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08월19일sun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그들은 무슨 꿈을 꾼 죄로 쫓겨났나-장위7구역 사람들
‘공익사업’ 명목으로 조합에 강제집행 권한 위임하는 국가
조합과 원주민 간의 갈등은 중재자 없이 강제집행으로 얼룩진다

등록일 [ 2018년03월22일 19시06분 ]

강선화 씨(가명)는 요즘 자다가도 몇 번씩 깬다. 시선이 걸리는 곳에는 집 담장 밖을 비추는 CCTV 화면이 있다. 행여나 수상한 사람이 집 바깥을 맴돌고 있진 않은지, 그래서 30년 넘게 살아온 집에서 순식간에 쫓겨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그의 잠을 수시로 방해한다. 강 씨의 집은 장위동, 재개발 7구역에 있다.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장위 7구역

 

강 씨가 이 집에서 잠을 못 이루던 때는 또 있었다. 처음 이 집을 지었을 때, 이 씨는 "이게 정말 내 집인가" 싶어 자다가 몇 번씩 깨곤 했다. 평생 살 집이라는 생각에 나무도 원목으로만, 담장은 비싸고 얇은 벽돌로 지었다. 주변 다른 집들보다 평당 수십만 원은 더 들여 정성껏 지은 집이었다. 남편 심대구 씨와 작은 노트공장을 운영하며 모아온 돈으로 쌓아 올린 집이었다.

 

그러나 30여 년이 흐른 2017년, 강 씨의 집은 더 이상 강 씨의 집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장위동이 '뉴타운 시범사업' 지역으로 묶이면서부터였다. 서울시는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장위7구역 주택과 상가 소유권을 모두 '장위7구역 재개발조합'에 넘겨주었다.

 

조합이 들어서면서부터 재개발 지역 주민들은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조합원'과 '현금청산자'. 조합원은 재개발 이후 들어설 아파트 분양권을 갖게 된다. 반면 현금청산자는 아파트 분양권을 포기하고, 보상금을 받아 이주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다.

 

장위7구역에서 '현금청산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평생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오다 갑자기 아파트에서 살자니 답답할 것 같아 포기했고, 어떤 이는 가족처럼 아끼는 큰 개와 함께 살기 위해 아파트 분양을 포기했다. 의사 결정에 미치는 비중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생각은 아파트 설립 이후 예측 불가능한 분담금이 부담스러워 '깔끔하게' 이주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금청산을 위해 보상금을 받는 과정은 '깔끔'하지 않았다. 시장이 있던 장위7구역은 인근 세 개 구역이 먼저 재개발됨에 따라 상권이 죽었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은 '감정평가' 과정에서 사라졌다. 감정평가는 공정성을 위해 세 명의 감정평가사가 진행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가 건축물대장에도 명시되어 있는 철근 콘크리트 벽을 더 저렴한 연화조, 즉 벽돌로 만든 벽이라고 기록했다. 문설주나 옥외 계단 등 빠진 것도 많았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간 가꿔온 집의 가치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장위동에서 '내 집'을 가졌던 사람들은 더 작은 집으로, 전셋집으로, 자녀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마저도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지방으로 나가야 했다. 졸지에 쫓겨난 꼴이 되었지만 항변할 곳이 없었다. 재개발은 엄연히 '공익사업' 이기 때문이다.

 

 

심대구 씨가 ‘장위 7구역’에 터를 잡은 것은 38년 전이었다. 그 역시 ‘7구역’으로 오기 전부터 장위동에서 살고 있었다

 

“장위동 고개에 신혼집 차린 게 75년, 거기서부터 조그맣게 노트공장을 운영했어요. 거기 집은 전세였는데, 거기가 압류를 당해서 돈 좀 떼이고, 그러고 여기 전세 보러 왔는데 복덕방에서 ‘싼 집이 있다’고 해서 이 집을 샀죠. 원래는 두 채짜리였는데 그걸 허물고 합쳐서 한 채를 만들었다고. 집사람이랑 나 고생 많이 했죠. 그래도 얼마나 뿌듯했는데. 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으니.”

 

처음 재개발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심 씨도 잘 됐다고 생각했다. 돈이 많이 오가는 사업이라고 하니 집이 제값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합에서 제시한 보상금을 본 심 씨는 고개를 젓게 되었다. “이 집을 얼마나 힘들게 지어 올렸는데, 이걸 아주 도둑질당하는 수준이니까. 40년 넘게 이 동네 살아서 친구들도 다 여기 살고 익숙하기도 한 곳인데, 이 돈으로 이 근처 집은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내 나이가 일흔둘이에요. 갑자기 엄한 동네에서 뭐 하고 삽니까.”

 

남쪽을 향해 크게 낸 창을 커다란 장롱이 가로막고 있다. 심 씨의 부인인 강 씨가 혼수로 사 왔던 장롱이다. 강제집행 들어오는 날, 창을 막느라 급하게 옮기다가 가운데 문이 부서졌다. “테이프로 막아놨더니 영 못생겨졌지. 원래 아주 튼튼했는데 저렇게 됐어요.” 강 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강 씨는 이어 말했다. “이제 앞으로 이런 집에 언제 살겠어요. 이번이 마지막이지 뭐.” 꿈만 같던 내 집에서 자는 밤이 오늘이 마지막일까, 내일이 마지막일까 싶어 강 씨는 불안하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강 씨의 눈은 CCTV 화면에 머물러 있었다.

