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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본 패럴림픽 개막식...한국의 장애인식 수준이 드러났다
편의시설 엉망, 장애인 빠진 개막식, 율동으로 대체된 수화통역
한국의 낮은 장애인식 수준 그대로 드러난 패럴림픽 개막식
등록일 [ 2018년03월12일 20시01분 ]

비마이너는 지난 주 평창패럴림픽 개막식 현장과 그에 앞서 진행된 ‘평창패럴림픽 국제컨퍼런스’를 취재했습니다. 30년 만에 국내에서 열린 패럴림픽, 저희도 참 많은 기대를 하고 현장에 나갔는데요. 패럴림픽 개막식이 평창 동계올림픽의 열기를 이어나가며 ‘하나된 열정’을 보여주었다는 많은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실망스러운 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평창 패럴림픽의 못 다한 뒷 이야기, 기자들의 말로 직접 전합니다. 

 

‘한국적인 것의 향연’ 속에, 장애인 편의시설은 어디에? (김혜미 기자)


올림픽은 한 국가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그곳에서 소수자를 배제한 채 ‘성장’한 ‘한국적인’ 모습을 그대로 봤다.


시작부터 힘들었다. 저상버스가 부족해 휠체어 이용자가 섰던 줄이 빠지는 속도가 너무나 느렸고 스타디움으로 오는데 한참 걸렸다. 도착해도 문제였다. 스타디움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검색대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휠체어 비이용자보다 검색대 수가 훨씬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한 칸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있던 스태프들에게 다른 곳이 있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심지어 한 스태프는 “(휠체어 이용자는) 검색대들 서 있는 그 틈사이로 통과하시면 된다”고 답했다. 간격이 좁아 휠체어 통과가 불가능해 보였다. 기념품점에 들어갔더니 마찬가지였다. 점자블록도 없었다.

 

평창패럴림픽 개막식 성화봉송 장면.


개막식은 좀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북, 한복 같은 것으로 꾸며진 ‘한국적’ 무대가 펼쳐졌다. 그 뒤로도 ‘한국적’인 것의 향연이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감동서사부터 대부분 비장애인들만 나오는 패럴림픽 개막식까지. 개막식 현장에는 TV방송과 달리 장애인 연기자에 대한 장내 설명이 없었다. 그래서 보는 동안 “패럴림픽에 장애인 배우나 연기자는 왜 없는 거지?”를 생각하다가, 장애 특징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 중심으로 예술공연을 했으리라 혼자 결론을 내려야 했다. 이희범 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이 40초 동안 발언한,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한국적’인 개막식에 한 몫 했다. 이런 사람이 올림픽을 총괄했으니, 개막식의 내용도, 스타디움의 시설이 배리어프리(Barrier Free)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원래, 올림픽이 개최국의 사회수준을 보여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올림픽이 보여주는 화려한 모습에 감춰진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침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말을 믿는다. 엉망이었던 편의시설, ‘한국적’인 장애인식에 대한 수준을 눈으로 확인했다. 한 장애인단체가 개막식 전에 평창 인근 지역 민간시설에 대한 휠체어 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고작 36.7%만 가능하다고 밝힌 내용도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많은 성과를 냈다고들 한다. 그 성과 중 하나로 꼽자면,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한국사회가 가진 장애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그대로 전시됐던, 참으로 ‘한국적인’ 패럴림픽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장애인을 찾아볼 수 없었던 패럴림픽 개막식 (최한별 기자)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 이렇게 큰 행사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니만큼, 그동안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대한 부정적 인상은 잠시 접고 설레는 마음으로 개막식을 지켜봤다. 추위도 잊은 채 기다리고 있으려니, 뭔가 쿵쿵하고 번쩍하고 콰광하면서 개막식은 말 그대로 '빵‘ 터졌다.


하지만 개막식이 진행될수록 고개가 90도를 향해 꺾여갔다. '패럴림픽 개막식에 왜 이렇게 장애인이 없지?'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 문화 공연에서 볼 수 있었던 장애인은 첫 공연이 시작될 때 북을 치던 신명진 씨, 시각장애인 이소정 씨와 휠체어를 이용하는 무용가들이 전부였다.


개막식 공연의 수준을 운운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분명 예술과 기술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반다비도 너무 귀여웠다(사랑해 반다비). 패럴림픽은 장애인'만'의 축제니까 장애인이 많이 나와야지,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패럴림픽 개막식에서조차 장애인의 존재가 '케이크 위 체리' 정도인 것은 좀 너무하지 않나.


패럴림픽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 공연 영상을 보면, 이 때 개막식은 한 편의 뮤지컬로 구성되었다. '인류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는 주인공 미란다는 장애 아동이며, 그를 둘러싼 많은 무용수와 연기자들은 장애, 연령, 인종을 망라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로 구성되었다. 그중에는 영국 장애인 예술가 데이빗 툴(David Toole)을 비롯해 다양한 장애인 예술단체 출신 아티스트들이 있다. 미란다의 여정은 유엔 세계인권헌장에서 출발해 '권리(Rigjts)', '나는 중요한 사람이며, 내 모습이 바로 나다(I am somebody, I am what I am)'을 외치며 이어진다. 개막식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의 거대한 조각상이다.

