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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와 ‘정신의학의 권력’ ①] 가난한 가족의 흥신소가 된 정신병원
푸코와 함께 장애 읽기-4
등록일 [ 2018년04월30일 13시43분 ]

지난해 국가인권위 연구사업인 중증·정신장애인 생활시설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2010년에도 ‘미신고’ 시설조사에 참여한 적 있다. 그때에 비하면 시설의 인권실태도 달라졌고, 나의 인권감각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7년 전의 기억 속에서 시설은 감금, 폭력, 강제노역, 쥐가 출몰하는 숙소, 푸드뱅크의 쓰레기 식단, 비리와 횡령, 시설 폐쇄와 전원조치, 시설원장의 “나는 애들 엄마야!”는 외침으로 소란스러운 현장이었다. 그에 비해 이번에 본 법인 시설들은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정신없던 7년 전보다 이상하게 지난해 조사에서 시설을 더 끔찍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런 인간사의 드라마도 없고 떠들썩한 사건도 없이 잘 관리된 공간 안에서 안전하고 평온하게 살아가기만을 요구받는 삶, 오직 무위의 평온만을 요구받는 시설의 삶 자체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갱생원 출신 정신요양시설


첫 번째 간 곳이 정신요양시설 ‘조용한 마을’(가명)이다. 이 시설의 역사는 1961년에 설립된 ‘시립갱생원’에서 시작된다. 81년부터 마리아수녀회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했고, 2011년부터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2005년에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평온한 집’(가명)이 기능 분화했고, 2007년에 정신요양시설 ‘조용한 집’이 분화해서, 노숙인 시설 ‘무위의 마을’(가명)까지 총 세 종류의 시설이 한데 모여 있다. 정신요양시설 ‘조용한 집’에는 현재 163명이 수용되어 있고, 중증장애인시설 ‘평온한 집’에는 142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무위의 마을’에는 1100명의 노숙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곳은 한국의 시설역사뿐 아니라 푸코가 본 서구의 시설역사에서도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정부와 카톨릭 재단의 협력 속에서 설립·유지되고 있다는 점, 처음에는 거리의 부랑인들을 수용하는 ‘구빈원’ 시설이었다는 점, 그러다가 부랑인 중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추려 중증장애인시설로 분리 수용하고, 가장 나중에 정신적 장애가 심한 사람을 재차 추려 정신질환자 요양시설로 분화시켰다는 점이 그렇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시설은 어디일까? 구빈원에 마지막으로 남은 자들은 광인이었다는 푸코 말대로라면, 정신요양시설일 것이다.


163명의 ‘조용한 집’ 사람들 중 조사 당시에는 4명이, 현재는 1명이 명부에 ‘지적장애’로 기록되어 있었고 나머지 162명이 ‘조현병’ 환자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면담자 중 누구한테서도 ‘환각’, ‘망상’, ‘긴장이나 발작’ 같은 정신과적 증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용한 집’ 사람들에게는 사고 및 정서 둔화, 어눌하거나 파편화된 언어, 체계적이지 못한 행동 등 중증장애인 시설의 발달장애인과 동일한 특성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긴 이들은 급성기 때 강제 입소하거나 정신병원 치료 후 요양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원래 갱생원의 부랑인이었다가 2005년에 중증장애인으로 분류되고, 2007년에 다시 정신질환자(조현병 환자)로 분류된 사람들이었다.

 

충북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 내부.


다른 곳은 어떨까? 정신요양시설은 2016년 기준 전국에 59개가 있고 13,000명 정도가 수용되어 있다. 요양과 사회복귀훈련이라는 취지에 맞게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온 사람들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급성기 때 자의로, 혹은 가족이나 경찰에 의해 강제 입원했다가 만성화된 사람들은 굳이 정신요양시설로 옮겨 갈 필요가 없다. 같은 정신병원에 쭈욱 있으면서 서류상으로만 입·퇴원을 반복하면 된다. 아니면, 계속입원심사 의무 시한인 6개월마다 다른 정신병원으로 메뚜기 뛰듯 순회 입원하면 되기 때문이다.


‘조용한 집’의 시설 운영자나 종사자들은 정신질환과 지적장애를 구분하지 않았고, 조사원들도 ‘조용한 집’의 정신질환자들과 ‘평온한 집’의 지적장애인을 구분하는 데 예민하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의아했다. 아무리 인생은 줄이라지만, 어느 집단으로 분류되느냐에 따라 법적으로 규정된 처우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된 제반 권리와 시설 서비스 최저 기준을 적용 받지만, 정신질환자는 그렇지 않다. ‘장애인복지법’은 정신분열병(조현병)과 우울증(분열형, 양극성, 반복성)으로 인해 일상 및 사회생활에 심각한 제약이 있는 자를 ‘정신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5조(다른 법률과의 관계)에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다른 법률을 적용 받는 장애인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니까 정신분열증,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은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도 있고 장애등급을 판정받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된 제반 권리와 복지 서비스를 주지 않아도 된다.


