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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4차 산업혁명으로 ‘정신건강 증진’하겠다고?
기존 정신장애 의료모델에 기술 접목한 국가정신건강 연구개발 사업
“동료지원가 등 당사자가 나설 수 있는 사업부터 해라” 비판 쏟아져
등록일 [ 2018년10월10일 23시32분 ]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가 빅데이터, 인지과학, 유전자 기술, 4차 산업혁명 등 첨단기술로 제작한 정신건강 관련 정책으로 정신건강을 증진하겠다는 사업안을 발표하자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비판하며 나섰다.

 

10일, 복지부는 서울 양재동 엘타워 6층에서 국가정신건강 연구개발 사업 공청회를 열고 향후 10년간(2021~2030)의 정신건강 문제해결을 위한 연구개발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이날 당사자와 가족들은 사업 전반에 당사자 의견이 미흡하다는 점을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적했음에도 이번 최종안에 충실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정작 당사자들이 제외된 사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정신건강은 기술개발로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처한 사회적 환경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국가정신건강 연구개발사업안을 발표하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복지부안에 따르면 국가정신건강 연구개발 사업은 △정신건강 증진기술 개발 △중증정신질환 치료·재활기술 개발 △자살 예방·개입 기술개발 △중독 예방·회복기술 개발 △정신건강기술 최적화 연구 등으로 이뤄진다.

 

정신건강 증진기술 개발은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감정노동자, 트라우마 보유자 등 스트레스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을 위한 기술 개발로 어디서나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증정신질환 치료·재활기술 개발은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재활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자살 예방·개입 기술개발은 청소년, 청장년, 노인 등 자살 고위험군을 예측하고 관리하며 자살 시도자 및 가족의 충격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독 예방·회복기술 개발은 중독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조기에 개입하는 것을 목표로 중독자를 치유하고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다. 정신건강기술 최적화 연구는 사용 중인 다양한 정신건강 기술 중 최적의 기술을 파악하고 이를 확산·제도화시켜 인프라를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이번 국가정신건강 연구개발 사업의 핵심은 기술접목이다. 중증정신질환 치료·재활기술 개발 중 직업재활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리스타, 기계작동 및 조립 등 정신장애인이 많은 직업에 가상현실(VR) 기술을 도입해 이를 이용한 훈련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정신장애인 가족과 지역주민 장애 인식개선을 위해 정신장애인이 느끼는 현상이나 상황을 가상현실에 접목해 비장애인이 이를 체험하도록 하겠다는 안도 있다.

 

하지만 이날 공청회에선 정작 당사자 목소리가 빠진 사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의료계 쪽 토론자들은 “이번 복지부 안이 지난 사업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더 담았다”고 했지만 기존의 의료적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사업들에다가 기술만 접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가령, 복지부가 제시한 사업안에 쓰여 있는 당사자 및 가족들의 의견 중 하나는 ‘동료지원가를 양성하고 이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료지원가는 회복자 혹은 당사자가 들려주는 경험을 기반 삼아 다른 정신장애인도 삶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중증정신질환 치료·재활기술 개발에 포함된 예시 연구과제 중 ‘동료지원그룹 양성 프로그램 및 활용 가이드라인 개발’과 다른 파트의 '정신장애인이 주도하는 사회적 낙인 극복 프로그램 개발'을 제외하고는 당사자 역량을 활용한 사업은 찾기 힘들다.

 

토론자로 나선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는 “당사자, 전문가, 동료지원가 등이 중요한 것은 ‘접근성’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나면 동질성을 느끼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긴 터널을 빠져나왔던 당사자들의 경험은 다른 당사자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는 ‘천연자원’이다”라고 말하며 동료지원가가 현장에 녹아들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병을 가진 아들과 사는 이성호 씨는 직업 재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신장애인의 직업을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들은 고학력자이지만 직무는 단순노동이다. 아들이 30대 후반인데 직장을 여덟 군데나 옮겨 다녔을 정도로 3개월, 6개월 단기직이 많았다. 계속 구직해야 해서 근로계약이 끝날 때마다 가족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받는 돈도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으니 소득보장이 어렵다. 정신장애인에 맞는 직업을 개발하고 이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면, 삶의 질이 향상되어 지역사회에서도 같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아들과 함께 사는 이성호씨


질의응답 시간에도 당사자들의 비판은 계속됐다. 김영학 한국정신장애인협회 회원은 “동료지원가와 같은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당장 동료활동가들이 활동하도록 하고, 이후 모자란 부분이 발견되면 해당 사항에 대한 연구를 해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정신장애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신장애인 특성에 맞는 직업, 정신장애인에게 특화된 기술 등을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의사 등 전문가 몇 명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인연대(KAMI) 사무총장은 정신장애인의 열악한 현실을 언급하며 이번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2016년 정신질환 의료비 예산 중 60% 이상이 입원비용으로 사용됐다. 한국은 평균 1인당 250일 이상 장기입원하고 정신병원 퇴원환자들의 1년간 자살비율은 상당히 높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현실들이 이번 기술개발연구에 반영이 됐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번 사업이 진행될 10년간 약 2,11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청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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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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