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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종합조사도구’, 장애계 “등급제와 다른 게 없다” 비판 봇물
복지부, 장애등급제 대체한 종합조사도구 공개… 3개 영역 37개 평가지표로 구성
장애계, “예산 증가, 서비스 다양화, 유형별 욕구 반영 없다면 아무 의미 없다” 비판
등록일 [ 2018년09월03일 19시18분 ]

3일, 복지부가 주최한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을 위한 장애인단체 토론회’
 

1988년부터 장애인 복지 서비스 제공 기준이 되어온 장애등급제가 2019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그 자리를 종합조사도구가 대체하게 된다. 그러나 복지부가 제시한 종합조사도구에 장애계는 "등급제와 다를 바 없는 체계"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복지부는 3일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을 위한 장애인단체 토론회'를 열고, 등급제를 대체할 '종합조사도구'를 공개했다. 복지부는 "장애인의 서비스 필요도를 파악하여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개인의 욕구와 환경을 포괄적으로 평가하고자 종합조사표를 만들었다"며 "의학적 평가 중심에서 벗어나 서비스 필요도를 포괄적으로 평가하고, 궁극적으로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합조사표는 △기초상담 △복지 욕구 조사 △분야별 서비스 필요도 평가 세 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기초상담은 장애 정도, 가족 상황, 주요문제 등을 조사하고 복지지원을 위한 전반적 여건과 환경을 파악한다. 복지욕구조사는 서비스 이용 현황, 희망하는 서비스 등을 조사해 공공·민간 서비스 발굴 및 지원과 사례관리에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필요도 평가에서는 돌봄지원, 이동지원, 소득 및 고용 등 분야별 서비스 필요도를 다양한 평가항목을 통해 계량적으로 평가한다.

 

돌봄지원 평가도구는 이미 완성되어 '19년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고, 이동지원 평가도구는 '18년에 개발해 '19년 모의적용을 거쳐 '20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소득·고용지원 평가도구는 '19년 내로 개발해 '21년까지 모의적용하고 같은 해 법 개정 및 예산확보를 한 후 '22년부터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부는 내년 7월부터 돌봄지원 평가도구를 통해 활동지원, 거주시설 입소, 보조기기 보급, 응급안전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가항목에는 기능 제한(옷 갈아입기, 목욕하기, 음식물 넘기기, 시청각복합평가 등 일상생활동작 13개/전화사용, 청소, 금전 관리, 대중교통 이용 등 수단적 일상생활동작 8개/주의력, 환각·환청·망상, 공격행동 등 인지행동특성 8개), 직장·학교생활 등 사회활동(2개), 독거·취약가구 여부 등 가구환경(6개) 영역으로 총 37개 평가지표가 담겨있다.

 

각 영역별 점수는 기능 제한 영역 최대 532점, 사회활동 최대 24점, 가구환경 최대 40점이다. 평가영역별, 지표별로 가중치를 반영해 종합점수를 산출하게 된다. 그리고 이 종합점수에 따라 활동지원 서비스 제공량이 결정된다. 보조기기와 거주시설 등은 해당 서비스와 관련성이 높은 특정 항목 평가점수를 활용한다.

 

종합조사도구 중 돌봄지원 평가도구는 복지부가 지난 2017년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한 '장애등급제폐지 3차 시범사업'에서 모의적용을 거친 바 있다. 이상진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은 "모의적용 결과, 활동지원서비스 월평균 지원시간이 5시간가량 증가했고, 최중증장애인은 하루 2시간가량 증가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과장은 "특정 장애 유형 급여감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종합조사도구 설계 원칙하에서 조사표와 매뉴얼을 보완 및 개선하고, 전반적 급여 증가에도 불구하고 급여량이 줄어드는 경우도 발생하는 사례가 있었기에 하락 폭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조정할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맞춤형 전달체계'를 만들어 서비스 연계율을 높이고, 복지 신청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찾아가는 읍면동 복지센터'를 활용해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독거중증, 발달장애인 등 중위험군 장애인을 직접 찾아가 초기상담과 복지욕구를 조사하고, 공공·민간서비스를 연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향후 사회복지공무원 1만2천 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이 과장은 "장애등급제폐지 민관협의체가 10차례가량 회의를 진행했는데,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다 보니 많은 당사자분들이 회의 내용을 궁금해하셨던 것 같다"며 "그러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오늘 토론회를 마련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오늘 발표한 종합조사도구는 최종 확정안이 아니며, 11월부터 재개될 장애등급제폐지 민관협의체에서 오늘 나올 장애인 당사자의 다양한 의견을 함께 논의하겠다"고 강조했다.

 

박경석 장애등급제 민관협의체 공동위원장이 등급제 폐지의 의미에 관해 발제하고 있는 모습.
 

