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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당사자들 모여 ‘큰 투쟁’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시위, 삼보일배 등에 참여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
등록일 [ 2018년05월25일 13시02분 ]

지난 10일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회의실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하고 있는 신동혁, 김영래, 김정훈, 김대범 활동가(왼쪽에서부터)를 만났다.
 

지난 4월 한 달, 장애계는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다. 4월 2일엔 발달장애인의 삶을 가족에게만 떠맡긴 채 책임을 다하지 않는 국가를 비판하며,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과 당사자 200여 명이 모여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외치며 삭발했다. 4월 19일엔 지체·뇌병변장애인 77명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며 광화문 사거리에서 효자로 입구까지 230m 남짓한 거리를 두시간 반 동안 ‘오체투지’로 행진했다. 4월 30일,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발달장애 부모들은 광화문사거리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 면담과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며 청와대 인근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61일째(25일 기준) 노숙 농성 중이다.

 

그리고 이 모든 현장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꿋꿋이 서 있었다. 그들은 그날, 그 현장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난 10일,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회의실에서 이들을 만나 물었다. 그 날의 기억이 어떻게 남았느냐고. 2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엔 김정훈 한국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 김대범 한국피플퍼스트 집행위원, 김영래 경남발달장애인협회 회장, 신동혁 한국피플퍼스트 충북위원장이 함께했다.

 

비마이너(아래 비) : 우선 삭발식 이야기를 해보자. 영래, 정훈, 동혁은 지난 4월 2일에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외치며 삭발했다. 삭발을 왜 했는지, 참여하며 어떤 느낌이었는지 등을 이야기해달라.

 

영래 : 머리를 깎으면서 조금 민망하다고 생각했고, 또 울었다. 센터에 계신 선생님도 깎았는데 그분이 깎겠다고 하셔서 나도 깎았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문재인 정부에서 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머리를 깎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엔 머리 깎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집회 장소로 가는 버스에 앉아 부모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도 생각났다. 아버지에게 집회에 다녀온다고 하니 “내가 노조활동 하면서 머리 깎았던 것처럼 너도 머리카락 자르고 오겠네”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우리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하고 되묻게 됐다. 투쟁 장소에 올라와서 아버지를 생각하니 머리를 깎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부모님보다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이제 우리들이 직접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이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삭발할 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자르고 나서는, 세상이 더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동혁 한국피플퍼스트 충북위원장이 지난 4월 2일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신동혁)
 

정훈 : 사실 나는 그 전에도 머리가 짧아서 삭발을 하나 안 하나 별 차이 없었다(웃음). 삭발하면서 마음속으로 욕을 했다. 2014년 발달장애인법(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촉구 때도 삭발했는데 2018년인 지금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대체 왜 문재인 정부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인지, 분노가 일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왜 머리를 깎아야 하나. 이 삭발투쟁이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혁 : 나 역시도 깎으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우리가 이렇게 삭발까지 하면서 싸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 : 이제 오체투지, 만인소와 삼보일배 이야기를 해보자. 4월 19일에는 장애인들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광화문 사거리에서 효자로 입구까지 오체투지를 했고 4월 30일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요구하는 만인소와 삼보일배 시위도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떤 것들을 느꼈는가.

 

대범 : 4월 19일 오체투지 하던 날, 시위대가 행진하기 전 상소문 퍼포먼스를 할 때 ‘돌쇠’ 컨셉에 맞춰 발언했다. 그 날 발달장애인 대표로 나와서 시청, 국회 등에서 일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했고 발달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당사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했다. 사실, 광화문에 놀러 온 외국인들이 다 쳐다보니까 처음에는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수많은 장애인들이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나의 목소리를 경청해 주어서 재밌고 힘이 났다. 뜻깊은 활동이었다.

 

그런데 오체투지를 볼 때는 눈물이 났다. 대통령이 최소한 양심이 있으면 기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답장이라도 보냈어야 했다. 대통령이 못 오면 청와대에 있는 사람이라도 보내서 우리가 요구한 것들에 대한 의견과 답변을 받아서 무전으로라도 연락했어야 했다. 그 정도 양심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를 막아서는 경찰들을 향해서도 크게 욕하고 싶었는데 정훈이 옆에서 말려서 하지 못했다. 이 장면들을 보며 광화문으로 나가 촛불을 다시 들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 또 촛불을 켜면, 우리가 요구한 것들의 실현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을까 기대도 했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행진하는 김대범 한국피플퍼스트 집행위원(맨 오른쪽)
 

정훈 : 4월 30일 만인소에서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옹호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모연대에서 이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해달라고 연락이 와서 내가 했다. 나는 그 날, 발달장애인 당사자도 부모님이나 사회복지사 등의 품을 떠나 독립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당사자모임 등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게 정부에서 지원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비 : 영래와 동혁은 어땠나. 삼보일배 당시 대범과 정훈처럼 앞에 나서서 발언하지는 않았지만 삼보일배 하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어갔다.

