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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이 말했다. “천국에서까지 장애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
욕망하고 갈등하며 ‘나쁜 장애인’으로 존재했던 김주영
등록일 [ 2018년11월12일 20시56분 ]
[편집자 주] 고 김주영 활동가는 2012년 10월 26일 새벽 2시, 활동지원사가 없는 사이 발생한 화재로 사망했습니다. 고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은 이후 ‘장애인활동지원 24시간 보장’에 대한 대대적인 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천국에도 계단이 있을까?”
“천국에서까지 장애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

 

나의 질문에 대한 김주영의 저 답변은 장애인운동에서 중요한 장애자부심(disability pride)을 ‘배반’하는 말이었을까?

 

우리가 이 대화를 나누고 7년 뒤, 김주영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애운동을 함께한 어떤 동료들은 말했다. 그가 여러 활동공간을 전전하며 방황했다고. 김주영이 ‘다큐인’1)에서 지역의 자립생활센터까지 여러 차례 활동 공간을 옮겼던 것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방황했다는 의미일까?

 

나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안고 고(故) 김주영을 다시금 기억해 보고자 한다. 이것은 ‘활동지원 24시간 제도화 투쟁의 상징’, ‘제도가 부른 비극적 죽음의 이름’이 된 장애여성 김주영에 대한 송사가 아니다. 고 김주영이 장애인운동 안에서 다채롭고 지속적으로 숨 쉬게 하기 위함이다.

 

고 김주영 활동가 영정사진
 

- 지금보다 더 중증은 원하지 않는다.

 

2006년 성람재단 투쟁이 한창이었을 때로 기억한다. 주영은 그때 막 영상활동가로서 ‘다큐인’에 결합했고, 우리는 자주 함께 집회에 나갔다. 종로구청 앞에서는 '성람재단 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 이름으로 천막 농성이 진행 중이었다. 몸싸움이 종종 벌어졌고 연행이 잦았다. 그때도 연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중증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전경차 아래로 기어들어 가거나, 전경들 방패를 향해 휠체어를 돌진시켜 부딪치기도 했다.

 

중증장애가 있는 주영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투쟁하는 상황이나, 몸이 다소 다칠 수 있는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 앞에서 주저했다. 물리적 충돌 상황으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두기 위해, 아수라장인 집회 현장에서 전동휠체어를 요령껏 운전해서 빠져나가기도 했다. 주영은 자신 몸이 다칠까 봐 염려했다. 멍이 좀 드는 것은 괜찮지만, 몸에 ‘손상’이 생길까 봐 두렵다고 했다. 지금 보다 더 중증장애인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시 성람 투쟁 때 몇 차례 내가 연행된 적이 있었는데 주영은 그 순간에 대해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 내가 연행되어서가 아니라, 나의 연행 장면을 촬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랬다. 당시는 다큐인이 RTV 시사다큐 <나는 장애인이다>라는 방송을 제작할 때였고, 김주영은 진행자였으며 나는 연출자였는데, 연출자인 내가 연행되는 장면은 경찰의 폭력적 행위를 규탄하는 방송 소스로 더없이 좋기 때문이었다. 주영은 카메라를 갖고도 촬영하지 못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는 자신이 보는 세상에 대해 영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목구멍을 계속 넘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촬영에 꼭 필요한 그의 손은 꼿꼿한 선비처럼 강직(剛直)하게 자신의 ‘개성’을 유지할 뿐이었다. 주영은 깊게 한탄했다. 하지만 그 한탄이 자신의 손을 향하진 않았다. 주영은 다큐인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자신이 촬영할 수 없는 문제는 장애로 인해 굳어 있는 손 때문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문제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제작된 카메라와 장애인을 위한 보조장치가 개발되지 않은 것에 있음을 명징하게 해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애에 대한 ‘해석’이 변화했다고 해서, 당장 촬영할 수 있는 대안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카메라를 휠체어에 부착하거나 몸에 부착하는 방법들을 시도했지만, 실제 편집에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장면은 매번 거의 건지지 못했다. 휠체어가 다니기에 도로는 울퉁불퉁했고, 휠체어의 흔들림은 카메라에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촬영 장면을 모니터할 때마다 주영은 조용히 절망하기보다는 혼잣말처럼 신경질을 부렸다. 장애에 대한 의료적 관점을 벗어던지고 ‘해석’이 달라졌다고 뭐가 변하냐며, 그런 말은 장애인 동료 상담할 때나 위로가 된다고 했다. 장애에 대한 사회·정치적 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어떻게 장애를 한탄하지 않을 수 있냐며 거침없이 말하기도 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주영은 <나는 장애인이다> 방송 진행자였는데, 녹화 때 입을 옷과 귀걸이를 쇼핑하느라 방송 대본을 써오지 못했다. 당장 다음날이 녹화인 상황이라 회의 분위기는 냉각됐고, 책임 피디였던 박종필 감독은 한껏 화가 나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한숨을 뱉었다. 주영은 눈치를 보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본인의 뇌병변장애 특성상 발음 전달이 정확하지 않은 게 신경 쓰이는 만큼, 자신의 큰 몸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된다고 했다. 장애여성에 대해 흔히 그렇듯 자신이 무성적으로 보이는 게 싫다며, TV 방송인만큼 중증장애가 있는 진행자의 이미지도 시청자에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 주장하고 갈등하고 협상하는 주체

