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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유기훈의 의학이 장애학에 건네는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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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속에서 ‘차별’은 어떻게 증폭되는가
몰아치는 태풍·폭염, 그 안에 방치된 장애인의 일상
등록일 [ 2018년08월24일 13시56분 ]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더웠던 여름밤, 오늘은 서울도 밤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6년 만에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한단다. 포털의 상위 검색어에는 태풍 ‘솔릭’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 차 있고, TV에서는 유리창이 깨지지 않도록 테이프를 붙이라는 조언이 한창이다. 2018년 한국의 기나긴 폭염의 마지막은 태풍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 2005년 여름, 뉴올리언스


2005년 여름, 미국 서부의 뉴올리언스에도 긴 더위의 끝에 태풍 카트리나가 찾아왔다.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던 8월 29일, 한 여성이 장애활동가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태풍의 영향권인 뉴올리언스에 사는 사촌동생 베닐다(Benilda)가 집 안에 2일째 고립되어 있다는 구조요청이었다. 베닐다는 사지마비 장애여성으로, 혼자서 이동이 쉽지 않았다. 장애활동가는 그 날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여러 기관과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러나 많은 전화 뒤에, 베닐다가 구출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베닐다는 그녀 스스로도 대피소에 가기 위한 이동편을 구하기 위해 토요일부터 계속 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도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장애인 이동지원 시스템은, 기상이 아주 좋은 날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왔습니다. 태풍 속에서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것은 명백했습니다.

 

베닐다가 절박한 목소리로 ‘물이 차오르고 있어요!’라고 말했던 마지막 순간, 저는 전화기만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와의 전화가 끊겼죠. 5일 뒤 그녀는 물이 가득 찬 아파트 안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고, 물 위에 뜬 그녀의 시체 곁에는 그녀의 휠체어가 뒹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연재해는 때로는 예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닐다는 그러한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베닐다는 죽을 이유가 없었습니다.1)

 

2005년 태풍 카트리나로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시내. 자연재해는 일상의 차별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 2005년 겨울, 함안


그해 겨울, 경남 함안에 살던 한 남성의 집에도 물이 새어 들어왔다. 20대부터 근무력증이 악화되어 이동이 어렵던 조광식 씨(가명, 당시 40세)의 집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자활후견인이 도시락을 전달해주는 것 이외에는 변변한 이동도, 사회활동도 보장받지 못했던 그였다. 자활후견인이 방문하지 않는 토, 일요일은 빵으로 끼니를 간신히 해결하곤 하였다.

 

12월 18일 밤, 광식 씨의 방에서 보일러 수도관이 파열되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였다. 얼음장 같은 수돗물은 방안을 적셨고, 이불로 스며들어 움직이지 않는 그의 몸을 얼렸다. 다음 날 아침 오전 11시경, 도시락을 건네기 위해 자활후견인이 방을 방문했을 때 방바닥은 차가운 수돗물로 흥건했다. 광식 씨의 몸은 젖은 이불 속에 차갑게 식어있었다.

 

조광식 씨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절박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장애인들은 한강을 기어서 건넜고, 서른아홉 명의 중증장애인들이 집단삭발식을 거행했다. 삭발한 중증장애인들이 국가인권위를 점거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간 지 23일째, 정부는 마침내 대책을 내놓았다. 한 장애인 남성의 억울한 죽음으로 터져 나온 외침은 2007년 4월, 전국 활동보조서비스 시행이라는 변화로 이어졌다. 

 

- 2018년 여름, 서울의 폭염


그로부터 11년, 2018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기록적 폭염 속에서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김선심 씨도 열기와 싸웠다. 새벽에도 30도를 웃돌던 7월의 마지막 밤, 11년 전의 투쟁이 쟁취해낸 활동지원 제도는 여전히 긴 밤을 책임지지 못했다. 활동지원사가 없는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의 12시간 동안, 그녀는 몸을 뒤집지도, 선풍기를 켜지도 못한 채 상승하는 체온과 혼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살아남았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서 잰 선심 씨의 체온은 38.6도를 가리켰다. 걱정되어 문병 온 동료들에게 그녀가 말했다.  

 

“내가 죽어야지. 한 사람이 희생해야 다른 사람들 24시간 받을 거 아니야”2)


- 일상의 차별이 자연재해와 만날 때


자연재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상의 차별은 더욱 선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평상시 ‘사소한 불편’이라 치부되었던 적은 저상버스 수와 지하철 리프트가 재난 대피 과정에서 치명적 위협으로 다가오듯, 일상의 이동권과 활동지원은 재해 앞에서 삶의 근본인 ‘생명권’과 직결된다. 수많은 조광식(들)이 내딛지 못했던 현관까지의 10발자국은, 수많은 선심(들)이 켜지 못한 선풍기는, 베닐다(들)이 침해당했던 이동할 권리는 재난 상황에서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가르는 요인이 되었다. 일상의 차별과 불평등에 싸워나가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를 재난 앞에서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폭염을 겨우 넘어선 수많은 선심(들)에게, 이어서 찾아온 태풍과 함께하는 오늘 밤은 또 어떤 위기로 다가설까.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 활동할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일상의 배제 속에서, 창문을 덜컹이는 바람과 천장을 두드리는 굵은 빗방울들은 그들에게 어떤 두려움으로 다가갈까. 길고 더웠던 여름의 마지막, 창문을 흔드는 바람에 “더 이상 죽이지 말라”라는 외침이 더욱 절박하게 들려온다.

 

* 각주

1) National Council on Disability(2005), 「Emergency Management and People with Disabilities: Before, During, and After Congressional Briefing」. 번역 및 강조 필자. 전후 맥락의 이해를 위하여 일부 내용은 의역하였다.

 

2) 비마이너 2018년 8월 8일 기사. 「폭염 속 사망할 뻔한 중증장애인 “내가 죽어야 활동지원 24시간 보장될까”」.에서 재인용.
실제로, 평소에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연결되지 못했던 중증장애인들은 폭염과 자연재해 속에서 더욱 많이 죽어간다. 1995년 시카고의 기록적 폭염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침대에 누워 지내야만 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약 5.5배 많이 사망했고, 1주일에 1번 이상 외출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6.7배 많이 사망했다.(Semenza, Jan C., et al. "Heat-related deaths during the July 1995 heat wave in Chicago."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35.2 (1996): 8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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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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