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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0년째 법원의 ‘구제조치’는 고작 7건… “법원 인식 변화 절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구제조치 규정 담겨있지만 법원에서 인용하는 경우는 드물어
“구제조치는 차별 실질 시정 위한 핵심적 조치… 법원의 적극적 태도 필요”
등록일 [ 2018년12월03일 23시16분 ]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장애인 차별을 규정하고, 차별을 사전·사후적으로 없애기 위한 구제조치 규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구제조치는 시행 6년 후에서야 처음으로 내려졌고,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차별구제소송 역시 활발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 구제소송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증대하기 위한 요소를 모색하고, 한국과 달리 구제소송 및 구제조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미국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장애인법연구회와 연세대학교 공익법률지원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 컨퍼런스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의 경험과 한국에의 적용'이 세계 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 연세대학교 광복관 국제회의장에서 오후 2시 30분부터 진행되었다.

 

마이클 슈와츠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법학대학교 교수

 

미국 장애인법에 따른 적극적 구제조치, ‘금지명령(Injunction)’

 

이날 컨퍼런스에는 마이클 슈와츠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법학대학교 교수가 미국 장애인법에서 ‘금지명령’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소개했다. 마이클 슈와츠 교수는 농인으로, 뉴욕 검찰청 등을 거쳐 현재는 시라큐스 대학교 ‘장애인권 클리닉’ 디렉터를 맡고 있다.

한국에서는 피해를 돈으로 배상하는 ‘손해배상’ 제도가 일반적이나, 미국은 이와 달리 '금지명령'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는 개인이나 집단 등에 적극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구제 조치 중 하나다. 

 

미국 장애인법에서 금지명령은 임시금지명령(Temporary Restraining Order, TRO), 예비금지명령(Preliminary Injunction), 영구금지명령(Permanent Injunction) 세 개 유형으로 나뉜다. 임시금지명령은 원고가 긴급한 조치를 요구할 때 재판부가 우선적으로 발령한다. 그러나 피고에게 신청 여부가 고지되지 않는 일방적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최대 10일까지만 효력이 있다. 이 기간에 심리를 준비해 찬반 주장을 듣고 금지명령 연장 혹은 영구 금지명령을 결정한다.

 

예비 금지명령은 임시 금지명령과 유사하지만, 심리를 우선적으로 거친다. 이후 판사가 양측의 주장을 모두 들은 후, 차별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조치를 명령한다. 영구 금지명령은 최종 결정이 되면 그 결정이 영구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금지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건이 있다. 첫 번째는,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할 합리적인 가능성이 있는가이다. 이는 철저하게 사건의 사실관계를 가지고 판단한다. 두 번째 요건은 원고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명이다. 또한, 금지명령이 없다면 원고가 입게 될 손해가 금지명령 이후 피고가 입을 손해보다 더 크다는 입증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 슈와츠 교수는 "금지명령은 형평성의 원칙을 따르는데, 이는 '돈'이 아니라 '정의'의 형평을 따진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장애인법에도 구제절차가 규정되어 있다. 미국 장애인법 1장에 담긴 고용(개인, 법무부 장관), 2장에 담긴 정부 기관 및 공공기관, 3장 민간사업체의 장애인 차별 행위에 대해 개인과 법무부 장관 누구든 금지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 그리고 법원은 이 청구를 받아 보조기기, 서비스, 정책, 관행의 변경 등의 조치를 명령하게 된다.

 

슈와츠 교수는 재판부의 판단은 결국 사회적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슈와츠 교수는 "뉴욕 카제노비아의 한 소매상점 입구에 계단이 2개 있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출입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법원에 금지명령을 청구했다"라며 "그러나 판사는 이 청구를 기각했는데, '원고가 단 한 번도 그 상점을 이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고 전했다. 슈와츠 교수는 "판사도 장애 문제에 관해 배워야 한다. 장애로 인한 차별이 무엇인지에 관해 인식 제고를 해야 하고, '나를 빼고 나에 관해 이야기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라는 원칙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0년째… 아직도 구제조치 주저하는 한국 재판부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는 법원의 구제조치 권한을 임시조치명령권(제1항), 적극적 조치(제2항), 간접강제(제3항)로 규정하고 있다.

