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3월19일tue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살아서 외로웠던 이여, 죽어서는 외롭지 말길'… ‘무연고 사망자’ 위한 위령제 열렸다
빈곤철폐의 날, 빈곤과 사회적 고립으로 떠난 무연고자 기리는 합동위령제 열려
“존엄한 죽음까지 보장될 때 비로소 존엄한 인간으로서 살 수 있어”
등록일 [ 2018년10월17일 19시27분 ]

무연고 사망자 3013명의 유골함이 안치된 서울특별시 시립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아래 추모의 집)에 반야심경이 울려 퍼졌다. 추모의 집은 열 평 남짓, 도서관 이동식 책장처럼 생긴 구조물에 유골함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스님 여덟 명이 들어서자 꽉 찬 추모의 집 문밖에서는 사람들이 합장하며 이들의 안식을 빌었다.

 

서울시립 용미리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 내부.

추모의 집에 안치된 무연고 사망자들을 위해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
 

유엔이 정한 '세계빈곤철폐의 날'인 17일,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가 추모의 집 앞에서 진행됐다. 무연고 사망자 위령제는 지난해 11월 22일 첫 위령제 이후 올해가 두 번째다. 이번 위령제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나눔과나눔 등 인권·빈곤·시민 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위령제가 진행된 17일은 음력 9월 9일로, 중양절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중양절에 행려사망자나 기일을 알지 못하는 조상들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 조계종 사회국장인 해청스님은 "살아서 가난했건 부유했건, 누군가 죽었을 때 그 영혼을 편히 모시는 것은 가까운 친지와 가족뿐만 아니라 나라의 할 일이기도 하다"라며 "중양절인 오늘 이런 자리를 갖게 되어 무척이나 뜻깊게 생각하며, 여기에 잠들어 계신 모든 분의 극락왕생을 위해 진심으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겠다"고 전했다.

 

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기 시작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관세음보살의 지혜와 자비를 드러내며 그에게 귀의한다는 내용을 담은 기도이다.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자비로운 존재인 관세음보살은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대상이기도 하다. 위령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곡진한 마음을 담아 합장하고 독송에 귀를 기울였다.

 

17일 오후, 서울시립 용미리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 앞에서 합동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이날 위령제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동자동 쪽방 주민들도 있었다. 추모의 집을 바라보던 한 동자동 주민이 말했다. "나도 죽으면 여기로 와요. 가족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농담처럼 이 말을 읊조리던 그는 무연고 사망자들에게 술을 올릴 땐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추모의 집에 모셔진 사망자 중에는 동자동 주민 17명도 있다. 동자동 주민 김정길 씨는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오겠다는 주민이 많았는데 오늘 아침이 되자 안 온다고 했다. 도저히 못 오겠다고 하더라”면서 "아무래도 다 우리가 알던 사람들이기도 하고, 여기 모셔진 사람들이 우리 죽은 후 모습이기도 하니까, 오려면 마음먹고 와야 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조계종에서 진행한 기도회가 끝난 후에는 추모문화제가 이어졌다. 김정길 씨가 고 김두천 씨의 시 '진철이'를 낭송했다. 시제(詩題)가 된 김진철 씨는 동자동에서 노숙을 했던 주민이었으나 암으로 사망했고, 시를 쓴 김두천 씨는 몇 해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철이-김두천

 

진철이가 갔단다
집 없는 진철이가 갔단다 어딘지 몰라도 갔단다
공원 맞은편 쓰레기통 옆에 허름한 텐트를 쳐놓고 살다
영영 저 세상으로 갔단다
두 겨울을 한뎃잠 자더니
마흔 갓 넘은 젊디 젊은 나이에 숨을 놓았단다
여비도 없을 텐데 어떻게 갔을까

 

간경화에 암이 번졌는데 거기다 대고
날마다 술을 퍼붓던 진철이가 갔단다
진철이가 갔는데 왜 이다지도 내 마음이 허전하고 울적할까
어저께는 우리 쪽방 사람들끼리 모여서
돈 몇천 원 몇만 원 호주머니 털어서 상을 차려 주었다
응곤이 형님, 만 원만 빌려주씨요
손에 만 원을 거머쥐고 진철이 영전에 절을 하고 지폐를 놓았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잘 가소
저세상에서는 술 먹지 말고 잘 가소

