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12월10일mon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획연재 > 애도 되지 못한 슬픔, 처리되는 죽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가려진 삶, 증발하는 죽음
[무연고사 기획] 애도 되지 못한 슬픔, '처리'되는 죽음 ②
장애인거주시설의 무연고 사망
등록일 [ 2018년11월29일 15시46분 ]

- “시설에서 죽으면 개죽음이야, 그냥 증발하는 거야”

 

김동림 씨(만 55세)는 1987년 9월 17일, 경기도 김포의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9년, 시설에서 나올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가본 적이 없었다. 22년간, 단 한 번도 ‘아무개가 죽어 장례식을 치르니 원하는 사람은 참석하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었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시설을 보강하느라 모든 사람이 강당에서 자게 된 날이었다. 거주하는 건물은 다르지만 바람 쐬러 나간 운동장에서 자주 만나 함께 과자를 나눠 먹곤 하던 지적장애인이 강당으로 들어오는데 뭔가 이상했다.

 

“입술이 새파래. 그래서 교사 한 사람한테 이야기했는데 그날 워낙 바빠서 그랬는지 그냥 넘어갔어. 아무래도 뭘 잘못 먹었던 모양이야. 내일 병원에 데려가라고 해야겠다 싶어서 일단 오늘 내 옆에 누워서 자자고 하고 잤어. 새벽에 잠깐 눈을 떴는데, 애가 벌써 갔어. 급하게 병원에 갔는데, 그대로 없어졌어. 걔가 어릴 때 고아원에서 나 있던 시설로 온 애였거든. 살아서 데려갈 가족이 있길 하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말도 없이 그다음 날 그냥 없어지고 끝난 거야. 교사들한테 물어봐도 아무 말도 안 하고.”

 

김 씨는 "시설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파서 시설 바깥 병원에 갔다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시설 거주인들은 으레 '죽었구나' 눈치를 챈다. "그냥 사라져. 쥐도 새도 모른다는 말 있지, 그 말이 딱 어울려. 증발하는 거야 그냥." 친한 사람이 '증발'한 날이면 김 씨는 외출을 나가 술을 한잔하고 들어왔다.
 
“죽었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지정병원도 있었으니까. 어딘지 아니까 가볼 텐데 말이야. 장례식은커녕 기별도 없으니. 그래서 술이나 먹고 들어왔지. 속으로 '죽어도 저 안에서는 안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장애계가 대구시립희망에서 사망한 이들을 기리는 합동추모제를 하는 모습.
 

- 입소하면서 ‘무연고자’ 되는 사람들, ‘운영 편의’에 따라 애도 분위기 자제되기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12월 기준,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자 중 무연고자는 26.4%이다. 하지만 이는 서류상으로는 연고자가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사실상 '무연고자 거주시설'이나 다름없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중증장애인거주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44.4%가 '가족들이 나를 돌볼 여력이 없어서' 입소했다고 답했다. 시설에 입소한 기간은 10년 이상이 58.1%에 달했고, 20년 이상이라는 사람도 24.9%나 되었다. 가족과 오랜 물리적, 심리적 단절은 거주인을 '실질적 무연고자'로 만든다.

 

시설 입소 시, ‘무료 입소’를 위해 일부러 무연고자가 되는 거주인도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 시설에 무료로 입소할 수 있는데 가족이 부양의무자로 있으면 불가능하기에 가족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많은 시설 거주인들이 이처럼 시설에 들어가면서부터 무연고자가 되거나 들어간 후 무연고자가 된다. 이때 그들의 법적 연고자에 ‘시설장’도 들어온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사법)’ 시행령 제2조의2에 따르면, 장애인거주시설의 장은 시설에서 숨진 사람들의 '연고자'로서 이들의 장례를 책임지게 된다.

 

그러나 적절한 장례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하는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에는 ‘이용 장애인 사망 시 재산 처분 절차’만 담겨있다. 장례에 관한 지침은 없으며, 부록에 담긴 ’장애인 거주시설 서비스 최저기준‘에 한 줄, “이용자의 노화와 질병, 사망 등은 민감하게 다루어지고 존중되어야 한다”로 담겨있을 뿐이다.