2011년 장애인생활시설 정원을 30인 이하로 제한하도록 ‘장애인복지법’이 일부 개정됨에 따라 이후에 설립된 시설은 대체로 30인 이하로 소규모화 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요양시설은 그 안에 수용된 사람이 장애인복지법상 ‘정신장애인’으로 판정받든 말든 장애인시설에 부여된 30인 제한 규정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정신요양시설은 정신의료시설(정신병원)과 함께 ‘정신건강복지법’에 적용받기 때문이다. 그 말은 정신병원과 똑같이 수용인원에 제한이 없다는 뜻이고, 감금, 결박, 강제노동 등 장애인 시설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된 것도 (촉탁 의사가) 필요하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신요양시설은 장애인시설보다 월등히 인구밀도가 높고, 거주인 대비 생활지도사가 훨씬 적으며, 그 때문에 관리 감독을 위한 ‘규율’과 ‘약물’ 처방이 훨씬 세다. 또한 통신과 이동의 자유가 훨씬 더 제한되고, ‘조용한 집’처럼 일몰 후에는 현관문을 잠그고 통행이 금지된다. 장애인 시설이 지역사회의 복지 서비스와 연계해 다양한 취미, 여행,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압박받는 데 비해 정신요양시설은 그런 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일상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정해진 시간(보통 6시)에 기상해서 밥 먹고 약 먹고 방과 거실을 어슬렁거리다 시간 되면 점심 먹고, 또 어슬렁거리다 벽보고 허공도 보고 그와 진배없는 옆 사람도 보고, 시간 되면 정해진 순서대로 줄서서 간식 먹고 또 어슬렁거리다 저녁 먹고, 남이 틀어준 TV 좀 보다가 정해진 시간(보통 9시)에 불 끄고 잠자는, 완전한 무위와 완벽한 평화를 지향한 시설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정신병원, 대체 뭘까


정신요양시설보다 정신병원은 더 끔찍하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었던 김원영 변호사에 따르면, 대다수 1차병원급 정신병원은 분식집이나 과일가게와 나란히 도심의 한복판에 치과나 정형외과처럼 아무렇지 않게 위치해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근처 주민들도 알지 못하며,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은 건물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이들은 분식집이나 나무는커녕 햇빛을 볼 기회도 거의 없으며, 기껏해야 옥상 공간을 ‘산책시간’에 밟으며 하늘의 모양을 확인한다. ‘조용한 집’ 시설 조사에 함께 한 대학교수가 “다른 정신병원에 비하면 이곳은 살 만한 곳”이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화장실 냄새가 진동하지도 않았고 건물 내 행동반경도 상대적으로 넓었으며 무엇보다 낮에는 잠시라도 건물을 나와 땅을 밟고 하늘을 쳐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신병원’으로 검색하면 강제입원, 격리, 결박, 구타, 모욕, 통신제한, 정보제한, 사생활침해 등에 관한 6천여 건의 사례를 볼 수 있다.


2016년 기준 정신의료기관(정신병원)은 국공립 시설 18개, 민간시설 1,431개가 있다. 입원자 중 3분의 2가 비자의(강제) 입원인데, 자의입원이라고 해도 따로 갈 곳이 없거나 6개월 입원 후 계속입원 심사 때 가족들의 설득에 자의입원으로 다시 입원하는 경우가 많다. 입원자들의 평균 재원기간은 247일로, 세계 최장(스페인 18일, 독일 24.2일, 이탈리아 13.4일, 프랑스 35.7일, 영국 52일)이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할까? 김원영 변호사에 따르면, 그리고 국가인권위 진정사항의 입원 사유를 훑어보면 놀랍게도 정신요양시설 ‘조용한 집’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환각’, ‘망각’, ‘긴장성 경직, 발작’, ‘조증’, ‘자살충동’ 같은 양성 증상 때문에 입원한 사람들은 30퍼센트도 안 된다고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조용한 집’ 사람들처럼 ‘조현병’이라는 진단명을 갖고 있지만 ‘지적장애인’으로 등록될 수도 있는 사람들, 실제로 그렇게 등록된 장애인들이 많이 있다.

