낸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성과들도 많을 것 같다.


(한종선) 국토대장정을 하자는 이야기는 4년 전부터 있어왔다. 당장 우리 피해생존자들이 괴로우니까 뭐라도 하자는 목소리가 계속 나온 건데, 그 때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 올 해 피해생존자모임 회의에서 활동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국토대장정 외에도 청와대 앞 단식농성 하자는 사람도 있었고, 영도다리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최승우) 영도다리에 올라가자는 안은 내가 꺼냈었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이 어떻게 되는가 소식을 들어봐도 아무것도 진행되는 게 없으니까 답답하더라. 그래서 종선이한테 전화를 했다. “나 영도다리 올라가야겠다.” 영도다리가 번화가면서도 외국사람들이 엄청 많다.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받는 자리다. 그래서 내가 답사까지 가서 종선이한테 사진도 보냈다. 그런데 종선이가 “그럼 형님, 합리적으로 하자. 같이 회의해서 길을 찾아보자” 그랬던 거다. 정말 그 때 회의를 하지 않았으면 저질러버렸을지도 모르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국토대장정 마지막 날(9월 27일)의 행진.

(한종선) 다수결로 해봤더니 영도다리는 다들 너무하다 그래서, 승우 형하고 나만 찬성했다. 난 승우형 힘 실어줄려고 찬성했지만. 그리고 청와대 앞 단식과 국토대장정이 11대 11, 박빙으로 나왔다. 거기서 내가 국토대장정에 한 표를 던지니까 결국 국토대장정으로 결론이 난 거다. 
사람들은 우리 피해자들에 대해, “쟤들은 모아놔 봐야 할 줄 아는 게 없다. 누군가 배운 사람들이 끌고 가줘야 한다”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회의를 통해 우리 스스로 선택했고, 그 결과로 국토대장정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돌아다닐 권리를 빼앗겼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항상 경찰만 보면 잡혀갈 것 같은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이번에 찻길 한 차선을 막아서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대로 걸어가면서 그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 현재 진상규명 방식에 대해 국회에서는 애초에 피해생존자들이 주장했던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이 아니라 과거사법 개정으로 논의가 모아지고 있다. 이런 방식에 대해 불만이나 아쉬움은 없나?


(한종선) 예전에 자유한국당에서 과거사 진상규명을 반대했던 논리는 ‘과거사 문제, 이미 예전에 한 번 털었는데 뭘 또 하냐’는 거였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처럼 드러나지 않은 과거사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과거사 운동이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과거사 운동 전체가 심폐소생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같은 사건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사 문제는 이미 다 털었다’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됐다.


- 2012년 형제복지원 사건 제기 이후, 과거 유사 사건들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선감학원 사건도 그렇고, 최근엔 서산개척단 사건에 대한 재조명도 이뤄지고 있다. 


(한종선) 만약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할 때 우리가 진정을 넣었다면, 형제복지원 단일 사건 문제로 끝났을 거다. 그런데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처음 요구할 때가 2012년, 이미 위원회는 없어졌을 때다. 그래서 개별 사안을 다룰 수 있는 특별법이라도 제정해달라고 한 건데, 그 과정에서 1975년 ‘내무부 훈령410호’(정식 명칭은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 - 편집자 주)라는 규정을 발견했다. 이것에 의해 운영되었던 전국 36개 부랑인 시설 리스트도 나왔는데, 그러면 최근 문제가 되는 대구시립희망원 같은 시설도 다 걸리는 문제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이 내무부 훈령410호 문제를 제기하면서 같이 싸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 입장에서는 다른 시설에는 안 살아봤기 때문에 형제복지원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었고. 
개별 시설 문제에 대한 특별법이 따로따로 만들어지면 자유한국당 주장대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갈 거다. 그러면 피해자들도 혼란이 올 거다. 형제복지원에 살았던 사람은 형제복지원 배상받고, 선감학원에 살았던 사람은 선감학원 배상받고... 이런 식으로 해서 티격태격 할 거다.


- 실제로 이런 시설을 중복해서 경험하신 분도 많다. 


(한종선) 그렇다. 나는 선감학원이든 희망원이든 형제복지원이든, 개별 시설의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가폭력의 문제로 이야기해야 한다. 민간 시설이라 할지라도 예산은 국가가 투입했다. 그럼 관리 책임도 국가에게 있는 거다. 그 부분을 쏙 빼고 어디 시설에서 누가 죽었다더라 이런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최승우) 지금 전국의 요양병원들은 87년 당시 폭로된 36개 부랑인 시설들이 다 대를 이어가지고 운영하고 있는 거다. 전수조사 해야 한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앞 농성장.

- 예전보다는 우호적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사회적 비용’ 거론하며 반대하는 목소리는 언제든 다시 나올 것 같다.


(한종선) 국가재정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라면 당연히 그런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우리의 피와 땀, 노고를 빨아먹었던 박인근 원장과 그 후손이 몇 천억을 가진 재산가라면, 구상권 청구해서 차압해야 한다. 물론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은 국가 돈 들여서 해결해야 한다. 가해자의 재산은 그대로 보존해주면서 피해 입은 우리한테는 돈이 많이 들어가서 못해준다는 것은 어폐가 있는 말 아닌가.


(최승우) 지금도 범죄를 통해 이득을 얻은 사람에 대해서는 재산을 몰수하지 않나. 그렇게 해서 피해자들에게 주는 게 상식적인 거다.


-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와는 별도로, 궁극적으로는 이런 고통을 잊지 않고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부산에는 현재 형제복지원 건물 터가 대부분 없어져서 역사의 기억과 공유를 위한 터전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겠다.


(한종선) 부산의 형제복지원 터는 대부분 없어졌지만, 울산에는 남아 있다.(박인근이 원생들을 동원해 만든 운전교습소 터. 부산의 형제복지원 터에는 현재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 편집자 주) 거기에 누군가가 기거하고는 있는데, 그걸 국가가 매입해서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부산에는 추모사업비를 세우고, 희생자들을 가매장했던 영락공원에는 별도의 추모공원을 설립해야 한다. 광주 망월동을 나중에 정비해서 5.18희생자를 위한 정식 묘지로 조성했던 것처럼 그렇게 해야 한다.


(최승우) 인권위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권고 입장 발표할 때 강제실종방지협약 체결도 권고했는데, 그런 취지에서 본다면 무연고자에 대한 DNA를 감식해서 연고자들을 반드시 찾아줘야 한다.

 

형제복지원의 만행을 고발하는 선전물들이 농성장 옆 벽에 부착되어 있다.

- 진상규명을 위한 법 통과가 미뤄지면서 농성도 해를 넘길 것 같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승우) 우리는 정말 부랑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부랑인이라 하더라도 인간에게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는가. 이 엄청난 사건을 알리는 일에 힘 보태주셨으면 한다.


(한종선) 요즘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소외된 약자들이 보호받는 세상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제 피해당사자로서 우리가 할 역할은 피해를 겪은 아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가 겪은 아픔을 시민들도 간접 경험하면서 경각심을 가지고 정치를 향해 함께 요구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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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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