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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형제복지원은 ‘1987 민주화 역사’에서 왜 삭제됐나
형제복지원 사건, ‘부차적 문제’로 인식한 민주화운동진영
“민주화 운동, 숭고하게만 바라볼 것인가, 더럽고 불편한 우리에 대해서도 말할 것인가?”
등록일 [ 2018년02월09일 18시49분 ]

박종철 고문치사를 담은 영화 ‘1987’로 1987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호출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87년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들끓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시간을 달리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서 운영된 전국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로 공식 기록된 사망 숫자만 551명에 이른다. 그러나 87년 초, 잠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을 뿐 민주화의 열기에 휩쓸려 곧 잊혀지고 만다.

 

87년 신민당의 조사보고서, 민주화운동진영의 기록을 담아 88년 발행된 ‘민추사’ 등을 보면 당시 사회도 형제복지원 사건을 독재정권의 폭력성을 드러낸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형제복지원은 87년 민주화의 역사에서 ‘삭제된’ 것일까. 30여 년이 흐른 지금, 형제복지원을 ‘또 하나의 1987’로 소환하여 이를 복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8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서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등의 주최로 ‘또 하나의 1987, 형제복지원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으로 이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열렸다.

 

8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포럼 ‘또 하나의 1987, 형제복지원을 생각한다’. 왼쪽에서부터 주윤정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 최종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 임미리 한신대 학술연구원 전임연구원.
- 당시 사회 ‘정권 폭력성 드러낸 사건’으로 인식했지만 점차 잊혀가 

 

민주화운동진영의 기록을 담아 1988년 발행된 ‘민추사’는 박종철 고문치사와 함께 형제복지원 사건을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이 단순 복지시설에서 발생한 끔찍한 인권유린의 문제를 넘어 정권의 폭력성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정부여당이 이른바 부랑인들에 대한 복지 정책을 순수 복지 차원이 아닌 사회 안정적 차원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필연적으로 발생한 대규모 국민인권 탄압사건이다. 정부 예산의 횡령, 인권유린, 사체유기, 노임착위, 집단탈출 등으로 얼룩진 이 사건들은 제5공화국의 복지정책의 가면을 완전히 벗겨냈으며 정권에 대한 부랑계층의 위험을 제거하고자 하는 정권 안정적 차원의 의도를 유감없이 폭로하고 말았다.” (민추사, p.652)

 

주윤정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형제복지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87년 작성된 신민당 조사보고서에도 드러난다고 밝혔다. 주 연구원은 “87년 신민당 조사보고서는 부랑인 문제를 도시 질서의 치안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한 내무부 훈령 자체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하며, 이것이 ‘안보’ 차원에서 이뤄졌음을 지적한다”면서 “부랑인을 복지라는 미명하게 치안, 안보의 논리로 관리하고 통제했다는 게 당시 신민당 조사위원회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87년 6월 항쟁 이후 형제복지원은 점차 잊혀 간다. 재판에서 감금죄는 인정되지 않은 채 박인근 형제복지원장이 징역 2년 6개월을 살고 나온 게 전부다. 수면 위로 가라앉은 형제복지원을 다시 끌어올린 건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12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의 국회 앞 1인 시위였다. 형제복지원 실상이 담긴 책 ‘살아남은 아이’가 그해 출간되면서 사회는 다시 형제복지원에 주목한다.

 

주 연구원은 “일본 위안부 문제, 한센병력자 문제, 형제복지원 사건 등 과거엔 침묵을 강요당한 주체들이 사회적 발화의 주체로 재발견된 데에는 당사자들의 주체화와 함께 이에 연대하는 사회운동, 전문가 조직 등의 성장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주 연구원은 과거 형제복지원이 거대화된 시점에 주목한다. 신민당 보고서에 따르면 86년 형제복지원 수용자 수는 3975명이다. 형제복지원이 이토록 거대화되는 데에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영향을 미쳤다. 81년에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면서 정부는 도시정화 활동의 하나로 거리의 부랑아들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이들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시설로 치워버린 것이다. 82년부터는 정부 보조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복지기관들의 규모가 비대해진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치워진 것은 아니었다. 주 연구원은 “부랑인, 장애인을 도시에서 제거해나가면서 한편에선 88년 장애자올림픽을 통해 가시화하기도 했다”면서 “1980년 올림픽 개최국인 소련이 ‘자국엔 장애자가 없다’며 장애자올림픽 유치를 거부했는데, 장애자를 은폐하는 공산주의 사회에 비해 서울장애자올림픽은 자유민주국가의 선진성과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성대하게 개최됐다”고 설명했다. 냉전체제 속에서 정부의 전략적 선택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가시화 여부가 결정됐는데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이들은 ‘비가시화된 존재’였다는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진상규명하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포럼에 참석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 형제복지원 사건, ‘부차적 문제’로 인식한 민주화운동진영

 

