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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복지・갱생 가장한 '빈곤의 분리수거'"에 불과했다
인권위,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조사 결과 발표...피해생존자 입소 전・후의 삶 '그대로'
"진상규명 위한 국가 차원의 조사 필수...'국가' 이외의 가해자 문제도 짚어야"
등록일 [ 2018년06월22일 18시18분 ]


김영배 선감학원 아동피해자 대책협의회 회장은 국가가 선감학원의 운영 실태를 조사하고 피해생존자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50여년 전에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강냉이 보리밥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해 너무 배가 고파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기도 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는 구타와 원산폭격, 한강철교 등의 기합, 손가락에 연필을 넣고 돌리는 고문 등 온갖 사람들을 괴롭히는 잔혹한 일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중략) 우리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선감학원 운영에 대한 진실을 조사해 밝혀주십시오. 10살도 안 된 어린이를 부모와 집이 있는데도 깨끗한 옷을 입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랑아로 취급해 폐인을 만든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사과를 바랍니다. (김영배 선감학원 아동피해자 대책협의회 회장)

 

저는 1967년, 아홉 살 정도의 나이에 선감학원에 강제로 납치되어 잡혀 들어 왔습니다. 우리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제일 힘없는 직업소년, 부랑아, 고아, 평범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무책임하게 1원 한 푼도 없이 사회로 방출시켰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국가에게 묻습니다. 우리들을 납치해서 길게는 10여년 간 모진 구타와 가혹한 기합을 주며 강제노역을 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가는 선감학원 특별법을 만들어서 진상을 규명하고 죄가 있는 분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루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선감학원 때문에 죽임을 당한 아이들에게도 국가차원의 명복을 빌어주십시오. (이대준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이들이 말하는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 경기도 안산시의 작은 어촌마을인 선감도에 설립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총독부는 조선감화령(1923년)을 제정해 “8세에서 18세 소년으로 불량 행위를 하거나 불량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자”들을 강제수용할 수 있는 관립·사립 감화원을 만들었고 부랑아들을 '갱생' 시킨다며 강제 수용했다. 선감학원도 이 조선감화령에 근거한 감화원이다. 이 곳에는 단지 복장이 남루하거나 행동이 불량하고, 주소를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4,691명의 아동들이 강제 수용됐다. 선감학원은 해방 이후에도 국가 정책에 따라 부랑아 강제 수용 시설로 사용되다가 1982년에 폐쇄됐다.

 

당시 선감학원 아동의 41%는 8~13세였고, 염전, 농사, 축산, 양잠, 석화 양식 등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또한, 꽁보리밥, 강냉이밥과 소금, 간장, 젓갈 등이 식사로 나왔으나 이마저 그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아동들이 열매, 들풀, 곤충, 뱀, 쥐 등을 잡아먹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수용 아동들은 선감학원 종사자나 다른 아동에 의한 상습적인 폭행‧구타로 고통 받다 탈출 또는 사망했고, 피해생존자들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신체적 장애, 정신적 트라우마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공동주최로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토론회'를 열었다.

 

인권위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28명을 대상으로, 아동기 피해경험이 지금 이들의 삶에 미친 영향과 현재 생활상을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22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이 설문조사 분석 결과와 국가 차원 진상규명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보고서 결과발표 및 토론회’가 국가인원위원회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공동주최로 열렸다.

 

설문조사는 크게 입소 전 삶, 입소경위, 퇴소 이후의 삶 등을 묻는 것으로 이뤄졌다. 입소 전 같이 살던 사람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나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친척 또는 형제와 같이 살고 있었다'고 답했고, 나머지 절반이 '고아였다'고 답했다. 입소하기 전 다른 시설에 수용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20명(71%)이었는데, 이 중 17명이 부랑아의 집결지였던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날 발제를 맡은 하금철 비마이너 기자는 “상당수가 연고자 유무를 따지지 않고 실행되는 부랑아 단속에 의해 잡혀온 경우”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조사결과에서 보듯, 많은 이들이 선감학원으로 옮겨 왔는데 이 보호소의 운영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뤄져야 선감학원에 대한 진상규명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입소 경위를 묻는 질문에서 경찰(57.1%)과 공무원(17.9%)에 의해 인계되었다는 답이 월등히 많았고, 고아원에서 전원조치 되었다(21.4%)는 답이 그 뒤를 이었다. 이 과정에서 입소 동의 또는 고지 절차를 받은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 원하지 않게 선감학원에 입소한 피해생존자들은 선감학원을 탈출하려고 애썼다. 응답자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15명이 한 번 이상 탈출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피해생존자들은 "탈출을 하려다 실패할 경우 엄청난 폭행이 가해졌다"고 증언했다. 하 기자는 “선감학원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탈출밖에 생각할 수 없던 이유는 학원 외부와의 최소한 연락도 불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응답자 중 퇴소 사유는 '탈출'이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른 시설로 전원조치 된 경우가 6명이었다.

