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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을 ‘재산권’으로 바라보는 사회가 국일고시원 화재 낳았다
비주택 유형별 접근 아닌 ‘비적정 주거’에 대한 통합적 고민 필요
최저소득층 우선 공급 원칙 무너진 공공임대주택 정책… “주거권 본질 회복해야”
등록일 [ 2018년12월05일 15시12분 ]

4일 오전 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비주택 주거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용산구 고시원 거주자 ㄱ씨가 그림을 그려가며 고시원 구조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있다.

 

용산구에 있는 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는 ㄱ 씨는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이 남 일 같지 않다. 약 1년 전, 자신이 살던 쪽방에서도 불이 났기 때문이다. ㄱ 씨는 창문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으나, 같이 살던 주민 세 명이 사망했다. ㄱ 씨는 "사고 이후 쪽방에서 사는 게 너무 무서워 고시원으로 옮겼지만, 여기도 화재로부터 절대 안전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완강기는 한 번 달면 불나지 않는 한 만지는 일이 없잖아요. 점검도 안 되고, 작동 방법도 아무도 몰라요. 불났는데 설명서 보고 사용할 시간이 있겠어요? 그리고 고시원 복도도 너무 좁아서 사고가 나도 도망가기 힘들어요. (방이 좁으니) 문을 복도 쪽으로 여닫는 식인데, 문 여는 방향이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며 있어요. 그럼 복도 맨 안쪽에 사는 사람은 그 문 다 닫으면서 도망 나와야 한다는 말이죠."

 

거리생활에서 건강이 나빠져 다리를 절단한 후 현재는 동자동 쪽방에 거주하는 ㄴ씨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서울역까지 가야할 때도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동자동 쪽방에 거주하는 ㄴ 씨 역시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ㄴ 씨는 노숙 생활을 하면서 몸이 약해졌다. 다리가 썩기 시작하면서, 쪽방으로 옮겨왔지만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이 때문에 ㄴ 씨는 휠체어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편의시설은커녕 휠체어가 움직일 공간조차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다. 쪽방 건물에 있는 화장실은 수세식이라 사용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네에 있는 쉼터나 서울역까지 나가야 화장실 이용이 가능하다. 이마저도 눈이나 비가 많이 오거나 밤이 되면 아예 이용할 수 없다. ㄴ 씨는 “임대주택이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보증금이 높아 엄두가 안 난다”며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살면서 가장 최소한의 것, 가고 싶을 때 화장실을 갈 수 있고 편히 씻을 수 있는 것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시원, 쪽방 등 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비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의 삶은 아직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한 '노숙인 실태조사(2017)'와 국토교통부가 시행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2018)'가 있지만, 대상 지역을 협소하게 정하거나 법률상 다양한 형태로 산재해있는 '비주택'을 일부로 한정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한국도시연구소와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을 연구했다. 연구는 판잣집, 비닐하우스, 고시원, 쪽방, 여관 등이 밀집한 수도권(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대도시인 부산과 대전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쪽방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숙박업소 객실 등 쪽방으로 추정되는 곳이 다수 발견되는 제주시 일대도 조사했다. 인권위는 4일 오전, 인권위 배움터에서 비주택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쪽방, 고시원 등 분절적으로 접근해선 안 돼… ‘비적정 주거’ 통합 정책 마련해야”

 

최은영 소장

 

이번 연구를 담당한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비주택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나, 정책은 분절적, 파편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사각지대가 대거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비주택(주거환경이 열악한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 가구는 2005년 약 5만 7천 가구에서 2010년 약 13만 가구로 늘어나고, 2015년에는 약 39만 가구로 10년 만에 7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특히 최근 급증한 고시원 실태를 파악했다. 고시원의 경우 수도권, 그중에서도 서울에 밀집되어 있는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전국 고시원의 81.2%가 있고 서울에만 51.7%가 있다. 서울에서도 고시원이 밀집된 지역은 관악구, 동작구, 중구 등 도심권, 그리고 강남구 등이었다.

 

비주택에 거주하는 203가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도 진행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현재 거처에 거주하는 주요 이유는 '저렴한 주거비(75.0%)'였고, 그다음으로 '통근·통학에 좋은 위치(28.1%)'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거처에서 겪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은 '거처의 열악한 시설(55.2%)'이 가장 높았으며, '주거비 부담(30.5%)', '주거환경의 열악함(30.0%)'이 그 뒤를 이었다. 현재 거처의 물리적 상태에 대한 5점 척도 평가에서는 주거 면적이 2.39점으로 가장 낮게 평가되었고, 해충·위생이 2.69점, 채광이 2.79점, 소음이 2.83점 순으로 낮게 나타났다.

