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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범죄’라는 전형화된 내러티브가 은폐하는 진실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과 ‘정신질환자 범죄’라는 전형화된 내러티브
등록일 [ 2018년11월02일 16시31분 ]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을 보도한 KBS 영상 갈무리
 

- ‘정신질환자 범죄’와 ‘전형 내러티브’

 

어떠한 범주도 한 인간의 삶과 행위가 실현하는 독특한 유일성을 온전히 포착할 수는 없다. 인간들이 일으키는 사건들 역시 마찬가지다. 범주가 갖는 ‘단순화’ 능력은 복잡한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해내며, 이로써 범주에 포괄되지 않는 ‘사소한’ 부분들을 잘라낸다. 아무리 많은 복수의 범주들을 한 인간과 특정 사건을 설명하는 데 갖다 붙인다 해도 마찬가지다. 범주란 인간의 사고와 언어 능력으로 대상 자체를 한 번 이상 여과한 것이기에 이미 대상 자체가 아닌 탓이다.

 

그러나 한 인간 및 사건이 어떤 고정된 범주로 환원된 채 읽힌다면 어떨까? 그의 삶을, 그와 연루된 사건들을 구성해온 범주 바깥의 관계들은, 그리고 그의 삶을 규정지어온 복잡한 사회구조적 맥락들은 단숨에 소거될 것이다. 그가 삶 속에서 수행해온 자발적 선택들과 그만의 유일한 독특성 역시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이한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한 인간과,  특정 사건과 등치된 범주에 대한 공공의 편견 혹은 사전적 정의일 뿐이며, 그것들이 반영된 범주의 ‘전형성’일 뿐이다.

 

대중들은 사건을 실제 경험이 아닌, 언론과 셀럽에 의해 한 번 이상 여과된 언어로 접한다. 언론과 셀럽이 범주화한 행위자의 ‘전형적인 특성’만을 전제로 사건의 흐름을 ‘추론’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추론은 명쾌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명쾌함은 사건과 사건에 연루된 행위자들이 처한 다양한 맥락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전형화된 내러티브’가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같은 범주로 분류되는 사건들 중 그 내러티브에서 예외적인 사건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그저 그 사건에 연루된 이가 뒤바뀐 채로만, 그것이 발발하는 시공간이 뒤바뀐 채로만 끊임없이 반복해서 재-출현할 뿐이다.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이후 언론들이 서로 경쟁하듯 보도하는 ‘정신질환자 폭행 및 살인 사건’들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읽히고 있다. 이 사건들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전형화 된 내러티브’ 혹은 ‘심신미약 내러티브’를 대중들이 어떻게 소비하고 활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대중들이 이 사건을 두고 제기한 문제제기를 거칠게나마 두 가지로 나누어 보자.

 

첫째, 우리는 ‘정신병자들’의 위협에 대비해야 하며, 국가는 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여기서 관리란 대개 격리와 수용의 방식이다. 

 

둘째, ‘악질 범죄자들’은 툭하면 ‘정신병력’을 근거로 자신의 죄를 경감하려 하며, ‘심신미약’ 역시 그들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로 부당하게 사용하는 수단이다.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피의자도 마찬가지다. 그의 가족은 우울증약 복용 관련 서류를 제출하여 ‘심신미약’으로 피의자의 처벌 수위를 경감하려 한다. 그러나 범죄 성격으로 볼 때 피의자는 매우 계획적이었으며, 따라서 그를 심신 미약으로 보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악질 범죄자의 처벌은 심신미약, 정신질환 따위와 상관없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 정상과 비정상의 전선, 위험성은 없나

 

첫 번째 문제제기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의해서도 공개적으로 발화된 바 있다. 이재명 도지사는 지난 10월 23일 자신의 SNS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 낙인찍기’도 우려한다”면서도, “국민들은 ‘정신질환에 의한 감형’에 분노한다. […] 정신질환에 대한 책임 있는 관리, 적극 대응,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면 살인도 분노도 우려도 없었을 것이다. 가족들이 안 나서면 행정관청이라도 나서야 한다“라고 썼다. 그는 ‘관리’, ‘적극 대응’, ‘각별한 관심’의 구체적 시행 방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단지 ‘치료’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관리’, ‘적극 대응’, ‘각별한 관심’은 그동안 격리 및 수용의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고, 이 논쟁에 참여하는 대중들 역시 이를 그러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이재명 도지사가 의도했던 것처럼 정신장애인의 ‘질환’이 ‘치료’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국 수용과 격리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0월 23일,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에 대한 국민청원 기사를 링크하며 자신의 SNS에 남긴 문구.
 