 

꽃동네 낙원묘지 내 납골당. 꽃동네 낙원 묘지 홈페이지 갈무리

 

반면, 노인복지법 제28조 3항에서는 '(시설 입소자가) 사망한 경우 그 자에 대한 장례를 행할 자가 없을 때에는 (기관이) 장례를 행하거나 해당 시설 장이 장례를 행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같은 법 48조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사망자의 재산에서 장례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규정해 시설에서 장례를 치를 때 비용 부담을 경감했다.

 

그러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사망한 무연고자에 대한 장례 지침은 법률상 어디에도 없다. 이 때문에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사망한 이들의 장례는 시설 개별로 자율에 맡겨져 있다.

 

법적 내용이 없다 보니 시신을 보관하는 냉동고부터 염과 입관을 할 수 있는 공간, 종교 예식을 치를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춰진 시설이 있는가 하면, 김동림 씨가 있었던 시설처럼 소리소문없이 시신을 '처리'하고 끝내는 경우도 많다.

 

대형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오랫동안 장례를 담당해온 A 씨는 그 이유를 시설 운영상의 필요에서 찾았다. 그는 "시설에서는 애도 분위기를 잘 안 만들려고 한다. 슬프고 가라앉는, 애도하는 분위기가 시설 운영에 부정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 씨는 “거주인의 죽음에 직원들이 무덤덤해지는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거주인 사망이 워낙 많다 보니, 직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애도할 감정적 여유가 없다. 그는 "누가 돌아가셨을 때 이를 아프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또 돌아가셨네' 정도로 생각하고 만다. 거주인의 죽음은 굉장히 행정적으로 받아들여져 시설의 일상도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 씨는 ”무엇보다 시설 입장에서 거주인은 ‘돌봄의 대상’이지 친구나 가족은 아니기 때문에” 애도의 필요성을 느끼는 감정적 유대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 ‘식’은 있으나 ‘애도’의 내용은 없는 시설에서의 장례

 

국내 최대 규모 시설인 음성 꽃동네는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한다. 꽃동네는 거주인이 사망했을 때 장례미사를 한다. 매장은 꽃동네에서 약 8km 떨어진 ‘꽃동네 낙원 묘지’에 하는데, 최근 산이 포화상태가 되면서는 화장 후 납골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꽃동네에 따르면, 이곳에는 약 6천여 명가량의 꽃동네 거주인, 무연고자, 후원회원, 수도자 등이 안장되어 있다.

 

꽃동네 낙원 묘지 전경. 꽃동네 낙원 묘지 홈페이지 갈무리
 

꽃동네에서 살다 2년 전 탈시설한 추경진 씨(만 50세) 역시 ‘꽃동네 낙원 묘지’에 가본 적이 있다. 그는 아버지를 그 산에 매장했다. 꽃동네 장애인거주시설 ‘희망의 집’에 추 씨가 거주한 지 약 7년 후, 그의 아버지도 꽃동네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했다. 시설에서는 혈연보다 노인이나 장애인이라는 ‘약자적 특성’이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이다. ‘꽃동네’라는 같은 울타리 안에 있었으나, 두 사람 간 왕래는 없었고 같은 공간에서 살 수는 더더욱 없었다. 추 씨가 꽃동네에서 아버지에 관해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소식은 부고였다.

 

“시설에 살던 사람이 죽으면 시설에서 전체 방송을 해요. 그걸 듣고 장례미사에 참여할 사람은 참여하는 거예요. 저도 몇 번 참여했는데, 그냥 애도하고 슬픈 게 아니라, 허탈하고 쓸쓸한 분위기에요. 모두 시설 안에서 만난 사람들뿐이고. 그마저도 못 움직이는 사람은 교사들이 바빠서 못 도와주면 못 오니까. 그리고 시설 밖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요. 오시라고. 그런데 어떨 때는 시설에서 알아서 하라면서 한 명도 안 오는 경우도 많죠. 떨어진 기간이 너무 오래되니까.”

 

추 씨 아버지의 장례에는 어머니와 동생, 추 씨, 그리고 아버지와 추 씨가 시설에서 만난 사람 두세 명이 참석했다. 아버지의 장례에 관한 소회를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입을 연 추 씨는 갑자기 산 이야기를 했다. “그 매장되는 산 있잖아요? 거기가 정말 어마어마해요. 산이 두 개는 돼. ‘이 사람들이 정말 여기서 다 죽었나’ 싶을 정도로 무덤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리고 그는 “장례가 있어도 정말 쓸쓸해요. 정말”이라며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을 덧붙였다.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경산센터)에서는 지난 5월, 장례식을 치렀다. 회원이었던 이상용 씨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30년간 살았던 경산 지역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온 지 불과 4년 만이었다.

