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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일 농성 짐 그대로 싸서 서울역에 2박 3일 농성하러 왔죠’
발달장애자녀 둔 부모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 기회를 주긴 줬나요?”
TF 꾸려놓고 ‘예산 없다’며 버티기 들어간 정부에 장애계는 ‘분노’
등록일 [ 2018년02월13일 21시54분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13일 오전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85일간 점거했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농성을 ‘중단’하고 당일 이어서 서울역에서 2박3일 농성에 돌입했다.
서울역 2층 평창 오피셜 스토어.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와 반다비가 손 흔드는 그 바로 옆에 파란색 천막 한 동이 생겼다. 천막 한 면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커다란 짐을 메고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이 종으로 횡으로 분주히 움직이며 그 낯선 공간에 힐끗 시선을 던진다. 농성장을 바라보며 한 장애인 활동가가 “신정은 장애인고용공단에서 보냈는데 구정은 서울역에서 맞이하게 됐네요”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은 13일 오전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85일간 점거했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농성을 ‘중단’했다.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 폐지, 공공부문 일자리 1만 개 도입 등을 논의할 TF를 고용노동부와 꾸리기로 협의한 것이다. 3월 중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도 이뤄질 예정이다. (관련 기사 : 장애인 노동권 보장 외친지 85일 만에 드디어 정부와 협의 길 열렸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권을 넘어,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복지, 이동, 문화예술에 관한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며 85일간의 짐을 그대로 싸들고 그날 바로 서울역에 또 다른 농성장을 차렸다. 이들은 현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농성은 설 연휴가 시작되는 15일까지 2박 3일간 이어진다.

 

무엇이 그토록 절박한 걸까. 85일의 농성 마지막 날이자 2박 3일 농성의 첫날인 13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최명진 씨가 아들 김성현 씨와 함께 서울역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 발달장애부모 최명진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 기회를 주긴 줬나요?”

 

발달장애자녀 부모인 최명진 씨(50세)는 아들 손을 붙잡고 아침 일찍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곧바로 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 가서 아들과 몸피켓을 챙겨입고 농성 중단 기자회견에 참석한 뒤, 사람들과 함께 공단에서부터 2km를 행진해 서울역에 도착해선 2박 3일 농성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의 아들은 올해로 스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전공과에 들어간다. 지역사회에서 중증자폐성장애 아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으므로 원치 않아도 갈 수밖에 없었다.

 

“지역사회 안에서 자기 배우고 싶은 거 자유롭게 배울 수 있게 해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주간활동서비스(활동보조바우처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 시작하면 그쪽으로 보내고 싶었는데 지금 복지부에서 시범사업만 하고 시작을 안 하니깐. 현실적으로 또래들 만날 수 있는 곳이 전공과밖에 없잖아요.”

 

그러나 전공과 다닐 수 있는 기간은 1년밖에 안 된다. 전공과마저 졸업하고 나면 하루 24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채워야 할까.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노동권 보장을 위한 농성은 바로 아들 삶의 문제였다. 아들의 미래에 대해 묻자 그는 빠른 속도로 말을 뱉어냈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우리 아이 취업은 쉽지 않아요. 애초에 업체에 아이 맡기는 게 어렵기에 국가가 발달장애인도 직업 가질 수 있는 환경을 권리로써 보장해줘야 해요. 비장애인과 비교해 ‘이걸 못한다’고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건 일 자체를 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아요. 국가가 장애인 등록증을 줬으면 그 장애 특성에 맞게 국가가 해법을 제시해야죠.”

 

목마른 이가 직접 우물 파듯, 최 씨처럼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대전 장애부모들은 5년 전 손수 ‘연리지 장애가족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렸다. 이곳은 친환경 세차장을 운영을 통해 발달장애인 5명을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계에 부딪혔다’고 토로했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모델을 만들었지만 권리로 보장되지 않으니 확산이 안 돼요. 이 황무지에선 싹을 틔울 수가 없어요. 토양 자체가 바뀌어야 해요. 지난 5년간 ‘발달장애인이 일 못 하는 게 아니다, 높은 퀄리티는 아니지만 기회를 주면 분명 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과연 장애인들에게 다방면으로 일할 기회를 줬나요? 주지 않았죠. 비장애인이 10번 해서 한 번 가능하다면 장애인에겐 100번의 기회를 줘야 해요. 그런데 충분히 경험할 기회도 주지 않았고, 공교육 내에서조차 배제하고 있어요. 장애 때문에 99%가 안 된다고 해도 1%의 강점이 있다면 그걸로 직업 개발하자는 거예요.”

 

그렇기에 그는 정부에서 ‘공공일자리 1만 개’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일자리란 중증장애인의 특성과 그들의 권리보장요구 활동(권익옹호, 문화활동, 동료상담 등)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이를 공공에서 최저임금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 개’  보장은 최저임금법 상의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 삭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개혁과 함께 노동권 보장 촉구 농성의 주요 요구안 중 하나였다.

