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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성폭력·학대 다룬 기사 3년간 모니터링해보니
자극적 피해 정황만 서술할 뿐, 사건의 본질은 보지 않아
기사에 등장하는 언어 빈도수 ‘가해자>주변인>피해자’ 순
등록일 [ 2018년10월12일 18시42분 ]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장애와 반성폭력 시민감시단 새로고침 토론회’가 열렸다. 나무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발언하는 모습.

언론은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성폭력과 학대를 기사로 다룰 때 어떻게 담아야 할까?

 

장애여성공감 부설 성폭력상담소는 2016년 장애인 성폭력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을 이수한 자들을 중심으로 ‘장애와 반성폭력 시민감시단 새로고침(아래 새로고침)’을 꾸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장애인 성폭력·학대·미담 등을 다룬 기사 총 307개를 장애인권과 젠더적 감수성을 기반에 두고 지속해서 모니터링했다. 이들은 11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지난 3년간의 활동을 보고하는 토론회를 열고, 상업화된 언론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고 인권옹호자로서의 시민감시 활동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 토론했다.

 

- 자극적 피해 정황만 서술할 뿐, 사건의 본질은 보지 않아

 

지난 3년간 ‘새로고침’ 활동을 이끈 나무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최근 강원도 한 특수학교 교사가 장애 여학생들을 수년간 성폭행한 사건을 다룬 언론 보도를 예로 들었다. 나무 활동가는 “이 사건은 마치 언론이 여론을 형성하고 특수학교 인권침해 실태조사라는 정부의 움직임을 만들어낸 사례처럼 보이나, 사건은 빠른 가해자 처벌과 형식적인 전수조사로만 끝났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2018년 7월 11일에 다음 포털에 ‘특수학교 교사 수년간 제자들 성폭행 의혹… 경찰 수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시작으로 관련 기사만 약 200건 올라왔다. 이에 대해 강원도 교육청과 교육부가 전국 특수학교 인권침해 실태조사 방침을 발표하면서 같은 달 26일 ‘장애여학생 성폭행 특수학교 교사 검찰 송치’라는 제목의 기사를 끝으로 더는 기사가 올라오지 않았다.

 

나무 활동가는 “기사는 대체로 제목만 바뀌거나, 자극적인 피해 정황 및 인터뷰 몇 줄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복사될 뿐이었다. 심지어 교육부가 진행한 전국단위 전수조사조차 한 명당 10분 정도의 면담시간과 단순한 매뉴얼 질문 몇 개만으로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진행됐다.”면서 “언론은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어 집단적 공분만 일으키고, 가해자가 검찰송치·구속된 후엔 더는 관심 갖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언론의 역할은 단순한 사실 보도에 있지 않다. 사건의 본질을 파헤쳐 대안적인 여론 형성과 사회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언론은 학교처럼 일상적인 공간, 친밀한 관계 안에서 왜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는지,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왜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는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회 구조와 공동체(학교, 마을) 문화는 무엇인지 등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장애와 반성폭력 시민감시단 새로고침 토론회’가 열렸다.


- ‘장애인=무능력한 존재’로 묘사… “피해 책임을 개인의 무능력에 돌리는 것” 지적

 

장애인 성폭력 관련 기사에선 장애인을 무능력하고 취약한 존재로 표현하는 내용이 많았다. “지적장애가 있으면 성폭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당하는 경우도 많다”(경향신문, 2018년 5월 5일), “제 나이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 3급입니다. 발달 장애 여성은 본인이 성폭력을 당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구체적인 진술을 하기 힘듭니다.”(KBS, 2018년 6월 22일) 등이 그 예다.

 

나무 활동가는 “이와 같은 서술은 대중이 범죄피해가 인지력이 부족한, 대처능력이 미숙한 장애특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된다는 편견을 강화한다”라며 “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 각인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배우고 습득하는 것이 어렵다”며 “이러한 관점은 사회 구조의 불평등을 개인의 무능력함에 책임을 돌리는 위험한 사고를 강화한다”고 꼬집었다.

 

‘OO이 사건, 도가니, 노예’ 등 자극적인 네이밍을 사용하는 기사도 많았다. “강원판 ‘도가니’ 되나... 특수학교 교사, 제자 성폭력 의혹”(조선일보, 2018년 7월 13일), “‘우리는 일부부’ 단속 피하려 염전노예와 거짓 혼인”(국민일보, 2018년 7월 15일) 등의 제목이 대표적인 예이다. 