 

이 씨는 평생 살았던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경산센터에서 운영하는 ‘마수 야학’에서 공부도 하고, 보치아 자조모임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투쟁에도 열심이었다. 와상장애인이었던 그의 삶과 맞닿아있는 활동지원 24시간 보장과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을 경상북도에 촉구했고,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인 4월 20일에는 서울까지 와서 투쟁에 동참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그리고 장애인 수용시설 정책 폐지를 촉구하는 광화문 농성장을 지킨 적도 있었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이 씨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상용 씨(가운데 줄무늬 옷 입은 사람)의 생전 모습 (사진 제공 :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 씨 역시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였다. 원래대로라면 장사법에 따라 이 씨의 죽음은 경산시에서 행정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씨와 함께 활동했던 경산센터 회원들은 그를 그런 식으로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김종한 경산센터 소장은 “같이 활동하고, 놀러 다니고, 밥 먹고, 그랬던 사람이 서류상으로 무연고자였다고 그냥 휙 ‘아, 죽었나보다’할 수는 없잖아요?”라고 되물었다.

 

“회원분들이 상용 씨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장례 잘 치러주자고 했어요. 시설에서 살다 나온 분들이 많으셔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시설에서의 삶이 어떤지, ‘탈시설’은 또 어떤 건지 아니까요. 잘 가시라고, 너무 일찍 떠나 아쉽다고, 그래도 같이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인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필요했던 거지요.”

 

장애인거주시설은 법적으로 '연고자'이지만, 자립생활센터는 아니다. 무연고자인 이 씨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경산센터는 경산시와 협의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다행히 경산시는 이 씨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협조해주었다. 그러나 이는 경산센터가 어떤 공간인지 경산시 측에서 알고 있고, 신뢰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박재희 경산센터 활동가는 “2011년에도 탈시설 당사자 한 분이 돌아가셨고, 이분의 장례를 치렀던 경험이 있다”라며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경산시에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만약 이런 정보가 없거나, 단체의 힘이 없는 개인의 죽음이었다면 ‘연고자’가 아닌 사람이 장례를 치를 수 있으리라는 상상은 차마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빈소를 마련하고, 그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는 데에는 돈이 들었다. 경산센터 회원들은 물론, 경산 지역 시민단체들과 전국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모았다.

 

이 씨의 빈소를 찾은 사람은 총 90여 명. 이 중 그가 30년간 살던 시설에서 온 사람은 생활재활교사 두 명과 간호사 한 명, 거주인 두 명, 총 다섯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그가 지역사회에서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만난 이들이었다.

 

- 시설의 본질적 속성이 거주인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까지 영향 미쳐

 

장애인거주시설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은 인위적으로건 실질적으로건 무연고자가 되고, 폐쇄된 공간에 격리된 이들은 한 사람의 이름으로 호명되기보다 '연약한 사람들',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집단으로 묶인다. 개인의 삶과 꿈과 실패와 성공이 허용되지 않고, 오직 프로그램과 프로그램만으로 채워진 '텅 빈 삶'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시설의 본질적 속성은 거주인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숨이 멎는 상태, 즉 생물학적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으나 시설에서의 삶은 오직 인간종으로서의 삶만이 가능하기에 죽음 또한 생물학적 죽음으로 제한되고 처리된다.

 

장례는 고인이 삶을 통해 남긴 의미를 되새기고 이로써 남은 자를 위로하기 위해 꾸리는 예식이다. 육체의 죽음이 존재의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의식인 것이다. 그러나 애도할 삶의 의미조차 생성되지 않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선 차라리 소리소문없이 증발하는 죽음이 자연스럽다. 부재(不在)가 가시화될 수 있는 삶, 증발하지 않는 죽음.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삶과 죽음이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올려 1 내려 0
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우리는 살아도 쪽방, 죽어도 쪽방이오
살아생전 ‘부부’였던 당신과 나, 죽음으로 남이 되었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삶이 시장 바닥을 유영하다
죽음을 경유하여, 연고 없는 삶의 이유를 말하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살아생전 ‘부부’였던 당신과 나, 죽음으로 남이 되었다 (2018-12-05 16:50:03)
기원을 알 수 없는 삶이 시장 바닥을 유영하다 (2018-11-26 18:4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