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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돌아가신지도 몰랐는데...’ 상속 포기 재산때문에 수급권 탈락한 탈시설 장애인
시설에 있던 장애인 인감도장으로 가족들이 멋대로 ‘상속 포기‘
“장애인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 차별의 고리 끊어야”
등록일 [ 2018년06월04일 13시53분 ]

기자회견에 참석한 소송 당사자 구동회 씨가 '침해받는 권리! 되찾아야 할 정당한 권리'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시설에서 약 40년간 살았던 구동회 씨는 2년 전 지역사회로 나왔다. 시설에서 나온 직후부터 체험홈에서 살아왔다. 체험홈 입소 기간이 만료되어 이제는 집을 구해야 한다. 지체장애 1급인 구 씨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구 씨가 혼자 살아가기 위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비는 부족하나마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구 씨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은 거절되었다. 구 씨에게 '상속 포기 재산' 6천만 원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구청의 설명이었다. 구 씨는 들어보지도 못한 '상속 포기' 재산이 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확인 결과, 구 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상속 재산을 포기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지난 2016년 6월경, 시설에 있던 구 씨에게 어머니가 갑자기 연락을 해와 인감도장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 기억났다. 당시 '아버지의 땅을 팔아야 한다'는 설명이 전부였다. 구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그래서 아버지의 재산이었던 토지를 처분해 가족들이 분배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을 듣지 못했다. 자신의 인감도장이 '상속 포기'에 사용되었다는 사실 역시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상속을 포기한 경우 이는 '기타재산'으로 산정되어 일 년에 900만 원씩 자연감소분으로 계산된다. 이 때문에 실제로 손에 쥐지도 않은 재산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기다려야 비로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있다. 구 씨가 '포기'한 상속재산은 6천만 원 상당으로, 이 재산이 모두 소진되기까지는 적어도 6년이 걸린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해 치러야 하는 비용은 단순히 수급비뿐만이 아니다. 현재 구 씨는 활동지원서비스 자부담으로 한 달에 약 14만 원가량을 내고 있고, 체험홈을 나가 살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영구임대주택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월세 10만 원인 체험홈에서 나가 임대주택에 가지 못한다면 재산이 없는 구 씨는 저렴한 보증금의 월셋집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진 주택은 대부분 신축으로, 저렴한 월세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설령 집을 구한다 해도, 재산도 일정한 소득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장애인연금만을 받는 구 씨가 꾸준히 비싼 월세를 감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구 씨는 '이러다가는 다시 시설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오랜 고심 끝에 가족을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당장 생계의 문제도 있었지만, 가족들이 한마디 설명도 없이 상속을 진행한 것에 대해, 장애인도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당한 주체임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4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구동회 씨 가족에 대해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시작한 의미와 배경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구 씨의 소송을 지원하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 장애인단체와 희망을 만드는 법(아래 희망법) 등 법률 단체는 4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소송의 취지와 배경을 알렸다.

 

구 씨 소송을 지원하고 있는 김재왕 희망법 변호사는 "구 씨의 아버지가 소유했던 부동산 다섯 필지 소유권이 현재 모두 구 씨 형에게 이전된 상태로 추측한다. 구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상속이 진행된 사실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이 임의로 구 씨의 상속 포기를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며 "구 씨에게 권리가 있는 상속금액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김 변호사는 "또한 구 씨가 경험한 일련의 과정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며 "손해배상도 청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 30조 제3항에서는 가족이나 복지시설 등 구성원은 장애인의 재산권을 제한, 박탈, 구속하거나 권리 행사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송 당사자인 구 씨는 "나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소송을 하는 이유는 가족들이 장애인을 가족 구성원으로 보지 않고 물건 취급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산을 나와 이야기도 없이 형에게 모두 전달한 것을 알았을 때 괘씸한 마음과 당혹감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장애인들은 물건이 아니다.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 존중해달라"고 호소했다.

 

박김영희 장추련 대표는 "가족 내에서 결정할 일이 있을 때, 장애인은 언제나 배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가족들은 '장애인이니까 대충 얼마 주면 되지, 시설에 가서 있으면 되지'라며 자신들이 알아서 나눠주겠다며 우리의 의견을 배제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박 대표는 "그러나 가족의 한 일원이고자 하는 소망 때문에, 또는 가족으로부터도 배제당했다는 사실을 직면하고 싶지 않아 장애인은 이런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라며 "이번 소송을 시작으로 내 집에서, 내 가족 안에서부터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김성연 장추련 활동가는 "구 씨가 오랜 고민 끝에 소송을 결정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그래도 가족을 대상으로 소송을 하나'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소송은 가족과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족 안에서의 차별이 없어지지 않으면 지역사회 내에서의 차별도 없어지기 힘들 것"이라며 "그동안 장애인이 가족 구성원으로 평등하게 존중받지 못하고 배제되는 사례가 정말 많았는데, 이번 소송은 처음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이다. 당사자 재산권 행사 관련해 좋은 판례가 남는 소송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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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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