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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폐지 후 도입될 종합조사도구, 장애인에게 직접 적용해보니
대부분 현재보다 시간 감소해… “지금 시간도 부족한데” 분통
시간 감소뿐만 아니라 자부담 등 현 제도 문제점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등록일 [ 2018년10월24일 11시03분 ]

내년 7월, 활동지원서비스에 새로 도입될 종합조사도구는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장애계가 이에 대해 모의평가를 해봤다.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22일 오후 3시 노들장애인야학 4층에서 장애등급제 폐지가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엔 중증장애인 50여 명이 참여해 내년 7월에 새로 도입될 종합조사도구를 모의 적용해봤다.

 

복지부는 내년 7월부터 돌봄지원 평가도구를 통해 활동지원, 거주시설 입소, 보조기기 보급, 응급안전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중 지역사회에 사는 장애인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서비스가 활동지원서비스라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장애인들의 관심사는 종합조사도구를 적용했을 시 활동지원시간이 얼마만큼 변동되느냐이다.

 

실제 복지부가 ‘장애등급제 폐지 3차 시범사업’에서 활동지원 수급자 1886명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13.52%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활동지원서비스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기준 7만1천 명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에 대입해보면, 9599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활동지원서비스에서 탈락하는 것이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종합조사도구에서 최고점을 받으면 현재보다 2시간 늘어난 하루 최대 16시간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으나 시범사업에서 최대시간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최중증사지마비에 정신적 장애까지 있어야 최고점수를 받을 수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모의조사에 참여한 장애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 들어본 결과, 실제 대부분의 장애인이 현재 받고 있는 활동지원시간보다 시간이 대폭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22일 오후 3시 노들장애인야학 4층에서 장애등급제 폐지가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자, 내년 7월에 새로 도입될 종합조사도구를 장애인 50여 명에게 직접 모의적용해봤다. 김상희 씨가 조사원에게 종합조사도구 평가를 받고 있다.
 

뇌병변장애인 김상희 씨는 현재 복지부와 서울시 시간을 모두 합해 630시간, 하루 평균 12시간씩 쓰고 있다. 그러나 모의평가 결과 1차에선 하루 7시간, 2차에선 9시간가량 나왔다. 김 씨는 “하루 14시간은 필요한데 9시간으로는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김 씨는 “내 컨디션에 따라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게 날마다 다른데 현재의 문항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내 장애 특성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 곽남희 씨는 하루 평균 6시간 정도 활동지원을 쓰고 있다. 한 달 활동지원시간이 134시간밖에 되지 않아 주말엔 쓰지 못하는데, 정작 모의평가에선 하루 4시간으로 줄었다. 곽 씨는 “지금도 시간이 부족해 늦은 저녁이나 여가활동 시간엔 부모님께 활동지원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현재는 부모님과 살고 있지만 자립하게 되면 가사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활동지원시간으로는 제가 모두 알아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려울 것 같다”며 난감해했다.

 

이귀남 씨의 자녀는 자폐성장애 1급(23세)이다. 이 씨의 자녀는 현재 하루 7시간의 활동지원을 쓰고 있다. 이 씨는 “제가 직장에 다녀서 하루 11시간은 필요하다”고 했으나, 모의평가 결과 5시간이 나왔다. 현재보다 2시간이나 줄어든 것이다. 이 씨는 “지금 시간도 부족한데 더 깎인다고 하니 매우 실망스럽다. 정말 이렇게 되면 ‘앞으로 일은 어떻게 하고, 내가 일하는 사이 아이는 누가 돌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 시간 감소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자부담 등 현 제도 문제점, 고스란히 드러나

 

새로운 종합조사도구로 인해 장애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시간 감소다. 실제 이날 모의평가 결과 대다수의 장애인이 시간 감소에 대한 불안을 내보이면서도 자부담, 등급재심사 시 등급 하락으로 인해 다른 서비스 박탈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다양하지 않은 서비스 선택에 대한 갑갑함 등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이는 현재 지적되는 활동지원제도에 대한 여러 문제점이 새로운 조사표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이어지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오영철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어서 한 달에 활동지원서비스 자부담만 20여만 원을 내고 있다. 그가 현재 복지부와 서울시로부터 받는 시간은 한 달에 630시간. 그는 시간 부족으로 주말엔 야간 활동지원을 이용하지 못해 “주말에도 야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시간이 늘어날 경우 그와 비례해서 높아지는 자부담으로 인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의평가 후, 동료판정위원단을 꾸려 서로의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논의했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고 해도 활동지원 이용이 ‘그림의 떡’ 같다는 사람도 있다. 현재는 이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등급별로 제한되다 보니 등급 하락이 복지서비스의 박탈로 직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은 복지부가 밝힌 단계적 등급제 폐지 계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장애인 이용자에게 필요 한만큼의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별로 별도의 기준표를 적용해 여전히 대상자 수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계가 복지부의 단계적 장애등급제 폐지안을 ‘가짜’ 등급제 폐지라 비판하며 예산 확대를 촉구하는 주요 이유다.

