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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서 장애인이 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메탄올 중독 실명 노동자들의 분투기 <실명의 이유>
등록일 [ 2018년03월21일 12시37분 ]

"그들의 삶은 특별하다.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누군가의 돈벌이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시력을 잃었다. … 우리 사회는 그들을 피해자라며 불쌍히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정부와 기업에 책임을 묻고 또 다른 피해자의 발생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더 도울 일이 없을까요?"라고 말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용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 선대식, <실명의 이유> 6-7p


<실명의 이유>는 2016년 1월 16일 병원 응급실에 온 한 노동자의 사연으로 시작된다. 원인불명의 사건으로 눈이 보이지 않았던 노동자는 이후 자신과 똑같은 일을 하다 다친 노동자들을 만난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휴대폰 만들다 눈먼 청년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실명의 이유>는 2015~2016년 삼성과 엘지의 3차 하청업체에서 삼성, 엘지 핸드폰을 만들다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6명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메탄올 중독 실명 사건을 단순히 노동자가 메탄올이라는 독성 물질에 중독된 사건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파견 노동 확대와 메탄올 중독 실명 사건을 유기적으로 엮어 작업현장의 변화와 고용형태가 어떻게 노동자 건강 문제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 <오마이뉴스>의 기자이기도 한 저자는 직접 위장 취업을 통해 파견 노동의 민낯을 드러냈다.

 

선대식 저, <실명의 이유 - 휴대폰 만들다 눈먼 청년들 이야기>, 북콤마, 2018


작년 7월부터 노동건강연대와 함께하며 이 이야기에 작게나마 참여한 나에게 이 책은 파견노동, 메탄올 중독 외에 또 다른 측면으로 다가왔다. 저자도 밝혔다시피 이 책은 하나의 르포이자 고발인 동시에 한순간에 시력을 잃은 6명의 청년 노동자의 '용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과 함께 걸었던 순간, 그들은 단순히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용기는 쉽사리 좌절당했다. 산재 노동자 재활에 책임을 가진 근로복지공단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노동건강연대가 6명 노동자의 재활에 함께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용기가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로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노동건강연대는 6명의 노동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을 가고, 식사를 하며 그들의 새로운 삶을 응원했다.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메탄올로 인한 시력 손상은 메탄올 피해 노동자들의 신체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엄청난 변화를 만들었다. 늘 다니던 길을 더 이상 다닐 수 없었고, 분신과도 같은 핸드폰도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돌봐 줄 가족이 애초에 없거나 부재중일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어진 것이다.


한순간에 시각을 손실하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인해 시각장애에 대한 정보조차 부재했다. 하지만 메탄올 중독 사건이 일어난 지 적게는 1년 반, 길게는 2년 반이 될 때까지 누구도 그들에게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산재 노동자의 재활서비스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전화 한 통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분투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메탄올 중독에 책임 있는 어떤 기관의 도움도 받지 못해 좌충우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메탄올 피해 노동자 6명과 함께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것들을 직접 찾아보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6명 모두 살고 있는 곳이 달랐고, 몸 상태와 현재 처한 처지도 달랐다. 기관을 찾는 것도, 필요한 서비스와 기기를 사는 것도 품이 6배로 더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6명의 노동자는 모두 사회로 첫 발을 내디뎠으며 주어진 자신의 조건을 새롭게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A와 B의 여정


동갑내기 친구인 A와 B는 부천에 살고 있다. 사고 이후 A는 한쪽 눈이 어렴풋이 보이고, B는 전혀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친구가 되었지만 둘은 걸어온 삶도 성격도 달랐다. A는 사고 이후에도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여행도 다니고 볼링도 치러 다니는 등 바깥 활동도 자주 하고 있었다. A는 아직 젊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직업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주로 안마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주로 집에서만 활동하고 있었다.


한때 육상선수였던 B는 눈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활하는 모든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장 밥 먹는 것부터 이동하는 것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된 것이다. 다행히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어 생활에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처럼 언제까지 B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보행훈련, 핸드폰·컴퓨터 사용-과 점자 교육을 받기를 원했다.


노동건강연대 활동을 시작한 이후 본격적으로 여러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부천시가 첫 지역이었다. 맨땅에 헤딩일 수밖에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입은 시각장애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제공해줄 서비스가 없다며 부천지역 복지관 몇 군데의 전화번호만을 전해줬다.


결국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기관에 직접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건복지부, 경기도, 부천시청, 한국산재장애인연합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부천에 위치한 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등 인터넷 검색을 통해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든 기관에 전화를 돌렸다.


전화를 돌리는 과정은 매우 지난했다. 대부분은 자신의 기관은 시각장애 및 산업재해와 관계가 없으니 다른 적합한 기관에 전화를 하라고 이야기했고, 관련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곳은 본인이 직접 찾아와 봐야 알 수 있다거나 두꺼운 책자 하나를 보내주고는 말았다. 심한 경우는 소속을 밝히고 정보를 묻자 '너네가 뭔데 이런 걸 물어보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좌충우돌 끝에 이들은 부천에 있는 점자 도서관에서 점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또 B의 경우 보행교육과 핸드폰 사용 교육 등을 받고 있다. 시각장애의 특성상 노령으로 인한 시각장애인이 많은 편인데 이들은 모두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그곳의 볼링동아리와 조정동아리에서 둘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또 둘은 이 과정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한 명씩 얻었다.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 노동자가 병원 치료를 받고 걸어가고 있다. ⓒ민석기


