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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의 입체적인 초상화, 그 아름다움으로의 초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김원영과 함께한 북콘서트
"‘우아하지 않은’ 장애인의 매력, 규범없이도 환대받을 수 있는 요건에 관한 오래된 질문"
등록일 [ 2018년07월27일 18시01분 ]

김원영 변호사의 신간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 출판사, 아래 <변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26일 저녁 창비서교빌딩에서 녹색당과 사계절 출판사 공동주최로 열린 <변론> 북콘서트에는 2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참여 신청을 했다. <변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는 현재까지 정해진 것만 서울과 광주, 포항 등에서 네 차례 더 있다. 사람들이 <변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김 변호사가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피와 살로' 경험한 이야기를 에두르지 않고 드러내는, 그러면서도 김 변호사 특유의 유머 감각과 균형 잡힌 시선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 책을 왜 쓰기로 결심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는 이 글을 써 내려갔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무엇을 읽어내길 원했을까. 26일 진행된 북콘서트에서 김원영 변호사가 직접 말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배경, 그리고 독자와의 질의응답을 정리했다.

 

 

26일, 사계절 출판사와 녹색당이 공동주최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북콘서트에서 김원영 변호사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
 

저의 책은 '우아함'에서 시작합니다. 저에게 중요한 인생 과제였기 때문이죠. 휠체어를 탄 내가 우아해 보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그 결과, 저는 1.8초에 한 번씩 휠체어 바퀴를 굴려야 가장 직립보행에 가까워 보이고, 우아해 보인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너무 빠르면 경망스럽고 너무 느리면 운동성이 없어 보이잖아요?

 

우리가 '우아하다'라고 여기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김연아 선수 아닐까 싶어요. 인지적 부담, 그러니까 시각적 불안함을 주지 않는 움직임을 보여주죠. 우리의 신체는 중력의 저항을 받습니다. 꼿꼿하게 서 있고, 근력을 이용해 적당한 빠르기로, 불안해 보이지 않는 우아한 움직임은 결국 외부의 힘으로부터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런 면에서 장애를 가진 신체는 그런 우아함을 충족하기 어렵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저는 체중을 분산하기 위해 계속 움직이느라 꼿꼿하게 오래 같은 자세로 있을 수가 없고요, 뇌병변장애는 근육 통제가 어렵죠. 시각장애인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행동규범을 모방하기 어려워 어색해 보일 수 있습니다. 청각장애인의 한국어는 우리가 흔히 듣는 발음과 다르고요.

 

미의 표준과 규범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이 굉장히 선형적이었어요. 제가 굉장히 거칠게 정리를 해봤습니다. 선과 악이 이분되고, 악하다는 것과 추하다는 것이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악하고 추한 것은 혐오와 연결되고, 혐오의 대상은 모욕과 멸시를 해도 괜찮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는 이런 규범 도식이 해체됩니다. 물론 정말로 해체되었는가 의문은 있지만, 이 고리(악함=추함=혐오)가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시대에 아무도 없어요. 여기서 혼란이 생깁니다. 우리는 분명 어떤 사람이 존엄하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여전히 그 사람이 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혐오할 수도 있게 되는 거예요. 대표적인 집단이 장애인, 성소수자이지요. '그래, 너에게 권리도 있고 차별받지 말아야지. 그런데 난 네가 혐오스러워. 감정을 어떻게 하라고?'


장애인 운동은 지난 20여 년간 많은 사람의 인식을 바꿔왔습니다. 20년 전 같으면 저 같은 사람이 책을 쓸 리도 없고, 제 얘기를 듣겠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장애인이 사회참여를 하고 있고요. 그러나 여전히 많은 장벽이 있습니다. 결국 다시 '우아함'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공적 영역에서 법적 권리를 갖고, 차별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사적 영역, 비공식적인 여러 네트워크와 사람 간의 만남 속에서 장애인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거든요. 제가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 소외의 상당 부분은 장애인에게 '매력'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매력이 꼭 성적인 매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과 함께 사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여러 가지 부담이 되는 걸 말하는 겁니다. 함께 뭔갈 하다 보면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고,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도 있고, 또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소외된 경우가 많으니 그만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와 지식을 갖지 못할 수도 있고요.

 

법률과 제도, 정책으로 권리가 쟁취되다 보면 이런 어려움 상당 부분이 보완될 거예요. 장애인 이동권이 확대되면 같이 여행하고 놀러 가는 것에 부담이 없어지고, 교육권이 보장되면 그만큼 자신의 개성과 이야기를 갖게 되는 것처럼요.

 

하지만 이런 권리가 완전하게 확보되는 것은 힘들뿐더러, 이런 권리만으로 말할 수 없는 사적인 관계에서의 힘이 있어요. 우리는 법률적으로나, 교육을 통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 양식의 하나로 장애인 당사자를 환대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런 규범에 기대지 않고 많은 사람이 생물학적, 사회학적 배경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을 진정으로 환대할 수 있을까. 저는 이런 '미학적 투쟁'에 관심이 있고, 이 책은 이런 제 관심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책의 핵심주제는 8장 ‘아름다울 기회의 평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 제목에 ‘변론’이 들어가긴 하지만, 논증이 핵심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저에게 일종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이었어요. 장애인은 늘 집단화되어서 특정한 형태로만 묘사됩니다. 과거엔 주로 ‘천사’였고, 지금은 종종 ‘혐오의 대상’이죠. 장애인을 묘사하는 형용사도 한정적이에요. ‘어려움을 극복한’, ‘영감을 주는’ 정도?

