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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애 가진 아이와 저, '여기서 함께' 행복하고 싶어요
자신과 같은 골형성부전증 가진 딸 출산한 이라나 씨
"불행은 구체적인데 행복은 추상적...나와 같은 사람들 위한 논의 시작되길"
등록일 [ 2018년07월20일 13시04분 ]

이라나 씨는 지난해 결혼해 올해 2월, 딸 연수를 낳았다. 연수는 엄마를 꼭 닮았다. 크고 동그란 눈, 뾰족한 턱, 그리고 골형성부전증.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은 오랫동안 이야기되어왔으나 이를 지원할 제도 개선은 더디다. 더구나 한국은 모자보건법상 ‘유전학적 신체 질환’이 합법적 낙태 사유인 곳이다. 이런 사회에서 장애 여성이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그것 봐’라는 시선들, 자신이 겪어온 차별의 경험을 아이도 반복할 거라는 두려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제도의 틈바구니와 좌절감. 이 씨는 이 소용돌이를 어떻게 지나고 있을까. 두 시간여 동안 이 씨가 가끔은 주저하며, 종종 분노하며, 그러나 일관되게 ‘함께 살아갈 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며 전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어려운 인터뷰인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나 씨의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라나 씨에게 너무 힘든 질문들을 해야 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결심하게 되셨나요?

 

아이를 갖기 전에는 장애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관한 콘텐츠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경험해보니 그런 콘텐츠를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특히 저처럼 장애인이면서 장애아의 부모인 경우가 잘 없고요. 그냥 ‘이런 제도가 있다’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이 어떤 건지에 관한 이슈화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터뷰를 결심하게 됐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현실은 어떤 모습인가요?

 

제일 큰 게 활동지원 시간이에요. 제가 활동지원을 한 달에 134시간 받거든요. 혼자 살 때는 어찌어찌 조정해서 빠듯하게 살았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거예요. 골형성부전증은 콜라겐 합성이 안 돼서 뼈가 약하고 잘 부러져요. 연수도 2개월에 한 번씩 뼈주사 맞느라 입원하거든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제가 아이를 돌볼 수가 없어요. 병원 구조가 철저히 비장애인 보호자 중심이라서, 침대도 싱크대도 다 높고 화장실도 접근을 못 해요. 그래서 아이 입원하면 활동지원을 24시간 쓸 수밖에 없는 거죠. 야간 수가는 1.5배니까 제가 실제로 한 달에 받는 활동지원 시간은 134시간이 안 되는 거예요.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하지만 아무리 시나 구청에 하소연해도 ‘해당하는 서비스가 없다’는 말만 돌아오고.

 

활동지원 긴급추가 대상이라고, 출산하면 6개월간 80시간 더 주는 게 있어요. 올해는 그걸로 버틸 수 있는데 내년엔 다시 134시간이죠. 그래서 경력단절이 될 것 같아요. 아이 양육에 활동 지원 시간을 다 써야 하니까 사회생활에 쓸 수가 없으니까요. 시간이 짧으니, 저를 지원하는 일이 활동지원사에게 ‘매력적인 일자리’가 되지 못하는 것도 있죠. 긴급추가 80시간이 있으니 그나마 지금은 월급이 150만 원가량이 되지만, 134시간이면 120만 원이 겨우 넘을까. 지금 계신 활동지원사님이 그만두시면, 내년에 새로 어떻게 구해야 하나 막막해요.

 

시간도 시간인데, 제도가 운영되는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갈등도 있어요. 활동지원서비스 지침을 보면, 분명 양육지원이 있거든요? 그런데 많은 경우 이게 잘 지원이 안 돼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활동지원사님들이 양육은 부담스러워 하세요. 그래서 활동지원을 받음에도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사례도 생겨요. 제가 아는 어떤 언니도 활동지원사님이랑 협의를 결국 못해서 아이랑 떨어져 지내요. 제가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그에 대한 지원도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제도적 보장이 되질 않으니 양육 지원은 결국 개인 대 개인이 타협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려요.