- 장애계 "등급제와 달라진 것 무엇인지 의문… 예산확보, 장애유형별 특성 고려 없이는 무의미"

복지부 발제에 이어 장애등급제폐지 민관협의체 민간위원장인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상임대표가 민관협의체 논의 경과와 함께 장애계가 줄곧 주장해온 장애등급제 폐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밝혔다. 박 대표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지)'의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장애등급제 폐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공약사항이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장애등급제 폐지가 '국민명령 1호'라며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라고 전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복지부가 가지고 나온 '종합조사도구' 안을 봤을 때,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등급제 폐지가 맞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등급제는 부족한 예산에 장애인을 끼워 맞추고, 거기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은 쳐내는 방식, 즉 '살생부'로 작용해왔다"라며 "이러한 복지 패러다임을 31년 만에 깨는 역사적인 사건이 바로 등급제 폐지인데, 복지부의 구상을 보면 여전히 예산에 장애인을 끼워 넣고 있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일침했다.
 
박 대표는 "등급제 폐지를 통해 '장애인 자립생활을 지원하겠다'고 하면서도 종합조사도구를 통해 여전히 거주시설 신규 입소를 지속하고, 내년도 활동지원 예산도 지원대상자가 7천 명(2018년 71000명→ 2019년 78000명)밖에 오르지 않았는데 이는 자연증가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구나 오랫동안 요구해온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은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복지부가 발표하지 않은 3차 시범사업 결과를 공개하며 "종합조사표 모의적용 결과, 13.52%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활동지원서비스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2018년 기준 7만1천 명이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에 대입해보면, 기존 조사표대로라면 9599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활동지원서비스에서 탈락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결과를 지적하며 "개인별 복지 욕구와 필요도가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 점수대로 사람을 잘라내는 등급제 패러다임의 연장에 불과하다"라며 "대체 등급제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는 조사표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장애인 서비스가 한정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복지부가 종합조사도구를 통해 제공하겠다는 서비스는 이미 제공되고 있던 것들에 불과하다"라며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지원하고자 한다면 장애인의 다양한 삶에 맞춰 더욱 풍성한 서비스가 공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당사자가 권리로써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대표는 "결국, 진정한 등급제 폐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산의 충분한 확보가 필수"라며 "한국이 OECD 국가 중 경제순위는 11위지만 복지지출 비중은 꼴찌 수준인 부끄러운 상황을 타개하고, 적어도 OECD 평균 수준으로, 즉 현재 장애인복지 예산의 4배로 예산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산 문제는 복지부 혼자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며 "결국 이 문제는 기획재정부, 나아가 우리에게 등급제 폐지를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대사를 인용하며 "우리는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 주어지는 것을 받아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등급제 폐지는 더이상 장애인이 개로 살지 않고, 인간으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가 여기에 제대로 응답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시련 회원들이 토론회장 안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선 복지부가 밝힌 '종합조사도구'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토론회장에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아래 한시련) 회원들이 종합조사표에서 시각장애인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서비스 급여량이 감소하는 것에 반발하며 피켓 시위를 하기도 했다.

 

홍순범 한시련 회장은 “우리가 기대했던 등급제 폐지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조삼모사식 폐지가 아니었다. 전체 예산이 늘어 모든 유형의 장애인들에게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가 제공되는 형태였다”라고 밝혔다. 홍 회장은 “그러나 조사표가 아직도 신체장애인 중심으로 짜여 있고, 결국 이 조사표에서 점수를 얼마나 따느냐가 서비스 급여량을 좌우하게 되는 복지부안에 참담한 마음”이라며 “장애 유형별로 다양한 서비스 욕구가 담긴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재희 한국농아인협회 상임이사는 “등급제가 폐지된다고 해서 장애 유형별 맞춤형 서비스를 기대했는데, 서비스 내용을 볼 때 청각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의사소통 지원 서비스’는 누락되어 있다”라며 “장애 유형별 조사가 꼭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정신장애인 재활 시설 관계자는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는 등급제 폐지 민관협의회에 초대조차 되지 않았다”라며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 역시 등급제 폐지 이후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할 문제인데,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표출할 통로조차 없는 것은 분명 문제가 많다”라고 꼬집었다.
 
다양한 문제 제기에 대해 김현준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오늘 장애인단체와 당사자분들께서 많은 지적을 주셨고, 제기된 문제들은 여러분과 더욱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수정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김 국장은 “이번에 마련한 조사표 역시 오랫동안 장애인 단체들과 논의하며 만들어왔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라며 “그러나 특정 장애 유형에 유리한 쪽으로, 혹은 어떤 유형을 갈라치기 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7월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민관협의체를 비롯해 다양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가며 등급제 폐지라는 거대한 정책이 공감과 신뢰에 기반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김현준 국장, 이상진 과장

3일, 복지부가 주최한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을 위한 장애인단체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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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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