이러한 문제제기가 위험한 이유는 논란이 되는 해당 사건을 넘어서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의 편견에 기댄 ‘추론’ 과정에서 ‘정신장애’의 범주에 포함되는 모든 이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전락한다. 이재명 도지사는 ‘낙인찍기’를 거부한다고 했으나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실 또 다른 낙인찍기의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

 

심지어 이러한 방식의 발언은 다양한 범주를 뒤섞어 버리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그동안 ‘정신질환자 범죄’의 주역은 조현병을 가진 자들이었지만,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이후로는 그것과 다른 범주로 분류되는 우울증이 조현병과 동일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딱히 드문 일은 아니다. 과거에 ‘정신장애에 의한 범죄’는 그것과 범주 자체가 다른 ‘발달장애인의 범죄’와 등치 되기도 했으며, 확장되고 확장되어 ‘좋은 사회’의 구성을 방해하는 ‘비정상인들의 범죄’ 일반과 등치 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형법의 ‘심신미약’ 조항은 ‘비정상인들’을 한 범주로 묶어내 그들을 부당하게 보호하는 법적 근거로 여겨지고 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범주 간의 복잡한 경쟁이 종식되고, 아주 단순한 전선이 그어진다는 점이다. 즉, 오직 ‘정상’과 ‘비정상’ 간의 전선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정상성이 무엇인지, 정상성을 갖춘 이가 누구인지는 정작 아무도 모르건만, 이 전선의 형성과 함께 그 기준은 사실 모든 이들이 이미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이 두루뭉술한 인식은 대중 일반의 이성 능력으로, 즉 비정상인들의 필연적 행동 법칙에 대한 ‘정상인’들의 ‘추론’을 통하여 무려 과학성(정확히는 유사-과학성)까지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제기의 타당성은 ‘비정상인’을 죄다 수용하거나 제거한다면 이 사회에서 더이상의 악질 범죄가 없어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 속에서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악질 범죄의 예방이 정말로 그러한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비정상인들의 범죄’라는 전형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있는 ‘정상인들의’ 온갖 악질 범죄 사례들은 그 예방책의 무력함만을 부각시켜줄 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폭력 사건 중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는 양적으로 매우 적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 의해 ‘정신질환자 범죄’로 규정된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2016년 기준으로 보자면, 폭력 사건에서 정신질환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0.7%, 살인사건은 7.3%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만약 비정상인들을 가두고도, 그들을 제거하고도 남는 대량의 악질 범죄가 소멸되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는 ‘정상성’의 외피를 쓴 사건의 배후에 숨어 있는 ‘비정상성’의 상징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인가? (오늘날 언론들은 실제로 대다수의 폭행 및 살인 범죄 사건을 대체로 그러한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즉, ‘정상인이라 착각되어 온 이들’의 악질 범죄 하나하나를 다른 유형의 비정상인의 범주 행동으로 새로이 분류해 내고, 또 그 범주에 무고하게 속하게 된 이들에게 새로이 잠재적 혐의 및 잠재적 억압 조치를 감수해야 하는가? 그런데 혹자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중 1/4은 정신질환을 경험한다. 즉, 이 억압조치는 언제 ‘잠재적 비정상인’인 당신을 타깃으로 삼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 심신미약 조항 폐지, 과연 타당한가?

 

두 번째 문제제기는 첫 번째 문제제기보다 비교적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전형 내러티브’의 위협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심신미약’을 통한 처벌의 경감이 오직 ‘정상적인’ 악질 범죄자의 변명거리 내지 정당화 수단으로만 ‘전형화’되는 탓이다.

 

우선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심신미약 상태에서도 나름의 합리적 계획을 구상하고 행동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정신질환자 범죄의 전형 내러티브’가 해결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의 범죄에 대해 ‘심신미약’을 가져와 변호를 수행하는 이가 실제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 이 ‘전형 내러티브’의 직접적 피해자로 곧장 전락해도 무방한가?

 

그러나 법적 정의와 관련된 이 중요한 문제는 혹자들에게서 그리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심신미약 관련 내용이 담긴 형법 10조 1항과 2항은 사법 정의의 원칙과 위배되며, 따라서 그 조항 자체를 삭제하자는 주장을 내놓는 이들에게서만큼은 말이다. 그들은 이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상적으로 이해된 ‘평등’ 원칙을 이끌어 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 평등 원칙은 동일 범주로 분류되는 행위가 언제나 동일한 처벌을 받을 때만 실현된다. 모든 종류의 특권 혐오 사회에서, 심신미약에 의한 처벌의 경감조차 그들에게는 이 사회 불평등의 한 면모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신자유주의적으로 변용된) 근대적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지만, 근대 입헌주의의 기본 정신 자체에 도전하고 있는 점은 좀처럼 상기되지 않는다.

 

이 논리는 마치 ‘비정상인’들을 ‘정상인’들과 평등하게 취급하자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각 범죄들의, 각 행위들의 다양한 차이와 맥락을 소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차이와 맥락이 고려되지 않는 법의 작동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우리는 그러한 ‘기계적 평등’을 정말로 ‘법 앞의 평등’이라 볼 수 있는가? 그러한 법의 작동은 복수의 실현을 위함인가, 정의의 실현을 위함인가?