 

이라나 씨와 딸 정연수 양. 사진제공=이라나 씨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출산 이후까지 마주한 다양한 차별

 

-장애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거대한 차별과 마주하는 일인데요. 라나 씨도 정말 많은 형태의 차별을 경험했을 것 같아요. 

 

처음 임신한 거 알았을 때 기분 좋았어요. 아이를 갖고 싶었거든요. 물론 계획에 따라 임신한 건 아니라 놀라긴 했지만, 좋은 감정이 더 컸어요. 그런데 사람들 반응이, 제 감정이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오랫동안 저랑 알고 지내던 분이 제 이야기를 듣자마자 ‘어떻게 하려고 애를 가졌냐’고 다그치시는 거예요. 전 그분이 제 임신을 축하하고 긍정적으로 봐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임신하고 처음 갔던 대학 병원 의사도 그랬어요. 절 보자마자 안색이 확 바뀌더니, ‘당신처럼 작은 산모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산모가 너무 작아서 아이 크는 거 20주까지도 못 버틴다’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임신 사실 알고 남편이랑 나랑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인터넷 검색을 무척 많이 했는데, 나랑 같은 장애에 몸집도 더 작은 분이 애를 셋이나 낳았던데 무슨 소리야(웃음). 더 충격적이었던 건 ‘갖기 전에 왔어야지’라는 말이었어요. 그 말뜻이, ‘네가 낳으면 백 퍼센트 장애인일 텐데, 갖기 전에 유전자 잘 골라서 장애 없는 아이로 체외수정 했어야지’라는 거. 이 말을 듣는데 화도 안 나고 그냥 서럽더라고요. 엉엉 울었어요.

 

그러더니 또 채혈을 하고 가래요. 피 검사 기간이 꽤 되니까 결과 나오자마자 빨리 와야 한다고. 전 그냥 제 건강 검사하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유전자 검사를 위한 채혈이었던 거예요. ‘빨리 오라’는 것도 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는 20주 안에 오라는 거였고요. 공교롭게도 그날이 제 생일이었거든요. 정말 최악의 병원이었어.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어요. 엄청 울면서 생각했어요. 아, 이런 거구나. 장애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게.

 

마침 ‘코이아’라는 골형성부전증 모임에 나갔다가 서울대병원에 골형성부전증 연구하는 교수님이 와계신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갔어요. 그 교수님께서 산부인과의 박중신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죠. 박 교수님께서 ‘위험부담은 분명 있다. 그러나 산모가 잘 버텨주면 최대한 함께 노력하겠다. 낳기로 했다면 굳이 산전 검사할 필요 없다’라면서 힘을 많이 주셨죠. 연수 낳고 나서도 많이 신경 써 주시고. 참 감사해요.

 

생각보다 임신하고 제 장애 때문에 특별히 힘든 건 없었어요. 병원에서는 아이가 뱃속에서 커질수록 숨이 많이 찰 수도 있다고 했는데 별로 그러지 않았고, 뭐 화장실 자주 가기 불편하고 그런, 보통 산모들이 경험하는 정도?

 

연수는 2.19kg으로 태어났어요. 되게 작긴 했지만, 태어난 직후 호흡 문제 때문에 맘 졸였던 거 말고는 크게 아픈 건 없었어요. 그런데 병원이 장애인 산모에 대한 고려가 너무 안 돼 있어요. 예전에 같은 병원에서 척수 수술할 때는 병실 안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고 씻을 수도 있었는데 산부인과는 복도까지 나가야 있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입원해 있으면서도 활동지원을 못 받았거든요. 퇴원하고 아이 돌보는 데 써야 하니까. 그래서 제가 산후조리가 제대로 안 됐어요. 병원에서 혼자 알아서 다 해야 했으니까.

