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9월21일sat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납치·강제노역으로 일군 농토, 국가가 빼앗았다’ 서산개척단원들의 절규
‘부랑아·윤락여성’이라며 납치, 폐염전 개간 강제노역에 밀어넣은 ‘박정희판 군함도’
서산개척단 피해자 국회 앞 기자회견...“이대로는 죽을 수도 없다”
등록일 [ 2018년03월22일 18시44분 ]

대전역 앞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경찰에게 이유도 없이 끌려갔습니다. 새까만 천이 둘러져진 버스에 실려서 먼저 대전갱생원으로 갔어요. 거기서 2-3일 묵고 또 같은 버스에 실려서 몇 시간을 달려 간 곳이 바로, 지금은 입에도 꺼내기도 싫은 서산개척단입니다. 그 때 제 나이가 9살, 아버지는 연세가 좀 있으셔서 50세.


어느 날, 아버지가 뭘 잘못했는지 엎드려뻗쳐를 하고 감독관에게 곡괭이 자루로 수십대를 맞았습니다. 건장한 저희 아버지가 개구리 뻗듯이 쭉 뻗었습니다. 학교에 다녀와서 보니 아버지가 안계셨어요. 간부들에게 물어보니, 아버지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서 귀가조치되었다고 했어요.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최근 당시 연락병을 하던 분으로부터 다른 증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매를 맞고 돌아가셨답니다. 아버지는 무연총(無緣塚)이라는 공동묘지에 묻혀 계십니다. 이제 와서야 저는 아버지 앞에 가서 목 놓아 울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일놈입니다....” (송순표 씨)


이제는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훌쩍 넘어 머리가 하얗게 샌 한 남자가, 9살 때의 일을 떠올리며 목 놓아 외쳤다. 그는 마치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돌아가시기라도 한 듯 “제가 죽일놈입니다”라며 북받치는 마음을 쏟아냈다. 그의 뒤에는 서산에서 함께 올라온 8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이제는 다들 노인이 되어버린, 50여년 전 ‘대한청소년개척단’ 단원들이었다. 이들이 22일 오전,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서울 국회의사당 앞을 찾았다. 50여년 세월동안 그들이 말하지 못했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22일 국회 앞에서 서산개척단 사건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의 진상규명과 피해배상을 촉구했다.
 

1961년 5·16쿠데타 이후, 정부는 ‘구악(舊惡)의 일소’를 내세우며 거리의 부랑아, 윤락여성을 도시 바깥으로 내모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에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도심에서 부랑아 일제단속을 벌여 이들을 전국 각지에 결성된 ‘국토재건대’, ‘개척단’ 등의 조직으로 보냈다. 대한청소년개척단, 일명 ‘서산개척단’도 그 중 하나였다.


서산개척단은 1961년 11월 14일 보건사회부에서 사회명랑화의 일환으로 전국 무의무탁한 우범자, 출감자, 윤락여성등을 정착시켜 국유폐염전을 농경지로 전환한다는 목적을 내걸고 충남 서산군 인지면 모월리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이 조직의 운영을 서울에서 자동차조립공장을 운영하던 민간인 민정식에게 맡겨 그를 단장으로 추대했고, 그에 의한 인권유린과 비리를 방조했다.


서산개척단에는 정부 기록으로만 1700여명의 사람들이 강제 납치되어 온 것이 확인되며, 염전을 막는 강제노역에 이들을 맨몸으로 동원했다. 또한 이들을 정착시킨다는 명분으로 부녀보호소 등에 있던 여성들을 데려와 강제결혼을 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강제결혼을 하게 된 부부는 350여 쌍이나 된다.