 

김재왕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김재왕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차별 행위를 중지하도록 권고할 수 있지만, 법원의 강제명령인 구제조치는 이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 수단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실효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그러나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원이 구제조치를 명령한 예는 많지 않다"라며 "구제조치 청구 사건이 14건, 그중 일부라도 인용된 경우는 7건에 불과했다"며 “불법행위에 대하여 금전배상 청구권을 원칙적 구제 수단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법체계에서는 이질적인 제도이기에 법원이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6년이 지난 2014년에서야 ‘대학 교직원 보직 배제 사건’에서 처음으로 구제조치가 인용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2015년 2건(지적장애인 놀이기구 탑승 거부 사건, 대학교 직원 보직 배제 사건(2차)), 2017년 3건(저상버스 구조 개선 요구 사건, 휠체어 장애인 버스 승차 거부 사건, 영화 자막 및 화면해설 제공 요구 사건), 2018년 1건(시각장애인 놀이기구 탑승 거부 사건)에서 구체조치가 인용되었다.

 

김 변호사는 “이 외에 지하철역 승강기 설치, 웹접근성 보장, 장애인 화장실 남녀 구분 설치 등의 청구는 조정으로 끝났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 사이의 원만한 합의로 끝나는 것도 좋지만, 법원이 판결 내리길 꺼려서 조정을 시도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구제조치는 지금까지 한 건도 인정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특히 2015년 선고한 시외 이동권 보장 요구 사건에서 법원은 국토교통부 장관, 서울시장, 경기도지사가 휠체어 승강 설비 시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시책을 마련하라는 구제조치는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는 실망스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구제조치가 널리 활용되기 위해서는 법원의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전히 소송 과정에서 재판부는 구제조치가 현행 소송법 질서에 맞는 제도인지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며 "구제조치는 차별을 실질적으로 시정하기 위한 핵심적인 조치이므로, 법원이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선례를 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선출되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통하여 소수인 장애인의 의견이 반영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사법부인) 법원이 장애인 차별을 시정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오흥록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판사,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안은자 인권위 장애인차별조사 1과장 (왼쪽에서부터)
 

‘실효적’ 구제조치 내놓기 위해서는 법원의 장애인식 제고 필수

 

오흥록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판사는 재판부가 구제조치를 명할 때 신중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선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구제조치가 법제화된 경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오 판사는 "구제조치 신청 상황들은 대부분 반대편 당사자나 제3자의 권리나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데, 입법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과정이 충분치 않았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행정부를 피고로 삼는 소송에 관해서는 "기존 법 제도에 매우 큰 변경을 가하는 것이지만, 구제조치 입법 과정에서 이에 관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재판부는 행정부를 상대로 구제조치를 명하는 데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오 판사는 “물론 이를 핑계로 불성실하게 구제조치를 적용할 순 없겠으나 입법 과정에서 부족했던 논의를 앞으로 채워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사건 수가 많지 않았고 사회적 관심도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사건이 누적될수록 법원 내부에서 더 많은 판사들이 관심 두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과거에 비해 장애인 차별구제소송이 많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법원은 여전히 조정이나 합의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사무국장은 "일단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장애인차별의 문제를 재판부가 동정과 시혜 또는 보호와 안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사안들을 조정합의로 가져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정 합의로 사건이 결론지어질 경우 명확하게 차별이라는 문제를 확인받았다기보다는 상황만을 해결하는 상태가 되며, 명확한 장애인의 차별과 권리가 언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후에 비슷한 소가 제기됐을 때 다시 다투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사회보장 분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법원을 별도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선 판사뿐만 아니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사건을 해결한다고 들었다”면서 “이와 같은 형태가 아니더라도 법원이 장애 관련 사안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어떤 방식으로 채워나갈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은자 인권위 장애인차별조사 1과장 역시 법원의 장애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과장은 “미국 장애인법처럼 법에 실질적 강제성을 부여한다고 해도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의료적 모델에 기인한 것이라면 적극적인 구제조치는 어려울 것”이라며 “실질적인 구제조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장애를 단지 손상된 상태가 아니라, 장애인을 완전한 사회참여에서 배제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안 과장은 2014년 제기된 지적장애인 놀이기구 탑승 거부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법원은 놀이동산 가이드북의 차별적 문구인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여 탑승 시 자신의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수정하라는 구제조치 명령을 내렸다. 안 과장은 “법원이 제시한 문구가 오히려 ‘장애인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조장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장애인은 이미 손상된 신체를 가졌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이 예측할 수 없는 이상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장애관에 기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 과장은 “이런 상황에서 구제조치가 아무리 많이 발령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장애인 인권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법조인들의 장애감수성을 향상시켜서 차별을 인지해 낼 수 있는 교육시스템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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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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