 

“아이가 엄마도 이런 걸 알았으면서 왜 낳았냐고 따질까 봐 무서워요”


-연수가 장애를, 특히 라나 씨와 같은 장애를 가진 걸 알게 됐을 때는 내적으로도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골형성부전증이 유전성 질환이긴 한데. 저희 부모님도 그렇고, 나랑 같은 사람들도 보면 부모님이 같은 장애 가진 경우가 별로 없어요. 저도 아이 낳으면 50% 확률로 장애가 유전된다고 했고. 그래서 내심 ‘아닐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17주 차에 알게 됐어요.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아이 다리가 많이 휘어있는 거예요. 병원 가보니 ‘아무래도 엄마 장애가 유전된 것 같다’고. 그 이후에 눈만 뜨면 울었어요. 남편이 잘 해주는 만큼 울고. 죄인이 된 느낌. 그때 낙태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그래도 연수가 뱃속에서 너무나 건강히 잘 자라니까, 미안하면서도 아이가 너무 예쁘고. 꼭 만나고 싶은거에요. 그래서 그 뒤로는 일절 낙태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요.

 

내가 뼈가 부러지는 몸이라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죽고 싶었어요. 처음 그런 생각 한 게 아홉 살 때. 아파서.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그랬어요. 연수가 태어난 지 2개월도 안 됐을 때 벌써 쇄골, 양쪽 팔, 다리 전부 한 번씩 부러졌어요. 그 과정을 거치자니 다시 그 절망이 생각나면서.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나의 아홉 살과 같은 시기를 거칠 거라고 생각하니 오죽하면 '임신했을 때 그냥 (낙태를) 선택할걸'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내가 만약 비장애인이었다면 절망감이 덜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내가 장애 갖고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힘든 일을 겪었고, 어떤 순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까. 장애인 운동에 참여하면서 제도는 개선되고, 나의 사회참여도 확장되었지만, 제 일상은 아직도 매일이 전쟁이거든요. 연수가 자라갈 사회가 제가 살아온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아이가 나중에 엄마도 이렇게 살았으면서 왜 나를 낳았냐고, 엄마도 힘들었으면서 어떻게 나한테 이걸 또 경험하라고 낳았냐고 하는 상상이 자꾸 됐으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나요?

 

아직 거기 있어요(웃음). 그래도 중간중간 힘을 내려고 노력하죠. 제가 임신 소식 알렸을 때, 엄마가 '잘됐네. 한 번 낳아 봐'라고 말씀하셨고, 연수에게 저와 같은 장애가 있다는 말씀드렸을 때도 '장애 없는데 말 안 듣는 애보다 낫지 뭐'라고 우스갯소리도 하셨고요. 제게 장애가 있는 걸 알았을 때 죽고 싶었다고 하시던데, 지금은 이렇게 덤덤하게 응원해주실 수 있다는 게 저한테 좀 희망이 돼요. 남편도 제 마음을 많이 신경써주고, 응원해주고 해서. 든든한 버팀목이죠.

 

사회에서 세워놓은 '평범함'을 쟁취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평범함을 만들어가는 장애계의 활동처럼, 아이에게도 그런 성장 과정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대안학교나 마을공동체 같은 선택지도 고민 중이예요. 생각이 많아요.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나와 다른 경험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길은 뭘까.

 

너무 어두운 이야기만 했나? 하하. 스트레스받는 일은 많지만 예쁜 연수, 사랑하는 남편과 재밌게 잘살고 있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오늘 제 삶의 어둡고 힘든 부분들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한 건 오늘 제 이야기가 장애아를 키우는 장애 여성에 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라나 씨와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 같은 고민을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해주고 싶나요?

 

네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꼭 팔로 안아주지 못하더라도.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라나 씨 가족. 왼쪽부터 이라나 씨, 딸 정연수 양. 남편 정성룡 씨. 사진제공=이라나 씨

 

라나 씨는 마치 주문을 외듯 희망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불행한 상상은 구체적인데, 행복할 거라는 상상은 추상적이기만 하다'며,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라나 씨와 연수가 행복을 구체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조건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가 이 땅의 모든 '연수들'을 환대하고, 잘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라나 씨와 연수의 존재, 그들의 삶에 귀기울이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경험에 기반한 실질적인 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기꺼이 자신의 삶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라나 씨의 바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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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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