서산개척단은 정부 재정이 아니라 미국 잉여농산물 원조(미공법 480호에 의거)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민정식 단장은 서산개척단 수용자들에게 제공된 구호양곡을 횡령해 민간업자에게 팔아먹는 방식으로 자신의 배를 불렸다. 그런 민 단장에게 박정희 정부는 국민훈장을, 그의 부인에게는 착한어머니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온갖 전횡이 계속되던 개척단은 66년 9월 해체되었지만, 단원들은 이미 갈 곳을 잃었고, 강제노역으로 일군 땅을 떠날 수도 없었다. 당시 국가는 335세대에게 ‘가분배’라는 이름으로 농토를 나눠주기로 했지만, 이는 ‘사기’였다. 개척단원들에게는 소유권을 주는 것처럼 해놓고 실제로는 경작권만 준 것이다. 80년대 들어 개간을 마친 땅에서 비로소 벼농사를 짓고 소득이 나오기 시작하자 정부는 이들에게 국유지를 무단점유했다며 임대료를 내라는 고지서를 보내왔다. 이에 불응해 단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지만, 대법원까지 간 끝에 결국 패소했다.


2011년 국민권익위원회는 60년대에 이들이 인건비를 못 받고 강제노역을 한 부분을 인정해 토지 시세에서 개량비를 제외한 금액을 계산해서 이들에게 장기분할 방식으로 토지를 불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 권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부는 끝내 이들의 노역으로 만들어진 농토를 강탈해 갔다.


정영철 서산개척단피해자모임 위원장.

발언에 나선 정영철 서산개척단피해자모임 위원장은 “20대 청춘에 개척단에 끌려와서 나이 70이 넘도록 정부에게 계속 속아만 왔다. 이 원통하고 억울한 이 사연을 누구에게라도 알리고자 한다.”며 “정말 분통터지는 일이 계속 있었지만, 누구 하나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없었다. 당시에는 우리가 탄원서를 만들어 내면 간첩으로 몰려 죽었어도 모를 것”이라며 그동안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정 위원장은 “지금에서야 우리가 이렇게 하소연하고 항의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는 없다”라며 국가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다.


대전에서 공장을 다니다가 누군가가 돈 벌게 해준다는 말을 믿고 서산에 오게 되었다는 정화자 씨도 증언을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정 씨는 “공장에서 일 시켜준다고 해서 여기(서산)에 오게 됐다. 하지만, 공장은 무슨 공장, 여긴 여자들 결혼시키는 공장만 있을 뿐이다. 억울하게 30년 살다가 논을 준다고 해서 여태컷 살았다”고 밝히고는, 설움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22일 국회 앞에서 서산개척단 사건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의 진상규명과 피해배상을 촉구했다.

현재 국회에는 이와 같은 과거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문제를 규명하기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아래 과거사법) 개정안이 계류중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 운영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종료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다시 구성해 아직 규명되지 못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권위주의 통치 시기 집단 인권유린 사건 등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기 위한 근거를 만들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지난해부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몇 차례 논의되었지만, 법안이 다룰 조사대상 시기를 둘러싼 여야간 입장차로 인해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기자회견을 마친 후 정영철 피해자모임 위원장 등 대표단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은희 의원실(바른미래당) 보좌관을 만나 조속한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28일 법안소위에서 과거사법을 다시 다룰 예정이며, 통과를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국회 앞 기자회견을 마친 후, 피해자들은 KBS 앞, 상암디지털단지 등으로 이동해 재차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의 관심을 촉구했다.

올려 0 내려 0
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그들은 무슨 꿈을 꾼 죄로 쫓겨났나-장위7구역 사람들 (2018-03-22 19:06:51)
서울시, 주거취약계층 위한 ‘임대주택’을 다른 사업에 활용… 시민사회 ‘분노’ (2018-03-21 18:34:59)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제9회 세계인권도시포럼, 인권의 도시는 상상하라! '시설없는' 사회를~, 뉴질랜드 people first에서 발달장애인 자기옹호 운동을 듣다!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나의 괴물 장애아들, 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가 잠...
2003년 10월 베를린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서 명단 하나가 발표...

두 살에 와서 서른아홉까지 시설에서 살...
“시설에서 제일 좋았던 기억? 없어요”
선택권도, 미래도 없던 시설의 삶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