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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상한 사람’, 나중엔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었던 고 배정학을 기억하며
사회운동가 고 배정학 동지 1주기
등록일 [ 2018년11월19일 15시59분 ]

고 배정학 활동가는 2013년 활동보조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첫 위원장을 맡았다. 살아생전 고인이 장애인 활동지원 수가 인상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가운데)

 

배 대표, 배정학 쌤, 배정학 동지, 배정학 위원장, 배정학 멘토….

 

우리에게 지금도 다양한 이름으로 불릴 만큼 고 배정학 동지의 삶은 열정적이었고, 차별에 맞서 다양한 약자들과 함께했다.

 

지난 13일, 고인의 1주기를 맞이하여 추모사업회 창립총회, 1주기 추모식이 성북마을극장에서 있었다. 11일 참배 후 13일 행사까지 유가족분들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고인과 함께했던 30여 분이 자리에 함께 해 주셨다. 자리에 함께하신 분들은 고인이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고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장수마을 한지등을 홍보하거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후원가입서를 작성하라고 할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나눌 정도였다. 그렇게 고인의 죽음은 여전히 와 닿지 않은 채, 고인의 정만이 우리에겐 남아 있다.

 

- 처음엔 ‘이상한 사람’, 나중엔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된 배정학 쌤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중 하나로 전면철거식 재건축이 진행된 돈암시장. 주거세입자, 상가세입자, 노점상들은 관련 법에도 명시된 이주대책조차 보장받지 못하자 2002년경 투쟁을 시작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100여 명이 시장 골목을 막아서고 안에선 두 차례 폭력적인 강제철거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투쟁은 지속됐다. 마침내 2003년 초~2004년 말, 세입자들에겐 이주대책비를, 노점상들에겐 바로 옆에서 장사를 이어갈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었다. (돈암시장에서 밀려난 상인, 노점상들과 기존 상인들이 바로 옆에서 돈암제일시장, 그리고 현재의 돈암시장을 만들어왔다)

 

그때 함께 인연을 맺은 노점상, 상인, 대학생들이 2006년 5월 19일, 공부방 ‘파랑새인;연맺기학교’를 만들었다. 지역아동센터로 무리하게 진행하기보다 나눔과 연대를 배워나가는 공부방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금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후원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마음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이 많았던 파랑새 공부방을 찾아와 주신 곳이 당시 평등사회실현을위한성북연대였다. 길음뉴타운 재개발 과정에서 ‘귀족고’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고 ‘공립중고’가 들어오도록 투쟁하고 있던 지역시민사회단체, 지역아동센터 연대모임이었다. 배정학 쌤을 만난 건 그때였다. 그는 책을 팔러, 동네 소식을 알리러 오곤 했다. 『자본론』 책을 팔러 온 그를 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블로그에는 지역과 약자,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한 고민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흥미로웠고 함께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배정학 쌤’이라고 부르는 게 익숙했다.


고 배정학 활동가가 2013년 '장수마을 주민참여형 재생사업' 기반시설공사 착공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희철

- 장수마을에서 함께 활동을 시작하다

 

돈암시장처럼 전통시장 활성화를 명목으로 내쫓길 위기에 있던 보문시장 상인, 노점상들을 만나고 있던 내게 배정학 쌤이 제안했다. ‘대책 없는 개발 반대’를 넘어 대안적인 개발 운동을 하는 분들과 함께 해보자고. 마침 2008년부터 낙산공원과 한성대 사이 달동네인 삼선4구역(재개발)에서 ‘대안개발연구모임’이 활동하고 있었고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던 내게 배정학 쌤의 제안은 솔깃했다. 그렇게 2010년 말, 대안개발연구모임을 만났다.