 

정신병원 장기입원 정책에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


그럼, 왜 장애인 시설에 안 가고 처우조건이 더 열악한 정신병원에 있을까? 장애인 시설은 적고 멀지만 정신병원은 가깝고 많기 때문이다. 정신과적 증상이 전혀 없거나, 조금 있어도 입원할 정도는 아닌 경우 부모에 의해 강제로, 혹은 자의로 정신병원을 장애인 거주시설로 이용하는 것이다. 정신병원 운영자는 그들이 입원하면 가족을 설득하여 환자를 의료수급 대상자로 바꾼다. 그러면 가족은 입원비 걱정을 안 해도 되고, 병원은 정부로부터 의료 수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된 제반 권리, 권리옹호 지원, 시설 서비스 최저 기준을 면제받을 수 있으며, ‘정신건강복지법’이 허용한 ‘약물’, ‘격리’, ‘강박’을 활용하여 관리의 편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은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 양성 증상을 가진 정신질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가족들의 관심과 지원을 받는 환자라면 급성기 때 주로 3차 종합병원 정신과로 내원한다. 그러면 본인 상담 하에 잠시 입원해서 집중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는다. 그렇게 해서 증상이 억제되면 퇴원하여 지역사회에서 약물로 관리한다. 반면에 가난한 가족의 무관심 속에 급성기가 지나 만성화된 정신질환자는 대부분 가족과 경찰에 의해 강제로 1차병원급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럼, 병원은 환자를 수급자로 만들어 가족과 지역사회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렇게 가족과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정신 질환자는 이제 ‘나가면 갈 데 없는’ 시설생활자가 된다.


정신병원 입원자 중 조현병 환자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알콜 의존증이나 행동장애,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다. 맨날 술에 절어 있고, 이상한 소리 삑삑 하면서, 가족과 이웃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말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상담 사례 중 맨 처음에 이런 사례가 있다.

 

❶ 내담자의 남편이 알코올 중독과 피해망상증 환자로서 결혼 후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한번도 돈을 벌어 온 적이 없으면서 술만 먹으면 내담자에게 폭행을 하고 돈을 요구하는 등 내담자를 괴롭혀 왔음. 몇 해 전에 견디다 못하여 남편을 정신병원에 보냈다가 몇 달 후 퇴원을 시켰는데, 그 후 자신을 병원에 보낸데 대하여 앙심을 갖고 폭행의 정도가 더욱 심해졌음. ❷ 작년 5월 4일 남편을 ○○시 ○○병원에 입원을 시켰으며, 6개월 후의 퇴원심사에서 계속 입원이 결정되어 현재까지 입원생활을 계속 중임. ❸ 내담자는 남편이 퇴원할 경우에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아이들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을 할 생각도 없으며, 다만 남편이 정상상태로 될 때까지 입원치료를 받았으면 좋겠음. 내담자는 남편의 입원비로 매월 80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있음. ❹ 남편의 음주와 폭행 때문에 아이들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며, 온 가족이 남편이 퇴원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음.❺ 병원의 원무과 직원의 말에 의하면 유사한 경우에 인권위에서 환자의 장기입원이 가능하도록 조처해 준 일이 있다고 하는데, 인권위에서 내담자에게도 그런 도움을 주기 바람.1)

 

다른 어떤 경우보다 이런 사례에서 정신병원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정신병원의 강제입원제도가 아니면 저런 사람들의 폭력으로부터 어떻게 가족과 이웃을 보호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정신병원은 ‘감옥’으로 기능하고 있다. 정신병원은 아주 편리한 감옥이다. 재판을 거칠 필요도 없고, 예방적 조치로서, 피해 당사자(가족)나 경찰이 ‘기소’하고 정신과 의사가 ‘반사회적 인격장애’, 혹은 ‘알콜 의존증’이라고 ‘판결’하면 곧바로 ‘수감’할 수 있다. 수감 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보호자와 의사가 필요한 만큼 수감할 수 있다.


정신병원은 우리 사회의 난감한 문제들을 심플하게 해결해 주는 ‘흥신소’ 같은 곳이다. 그곳은 가난한 지적장애인들의 거주시설이기도 하고, 골치 아픈 비행자들로부터 가족과 이웃을 보호해주는 감호소이기도 하다. 그럼,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병원 본래의 기능은? 물론, 없지는 않다. 하지만 치료 기능을 위해 그렇게 많은 병원이, 그렇게 많은 병상과 그렇게 긴 입원 기간2)이 필요한 걸까? 오늘날 정신의학이 자랑하는 치료 수단은 약물이다. 제약의사의 노력으로 꽤 성능 좋은 약이 많이 나왔다. ‘할돌’과 ‘프로작’이면 웬만한 정신질환 양성 증상은 제어할 수 있다. 그럼 왜 그 많은 입원실과 긴 입원 기간이 필요한 걸까? 집에서 약 타 먹으면 될 텐데. 물론, 정신의학 교과서에 입원은 ‘병식’을 갖고 치료 의지를 갖게 할 만큼만 필요하다고 적혀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신과 의사의 권력


