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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선 기고]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피해생존자로서 기쁘지 않은 이유
비상상고는 잘못된 판결 바로 잡는 것일 뿐,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할 수 없어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열쇠는 ‘특별법 제정’ 뿐이지만 국회는 방관 중
등록일 [ 2018년11월21일 17시30분 ]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


저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 (실종자, 유가족) 모임’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피해생존자 한종선입니다.

 

1984년, 저는 9살의 나이에 당시 12살의 작은 누나와 함께 파출소에서 형제복지원 차량에 실려 형제복지원으로 들어갔습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지고 폐쇄되던 당일까지 형제복지원에서 3년 6개월여를 살았습니다. 형제복지원이 폐쇄하던 날, 저는 서울 소년의집이라는 고아원으로 전원조치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형제복지원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1986년 집에서 TV를 시청하던 중 동광파출소 순경이 잠깐 나와 보라 해놓고는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집어넣었습니다. 아버지와 누나는 형제복지원 안에서 극심한 구타와 폭행, 기합과 성적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 정신이상 상태가 되어 지금은 병원에 계십니다. 저는 3년 6개월여를 형제복지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아버지와 누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정신이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며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19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이 구속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이 모두 해결된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은 단 한 번도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 형제복지원 본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고작 형제복지원 소유의 울산 반정목장에서 벌어진 사건에 불과합니다. 당시 김용원 검사님이 우연히 울산의 한 야산에서 꿩 사냥을 하던 중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는 작업장 현장을 발견하면서 수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박인근 원장을 구속 수사하면서 부산의 형제복지원 본원에 대한 인권유린도 수사가 진행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부산지검장 등 윗선의 외압으로 결국 부산 형제복지원은 아예 수사조차 못 하게 되었고, 울산의 반정목장에서 구타로 사망한 김계원 씨 사망 사건만으로 특수감금과 초지법 위반, 공금횡령 등의 죄목으로 박인근 원장은 기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판에서조차 특수감금은 무죄로 인정되면서 초지법 위반, 공금횡령 등의 죄목으로 박인근 원장은 고작 징역 2년 6월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지금,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비상상고를 권고했습니다. 비상상고란 형사소송 확정판결 과정에서 법령에 위반된 것이 발견되면 검찰총장은 대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며 신청할 수 있는 비상구제절차입니다. 즉, 형제복지원 사건은 법령을 위반한 아주 잘못된 판결이니 지금이라도 바로잡아 억울한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법치를 바로잡는 데 힘써야 할 때라고 검찰이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20일, 마침내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습니다.

 

- 비상상고 신청은 잘못된 판결 바로 잡는 것일 뿐,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할 수 없어 

 

문무일 검찰총장이 비상상고를 신청하자 수많은 사람이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러나 저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늦었지만 아주 다행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비상상고는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로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 잘못된 판결을 가지고 판례로 악용하는 일들이 없게끔 하는 겁니다. 다시는 국민의 인권이, 합법이라는 이유로 공권력에 의해 피해 입지 않도록 하는 근거가 만들어지는 계기인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축하받을 일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 축하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또다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랑인(아) 단속지침’ 같은 것이 만들어져 또 다른 시민들이 공권력에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형제복지원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잘못되어진 것들을 바로 잡고, 시설을 이용해 힘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권유린을 일삼는 범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검찰다운 검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열쇠는 ‘특별법 제정’ 뿐이지만 국회는 방관 중 

 

그렇기에 저는 축하받아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실제 기뻐해야 하는 순간도 아닙니다. 비상상고로 그때 당시의 재판을 바로잡겠다는 부분은 공감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비상상고만으로는 형제복지원의 진상을 밝힐 수 없습니다. 당시 부산 형제복지원 본원은 조사조차 하지 못했고 국가와 부산시는 형제복지원에 감금했던 사람들을 1987년 형제복지원을 폐쇄하며 사회로 다 내보내 피해자 증언과 증거를 인멸했습니다. 특수감금은 합법이라며 무죄라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피해자들을 특정할 수 있는 근거가 현재로선 전무한 상태이며, 현행법으로는 공소시효와 소멸시효가 지났기에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억울함은 풀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은 380일째(11월 21일 기준)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정작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열쇠를 쥐고 있는 국회는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지난해 11월 7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다.
 

최근 오거돈 부산시장은 피해생존자들께 ‘죄송하다’ 공식사과하고, 부산시 박인영 시의장은 진상규명에 부산시와 시의회가 앞장서겠다고 약속하였으며, 국가인권위원회는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여 진상규명하라’고 국회에 권고까지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비상상고까지 이뤄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국가이고 법치국가라면, 그저 가난했을 뿐이었던 사람들이 아무 죄 없이 공권력에 의해 몇 년씩 수용소에 갇혀 짐승처럼 살아가고, 551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 나간 것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진상규명을 해서 피해당사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겨우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내가 대체 왜 형제복지원에 잡혀가게 되었는지, 그것이 내가 잘못해서 형제복지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세상에 말하기까지 거의 3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악법도 따라야 한다고요. 그러나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악법은 따르는 것이 아니라, 수정 보완해 가고 그래도 안 되면 없애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소시효, 소멸시효로 인해 저희는 그 어떠한 법의 보호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공권력의 힘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2012년부터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시위부터 안 해본 것 없이 무작정 버텨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잘못된 악법을 수정·보완하거나 폐기시킬 수 있다는 각오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습니다.

 

저희 피해생존자들은 이미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그래도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남고 싶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많은 응원과 지지가 저희에겐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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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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