 

나무 활동가는 “이러한 네이밍은 주로 기사 제목에 사용된다”면서 그 이유는 바로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상업화된 언론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언론을 통해 알려져 공분하는 과정은 필요하다”면서도 “자극적 네이밍이 그들의 삶을 낙인찍거나 2차 피해가 되지 않도록 제목을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성폭력, 학대 상황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와 신상 공개 문제도 있었다. 피해 정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피·가해자의 거주지, 나이, 장애 등 개인정보를 기사에서 불필요하게 자세히 언급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무 활동가는 “이러한 자극적인 피해 정황 및 신상 공개 방식은 ‘이미 경찰이 공개한 사실이며 대중의 알 권리와 공분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현재도 계속 작성된다”며 “언론인이라면 공개된 자료라 하더라도 공개의 적절성과 인권침해 요소 등을 자세히 살펴 보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대중의 관음증적인 심리를 이용하기보다 잘못된 인식과 관점을 전환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사에 등장하는 언어 빈도수 ‘가해자>주변인>피해자’ 순

 

기사를 누구의 언어로 어떻게 구성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로 꼽았다. 나무 활동가는 “기사에서 등장하는 언어의 빈도수는 가해자, 주변인, 피해자순”이라며 “자신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변명하기 위한 가해자의 언어는 일방적으로 다수 인용되는 반면, 피해자의 언어는 대부분 삭제된다”고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 나무 활동가는 “‘의사 표현과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장애에 대한 편견이 전제되어 있어 인터뷰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주변인을 인터뷰하더라도 장애에 대한 편견이 담긴 내용을 그대로 싣는다”고 말했다.

 

당사자의 언어가 실리는 경우도 있으나 그 내용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나무 활동가는 “사건에 대한 피해자의 용기 있는 증언보다 ‘너무 무서웠어요’, ‘그 선생님이 부르면 괴로웠다’처럼 매우 취약한 존재로서 부각되는 내용만이 중점적으로 실렸다”면서 “가해자의 언어는 기사 주요 부분에 배치하고, 주변인이나 당사자의 언어는 후반에 배치하거나 자극적으로 구성하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성폭력 보도지침은 이미 마련되어 있으나 대다수 언론사는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다.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는 “사건의 이해와 상관없는 범죄의 수법과 과정, 양태,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의 현장 검증 등 수사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보도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으며,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엔 “언론은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보도에 신중을 가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가이드라인을 위배해도 규제할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나무 활동가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 방법이 있으나 피해 당사자가 직접 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당사자들은 본인 사건이 기사화되고 있는지 알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제도를 통해 언론을 규제하는 방법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나무 활동가는 대중의 심리를 소비하는 언론의 특성을 감안해 ‘대중의 비판적 감시자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독자는 기사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닌 문제 되는 지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비판적 감시자의 역할이 한국사회에서 권력화된 언론을 규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장애와 반성폭력 시민감시단 새로고침 토론회’가 열렸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발언하는 모습.

 

- 가해의 언어만 넘실대는 사회… 차별 내면화한 피해자가 스스로 사건을 기각하게 만들어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언론이 사회적 소수자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언했다. 그는 “‘피해자가 가혹한 사건에 깊이 말려들수록 감동적이라는 역설적인 구조(이소마에 준이치, 『죽은 자들의 웅성임』)’는 언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피해자를 무력하고 자극적으로 다루는 것은) 상업적 언론구조의 문제도 있지만, 사회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얼마나 서툰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류 활동가는 “사회적 소수자일수록 사건의 ‘피해자’가 되기 쉬운데 이 경우, 사회는 피해를 당하게 된 조건을 분석하는 대신 정체성에 대한 평가로 대체해버린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더욱 강화하는 고리가 된다”면서 “여기서 문제는 평가가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가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언어로 불려 나간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 결과, 언론엔 피해자의 언어는 삭제되고 가해자의 언어만 넘실댄다. 이러한 세계에서 미류 활동가는 “피해자의 언어는 가해자의 언어를 닮기가 매우 쉽다”면서 “세상엔 수많은 차별이 있으나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사건은 그만큼 많지 않다. 차별 논리를 내면화한 그 스스로 사건을 먼저 기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미류 활동가는 “언론의 문제는 피해자의 언어를 삭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의 언어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만든다”면서 “언론은 관련 보도를 할 때 반드시 당사자나 관련 단체 목소리를 싣는 방식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언어를 함께 드러내어 ‘적어도 지면에서는’ 가해자의 언어를 이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대안적 방향이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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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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