 

노점상을 정리하고 공부방 활동을 하던 나도, 장애인활동지원 일을 하며 여러 활동을 하던 배정학 쌤도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각자 역할을 나누고, 잠깐 하는 활동으로 그치지 않고 주민의 눈에서 주민과 함께 하는 활동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 연장선에서 2011년 녹색장터를 열었다. 언덕배기 외진 곳에서 5회 이상의 장터를 연다는 게 쉽지 않았고, 그만큼 장터 수익금도 많지 않았지만 우리는 장터를 통해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면 된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장터를 이어나갔다. 다른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배정학 쌤은 ‘바쁜’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정을 빼고 미리 와서 천막과 집기를 설치하고 주민들을 맞았다. 휑한 장터를 보고 가가호호 어르신들을 찾아가 모셔오기도 했다.

 

여러 고민과 활동을 통해 마을기업 ‘동네목수’도 설립됐다. ‘마을카페’도 세워져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대안개발연구모임은 2012년 초까지 활동을 평가하고 각자의 바람과 계획을 나눈 뒤 해산했으며, 이후엔 ‘동네목수’를 중심으로 주민과 함께 마을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 미안함

 

장수마을 골목골목엔 텃밭이 있다. 마을카페 담벼락에는 마을지도가 그려졌고 동네 주민과 술을 나누고 춤췄던 배정학 쌤의 일화가 그려졌다. 2013년 10월에는 처음으로 도시가스 준공식이 열렸다. 2014년에는 동네 어르신의 집을 배경으로 드라마 촬영이 진행되기도 했다. 박물관과 주민한마당 행사 때면 다양한 주민과 이야기가 함께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는 배정학 쌤의 고민이 담겼다. 여러 전시회가 열리거나 추진되었고 장애인 노래패의 공연이 이어졌다. 주민으로 정착한 배정학 쌤은 장수마을 대표가 되었다.

 

활동이 안정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대안개발, 마을만들기 현장으로 조명을 받은 장수마을은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단시간에 물리적인 개선을 하더라도 주민의 삶, 공동체가 함께 하지 못한다면 어긋날 수밖에 없다. 동네 어르신들과 인형, 그리고 한지등을 만들어 자립 기반을 만들고자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동네목수도 해산하게 되었다. 여러 지원사업에 신청했지만 기본적인 사업비 외에는 인건비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5년, 2016년, 2017년…. 주민총회나 주민한마당 등의 행사에서 만난 예전 대안개발연구모임 활동가들과 걱정을 나눴다. 배정학 쌤을 만나 언제든 연락 달라고, 몇 명이라도 함께 활동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두 차례 정도의 팟캐스트 외에는 배정학 쌤의 짐을 나눌 수 없었다. ‘모두들 바쁜데…’ 배정학 쌤은 자신의 짐을 나누지 못했고 우리도 그러지 못했다.

 

고인의 장례를 치른 후, 고인의 삶과 활동이 잊히지 않도록, 가능한 범위에서라도 장수마을 활동을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추모사업회(준) 사무국을 맡았고 1주기 참배와 추모식을 치렀다.

 

고인과 함께했던 이웃 청년들이 청년모임을 만들고 있다. 마을에는 없어졌던 슈퍼가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인의 삶과 활동을 곳곳에서 이어가고 있다. 사회운동가 고 배정학 동지 추모사업회 주요 사업 중 하나를 장수마을 등 곳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건강권 증진을 위한 사업으로 한 것도 미약하나마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서이다.

 

“너무 바쁘게 사는 배정학 활동가에게 조금이나마 휴식을 주기 위해 함께 활동하던 동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작년, 대만여행에 모시고 갔더랬습니다. 다른 참석자들이 조금 쉬자고 했지만 배정학 활동가는 적극적이었습니다. 짧은 일정 동안 이곳저곳 구경 다니던 모습을 보며 이분에게 휴식이 얼마나 필요했던 것인지 느꼈습니다. 올해를 기약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고인은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슬픕니다.” (1주기, 성북마을살이연구회 홍수만 대표의 추모사 중)

 

배정학 쌤, 잊지 않겠습니다.

 

봉안당에 안치된 고 배정학 활동가의 유골함 ⓒ성북마을살이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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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철 추모사업회 운영위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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