 

심 씨는 강제집행이 들어오는 날, 자기 집 마당에 있던 항아리를 깼다. “혼자 뭐라도 해야 용역 2, 30명 밀려오는 걸 막겠는 거예요. 내가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항아리도 깨보고 술병도 깨고 그렇게 됐지. 근데 그걸로 ‘공무집행방해’라고 고소만 당했어요. 내 집 마당에 내 항아리 깼다고.” 평생 경찰서 한 번 가본 적 없었던 심 씨에게 이 상황 자체가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심 씨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 처음엔 한 알이었다가 이제는 두 알을 먹어야 겨우 잠들 때도 부지기수다.

 

"죽은 사람이 많아요. 제가 아는 것만 4개월간 열 세 분이나 돌아가셨는걸." 조한정 씨는 말했다. 그는 이주민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이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조합 측에서 '언제까지 안 나가면 하루에 50만 원씩 부당이득금을 청구한다'고 하니까, 대부분 연세 많은 주민들이 무서워서 그냥 나가셨죠. 그런데 얼마나 억울합니까. 제가 얼굴 알고 지내던 분만 네 분이나 여기서 나간 후 돌아가시고, 소식 건너들은 게 열한 분이에요." 조 씨는 장위7구역 '현금청산자' 중 한 명이고, 지난해 11월, 강제집행을 막으려 스스로 자신의 배를 찔렀다.

 

조한정 씨의 집 대문 위에 강제집행을 막기 위한 집기들이 올려져 있다.

 

구석으로 쫓긴 사람들은 절박한 선택을 한다. 첫 강제집행이 들어온 2017년 11월 7일, 조 씨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러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결국 칼로 스스로의 배를 찔렀다. 심장에서 겨우 4cm 비껴가 용케 목숨을 건졌다. 수술은 4시간 넘게 계속되었고, 그는 결국 살아남았지만, 그 이후로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통증'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조한정 씨가 “우리 집 신혼살림들도 지금 전부 창 막고 있다”며 웃었다. 조 씨 역시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올렸다. 1986년에 건축한 집은, 심 씨의 집과 마찬가지로 두 아들이 나고 자란 곳이었고, 부부의 유일한 노후대책이었다.

 

처음부터 재개발에 반대했던 조 씨는 ‘공익사업’이라는 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익사업이면 정부가 진행해야지, 이걸 죄다 민간에 미뤄놓고 자기 손에는 더러운 것 안 묻히겠다는 것 아닌가요? 재개발 이후 여기에 전부 임대주택이 들어오고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담보한다면 모를까, 1100세대가 넘게 들어오는데 임대주택은 200세대에 불과하더라고요. 결국, 시공업체와 조합 배불리는 이익사업인데, 이걸 ‘공익’의 이름으로 진행하는 것 자체가 납득되지 않습니다.”

 

조 씨는 “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이 대단한 부를 얻으려고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다. 내 손으로 착실히 쌓아온 집,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을 내놓고 나가야 한다면, 이후의 삶을 보장하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게 ‘공익’사업의 기본 아닌가요.”

 

현재 장위7구역을 비롯한 재개발 지역 거주자들의 삶을 담보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 그게 ‘법’이기 때문이다. 도시정비법에 따라 지자체는 조합에 권력을 위임하고, 조합은 ‘법 집행’이라는 명목으로 법원에서 파견한 집행관들과 함께 강제집행을 진행한다. 민간 용역이 동원되고, 경찰은 이를 지켜보고만 있다.

 

“사람은 뒷전이고 법만 앞세워 노인들이 아무것도 모르니 공익사업이라고 하면서 내쫓고 있습니다.” 지난 3월 8일 결국 강제집행당한 장위7구역의 노부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말이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고아무개 씨는 얼마 전 치매 3급 판정을 받아 돌봄이 필요한 남편과 임시 숙소를 전전하고 있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재개발 사업은 공익사업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지자체 등 공공영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재개발 구역별로 선만 그어주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강제집행 과정에서의 물리적 충돌이 문제시되면서 ‘동절기 강제집행 금지’를 권고한다거나 ‘인권감시단’을 파견하는 등 서울시에서 나름 노력도 하고 있지만, 이것이 폭력적 재개발의 본질을 해소하진 못합니다. 국회에서는 재개발법 개정이나 강제집행 금지법 통과가, 그리고 지자체 차원에서는 갈등 상황에서 적극적 중재에 나서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장위7구역’에서 만난 주민들은 많은 경험을 공유했다. 이 경험들 중에는 ‘국가의 외면’도 있다. 성북구청도, 서울시 공무원도, 경찰도, 법원도, 국회의원들도, “우리도 국민”이라는 주민들의 외침에 “법이 이런 걸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냐”라는 원론적 답만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서울시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지역은 946곳, 지난 4년간 강제집행 건수는 7만 8천여 건, 재개발 이후 원주민 재정착률은 20% 남짓.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들이닥치는 재개발 바람은 땅값을 부풀리고, 거주하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다. 

올려 0 내려 0
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단전·단수로 고립된 장위7구역 철거민들, 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용산참사 이후 변하지 않은 한국사회, 그럼에도 용산참사를 기억한다는 것 (2018-03-23 14:49:27)
‘납치·강제노역으로 일군 농토, 국가가 빼앗았다’ 서산개척단원들의 절규 (2018-03-22 18:4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