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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은 떠나도 인권조례는 지켜져야 한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폭로는 인권조례 필요성 반증하는 사건
인권조례 폐지 요구 의원들 역시 '인권조례 필요성'의 살아있는 증거
등록일 [ 2018년03월06일 17시46분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진출처=충청남도)
 

'인권 도정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했다. 지난 27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아래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재의를 요청하며 했던 말이다.

 

그리고 충남도의회 회기를 하루 앞둔 3월 5일, 그는 도지사직을 내려놓았다. 수행 비서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성폭행해왔던 것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잠적했고 서면으로 '사임통지서'를 보내왔다.

 

이런 묘한(?) 타이밍에 맞춰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을 요구해온 자유한국당이나 보수 개신교계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소속 충남도의원들은 “안 지사가 편협한 도정운영 철학에 따라 편파적으로 추진된 충남인권조례 폐지 재의 요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라며 행정부지사를 찾아 재의 요구 철회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사: 안희정 지사 성폭행 논란, '충남인권조례도 역풍 맞아')

 

한 보수 개신교 단체 대화방에서는 '안희정 규탄 기자회견'에 참여할 '여성도님들'을 모은다는 긴급공지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잊을 만 하면 터져 나오는 교계 내 성폭력 사건에서 목사나 전도사 등 가해자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일일이 해왔다면 이번 기자회견 역시 그 연장선에 있겠으나, 그러지 않았다면 의도는 뻔하다. 안 씨가 재의 요청을 했던 인권조례 재의 요청을 무산시켜 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안 씨의 도덕적 흠결이나 범죄행위가 폐지안 재의 요청마저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의 범죄 행위는 오히려 인권조례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그 자체로 범죄이다. 그러나 그러한 범죄가 발생하는 배경에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여성 혐오 문화가 있다. 이 문화 속에서 여성은 쉽게 도구화되고, 폭력과 범죄의 대상이 된다.

 

인권 의식의 성장으로 인해 ‘미투’ 운동은 확산되었고, 우리는 안 지사의 행위를 ‘범죄’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이 정체되어있었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일들은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라거나 ‘남자가 큰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들 속에 흐지부지되곤 했다.

 

그러나 세상은 분명 달라졌다. 피해자들은 더 이상 숨지 않는다. 이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론화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더 담대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담대함이 성장한 토양은 여성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명제에 많은 사회구성원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어긴 가해자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신뢰감’이다.

 

인권조례는 바로 이러한 신뢰를 문서로 만든, 일종의 계약서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 자신의 존엄을 훼손당했을 때, 그것을 이 사회는 묵인하지 않을 것이며,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지방정부, 나아가 국가의 약속이다.

 

여성뿐만 아니다. 충남도 일부 의원들과 보수 개신교계는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부추겨 에이즈를 확산시키고, 출산율을 떨어트린다'는 기묘한 논리를 들어 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외적으로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범죄시하고 이들에 대한 혐오를 강화하는 언어를 내뱉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인권조례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지난 2월 2일 진행된 충남도의회 회의에서, 폐지안을 대표 발의한 김용필 바른미래당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분이 교통사고를 겪을 수 있습니다. 성 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남편이고 아내였다고 생각하면 한 사람이 그런 어떤 성적인 부분이 없다고 하면 다른 곳에 가서 성적인 기능을 찾으시겠습니까? 나와 성적인 관계는 가질 수 없지만 아름다운 삶의 의무는 지고 가야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 의원이 말한 ‘아름다운 삶의 의무’란 무엇인가. 그것은 파트너가 서로를 존중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생겼을 때 함께 이겨나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이 ‘성소수자’의 존재를 반대하는 것에 어떤 근거를 제공하는가. 더구나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성 기능’을 논의에 끌어들이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동성애자는 성관계로만 파트너쉽을 유지한다’는 명제가 너무 투명하게 드러나는 혐오 발언은 아닌지 되묻고 싶어진다.

 

김 의원은 이어 이런 발언도 한다.

 

“충남에 단 한 명의 에이즈 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치료하기 위해 1년에 들어가는 치료비 3,500만 원 우리 세금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그가 마지막 고침을 다 받기까지 5억, 6억 원의 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가운데에서 ‘너의 성적지향이 그렇기 때문에 너의 그런 것까지 존중해 주겠어’라고 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에이즈 감염인에게 들어가는 치료비가 ‘혈세 낭비’이므로 아깝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다양한 성적 지향’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김 의원은 도내 의료비 지출 중 에이즈만 아깝다고 생각하는지, 혹시 병에도 계급이 있어서 어떤 사람의 병은 지원이 마땅하지만 어떤 사람의 병은 지원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다. 도민들은 혹시라도 김 의원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병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테니까.

 

더구나 에이즈의 감염경로가 꼭 ‘동성 간의 관계’때문으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상식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에이즈는 이성, 동성을 막론한 성관계나 주사기 사용, 모유 수유 등을 통한 체액의 직접 접촉으로 인해 감염된다.

 

지난 2월 2일, 충남도의회에서 인권조례 폐지안 찬성 발언을 하고 있는 김용필 바른미래당 의원. (사진출처=충남도의회)

 

충남인권조례 대표발의자였으나 이제는 폐지안에 표를 던진 송덕빈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같은 날 “대한민국 인구증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폐지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모든 도민이 ‘인구 증가를 위한 출산의 도구’로 전락한 순간이다.

 

폐지안에 반대하며 이렇게 공공연하게 인권 침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쏟아낸 의원들이 과연 안 지사를 규탄할 자격이 있는가. 아니면 ‘차별금지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들의 발언이 ‘아직’ 범죄가 아니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된 한국사회에서 ‘이제’ 범죄자인 안 지사를 규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인권조례 폐지’를 부르짖는 것 자체가 인권조례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블랙코미디를 충남도의원들만 못 보고 있는 것 같다.

 

안 지사는 당연히 도지사직에서 물러나고, 성폭력 가해자로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인권조례 폐지' 주장에 단 한 줌의 무게도 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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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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