 

고시원의 경우, 일정한 평수 안에 방을 많이 만들수록 임대료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외벽이 없는 내부 공간도 쪼개서 방을 만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방들은 모두 창문이 없는 '먹방(먹처럼 깜깜한 방이라는 의미)'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거주자들의 몸과 마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특히 정신적 문제는 청년층에서 많이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은영 소장은 "고시원의 문제는 공동생활은 하면서도 심각한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게 만든다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우울증, 울화, 공황장애, 고립감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최 소장은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은 조사 대상 주거 형태 대부분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으나, 현재 한국사회의 주거복지는 '쪽방', '고시원' 등으로 비주택 형태를 분절해 접근하고 있어 실효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비주택 간 구분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인데, 고시원은 다중주택에서부터 상업용, 업무용, 숙박용 등 다양한 건물에 분포되어 있고, 쪽방 역시 고시원, 여관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비닐하우스이면서 동시에 컨테이너인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 소장은 "주택으로 분류되더라도 지하, 반지하 주택은 비주택 못지않게 주거환경이 열악하며 안전이 미비하므로, 주거복지를 분절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주택과 비주택 사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최 소장은 유엔이 제시한 '적절한 주거(Adequate housing)'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거처를 포괄해 '비주택'으로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적절한 주거란 점유 형태와 상관없이 안정적이면서 '(경제적) 부담 가능성'과 '살만한 집'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보는 "한국 정부는 고시원과 쪽방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비닐하우스 등 불안정한 주거 상황에 놓인 주민들에게 적절한 장기 주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최 소장은 "이러한 권고에 맞게 비주택에 대한 분절적 접근보다는 '비적정 주거'라는 개념을 통해 주거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주거 정책에 주거취약계층 목소리 반영해야… 범정부 차원의 노력 필요

 

국일 고시원 화재 사건 후 한 달이 흘렀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여전히 '주택 아닌 공간'에서 이어지고 있다. 국일고시원 피해생존자 ㄷ 씨는 화재사건 이후에도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그는 화재 당시 탈출하다 3층에서 떨어져 다리와 팔에 큰 부상을 입었지만, 아픈 사실을 숨기고 건설 현장에 나갔다가 일주일 만에 해고당했다. 당장 먹고살 돈이 없는 그는 치료는 고사하고 생계를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

 

정부는 국일고시원 피해자들에게 임대주택에서 6개월간 거주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모아둔 재산도 없고, 수급자도 아닌 ㄷ 씨에게 정부가 제안한 '임대주택 이전'은 현실 가능성이 없다. 세탁기, 냉장고 등 삶에 필요한 가전제품들이 이미 갖춰진 고시원과 달리, 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이를 모두 자비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로구 공무원이 '임대주택에서는 6개월까지만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세간살이를 다 사려면 2~300만 원이 깨질 텐데, 6개월 살자고 그걸 다 살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며 결국 이를 포기한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고 ㄷ 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고시원이나 쪽방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요만큼도 모르니 이런 걸 대책으로 내놓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일고시원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한 흰 국화가 놓여있다.

 

최은영 소장은 주거 정책에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주거권’을 이야기하지만, 언론도 정부도 늘 ‘재산권’이나 ‘부동산으로서의 주택’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최 소장은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주거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다 보니 정책 대상의 우선순위도 뒤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번 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주택 가구 중 가장 필요한 주거복지프로그램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꼽은 비율이 34%로 제일 높았다. 그러나 최은영 소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최저소득층 우선 공공임대주택 공급’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민간임대시장, 매매시장에서 자력으로 적절한 주거를 확보할 수 있는 고소득층과 신혼부부 등에 대한 공공 지원이 강화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상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어져 ‘행복주택’의 경우 임대료가 최대 시세의 80% 수준이라 사실상 저소득층은 부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최 소장은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가장 필요가 큰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영국 사례를 소개했다. 1999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학생용 셰어하우스 화재로 대학생 2명이 사망한 후, 영국 정부는 ‘다중주거시설(Houses in multiple occupation, HMO)’을 엄격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HMO는 한국의 고시원과 비슷하게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최 소장은 “이후 영국 정부는 창문이 없는 공간은 주거공간으로 아예 허가하지 않고, 최소면적, 소음 방지, 제반 시설 등의 ‘적격성’을 엄격하게 규정했다”라며 “정부 역시 이러한 최소 주거기준, 즉 ‘사람이 살 만한 집’이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사실 정부도 언론도 주택을 ‘주거권’보다는 소유자의 ‘재산권’으로 보는 경향이 더 강한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최 소장은 “주거를 인권의 영역에서 바라보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토교통부나 보건복지부가 각각 따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범부처 기구가 만들어져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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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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