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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약속했던 대구시, 이제 와서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옮기라고?’ 분노한 장애계, 인권위에 집단 진정
대구시, “탈시설 욕구조사 ‘무응답자’, ‘자립불가자’는 다른 시설로 전원조치” 발표
정부도 대구시도 희망원 탈시설에 팔짱만… “인권침해 멈추고 약속 지켜라” 촉구
등록일 [ 2018년09월18일 19시04분 ]

대구시가 올해 희망원 내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하고 거주인 대부분을 다른 시설로 옮긴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장애계가 분노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전원 조치 중단 및 탈시설 권리보장 권고를 요청하며 집단 진정했다.


대구시가 시립희망원(아래 희망원) 내 장애인거주시설을 2018년까지 폐쇄하고 거주인 대부분을 다른 시설로 옮긴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전국의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및 시민 229명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전원 조치 중단 및 탈시설 권리 보장 권고를 요청하며 진정을 접수했다.

 

18일 오후 2시, 인권위 건물 앞에 모인 150여 명의 장애인, 가족, 시민들은 대구시가 최근 발표한 '희망원 거주인 전원 조치' 계획이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규탄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 대책위원회(아래 희망원대책위)는 "대구시가 '탈시설을 하려면 개인 의지가 중요한데, 정확히 욕구를 표현하지 못한 발달장애인은 의지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리고 본인이 탈시설을 원하더라도 연고자가 반대하는 경우나 인지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립 불가자'라고 보아 전원 조치를 강행하려 한다"라며 "이런 반인권적 행정 조치를 정부는 이미 감지하고 있음에도 팔짱만 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범죄시설 폐지 및 탈시설 정책 추진을 위한 시범 사업으로 대구희망원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권영진 대구시장 역시 2017년, 희망원대책위와의 협의를 통해 "2018년까지 희망원 거주인 탈시설 지원 목표 인원을 70명 이상으로 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올해에 이어 2019년에도 희망원 거주인 탈시설 추진과 범죄시설 폐지 예산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이고, 대구시는 지난 6일 현재 67명이 거주하고 있는 희망원 내 장애인거주시설(시민마을)을 올해 안에 폐쇄하고, 그중 '자립 불가자', '욕구 조사 무응답층' 등 52명을 전원 조치, 즉 다른 시설로 재입소시키겠다고 밝혔다.

 

희망원대책위는 "복지부는 '시립시설이라 (전원 조치 결정을) 어쩔 수 없다', '대구시에서 예산을 요청하지 않고 있다'라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대구시는 '대선 공약 사안임에도 중앙정부가 예산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라고 서로 책임 전가만 하는 상태"라며 "정부와 대구시가 희망원 거주인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인권위가 권고를 통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017년 6월 1일부터 올해 8월까지 희망원 산하 4개 시설 총 거주인은 1049명에서 109명 줄었으나,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 정착한 인원은 이 중 9명에 불과했고, 42명이 사망, 38명은 입원을 통해서야 시설을 나갈 수 있었다.

 

18일 오후 2시, 희망원대책위가 인권위 앞에서 대구시의 '희망원 거주인 전원 조치' 계획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범죄를 저질러 감옥을 가도 정해진 형기가 있는데, 왜 우리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시설을 전전하며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회장은 "활동을 통해 만난 장애인 대부분은 활동지원이 있으면, 휠체어 같은 보장구가 있으면, 집과 소득이 보장되면 누구나 나와 살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체계는 하나도 마련 않고 무턱대고 탈시설 의지를 묻고, 여기에 '무응답'했다느니, 나가고 싶다고 해도 연고자가 반대하니까, 특정 유형의 장애가 있으니까 '자립 불가능'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다른 시설로 보낸다는 대구시의 결정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여준민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지난 16일, 오거돈 부산시장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라며 "오 시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형제복지원이 1987년에 폐쇄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불과 3년 전인 2015년 폐쇄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입을 열었다.

 

여 사무국장은 "87년, 형제복지원에서 나온 사람들은 전국에 36개나 있었던 또 다른 '부랑인 수용소'로 잡혀들어갔고, 그마저도 장애인들은 '갈 곳이 없다'는 명목으로 형제복지원에 계속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후 형제복지원은 '실로암의 집'이라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로 변모해 계속 운영하다가 2015년 문을 닫았는데, 그곳에 거주하던 장애인들은 또다시 부산의 신규 거주시설들에 '배치'되었다"라고 밝혔다.

 

시설이 폐쇄될 때 그 안에 사는 장애인들의 삶이 탈시설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른 시설로 옮겨지는 경우는 이제까지 숱하게 있었다. 여 사무국장은 "'도가니'로 유명했던 인화원, 전주 자림원, 서울 송전원 등 폐쇄된 시설에 거주하던 이들은 또다시 '분산배치'되어 또 다른 거주시설로 뿔뿔이 흩어졌다.”면서 “희망원에서 만난 한 분은 40년간 시설에서 살았는데 희망원이 7번째 시설이었다. 그는 형제복지원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여 사무국장은 "'전원 조치'라는 표현 자체가 장애인복지법에서 사라져야 한다. 시설에서 시설로 또다시 이어지는 이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진정한 인권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명애 희망원대책위 공동대표
 

박명애 희망원대책위 공동대표는 "아침부터 기차를 나눠타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활동가들이 올라왔다"라며 "우리가 이렇게까지 시간과 힘을 쏟는 동력은 희망원 사태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올라오는 분노"라고 전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을 시설에 집어넣을 때 누구에게 의견 묻고 넣은 적 있나. 장애만 있으면 죄다 받아놓고 이제 와서 '개인 의견이 중요하므로 의사표현을 못하면 못 나온다'라니 정말 기만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는 "대구시가 약속한대로 '희망원 거주인 70인 이상에 대한 탈시설 지원'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결국 예산 때문"이라며 "국가는 왜 항상 장애가 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쓸 돈이 없는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탄압과 인권침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가"라고 규탄했다. 그는 "대구시가 약속한 대로 희망원 거주인들의 탈시설을 지원할 때까지, 나아가 다른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당사자들의 탈시설 지원을 위한 정책도 충실히 마련되기까지, 우리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인권위가 이런 인권침해를 묵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 사태를 막아달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희망원대책위 대표단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하고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후 참석자들은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 △장애인 생존권 예산 확보 △대구시립희망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역에서 진행되는 1박 2일 농성에 참여하기 위해 중구 인권위 건물 앞에서 서울역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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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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