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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과 사업 사이에서 고민하는 자립생활센터들, 나아갈 방향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창립 15주년 토론회 열어
등록일 [ 2018년10월20일 01시25분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창립 15주년 정책 토론회’를 서울여성프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고 자립운동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한국의 장애운동 흐름은 장애인자립생활운동(아래 자립운동)과 궤를 같이한다. 장애운동은 시설 수용 중심의 장애인 정책에 균열을 내며,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외침의 중심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가 있었다. 2003년에 설립된 협의회는 지난 15년간 자립운동에 앞장서며 활동지원 제도화,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 장애인 이동권, 노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를 바꾸고 그 역사를 개척해 왔다.

 

19일 오후 2시, 한자협은 서울여성프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창립 15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1부 순서로 자립운동의 역사를 되짚으며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자립생활센터)의 역할과 전망을 이야기하는 토론회를 진행했다.

 

최용기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이날 발제를 맡은 최용기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진보적 장애운동의 관점에서 한자협의 활동을 설명했다.

 

1997년 일본과 정립회관 등의 지원 속에서 한국에 자립생활 이념이 전파됐다. 이후, 한국 최초의 자립생활센터인 ‘피노키오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2000년에 동대문구에 설립되고 자립운동을 지향하는 단체들이 늘어나면서, 이 움직임을 모으기 위한 한자협이 2003년 출범한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4년 정립회관 민주화 투쟁 속에서 자립운동에 대한 입장과 노선에 차이를 보이던 몇몇 센터들이 한자협에서 나왔고, 2006년 이들은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표방하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한자연)를 세운다. 최 회장은 "현재 한자협과 한자연은 사안에 따라 대립, 협력, 경쟁 등의 관계를 거듭하며 자립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6년 한자협 등의 진보적 장애운동단체는 서울시에 활동지원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 기어가기 투쟁을 한다. 이 투쟁은 활동지원제도화 투쟁의 도화선이 되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마침내 2007년엔 활동지원제도화에 성공한다. 그러나 자립생활을 위한 지원체계는 여전히 부족했다. 당시 유일한 제도라고 할 수 있는 활동지원조차도 일상을 유지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자부담과 대상자 제한 등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2009년 석암재단 산하 거주시설에 있던 8명의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체계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게 된다. 본격적인 탈시설 운동의 시작이었다. 이후 한자협은 여러 장애인단체와 연대해 자립생활을 억누르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수용시설 폐지 등을 외치며 2012년부터 5년간 광화문 농성을 하고, 작년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점거하여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장애운동의 의제를 확장하고 이끌어나가는 선두에 한자협이 서 있는 것이다.

 

- 장애운동과 사업기관, 두 축에서 정체성 혼란 겪는 자립생활센터들

 

이렇듯 자립생활센터들은 장애운동의 한 축을 맡으며 자립생활의 큰 그림을 그려나갔지만 현재 혼란을 겪고 있다. 운동의 결과물로 만들어낸 자립생활에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센터들이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운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현장 투쟁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기관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에서 센터들은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양영희 한자협 회장은 자립생활센터의 실천적 투쟁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자립운동에 복무하지 않는 센터는 그 스스로의 설립 배경과 역사적 맥락, 원천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센터가 지금까지 행했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면서 자립운동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 회장은 “센터가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장애인 당사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지원해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전지혜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교수는 "자립생활센터를 장애운동과 서비스 전달체계 두 가지를 모두 수행하는 장소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지역사회의 변화까지 유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이처럼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하는 것이 센터의 위치"라고 언급했다. 또한 전 조교수는 “자립운동의 이념과 실천의 전략 등을 후세대에게 알리며 리더를 양성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센터에는 행정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자립생활센터가 사업을 할 때 사업의 평가기준, 사업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동료들과 평가해야 한다"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평가 기준을 중증장애인 당사자로 삼는 것이다. 가령, 중증장애인의 역량 강화를 통한 자기 변화를 보고 그 변화가 지역사회의 환경 변화로도 연결되는가 등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사업 수행방식에 대해 그는 "수많은 서류 제출 등의 형식적인 절차는 생략하고 중증장애인의 속도에 맞추고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확인하는 방식 등을 지자체가 채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운동과 서비스 제공은 상반된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제공되는 것이 서비스와 재화"라면서 "이러한 서비스 없이 장애인에게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너의 상황은 곧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할 수 없다. 설령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서비스와 재화의 전달이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센터가 자립생활의 영역 중 하나인 사회적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미류 활동가는 “서비스와 재화만 갖춰진다고 해서 자립생활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 집과 활동지원만 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관계를 통해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이루고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한다. 이것도 자립생활의 일부다”라면서 “장애인이 성소수자, 여성 등 여러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 사회적 관계를 맺고 더 나은 자립생활을 하기 위한 평등과 연대를 고민하는 거점의 역할을 센터가 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미류 활동가는 "‘장애운동 속에서 자립운동과 센터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에서 ‘한국사회의 사회운동 속에서 자립운동과 센터의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확장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가 끝난 뒤 2부에선 한자협 창립 15주년을 축하하며 ‘탈시설 자립왕’ 시상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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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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