 

영래 : 무릎에 무리가 가면 안 돼서 삼보일배에 참여하진 못하고 같이 옆에서 걸었다. 센터에서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해서 삭발하신 다른 부모님 등과 같이 그날 경남에서 올라왔다. 부모님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행진에 함께했다. 다른 사람들이 삼보일배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고 생각했다. 오체투지했던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분노처럼 이때도 화가 났다. 또, 눈물도 났다. 우리가 원래 가야 하는 길인데 경찰이 막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을 하고 싶었는데 옆에서 정훈이 욕하지 말라고 해서 욕은 안 했다. (웃음) 원래 욕은 다 하고 싶었다.

 

동혁 : 삼보일배 할 때 처음에는 사람들이 경찰을 향해 소리를 질러서 되게 놀랐다. 그리고 마음이 너무 아팠고 우울했다. 나도 절(삼보일배)은 하지 않고 깃발만 들고 사람들과 똑같이 걸었다. 같이 온 선생님이 대신 절하신다고 그랬다. 같이 활동하시는 분들 5명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너무 힘들어했고 땀도 많이 났다.

 

비 : 농성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 면담과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현재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농성 중이다. 정훈과 대범은 농성장 지킴이로 참여를 많이 했다.

 

정훈 : 농성장 지킴이 당번이라서 갈 때도 있고, 그냥 가보고 싶을 때도 간다. 또 동료들이 사수하러 갈 때 같이 가거나 다른 발달장애인 동지들 만나고 싶을 때도 간다. 이 농성장이 광화문에서 우리가 오래 투쟁한 것처럼 5년 이상 갈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등 우리의 요구안을 들어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몇 년이 걸리더라도 꼭 이루어야 한다.

 

대범 : 농성장 가면 30분 동안 우리의 요구안을 담은 피켓을 걸고 서 있다. 피켓 들 땐 짠하면서도 ‘이걸 한다고 뭐가 바뀔까’하는 생각도 든다. 또, 시위 장소가 청와대 분수대가 있는 곳에도 있는데 그쪽은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으니까 효과가 없다는 생각도 했다. 차라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피켓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등 우리의 요구가 널리 알려질 것 같다.

 

정훈 :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어린이날 같을 때는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준다. 부모들이 피켓 들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와서 격려도 해주면서 한 번씩 요구안을 읽어보고 간다. 부모님의 피켓시위 사진을 찍느라 힘들었지만 그 장소에 있는 것이 좋다.

 

김정훈 한국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 (사진 제공 : 김정훈)
 

비 : 삭발식, 광화문 만인소와 삼보일배 투쟁은 부모연대에서 주최한 시위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도 함께하긴 했으나 부모들이 주를 이뤘다. 당사자들 스스로가 큰 집회를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지, 어떤 모습으로 싸워나가고 싶은지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동혁 : 우리 스스로 그런 집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크다. 만약 그런 집회에서 발언하게 된다면 일터에서 사장들이 나에게 욕하거나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벤트 행사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장이 나에게 소리 지르고 욕하니까 기분이 매우 나쁘다. 이런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법이 있으면 좋겠다.

 

영래 : 나 역시도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직접 큰 집회를 만들어 가고 싶다. 일자리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일자리가 많이 없다. 있더라도 요양보호사 보조, 바리스타와 같은 보조적인 일자리뿐이다. 일자리 기간도 길어야 2년 정도로 한정적일뿐더러, 비장애인이 속한 회사에 들어가면 차별받고 싸워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

 

나는 애들 보는 것을 좋아해서 놀이공원에서 일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어서 조선소에서 3개월을 다치면서 일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일하지 못하는 건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정된 일자리 말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직업훈련 등이 마련되면 좋겠다. 이런 걸 대화로 풀어나가면 좋겠지만, 만약 우리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땐 우리가 나서서 부모님들처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성인 발달장애인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시민으로서의 그들의 자리를 지워버렸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사회를 향해 외친다. 우리도 이 사회 한 구성원으로서 이렇게 여기 존재한다고. 그렇게 일방적 돌봄을 받는 존재로서가 아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나타났다. 이제 터지기 시작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는 잘 들을 수 있을까. 이제 우리 사회, 국가의 역할을 고민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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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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