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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계, 혐오를 뚫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위해 다시 시동 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2018 차별금지법안’ 공개해
“제정 정당성 넘어 실제 제정이 필요한 시기”
등록일 [ 2018년08월29일 21시46분 ]

29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 '차별금지법, 궤도에 올리다'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렸다.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로 지난 11년간 좌초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시민사회계의 움직임이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9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주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차별금지법, 궤도에 올리다’ 첫 번째 토론회가 인권위 10층에서 열렸다. 이날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법조계 및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어온 차별금지법안의 핵심 내용을 공유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정당성을 넘어서 실제 제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당장 내년 3월, 한국 정부는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이행상황을 보고해야 하나 여전히 어떠한 미동도 없다. 현재 한국엔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은 없으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개별적인 차별금지법만 있을 뿐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역사는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권위의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에 2007년 10월,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한다. 그리고 그해 말, 정부는 차별금지법안을 국회에 발의하는데 애초 입법 예고된 법안과 달리 “성적지향,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이라는 7개의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됐다. ‘성적지향’ 등을 문제 삼던 보수 개신교계의 압력에 정부가 한발 물러선 것이다. 당시 17대 국회에 발의된 이 차별금지법안은 결국 ‘누더기’라는 오명을 쓰고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된다.

 

이에 대해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삭제한 7개 분야에 대해 국가는 차별을 허용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거나 다름없었다”면서 이때부터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차별금지법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시민단체들은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정부를 압박했지만 보수 개신교 세력 등에 의해 번번이 좌절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2008~2017)를 거치면서 ‘혐오’는 노골적인 사회의 한 단면으로 드러났다. ‘일베’를 중심으로 한 혐오의 폭풍, 보수 개신교 중심의 동성애 혐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에도 ‘혐오’는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에선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를 반대하느냐’고 물으며 동성애를 찬반의 문제로 몰고 갔고, 문재인 당선 이후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 인사청문회 역시 ‘동성애’ 관련 혐오발언이 쏟아졌다. 게다가 올해 5월, 제주도에 입국한 78명의 예멘 난민을 향해선 난민 혐오 발언이 폭발했다. 그렇게 혐오의 색채가 강해질수록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뜨거워졌다.

 

이 날 토론회에는 의자가 모자라서 서서 듣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 법 위반 시, 형사처벌보다 시정 조치 등 유연한 대응이 보다 효과적

 

이날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위원장은 입법 준비 중인 차별금지법안을 공개하며, ‘차별’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현행 인권위법에 규정된 19개의 차별금지 사유 외에 국적, 성별 정체성, 출신, 고용형태, 경제적 상황, 유전형질 등을 추가하고 차별금지영역엔 고용, 교육, 재화·용역·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 행정서비스 등의 제공이나 이용을 포함시켰다. 차별의 유형은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표시조장광고, 차별지시 등으로 확장했다. 차별의 예외로 진정직업자격(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 잠정적 우대조치(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개정 등)도 두었다.

 

그러면서 그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현행 개별적 차별금지법과 달리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를 차별의 구제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별행위는 개인의 악의보다는 사회의 편견, 고정관념, 구조적 차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개개인의 행위자를 형사처벌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사례마다 차별 중지 및 시정 조치, 재발방지 조치, 교육과 훈련 등의 다양한 조치를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이 근본적인 차별시정을 위해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 위원장은 인권위법보다 차별금지법이 더 많은 차별의 영역을 포괄한다고 말했다. 현행 인권위법은 차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2조 제3호의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하나로 판단할 뿐이나, 차별금지법은 각 영역 관련자들이 차별 예방을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며 차별의 개념을 확장하고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인권위법에 따르면 ‘업무와 관련하여’, 즉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일 때 발생한 성희롱만을 차별행위로 명시하며, 간접차별·괴롭힘은 인권위법상 차별이 아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에는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성희롱, 간접차별, 괴롭힘 등도 차별 사유로 본다. 현대 사회에서 차별의 성격이 직접적이고 의도적인 차별에서 비가시적이고 간접적인 차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괴롭힘의 경우,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 고용, 교육, 재화용역 등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고립시키거나 배제하여 차별하는 효과를 낳으므로 이 역시 차별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차별받은 사람이 문제제기하고자 하는 영역이 특정 차별행위가 아니라 차별적인 목적/효과가 있는 법령, 정책, 제도 등이라면 어떻게 될까. 조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안은 차별적인 목적이나 효과를 지닌 법령, 정책, 제도 등에 대해서도 진정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적인 목적이나 효과를 지닌 법령, 제도 등은 개개의 차별행위보다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진정이 가능해진다면 인권위 역시 반드시 진정 내용에 대해 실체적인 조사를 진행해 답변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이충은 수원시인권센터 시민인권보호관 역시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영역별로 나누었을 때,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차별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개별적인 법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결국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도에 의한 차별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법령, 정책 등이 시행되기 전 인권약자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방지하는 인권영향평가제도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형석 인권위 차별시정총괄과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힘있는 이유는 장애인 차별과 관련해 특수한 조항들이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면서 “차별금지법 또한 강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처럼 특별하고 세세한 규정을 포함해야 차별을 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장애인 정책과 관련된 계획을 국가와 지자체가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차별금지법 역시 ‘차별시정계획 5개년’ 등을 세울 수 있도록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미는 법안의 내용을 촘촘하게 엮어내 차별을 예방하고 차별의 피해자를 제대로 구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으나, 아무리 촘촘하게 법을 구성한다고 해도 이를 심의·판단하는 사람이 인권과 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높지 않다면 그 의미는 쉽게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며 법 집행자의 인권감수성도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종걸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차별금지 내용에 성적지향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번번히 무산됐다”면서 “하지만 성소수자 진영은 지속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야기해왔다. 2018년에 문재인 정부 안에서 이 차별금지법이 궤도에 올려져서 꼭 제정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향후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날 준비한 법안을 토대로 입법 추진, 토론회, 캠페인, 평등의 행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질의응답 및 토론시간에는 “동성애는 전환치료 될 수 있다”, “HIV/AIDS 감염률이 동성 간에 제일 높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회자와 토론자 및 방청객들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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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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