 

서울역 농성장 앞에서 조화영 씨
- 발달장애인 당사자 조화영 “나도 최선을 다했는데 그 모습이 안 보였나봐요”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조화영 씨(29세)는 발달장애인 자조단체인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이고, 장애여성공감 내 연극팀 ‘춤추는허리’ 배우이며, 지적장애여성합창단 ‘일곱빛깔무지개’의 합창원이다. 그는 주변이 인정하는 ‘끼 많은 사람’이다. 특수학교에 다니던 시절 연극을 했던 그는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던 중 장애여성공감을 알게 됐다. 그 인연으로 2015년부터 ‘춤추는허리’에서 연극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연극에서 주인공으로 대사 칠 때가 제일 좋아요.” 

 

그는 연극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오롯이 섰던 것처럼 지역사회에서도 주인공으로 단단히 서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저는 직장이 없어요. 원래 있었는데. 하다가 잘렸어요. 모자공장에 2011년~13년까지 다녔어요. 빨리, 빨리, 빨리해야 하는데 (빨리 못해서 잘렸어요).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그 직장에선 빨리하는 모습이 안 보였나 봐요. 빨리빨리 하는 사람은 월급 많이 주고 빨리 못하는 사람은 적게 주더라구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일했어요. 한 달에 4만 8090원 받았어요.” 

 

현재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 역시 자립생활을 꿈꾼다. 자립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나 지금은 춤추는 허리, 일곱빛깔무지개 활동을 통해 받는 공연비가 수입의 전부다. 지금 하는 활동이 ‘공공일자리’로 인정되어 이 활동을 통해 월급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

 

- 장애인 활동가 박현 “2001년, 2004년 서울역에서 했던 요구안 들고 또다시 서울역에”

 

최근 몇 년간 명절 때면 장애계는 고속버스터미널을 점거한 채 ‘장애인도 고향 가고 싶다’며 휠체어 탄 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는 시외이동권 현실을 알려왔다. 그러나 이번엔 서울역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겨냥해 평창으로 향하는 이들에게도 장애인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명패를 찬 외국인들이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았으며, 지나가던 외국인들 또한 핸드폰으로 기자회견하는 모습을 담아 갔다.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핸드폰으로 촬영하여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호기심 어린 바깥의 시선이 교차하는 곳에서 20년 가까이 장애운동을 해온 박현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의 마음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그에게 서울역은 ‘사연 많은 곳’이다.

 

“2001년에 최옥란 열사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여기, 서울역에서 농성을 했어요. 2004년도에 KTX 개통하는 날엔 ‘장애인 배제하는 KTX 반대한다’면서 우리 태우지 못할 거면 못 간다고 투쟁도 했고. 그런데 2018년도에 또다시 국토부 장관, 복지부 장관, 문광부 장관 만나달라며 농성하네요. 아직도 2001년도에 얘기했던 최저생계비 현실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해결되지 않았고, 이동권 투쟁으로 법까지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향 가는 버스를 향해 손 흔들며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이 아직도에요. 안타깝지만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으니깐.”

 

그는 한숨 대신 “끝까지 투쟁”이라고 덧붙였다.

 

- TF 꾸려놓고 ‘예산 없다’며 버티기 들어간 정부에 장애계는 ‘분노’  

 

이들을 움직인 건 절박함과 함께 ‘분노’다. 정부는 장애계와 장애등급제폐지위원회, 부양의무제폐지위원회, 탈시설위원회, 장애인이동권보장위원회 등 수많은 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정작 ‘예산이 없다’며 장애계의 어떠한 요구도 수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가 책임지고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해야 하는데 기재부 핑계 대며 예산 없다고 해요. 장애등급제폐지TF에서도 우리가 장애인연금 대상자랑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자 확대를 요구하니깐 복지부도 ‘예산없다’ 하고. 돈 없다고 할 거면 애초에 논의를 왜 시작했습니까? 예산을 통한 권리 보장이 안 된다면 ‘립서비스’만 하겠다는 겁니까? 문화도, 장애인은 왜 맨날 구경만 해야 합니까. 우리도 문화의 주체가 될 수 있어요. 이제 구걸 안 합니다. 우리가 구걸하면 구걸할수록 이 사회는 같이 망하는 사회가 돼요.” (박경석 전장연 대표)

 

내일(14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귀성객 배웅차 서울역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마이크를 들어 ‘선전포고’를 했다.

 

“김현미 장관 내일 만날 겁니다. 만나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대합실로 내려갈 겁니다. 김현미 장관은 지난 추석 때 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KTX를 타러 가는 길목에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하라’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장애인고용공단 건물 외벽에 걸려있던 대형현수막이다. 그렇게 2박 3일의 농성이 또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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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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