 

런던패럴림픽 개막식의 한 장면. (패럴림픽 공식 유튜브 채널 갈무리)


패럴림픽의 기본 정신으로 '인권'을 말하고, 장애인 소녀가 능동적으로 모험을 해나가며, 장애인 아티스트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예술적 기량을 드러내는 무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인권에 기반한 장애인 정책과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온전히 주체가 되는' 무대가 이런 기반 없이 삽시간에 만들어질 수는 없다.


패럴림픽 개막식은 그 국가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장애인 정책은 얼마나 탄탄한지, 그리고 그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국가 장애인 정책의 집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의 한계는 곧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한국 장애인 정책과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아아, 조국이여. 나에게도 '국뽕' 맞을 수 있는 기회를 다오.

 

수화율동이 수화언어를 대체할 수 있을까? (강혜민 기자)


다른 두 기자가 평창에 직접 가서 패럴림픽 개막식을 보고 오는 동안, 나는 SBS 중계를 통해 개막식을 지켜봤다. 하지만 나는 개막식 내내 속에서 올라오는 불편함에 미간에 힘을 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선수단 입장 후, 시각장애인 이소정이 점자블록을 밟고 등장한다. 발밑의 감각을 느끼기 힘든 두터운 패딩부츠를 신고 흰지팡이 없이 점자블록을 밟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점자블록도 몇 발자국 안 깔렸다. 아무 표시 없는 ‘맨바닥’을 몇 걸음 더 걸은 뒤 그가 허공에 그림을 그린다. 그가 그린 것들이 무대 위에 미디어아트로 펼쳐진다. 화려한 조명이 그려내는 무대에 사람들은 감탄하고 환호한다. 그런데 정작 그는 자기 앞에 무엇이 펼쳐지고 있는지 ‘볼 수 없다’. 잠시 후, 반다비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나타나 그에게 귀마개를 준다. 나는 저 귀마개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이 흘러나오는 걸까, 내내 궁금했다.


아이들이 뛰어나와 춤추고, EDM 노래가 나오고, 반다비도 춤추고, 사람들은 환호한다. 비시각장애인은 ‘시각을 통해’ 지금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지하는 반면, 시각장애인은 ‘소리를 통해’ 주변 상황을 인지한다. 지금 무대 위에 서 있는 이 씨에게 저 공간은 어떻게 감각되고 있을까, 궁금했다. 물론 그는 연습 과정에서 설명을 들었으니 지금 어떤 일들이 펼쳐지는지는 알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아는 것’과 그 현장을 함께 즐기는 것은 별개이다. 저 순간 이소정은 어떤 ‘편의제공’을 받았을까? 단지 저 공간에 ‘전시된 인간’이 아니라 이 순간을 함께 즐기는 퍼포머로서 말이다. 패럴림픽 개회식 현장에 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해설기 같은 건 있었을까?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시각장애인 이소정의 노래 공연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소정의 아름다운 노래에도 불구하고 내 미간은 펴지지 않았는데 왜냐면 그 순간 수화통역 화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오른쪽에 조그마하게 있던 수화통역 화면은 자주 사라졌다. 그 사라짐이 더욱 눈길을 끌었던 것은 무대에 섰던 아이들이 ‘수화 율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라는 수화 통역은 안 하고 저렇게 율동으로 전락시켜버리다니….’ 아마 방송을 본 농인들 대다수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수화율동이 내겐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수화는 언어지 ‘율동’이 아니다. 수화를 언어로 보지 않고 ‘아름다운 율동’으로 ‘이용’하는 것 때문에 ‘한국수화언어법’에선 일부러 ‘수화언어’, 줄여서 ‘수어’라고 표기한다. ‘손만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수어가 아니다. 수어엔 얼굴 표정, 상체 움직임까지 포함된다. 또한 농인들이 쓰는 수어는 한국어와 문법체계가 달라서 수어를 모어로 쓰는 농인이라면 한국어 읽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자막 지원과 수어 지원이 동시에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희범 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은 “3중의 장애를 극복한 헬렌 켈러”,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 승리를 이룬”과 같은 말을 했는데, ‘장애 극복’이라는 말을 패럴림픽 조직위원장 입에서 개막식 때 듣게 될 줄이야. 이건 좀 충격이었다. 장애가 극복의 대상인가? ‘장애 극복’이란 대체 무엇인가? 장애 없는(비장애) 선수들이 엄청난 노력을 해서 운동을 잘 하듯, 장애 있는 사람들도 엄청난 노력을 해서 운동을 잘 할 뿐이다.


SBS 해설자도 “장애와 일반인”, “장애 선수와 일반 선수”와 같은 표현을 종종 썼다. ‘비장애인’이라는 기본 단어조차 모르는 사람이 국제 패럴림픽 해설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성화봉송 장면도 아찔했다. 의족을 한 선수(한민수 장애인아이스하키대표팀 주장)가 마치 암벽 등반하듯 로프에 의지에 가파른 경사로를 올랐는데 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이후 보도된 기사를 보면 리허설도 거의 없다시피 진행되어 한민수 선수도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봉송하는 내내 바지 끝에 슬며시 보인 의족이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장애는 감추어야 하고, ‘장애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해내어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그게 장애여야 하는가? 바지에 가려진 의족을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어서, 뇌병변장애가 있는 신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어서, 장애에 대한 프라이드를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개막식이 구성될 순 없었던 걸까. 장애를 다루는 사회의 손놀림이 느껴지는 개막식이었다. 개막식 후 패럴림픽 경기 중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역시나, 장애가 보여주기식으로 전시되고 치워져 버린 것 같아 매우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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