 

주영의 그런 모습들은 내게 소소한 충격을 주었다. 자신의 욕망이나 자기 돌봄의 중요성을 말하는 페미니스트 벗들은 이미 많이 보아왔다. 관계와 상황에서 자기중심성이 확고한 동지들도 많았다. 그런데 우리는 장애가 열등하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하는 사회에 살고 있고, 김주영은 평생을 중증장애와 함께 살았다. 통상 여성은 남성보다, 이주민은 선주민보다 자존감이 낮다. 사회가 그들을 향해 덜 중요하고, 덜 가치로운 존재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에 대한 멸시와 낙인은 어떤 소수자에 대한 차별보다 깊고 끈질기다. 주영은 장애정체감을 부정하지 않으며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것에 익숙했다.

 

심지어 눈앞에서 다른 중증장애가 있는 동료들이 물리적 충돌을 피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영은 현장을 빠져나가며 자신의 몸에 더 이상의 ‘손상’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정직함에 나는 놀랐다. 그는 방송 대본 만큼 자신의 귀걸이와 옷이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장애의 사회정치적 해석은 운동적으로 유효하지만 자신을 실질적으로는 구원하지 못한다며 분노했다. 그랬다. 김주영은 그럴듯한 핑계를 대거나 당위로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때로는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현실적이고 솔직했다.

 

김주영의 활동과 삶은 바로 그런 태도와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알려졌다시피, 김주영이 자신의 몸에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른쪽 손가락 두세 개가 전부였다. 혼자서 식사나 용변처리가 불가능했던 그는 활동지원이 제도화되기 이전에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나중에 활동지원제도 시범사업 단계에서 하루 12시간 활동지원을 받았지만, 그 이전에는 교회나 복지관 등에서 파견되는 자원봉사자나 자비로 고용한 활동지원사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전무했지만,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독자적으로 삶을 꾸려가겠다는 굳은 의지만으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자립생활을 시작한 이후 다큐인에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서울에서 광주로, 사이버대학에서 공부하고 자격증에 도전하다가 다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 동안 활동 공간을 여러 번 옮긴 주영에게 방황이 잦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의 눈에 그것은 방황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중증장애가 있는 김주영에게 직장에 다니며 월급 받는 것만도 어디냐며 적당히 타협하고 오랫동안 눌러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주영은 자신 ‘몸’에 가장 잘 맞는 공간,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발휘 할 수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찾았고, 실패를 거듭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그 과정은 자신의 장애와 사회의 불화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언젠가 주영이 말했다. “세상은 온순한 장애인을 좋아하고, 때로 장애인 단체들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자신은 중증장애인으로 살기에 말이 너무 많고 그냥 일하는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고 했다. 취업된 게 어디냐고 만족하는 게 아니라, 활동지원사 비용을 내고 살만한 집을 마련할 만큼의 돈도 벌고 싶다고도 했다. 어떤 곳은 활동하기에 괜찮지만 돈이 안 되고, 다른 곳은 돈은 좀 되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에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능력을 발현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터를 원했다. 당연하고 정당한 바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주장했고, 동료들과 갈등하기도 했다. 나는 주영이 방황했던 게 아니라 당연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이라고 본다. 주영은 온순하고 착하고 배려심 많은 장애인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갈등하며 협상하는 주체이길 원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본인의 중증장애가 열등함이나 무능력의 상징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입증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미술 모임에서 그림을 그리는 고 김주영 활동가
 