최종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민주화운동 시기에 왜 합류하지 못한 채 고립되고 잊혔는지에 대해 사회운동론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최 연구원은 “87년 언론환경은 민주화운동세력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면서 “박종철 사건도 언론에 알려지기 어려웠는데, 두 사건의 보도 건수를 보면 형제복지원 사건이 박종철 사건에 비해 특별히 엄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박종철 사건이 형제복지원보다 보도 건수는 세 배 가까이 많았으나, 형제복지원이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발생했고 울산지청 검사 한 명이 담당한 단일 수용시설 사건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리 적은 보도 건수라고 할 순 없다”면서 “박종철 사건은 서울에서 발생하고 경찰 핵심 수뇌부가 개입한 고문치사 사건으로 모든 민주화운동세력이 관심을 쏟고 있었다”고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상황을 보면, 박종철 사건도 1~2월에 반짝 조명을 받은 뒤 점차 신문지상에서 사라졌다가 5월에 이르러 죽음이 은폐·조작된 것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보도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런데 당시, 형제복지원 사건은 왜 점차 비중이 줄어든 것일까. 최 연구원은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은 민주화운동과 친밀한 원내 정당이었다”면서 “형제복지원 사건과 박종철 사건이 동시에 터졌는데 정부에 의해 박종철 사건이 덮일 가능성이 있자 둘 중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신민당이 수위 조절했다는 기사들이 있다”면서 정당의 전략적 선택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민주화운동진영은 ‘고 박종철군 국민추도회준비위원회’로 결집했는데 형제복지원 사건에 결합했다는 보도는 찾아볼 수 없다. 민주화운동진영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극악무도한 사건이긴 하나 시급한 문제는 아니며, 세상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보았던 거 같다”면서 “일반대중 역시 형제복지원 사건에 공분은 했지만 동참하진 않았으며, 형제복지원 피해 당사자들 역시 운동 주체로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임미리 한신대 학술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일반 대중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참혹함에 동참하지 않은 이유는 “그 죽음이 ‘이유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면서 “죽을만한 이유는 그들이 바로 ‘부랑자’라 불리는 도시하층민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일반 대중과 도시하층민을 분리해서 분석했다. 임 연구원은 “모든 저항에선 적과 동지라는 전선이 형성되어야 한다”면서 “중산층으로 대표되는 일반 대중의 적은 국민을 이유 없이 죽인 ‘독재정권’이며 동지는 죽임당한 자의 슬픔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그러나 도시하층민이 겪는 차별의 본질은 ‘인간 이하의 대접’이고 그러한 대접을 하는 것은 정권뿐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이기에 그들의 적은 ‘세상 전체’인 반면 동지는 없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일반 대중과 도시하층민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주체라는 것이다.

 

세상 전체가 적인 도시하층민의 저항행위는 필연적으로 폭력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들의 폭력성은 ‘안전’을 복원하기 위해 저항하는 일반 대중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비폭력을 주장하며 저항하는 일반 대중은 폭력적인 도시하층민을 밀어낸다. 따라서 일반 대중은 그들에게 연민과 동정은 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의 고통에 공감해 함께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
 

- “민주화 운동, 숭고하게만 바라볼 것인가, 더럽고 불편한 우리에 대해서도 말할 것인가?”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는 “민주화운동을 숭고하게만 바라봐야 하는가 아니면 더럽고 불편하기에 배제되었던, 우리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하는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한 대표는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날 때 난 다른 고아원으로 강제 전원조치 되고 있었다”면서 “우리는 강제적으로 잡혀들어가 갇혀있었기에 87년 민주화 운동에 개입할 수 없는 구조였다. 민주주의가 ‘평등 속에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이들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여러 이유들로 배제됐고 의도적으로 삭제됐다. 오늘날, 이들의 존재를 선명히 드러냄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달리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 폭력이라면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폭력의 연쇄를 끊어내는 작업이 된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형제복지원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94일 째(8일 기준)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 중인 이유다. 한 대표는 “국가가 우릴 또다시 방치하고 있어 자포자기 심정으로 20대 국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아래 진화위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 주저앉자는 생각에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피해 회복을 위해 요구하기보다 ‘착한 피해자로서’ 남기를 강요하는 이 사회의 시선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사회는 피해자들에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강요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스스로 살려달라고 외칠 때, 그 절박함엔 살고자 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서 피해‘생존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피해생존자로서 피해 사실에 대해 기억할 수밖에 없다. 이 기억을 통해 또 다른 피해자가 만들어지지 않게끔 피해자이자 기록자, 증언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피해생존자의 길”이라면서 “우리도 여러분들과 같이 살 수 있는 엄연한 인간이다. 우리는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은 “추운 날씨에 피해생존자분들이 농성하는 것도 너무 안타깝고, 여전히 아무 대답 없는 국회도 참 답답하다”면서 “광주 인화원, 대구시립희망원 등 형제복지원과 같은 사건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국회에서 진화위법을 속히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인권위도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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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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