 

그래서 저는 장애인 개개인의 ‘생생함’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잘 쓰인 소설과 아닌 소설은 인물이 얼마나 입체적이고 생생한가에 달려 있잖아요. 그래서 모자이크 그려가듯이 장애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담았어요.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의도적으로 출산한 청각장애인 레즈비언 커플, 절단된 장애인의 신체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디보티즘 등. 독자들이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입체적으로 보고, 그 입체성 속에서 독자 개개인의 경험과 가치를 찾길 바랐습니다.

 

뇌병변장애인의 근육은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우아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여러 가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놀림의 대상이 되죠. ‘애자 흉내’를 낼 때 대부분 뇌병변장애인을 흉내 내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니진스키라는 전설적인 무용가가 있죠. 이 사람의 유명한 안무 중 한 동작은 뇌병변 장애를 가진 아동의 움직임을 보고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 우리 사회가 추하고, 느리고, 격이 떨어지고, 우아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 움직임과 태도들 속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인가,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이냐는 겁니다. 쉽진 않겠지만 제 책이 이런 이야기의 촉발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북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질문 :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은 대부분의 경우 대화인 것 같다. 하지만 중증발달장애인이라면 이 방법을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들의 매력이 드러날 수 있는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사실, 말씀하신 그 부분을 제가 6장에서 다루기는 하는데요, 제게 가장 난감한 부분이자,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달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장애를 가진 분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있죠. 그런데 제가 책에서 강조했던 게 ‘자기의 서사를 써나가는 능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고 자기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해석하는 것이 그 사람의 고유성과 존엄성의 핵심이라는 것이에요.

 

기본적으로 제 생각엔, 어떤 정신적 장애인도 자기 개인의 이야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표현이 텍스트, 언어 중심인 사회에서는 어렵겠죠. 그런 면에서 예술적인 작업과 활동이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영국이나 일본에서 장애인 예술 단체를 많이 봤는데, 한국 역시 굉장히 초보적이지만,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의 표현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저는 거기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언어기반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의 삶을 적절하게 ‘변론’하긴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분명 제 책의 한계겠지요.

 

질문 : ‘비장애인의 예술 활동도 많은데 왜 굳이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봐야 할까‘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할 것인가.
 

분명 굉장히 논쟁적인 주제죠. ‘장애인 예술은 미적으로 얼마나 탁월한가’. 예를 들어, 뇌병변 장애를 모티브로 한 니진스키의 춤은 아름답지만, 뇌병변장애인이 추는 춤은 얼마나 미적 탁월성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 있을 수 있죠.

 

어떤 사람은 현재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 고유의 몸짓과 표현력으로 추는 춤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죠. 또 다른 쪽에서는 현재는 가능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우리가 가진 배경에서는 다른 움직임을 ’아름다움’으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으로, 수용자의 상상력이 커짐에 다라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저는 두 입장 다 동의합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가진 예술에 대한 일반적 감각에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예술가들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예술가 중에서도 우리가 새로운 관점과 시간을 내서 보면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있는 분도 있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어떤 장애인의 공연은 어설플 수 있어요. 그렇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봐주시면 장애인 예술 영역 자체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고요, 동시에 수용자의 눈도 새로운 미적 감각을 발전시켜갈 수가 있어요.

 

장애인 예술이 굉장히 활발한 영국에서 90년대에 이런 논쟁이 뜨거웠어요. 다리가 없고 두 팔로 춤을 추는 데이브 툴(Dave Toole)이라는 무용가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분이 처음에 등장했을 때 비평가들의 엄청난 냉소를 받았죠. 이건 예술이 아니라 서커스다. 하지만 이 분 영상을 보면 되게 재미있고, 또 예술적으로 아름답기도 합니다. 아티스트 개인도 발전했을거고, 수용자들의 감각도 변하고요.

 

질문: 아직 장애인의 권리 투쟁이나 법적, 제도적 빈공간이 많이 있는데 이를 넘어선 ‘미적 투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만약 세상에 엘리베이터가 다 생기고 지구가 평평해져서 어떤 도움도 없이 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그러면 내 장애가 과연 사라지는 것일까. 즉, 사회적 장벽과 구조가 다 제거되면 장애도 사라지는가. 저는 아닌 것 같은 거예요. 물리적 장벽이 다 없어져도 여전히 제 신체는 어떤 면에서는 아프기도 하고 미적으로 열등하다고 느껴질 테니까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기본적인 권리 투쟁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결코 아니에요. 저는 한국에서 장애 운동 하는 분들은 무척 존경하고, 그들의 투쟁 덕분에 제 삶의 기회를 많이 얻었으니까요. <변론> 역시 미적 투쟁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장애인 권리 보장 운동의 필요성과 함께 두 가지 축으로 흘러가요. 이 두 가지를 모두 다 이야기했을 때야말로 독자들이 장애,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문제에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는 한국 사회가 장애인의 ‘권리’와 동시에 ‘매력’도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책을 통해 화두를 던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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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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