 

젊은이들이 자꾸 떠난다
올겨울엔 또 누가 갈까
술 한 잔 들고 나니 눈이 발개졌다
아하,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단 말인가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2000년대 초반 노숙당사자모임 대표로 활동했고, 용산 참사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송주상님께서 2011년에 사망하셨는데, 그 사실을 홈리스행동에서는 2014년에서야 알게 된 일이 있었다"라며 "어디에 안치되셨는지도 몰랐는데 오늘 와서 확인해보니 맨 안쪽 깊숙한 벽 쪽에서 송주상님의 유골함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 활동가는 "송주상님 외에도 함께 활동하고 삶을 나눴던 많은 분이 여기에 계실 텐데, 유골함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런 공간에선 제대로 인사드리기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무연고자'들에게도 분명 친구와 지인들이 있는데 추모의 집도 조금 더 사람들이 찾아오기 좋은, 여유로운 공간으로 바뀔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위령제에 참여한 동자동 거주자 한 사람이 무연고 사망자들에게 헌주한 후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273명의 유골함이 매년 꾸준히 새로 안치되고 있지만 그사이 이렇다 할 사회적 변화는 없었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면서 '국가가 무연고 사망을 장려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전했다. 박 국장은 "연고자, 즉 가족이 사망 소식을 듣고 주민센터에 찾아가면 제일 처음 듣는 말이 '돈 있으면 시신을 인수하고, 없으면 포기하면 된다'는 말이라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무연고사에 관해 국가가 취하는 거의 유일한 조치는 유골을 추모의 집에 10년간 봉안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퇴행할 위기에 처해있다. 박 국장은 "지난 10월 1일 복지부에서 무연고 사망자 관련 정책을 하나 변경했는데, 현재 모든 무연고자의 유골을 10년간 봉안하는 것에서 앞으로는 가족이 시신을 포기한 경우에는 봉안 없이 바로 산골하여 더는 보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무연고 사망자 관련 정책을 '효율성' 측면에서만 구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라고 비판했다.

 

박 국장은 "국가는 보관되는 무연고 사망자가 수적으로 줄어들면 문제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건 아닌지 굉장히 우려스럽다"라며 "지난해 서울시 내 행려사망자 366명 중 45%가 쪽방, 고시원, 시설 거주자였던 것을 볼 때,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원인은 빈곤과 사회적 고립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립 용미리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 안치된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함.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우리가 오늘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을 기리는 것은 단지 그들의 죽음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한 번의 삶이 모두에게 약속되어 있다면, 한 번의 죽음도 모두에게 약속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답게 죽는다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존엄한 삶이 존엄한 죽음과 함께 보장될 때 우리는 비로소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인정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오늘은 빈곤철폐의 날이다. 가난 때문에 죽음의 순간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분들,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추모하며 존엄하게 살 권리, 그리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찾기 위해 여기 모인 분들 모두 함께 손잡고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위령제에서 이삼헌 씨가 진혼무(혼을 달래는 춤)를 추고 있는 모습.

올려 2 내려 0
글 최한별 기자/사진 박승원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살아가던 모습 그대로 삶이 정지되다
관 뚜껑은 채 닫히지 않았고 유품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돈 문제에 복잡한 서류 절차까지… 대책 절실한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
죽음을 경유하여, 연고 없는 삶의 이유를 말하다
무연고 사망자는 매해 늘어나는데, 대책은 커녕 통계조차 부실
지난해 무연고사한 10명 중 1명이 장애인
무연고 사망자 5년간 77.8% 증가, 2016년 1232명 사망
무연고자 시신, "생전에 반대 안했으면 해부용으로 쓰여도 된다"?
본인 의사 없이 무연고 시신 해부용 제공, '위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우리는 난민을 환대한다”...난민환영문화제 활활 (2018-10-20 17:53:53)
“당사자의 모든 법률적 권한 박탈하는 성년후견, 폐지해야” 공대위 출범 (2018-10-16 17:3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