- 욕망과 열정은 장애에 갇혀 있지 않았다

 

주영이 세상을 떠난 뒤, 어떤 이들이 주영의 욕망과 열정이 장애에 갇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 말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주영의 삶은 장애를 걸림돌로 만드는 현실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투쟁에서 정직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적은 임금을 받고 더 적은 기대를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능력’이 부족한 자신을 속상해하기도 했다. 중증 장애가 주는 불편함에 짜증을 냈고, ‘장애도 심한 주제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주영은 세상과 갈등하듯 자신과도 갈등했다. 그리고 자신의 장애와 갈등하고 분열하는 자신을 드러낼 줄 알았다. 바로 그 지점이 장애자부심을 쌓아가는 여정에서 중요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를테면, 중증장애가 있는 커플들이 아이를 임신 했을 때 장애가 유전 될까 봐 염려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실제 출산했을 때, 장애가 아이에게 유전된 경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아왔다. 그 지인들은 장애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장애인으로 살기 너무 힘든 현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가 부끄러운 것과 장애인으로 살기 힘든 현실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일까? 장애인으로 살기 어렵게 만든 현실, 즉 차별적 현실이 장애를 부끄러운 것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에 대해 장애자부심이 부족하다고 비판해야 하는 것일까. 겉으로는 장애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외치지만, 속으로는 장애가 있는 몸을 때로 한탄하게 되는 분열. 이는 이중적인 행태로서 부적절한 모습이라고 비판받아야 할까. 나는 그 분열이 ‘정상’이며, 분열 없는 말끔한 이들이 오히려 신기해 보인다. 그 분열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장애자부심이 어떻게 가능하며 일상의 현실 속에서 위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영은 천국에서까지 장애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말했다. 장애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기 배반적인 말하기다. 장애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도 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는 자기 분열적 고백이다.

 

김주영은 평생 중증장애를 이유로 본인의 열정과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믿고 나아갔다. 장애를 근거로 적극적으로 차별을 하면서도 온순하게 존재하라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다지 기죽지도 않고 온순해지길 거부하며 나아갔다. 동료들과조차도 타협하기보다는 싸우기를 선택하는 ‘나쁜 장애인’의 면모를 드러내는 스스로에 대해 긍지를 느꼈다. 남들이 ‘그 몸’으로는 어려울 거라고 조언해도 기어이 그 길을 직접 가보고 부딪치고 깨지고 좌절을 맛보며 전진해갔다. 이는 사회가 뿌리 깊이 이식해 놓은 장애에 대한 열등감이나 자기 부정적 태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탈식민 여정이었고, 구체적으로 장애자부심을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장애자부심은 장애가 있는 몸을 문제로 정의해온 사회에, 문제는 우리의 몸이 아니라 사회에 존재한다고 재규정함으로서 가능하다고 말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규정한다고 해서, 사회가 심어 놓은 깊은 열등감이 순식간에 소거되는 것은 아니다. 김주영은 자신의 장애를 열등함이나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것은 장애자부심을 갖자는 ‘선언’이나 ‘정신승리’ 속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또 다른 ‘극복’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장애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장애를 한탄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주영은 자신의 중증 장애를 한탄하지 않기 위해, 자신 몸에 맞는 환경을 찾아 여러 차례 일터를 옮겼다. 또한 장애자부심이라는 것은 장애를 수치로 느끼도록 강요하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그 자체로 온전하고 존엄함을 강력하게 공표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주영에게는 욕망하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나쁜 장애인’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중증장애가 있는 자신의 존엄함을 지키고 공표하는 과정이었다. 김주영이 ‘이기적’으로 보이거나,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스스로 열등감 없이 자부심을 가지고 외치고 싶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증장애인이다!

 

* 각주

1) 다큐인은 영상운동을 하는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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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진희(반다)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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