강제입원 조건을 까다롭게 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에 정신과 의사들이 미친 듯이 반대한 이유는 ‘치료’ 때문이 아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을 내세웠다. 정신질환자 탈원화 정책에 반대하면서 정신과 의사들은 미국의 탈원화 정책 후 살인, 폭력, 절도 범죄가 증가한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3) 물론, LA의 경우 주립정신병원의 탈원화 이후 노숙인 정신질환 문제가 증가하여 95% 정도가 알코올이나 약물문제를 갖고 있으며, 그중 약 20%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탈원화’의 문제가 아니라 ‘마약’ 문제이다. 1980년대 이후 값싼 마약인 ‘crack’이 퍼지면서 마약에 중독된 정신질환 노숙인과 수감자가 증가한 것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런 변수는 무시하고 정신질환 자체가 범죄 소인인 것처럼 얘기한다. 또한 그들은 탈원한 정신질환자가 마약(crack)에 중독되지 않게, 경제난에 시달려 또 다른 범죄로 이끌리지 않게 지원하는 정책이 부족했던 요인도 간단히 무시하면서, 마치 자신들의 정신병원이 예비 범죄자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 있는 양 당당하게 떠벌린다. 저들이 나가면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고. ‘저들은 나가면 갈 데가 없다.’ ‘저들이 나가면 사회가 위험해진다.’고 당당히 말할 때 정신과 의사는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복지시설 운영자? 아니면, 교도소장? 


정신과 의사가 정신장애인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막대하다. 그 권력은 다른 과 의사처럼 장애인 등급 판정에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다. 정신장애로 등급 판정을 받아봤자 사회적 낙인만 받을 뿐 복지혜택은 받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의 권력은 정신장애인의 정신병원 수용에 작용한다. 가족이나 경찰의 ‘기소’에 대해 강제 입원을 ‘판결’하는 자는 정신과 의사이다. 또한 입원 후 정신병원 안에서 환자를 결박하거나 격리실에 감금하거나 강제노역을 시킬 필요를 결정하는 것도 의사이다. 무엇보다 퇴원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도 정신과 의사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해 정신과 의사는 ‘판사’인 동시에 ‘교도소장’이며 최종 ‘사면권자’이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이 절대권력(sovereignity)은 무엇에 근거한 걸까? 당연히, 정신질환에 대한 의사의 지식, 정신의학 지식에 근거한 것이다. 가족이나 경찰이 데려온 사람에게 정신질환이 있는지, 그것이 환자 본인과 타인에게 해를 끼칠 만큼 위험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정신의학 지식을 가진 의사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정신의학은 정말 정신질환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을까?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의 위험성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을까? 정신의학은 수용을 통해 질환을 치료할 능력이 있는 걸까? 정신질환자의 수용에 대해 정신의학자가 행사하는 권력과 정신의학 지식은 얼마만큼 조응할까?


푸코는 “하나의 담론 혹은 한 개인이 자신의 내적 자질만으로는 도저히 가지지 못할 권력의 효과를 자신의 지위에 의해 가지고 있을 때”4) 그것을 ‘그로테스크’하다고 부르겠다면서, 정신의학의 권력이 그렇다고 한다. 학창시절 푸코는 광기에 근접해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신경질적이며 때때로 공격적이었다. 고등사범 시절 그는 교실 바닥에 누워 면도칼로 가슴을 그으려는 소동을 벌렸으며, 칼을 들고 친구를 쫓아다닌 적도 있었다. 고등사범 시절 푸코의 멘토였던 루이 알튀세는 자서전에서 푸코가 넋 나간 표정으로 복도를 방황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썼다.


푸코는 정신분석을 받기도 하고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심리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정신병리학 자격증을 취득, 대학에서 심리학 조교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광기도 잘 알고 있었고, 정신의학도 잘 알고 있었다. 푸코는 정신의학이 광기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과 정신의학 지식 간의 불일치와 간극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푸코는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 불일치와 간격의 역사를 썼다. 그것이 『광기의 역사』이고, 『정신의학의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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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https://www.humanrights.go.kr/site/program/board/basicboard/view?menuid=001001001003&boardtypeid=94&boardid=407934

2) 2009년 발행된 정신보건 지원단 사업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의료기관(4만3885) + 정신요양시설(1만4135) = 5만8020이던 병상수가 2009년에는 정신의료기관(7만2378) + 정신요양시설(1만4325) = 8만6703 으로 49.4%나 증가했다. 해당 기간 입원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다가 2007년부터 조금씩 감소했는데, 2007년부터의 의료급여(입원)는 더 큰 각도로 증가했다. 입원기간이 더 길어진 것이다.

3) 홍상표, 「정신질환 범죄증가 전망, “치안전망 2018”」, 한국정신건강신문, 2018.01.20

4) 미셀 푸코, 박정자 역, 『비정상인들』, 동문선, 2001,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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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lizom@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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