 

김경우 씨가 그렇다. 그는 지체장애 2급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뇌병변장애인이다. 휠체어 없이 걸어 다니는데, 장애로 인해 보행이 매우 불안정하다. 그는 가사지원을 위해 하루 4시간 정도의 활동지원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혼자 청소하는 게 힘들어요. 설거지도 너무 힘들고. 저는 오래 서 있지 못해요. 요리를 할 수 있고 없고 여부를 떠나서, 어떤 물건도 옮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냉장고나 싱크대 앞에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요. 활동지원이 너무 필요한데 등급 재심사받으면 제가 생각해도 등급이 떨어질 것 같거든요. 제가 지금 2급인데 등급 떨어지면 장콜(장애인콜택시) 이용 못 하니깐 재심사를 못 받고 있어요.” 

 

청각장애가 있는 뮤지컬 연출가 김지연 씨가 수어로 말하고 있다.
 

또한, 장애 유형에 따라 종합조사표는 무용지물이기도 했다. 왜냐면 설령 시간을 받는다고 하여도 그 시간에 내가 원하는 유형의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적 의사소통지원이 필요한 청각장애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뮤지컬 연출가 김지연 씨는 청각장애가 있다. 그는 뮤지컬 연출 현장에서 배우, 음향, 무대의상 등을 위해 수많은 이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정작 이를 지원해줄 의사소통지원인이 없어 매번 어려움을 겪는다. 그나마 조연출이 수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간간이 통역을 도와주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김 씨는 “사람 관계에 제일 필요한 게 의사소통인데 현재는 전혀 지원을 못 받고 있다”면서 “‘양치 가능하냐, 목욕 가능하냐’ 이런 것만 물어보는데 이러한 일상생활에 대한 질문은 농인과 맞지 않다. 의사소통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별도 판정표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모의평가 조사원으로 참여한 장정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지원팀장은 “조사자가 장애감수성이 없다면 점수가 높게 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조사자가 일상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물어보면 참여자가 구체적으로 말할 기회를 가질 수 있으나, 조사자가 제대로 질문하지 않으면 적절한 답변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 평가했다.

 

- “내년도 활동지원 예산은 자연증가분에 그쳐… 현재보다 8천억 원은 더 증액해야” 

 

이날 모의평가에 참여한 장애인들은 장애 유형별 조사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정책조정실장은 장애 유형별 조사표 마련이 근본적 문제해결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 정책조정실장은 “(예산 확대 없이) 장애 영역별로 조사표가 마련된다면 장애 유형끼리의 ‘파이쟁탈전’만 벌어질 뿐이다. 뇌병변장애 조사표가 합리적이냐, 시각장애인은 불공정하다면서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물론 장애 유형을 고려한 문항이 들어가는 것은 충분히 고려되어야겠지만 별도의 조사표가 마련되는 것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서비스 판정 과정에서 당사자가 서비스에 대한 필요와 욕구를 진술할 수 있고, 이것이 판정에 핵심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예산 맞춤형 조사표’ 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복지부가 시군구 단위에 민관협의체를 만들어 재심의 권한을 부여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당사자 의견 진술뿐만 아니라 당사자를 표방한 동료판정위원단이 구성될 수 있다면 당사자 맞춤형 서비스 판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2019년 정부안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총예산은 2조 7,326억 원이다. 이중 활동지원 예산은 올해보다 2778억 원 늘어난 9,684억 원이다. 활동지원 예산안을 보면, 이용자는 올해보다 7000명 늘고(7만 1천 명→7만 8천 명), 수가는 소폭 인상됐으며 이용 시간은 전년과 같이 109.8시간으로 동결됐다. 내년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어도 장애계가 요구해온 ‘최중증장애인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이를 지적하며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내년도 활동지원 이용 시간이 동결됐는데 어떻게 복지부는 종합조사도구를 통해 ‘2시간’이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하는가. 2778억 원 증액조차도 자연증가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종합조사표에 대해 장애계가 문제제기하자 복지부는 ‘기존 장애인은 안 떨어뜨리겠다’고 한다. 기존 이용자의 서비스량이 그대로면 신규로 들어오는 사람은 적게 받을 것이다. 세대 갈등이 생기는 거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장애 유형별) 종족 갈등’이 생긴다.”면서 “복지부가 이런 갈등을 계속 유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탈시설 정책이 온전히 실행되기 위해선 활동지원서비스, 장애인연금 등 장애인 정책국 예산이 OECD 평균인 8조 원은 되어야 한다며 2022년까지 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을 8조로 증액할 것에 대한 약속과 구체적 실행계획을 요구했다. 그는 이를 위한 단계적 실행으로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활동지원 이용대상자와 월평균 이용 시간 확대, 수가 인상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내년도 장애인 정책국 예산을 2조 7천억 원이 아닌 3조 5천억 원으로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렇게 우롱당하기 위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지난 10년간 싸운 게 아니다. 복지부는 공공성이 보장되고, 서비스에 대한 자기 결정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면서 “중증장애인이 하루 24시간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가능한 시간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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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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