 

피해자들은 선감학원 퇴소 직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는 선감학원이 내걸었던 목표인 ‘부랑아의 보호 선도 및 갱생’이라는 것의 실효성을 따져보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절반이 되는 이들이 퇴소 직후 5년 사이에 ‘구걸 및 부랑생활(구두닦이 등 포함)’을 했다고 답했다. 하 기자는 “이는 부랑생활을 끝내고 소위 ‘정상적인’ 사회인의 삶을 살게 하겠다는 선감학원의 목표는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라고 평가했다. 또한, 응답자의 40%에 가까운 인원이 선감학원 퇴소 후 다른 시설에 입소한 경험이 있었다. 퇴소 후에도 부랑생활을 전전하거나 다른 시설을 오가며 버려진 존재로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하금철 비마이너 기자는 선감학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은 이 빈곤을 향한 국가폭력을 끊어내기 위한 첫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의 현재 경제 수준도 열악하다. 기초생활수급자(6명)와 월 100만원 이하 소득 생활자(5명)가 40%에 달한다. 월 소득 200만 원 이상이라 밝힌 사람(7명)도 있었으나, 이들 중 상당수는 자영업 또는 안정적이지 않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어 안정적인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되었다. 하 기자는 “복지와 갱생을 가장한 ‘빈곤의 분리수거’는 서울역 인근 뿐만 아니라 서울 곳곳, 경기도, 인천 등지에서 해방 이후 수십년 간 자행됐고, 그 중 일부가 선감학원에 집결되어 국가폭력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강조하며 “선감학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은 빈곤을 향한 국가폭력을 끊어내기 위한 첫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선감학원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 활동가는 선감학원과 같은 부랑인 강제 수용시설이었던 부산의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운동 과정을 언급했다. 그는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는 2012년 5월부터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며 묻힌 과거를 현재의 화두로 밀어 올렸다. 현재 형제복지원은 지난해 발족된 검찰 과거사 조사위원회가 과거 인권 침해 및 검찰권 남용 의혹이 있는 사건들을 재조사 하겠다고 밝힌 리스트에 들어있다.

 

여 활동가는 “형제복지원진상규명 운동은 당사자 모임이 큰 역할을 했다. 2018년 현재 연락이 닿는 피해생존자 및 유가족은 약 300여명이고, 피해생존자모임이 별도로 조직돼 피해생존자모임이 별도로 조직돼 스스로 활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국토대장정, 국회 앞 노숙농성, 연극 시나리오 집필, 국회 특별법 제정 촉구 활동, SNS 홍보활동 등 운동의 주체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용기를 내서 발언하고 증언했던 피해생존자들 덕분에 형제복지원 사건을 이만큼 알리는 것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여 활동가는 "이들의 목소리는 하나의 선언이자 어두웠던 시대에 대한 증언이므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당사자 역시 주체적으로 운동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날 토론자들은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국가가 선감학원의 운영 실태와 인권유린, 해방 이후에도 운영된 부랑인의 강제격리 및 수용 시설에 대한 면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또한, 국가차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피해생존자들의 명예 회복, 피해 배상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관련자들의 사과 역시 간과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관련자'들은 동료 피해 생존자와 선감도 인근 지역 주민들이다.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선감학원과 관련해서 피해생존자들과 선감도 인근주민들의 '가해'에 대한 시인과 그 사과가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유 연구위원은 “선감학원 사건을 국가폭력이라는 한 단어로만 압축하기에는 주변 사람도 이 사건에 촘촘히 얽혀 있다. 피해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같은 원생들 사이에서도 신체적, 물리적 위계에 따른 (성)폭력과 구타가 빈번했다. 이 ‘가해자’ 들도 국가폭력의 피해자이면서 국가의 대리로 가해를 했던 사람들이다. 선감학원 사건에는 이런 복잡한 층위들이 섞여 있다”고 언급하며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이중 정체성은 개인의 트라우마를 증폭시킬 우려가 있고 피해 집단 내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 연구위원은 "선감도 지역 주민들이 구체적인 선감학원의 실상까지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폭력적인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이 폭력을 방관하고, 피해생존자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해 성공했음에도 이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4-5년 정도의 노예생활과 감금생활을 시킨 것을 분명한 가해행위”라고 지적했다. 지역사회 역시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이 인식을 가지고 지역 주민들이 피해생존자들에게 가해를 했던 것에 대한 명확한 시인과 사죄가 있을 때 지역사회도 문제해결의 출발선에 함께 설 수 있고 피해생존자들의 사회적 트라우마도 치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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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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