 

물론 법은 인민들이 직접 그것의 구성에 참여하고 그것을 지지할 때에만이 비로소 권위를 가진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10월 27일 조승현 대변인의 입을 빌려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하여 국민의 ‘법 감정’에 따라 그 사건이 판단될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인민의 의지와 독립적으로 법이 작동해야만 정의가 실현되는 경우도 있다. 다수가 표출하는 공통의 분노나 슬픔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만나 진실과 진실을 향해가려는 노력을 압도할 때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근대 자유주의 권력분립 시스템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물론 법과 국가 기구들은 대게 지배 계급의 도구로 활용되기에 분립이라는 말 자체가 기만적일 수 있다)는 인민 권력에 대한 법과 사법부의 독립성인 것이다. 물론 피해자 및 피해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이들에게 이러한 원칙론적 주장은 한낱 헛소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을 책임질 사람을 없애려 하다니 도대체가 말이 되긴 하는 건가?

 

하지만 분노에 이끌려 가해자를 무작정 처벌하는 것보다 일단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편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고, 비슷한 억울함의 재발을 막아낼 수 있는 더 확실한 길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신질환자 범죄 사건을 ‘심신미약으로 처벌을 경감하려는 사건’이라는 납작한 내러티브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심신미약 자료 제출’은 해당 사건과 관련된 유일한 증거가 아니며, 그저 진실을 찾아가는 한 과정일 뿐이다.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을 보도한 KBS 영상 갈무리. 한 기자가 피의자 김아무개 씨에게 “우울증이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고 있다.
 

혹자들은 형법 10조 1항과 2항을 삭제할 순 없지만 ‘악질 범죄자’에 한해서는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악질 범죄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특정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있는가? ‘자극적인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사건만이 정말로 악질 범죄인가?

 

문제는 더 있다. 소위 ‘비정상인들의 악질 범죄 및 심신미약’을 조장한 게 바로 사회 구조라면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심지어 용의자가 범죄 당시 심신미약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를 반(反)사회적 범죄로 이끈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용의자 한 사람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가? 이 사회 구조에 칼날을 들이밀지 않고서, ‘비정상적 개인’의 목에만 칼날을 들이대는 처벌이 정말로 악질 범죄를 획기적으로 예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전형 내러티브들’은 ‘비정상인들’의 심리학적 행동 법칙에 주목할 뿐, ‘비정상’의 범주가 만들어지는 사회 구조, 누군가가 반-사회적 행동을 하게끔 만들어 내는 사회 구조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설령 구조를 겨냥하더라도 단지 일면적인 차원에 머물 뿐이다.

 

따라서 ‘전형 내러티브’는 이 사회의 지배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무의식적으로 포섭되어 있는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악질 범죄를 양산할 가능성을 가진 이 체제를 용납하고, 심지어 재생산하기까지 한다. 비정상인으로 분류된 이들에 대한 강력한 물리적 억압이 그들의 주류 사회에 대한 어떠한 반-사회적 행위로 발현될 수 있는지는 망각한 채, 도리어 그들에 대한 억압의 강화만을 주장하는 것이다.

 

- 소수자에 대한 ‘전형적인 내러티브’를 넘어 ‘진실’로

 

나는 피의자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피의자도 존엄한 인간이며, 따라서 그를 감싸 안아야 한다는 사랑의 종교를 설파할 생각도 없다. 게다가 불안으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 안전 이상의 권리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들의 권리 주장은 결코 함부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극적인 스팩터클을 가진 사건이 ‘전형적인 내러티브’로 소비되고, 이로써 분노가 엉뚱한 데로 돌려지는 것만큼은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도리어 ‘정상인을 자부하는 이들’의 안전 보장에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도리어 당신들이 걱정하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협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더이상 진실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다. 더 정확히는 진실보다 진실 같은 전제와 그에 따른 ‘추론’이 더 힘을 얻는 시대다. 비정상인의 행동에 대한 추론 방식과 ‘전형화된 내러티브’는 오늘날 유행하는 음모론의 서사들과도 닮았다. 그러나 음모론에 대한 열광이 우리들의 정치 세계에 대한 현실적 판단을 위협하는 것만큼, 소수자에 대한 전형화된 내러티브는 우리들의 권리 일반을, 이 입헌 체제의 정신 자체를 위협한다. 어디까지 확장될지 모르는 ‘비정상’의 범주는 언제 당신을 집어삼킬지 모르며, 그 범주의 전형 내러티브는 당신 삶의 모든 독특성을 소거하고, 무고한 당신의 최후 방어 수단마저 빼앗아 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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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전골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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