C의 경우


C는 아버지를 산재 사고로 일찍 떠나보내고 어렸을 때부터 동생과 함께 살며, 많은 일을 했다. 현재에도 동생과 함께 인천에 거주하고 있지만 동생은 회사 때문에 늘 바쁘다. 다행히 어렴풋이 보이는 눈으로 동생이 사다놓은 반찬을 가지고 식사는 할 수 있었다. 또 익숙한 길은 혼자 다닐 수 있지만 신호등이 있는 길은 불빛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어 다니기가 힘들었다. 불시에 다가오는 차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C가 오랫동안 다닌 교회, 유일한 취미인 라디오 듣기를 빼고는 주로 집에서 혼자 있는 경우가 많다. C는 늘 필요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잘 모르기 때문에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C는 자신의 꿈이 제빵사이며, 신호등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시각장애가 있는 본인만 건너는 신호를 보지 못해 가만히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까 봐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기를 표현하는데 서투를 뿐 사실 아주 수다쟁이다.


C의 경우 인천에 위치한 시각장애인복지관과 연락이 닿아 점자 교육, 직업 훈련 등 여러 프로그램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평소 걷기를 좋아했던 그가 처음 필요했던 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신호등의 변화를 알려주는 음성 신호기였다. 하지만 모든 신호등에 음성 신호안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아직도 자유롭게 산책을 하고 있지 못하다.


지금 C는 인천에 있는 시각장애인복지관을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 배우고 싶었던 제빵 교육도, 운동도, 보행 교육도 받고 있다. 종종 전화를 할 때 불평을 하곤 하지만 나는 그가 얼마 전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홀로 있었을 때보다는 더 좋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혹은 다른 장소들에서 더 많은 친구를 만나고 시력을 잃기 전보다 더 쾌활해지기를 바란다.


D의 걱정


D는 메탄올 노동자 중 유일하게 기혼자이며, 남편, 딸,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D의 경우 사고로 인해 걷는데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 시력의 경우 사고를 입었을 당시보다 좋아졌지만 큰 어려움은 정신적인 부분에서 발생했다.


D는 재해 이후에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았다. 재해도 재해지만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비관과 자신을 그렇게 만든 회사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상황에 대한 분노와 상심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창기에 재활에 있어 정신적인 부분에 주목하지 못했다. D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몇 번의 통화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고는 단순히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큰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용기를 낸 사람이었다.


함께 근무하다 사고를 당한 B, E를 늘 격려했다. 또 다른 피해자를 찾고, 더 많은 힘을 주기 위해 방송이나 기자회견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용기를 낼 때마다 사회는 그의 기대에 늘 미치지 못했다. 여전히 정부와 원청회사인 삼성과 엘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스트레스는 D의 생활과 신체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 결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화통화를 할 때 D는 늘 몸이 좋지 않아 기존에 다니던 근로자건강센터도 잘 다니지 못하고 외출도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는 같이 근무하다 다친 친구와 새롭게 만난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그의 용기가 사회의 더 많은 부분을 바꿔, 그의 스트레스가 줄어들기를 바란다.

 

2017년 12월 5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메탄올 실명 피해자 추가발견 박근혜정부 노동부 장관 고발 기자회견을 마치고 피해자가 걸어나오고 있다. ⓒ민석기


E의 불행과 다행


E의 경우 메탄올 노동자 중 아직까지 병원에 있는 유일한 노동자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고 있고 그 지역의 근로복지공단 산재병원에 입원해 있다. 아직까지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E의 경우 시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후유 장애를 겪고 있고 여전히 치료를 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직접 통화가 어려워 주로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알아보았다. E 아버지의 경우 부지런히 정보를 모아, 여러 제도 등에 정보가 밝으신 편이어서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찾고 있었다.


E의 경우 산재 전문 병원에 있기 때문에 치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활프로그램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산재병원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주로 지체장애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E와 같은 시각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E를 담당하는 직원이 진희를 위해 함께 점자를 배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E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은 핸드폰이었다. 하루 종일 병원에 있다 보니 너무나 무료한데, TV 등은 함께 입원한 다른 분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하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어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마땅히 없었다.


문제는 핸드폰이 있더라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E가 스마트폰의 정확한 위치를 터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스마트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자체적으로 탑재되어 있고 여러 핸드폰 중 아이폰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지난해 4~6월 노동건강연대와 선대식 기자는 메탄올 중독 실명 노동자 6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음 스토리펀딩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를 진행해 후원금 1745만 원을 모았다. 이 돈으로 아이폰을 구매해 보내드릴 수 있었다.


이후 아버지에게 E가 핸드폰 때문에 2kg이나 감량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병원에서 무료했던 E가 핸드폰의 새로운 기능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익히는데 식사도 잊은 채 집중하면서 체중도 빠진 것이다. 다른 분들과 달리 혼자 멀리 떨어져있는 E는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아는 다른 메탄올 피해 노동자와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의 몸이 얼른 좋아져 종종 보내오는 그의 카카오톡이 좀 더 자주 오길 기대한다.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다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가 새로운 삶을 찾아가기 위한 용기를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누구도 먼저 나서 그들이 무엇을 하도록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은 의아함이었다. 어디에서도 본인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이 움직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부양해 줄 가족이 없거나 설령 가족이 있어도 그 가족이 직장을 다니지 않거나, 대부분의 시간을 써야지만 정보를 얻고 무엇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한순간에 시각손상이라는,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했지만 그 과정을 책임지는 몫은 산재노동자 본인과 가족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강릉에서의 환한 웃음이 계속되기를, 그리고 더 이상 노동자들이 다치질 않길 그리고 그들이 다친 후에도 좀 더 용기 내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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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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