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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에 기반한 노동사회 새 디자인, 장애인 노동권 대안으로 논의해야
한국장애학회 2018춘계학술대회, 노동시장 참여 넘어선 노동권 논쟁 다뤄
"'이윤'이 아닌 '무엇이 가치있는 활동인가' 논쟁 통해 장애인 노동권 패러다임 바꿔야"
등록일 [ 2018년05월12일 11시34분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계 단체들은 지난해 11월 21일부터 올해 2월 13일까지, 무려 85일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점거농성한 끝에 고용노동부와 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공식 협상테이블을 꾸리게 됐다. 핵심의제는 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개 도입. 이는 지금껏 최저임금제에서조차 사각지대에 놓이는 등 장애인을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예외적 존재로 취급했던 경제시스템에 맞서는 요구로, 그동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장애인의 다양한 활동을 ‘공공일자리’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간 장애인 노동권 관련 담론을 선도적으로 제기해 온 김도현 비마이너 발행인은 이러한 요구를 출발점으로 삼아, 장애인 노동권 의제를 단순히 기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공공시민노동 체제를 만드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김 발행인은 이것이 단지 장애인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며, 궁극적으로 ‘만인을 위한 통합적 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도현 비마이너 발행인

김 발행인은 “그간 장애인 노동 현안에서도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즉 장벽을 제거하자는 문제의식으로 접근해왔는데, 장애인에게 표적화된 정책을 만들어 장벽을 제거하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노동권 보장이 될 수 없다”면서, 사회를 큰 틀에서 새롭게 디자인하는 구상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김 발행인은 “경제라는 말은 원래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세상을 다스려 인민의 삶을 구제한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영어의 이코노미(economy)도 역시 가정의 살림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왔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제란 원래 살림/살이의 문제였다. 그런데 근대사회로 오면서 경제가 돈벌이의 문제로 축소되고 이윤을 창출하는 활동만 노동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활동에 대가를 지불하는 게 아니라, 대가를 지불받는 활동만이 가치있는 것이라 평가받는 전도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활동이 노동인가를 결정짓는 것(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단순히 시장법칙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고 문화적인 ‘인정투쟁’의 과정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지금까지 온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합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한 활동들(가사노동, 돌봄노동 등)을 노동으로 인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인정투쟁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 발행인은 이를 위해 기존 노동연계복지(workfare) 담론에서 운위되는 ‘공공근로’와 ‘사회적 일자리’ 개념을 수용하고 이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시도를 제안했다. ‘사회적 일자리’란 이윤과는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에 대해 공공이 대가를 제공하는 일자리로 해석될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되지 못했다. 그 이유로 김 발행인은 첫째, 이러한 일을 통해 지불되는 대가가 매우 최소한도로만 제공된다는 것, 둘째, 그러한 사회적 일자리의 목록에 들어가는 활동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한다는 것을 들었다.


이에 김 발행인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등의 논의를 가져와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 헌법에 ‘노동’은 ‘교육’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로서 보장되기 위해서는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되고 기본적으로 공공이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래서 교육에서 의무교육제도가 있는 것인데, 마찬가지로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공공이 노동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발행인은 이런 원칙은 1947년 ILO(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국제노동기구의 목표와 목적에 관한 선언’에 담긴 첫 번째 원칙("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작년 기준 우리나라 상용직 노동자 평균 임금이 360만 원 정도인데, 최소한 그 절반 정도인 180만 원을 초봉 임금으로 주는 일자리를 공공영역에서 제공하고, 그 일의 종류도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 시민이 집단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제도 설계는 다음과 같다. 시민들이 신청한 활동이 공공시민노동에 합당한지는 지자체 단위로 꾸려지는 ‘공공시민노동위원회’를 설치해 심의하고, 이 위원회에는 지역의 여성·성소수자·장애인·노인·이주민 등 소수자를 2/3이상 참여하도록 한다. 또한 위원회와는 별도로 기본적인 행정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중앙과 지방에 공공시민노동청을 설치한다. 위원회의 심의 기준은 ‘해당인이 지닌 현재적 조건 및 능력’에 비추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정신적·정서적 삶에 기여’하는가의 여부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최중증의 와상 상태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들의 생존 활동 자체도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생존활동은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정신적·정서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김 발행인은 이런 구상은 단지 장애인만을 겨냥한 정책이 아니라 여성의 가사노동 인정, 청년실업 해결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런식으로 공공시민노동의 적용 집단이 점차 확대되고 노동에 대한 정의와 관념이 일정하게 재구성 될 수 있다면,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도 병행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11일 열린 한국장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공공시민노동'을 주제로 한 토론이 진행됐다.

최복천 전주대학교 교수는 김 발행인의 발표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최 교수는 “발표자는 생존 활동 자체처럼 미비한 활동이라도 노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입장인듯한데, 그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예를 들어, 갓난아기들이 살아가는 것을 노동이라 간주하는 것이 노동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이뤄져 온 많은 제도들과 정책들에 조응할 수 있을까?”라고 반론했다.


이어 최 교수는 노동 문제를 고민할 때 장애인은 상호 모순된 두 가지 논리를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 첫 번째는 ‘장애인=무능력자’라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장애인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것(장애인의 특수성 희석시키기)이고, 두 번째는 기본적인 소득보장을 받기 위해 노동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증명(장애인의 특수성 드러내기)해야 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따라서 “장애인 노동을 둘러싸고 이중적인 권리가 동시에 구현될 필요가 있다”면서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는 여전히 중요한 권리로서 인정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제도도 강화되어야 하지만,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고도 존재 그 자체로서 정당한 소득을 받고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것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김 발행인의 주장에 전적인 동의 입장을 보이며, ‘공공시민노동’안이 기본소득제로 나아가는 이행전략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장 기획위원은 다만 우려점으로 “무엇을 ‘공공시민노동’으로 인정할 것인가 했을 때 그 절차가 상당히 갈등적이고 관료적인 억압이 행사될 수 있다. 물론 발표문은 이를 감안해 시민사회가 인정 과정을 주도하도록 설계했지만, 과거 영국의 구빈위원회도 지역 시민사회가 참여했음에도 낙인과 배제의 기구로 기능한 전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기획위원은 또 “제안된 것처럼 폭넓고 유연하게 공공시민노동을 인정하게 되면, 인정 과정 자체가 굳이 없어도 좋을 요식적 절차나 행정력 낭비가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이 존재한다”면서, ‘도장 받는 절차’ 없이 그냥 기본소득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기본소득론자들의 낙관적 인식과 달리 한국사회에서는 임노동이어야만 노동이라는 통념이 뿌리 깊기 때문에, 무엇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활동인가에 대한 논쟁과 갈등, 새로운 합의에 도달한 뒤에야 완전한 의미의 기본소득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공공시민노동구상이 먼 미래가 아닌 정책 대안을 다듬는 논의의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도현 발행인은 마무리 발언에서 “지금까지 이런 주장을 장애계 내에서만 하다 보니 정부는 기존의 장애인 복지일자리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노동권 전반에 대해 고민하는 (장애계 외의) 단체들도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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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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