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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부부’였던 당신과 나, 죽음으로 남이 되었다
[무연고사 기획] 애도 되지 못한 슬픔, '처리'되는 죽음 ③
‘법적 연고자’가 아니어서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사람들
등록일 [ 2018년12월05일 16시50분 ]

김홍구 씨(가명)는 인터뷰를 몇 차례나 거절했다. 처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서둘러 끊었다. 그 뒤로 연락은 없었다. 몇 번 더 전화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어쩌다 통화가 되면 “일 때문에 피곤하다”는 말만 남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저녁에 전화를 걸어왔다.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하다며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인터뷰를 취소했다. 승낙과 거절을 몇 번씩 반복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인터뷰에 응했다.

 

김홍구 씨의 부인 고 강미순 씨(64세, 가명)는 5월 6일 죽었다. 그는 부인의 장례를 치르려고 했지만 병원으로부터 시신을 인수 받을 수 없었다. 20년 동안 함께 살았으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법적으로는 서로 남남이었기 때문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연고자의 범위를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의 직계비속, 부모 외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으로 정하고 이 순서로 시신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씨는 법적 배우자가 아니라 시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고, 전남편과 강 씨 슬하의 자식들은 구청에서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리하여 강 씨는 ‘무연고자’가 됐다. 지난 5월 20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나눔과나눔’과 ‘우리의전’의 협력으로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진행됐고, 이날 화장된 강 씨의 유골은 용미리 무연고자 추모의 집에 안치됐다.

 

더운 여름날, 중랑구 상봉역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에서 김홍구 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 부인과 한 번 와본 적이 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5월 20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열린 강미순 씨(가명)의 장례식. (사진 제공 : 나눔과나눔)

 

- “20년을 같이 살았는데 배우자가 아니라 시신을 내어줄 수가 없대요. 법이 그렇대요.” 

 

마누라랑 나는 청주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만났어요. 나는 그때 서울에서 청주로 놀러 온 손님이었고 마누라는 종업원이었어요. 마누라가 자꾸 나를 따라 왔어요. 나는 돈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는데도 계속 쫓아와요. 그러다가 시작이 됐어요. 사실, 마누라는 남편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일찍 죽고 애들은 따로 살고 있었어요. 하여간, 같이 있기로 하고 청주에서 서울로 오는 고속버스를 같이 타고 왔어요. 생각해보니 그날은, 날씨가 안 좋았네요. 20년을 같이 살았어요. 여기저기 많이 여행을 같이 다녔지요. 이게 살면서 제일 좋았어요. 같이 찍은 사진도 많아요.

 

이 사람이 암이 있었어요.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3기더라고요. 수술이 안 된대요.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권해서 내가 입원시키려고 했는데 마누라가 자꾸 뛰쳐나가더라고요. 입원하기 싫다면서요.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환장하죠. 마음이 말도 못 했어요. 계속 입원 치료를 하자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들었어요. 마누라가 고집이 좀 셌어요. 결국 죽기 전까지 1년 몇 개월간 통원치료를 했어요.

 

어느 날, 마당에서 ‘억’ 소리가 나더니 마누라가 쓰러지더라고요. 내가 잡았어요. 죽을지는 몰랐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사실 죽기 사흘 전부터 얼굴 안색도 변하고 이상했어요. 119를 불렀는데 한참 있다가 오더라고요. 싣고는 서울의료원에 갔어요. 거기 병원 의사가 나에게 오더니 편안하게 보내주라고 했어요. 온몸에 암이 다 퍼졌대요. 죽은 거죠. 내가 ‘알겠다’고 말하니까 흰 천을 덮더라고요. 나는 보지도 않았어요. 다른 사람은 가서 울고 그런다던데 급작스러워서 눈물도 안 나왔어요. 사람이 파리보다도 더 쉽게 죽더라고요.

 

내가 아직도 마음에 응어리가 맺힌 건데, 장례를 내 손으로 못 치렀어요. 제가 장례를 했다면 마음이 더 가벼웠을 거예요. 당연히 내가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그 사람 몸에 손을 못 대게 하더라고요. 20년간 같이 살았는데도 배우자가 아니라 시신을 내어줄 수가 없대요. 법이 그렇대요. 서울시에서 알아서 장례 치르니까 당신은 가라는 뜻이지 뭐. 서로 좋아 미쳐 사느라고 혼인신고 할 생각을 안 하고 살았거든요. 내가 그 뒤로는 혼인신고 안 하고 사는 주위 친구들한테 꼭 그래요. 부부라면 꼭 혼인신고하고 살라고요.

 

그 사람은 (무연고자라서) 내가 있는데도 ‘연고자’를 기다리느라 차가운 냉동고에 20일을 있었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안치실에 찾아가지도 않았어요. 내가 나쁜 놈이죠. 그 사람이 안치실에 있었을 때 구청에 전화해서 ‘장례를 치를 수 없냐’고 물었는데 아무것도 안 된다고 했어요. 뭔가를 하려면 부인과 전남편 사이에 있었던 자식들에게 인수를 해야 하는데 응답이 없대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죠.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가끔은 돈이 많아 보였으면 내가 장례식을 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생각도 해요. 아마 (냉동고에 있었기에) 나를 원망할 거예요. 나는 맨날 울어요. 마누라 생각나고 쓸쓸해서요.

 

지난 5월 20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열린 강미순 씨(가명)의 장례식. (사진 제공 : 나눔과나눔)

 

- 마누라 유골함 받게 되면 말하고 싶어요 “여보, 좋은 데 가세요” 

 

나는 그 사람 장례식에도 못 갔어요. 구청에서 장례식 참석 일정을 알려주려고 전화를 했는데 제가 못 받았거든요. 못 간 게 한이에요. 마누라 장례가 끝나고 나서도 구청에 계속 전화를 했어요. 이 사람 유골을 가져올 수 없겠느냐고 물었죠. 답변은 같아요. 나는 법적인 연고자가 아니라서 안 된대요. 구청에 찾아가려고도 했지만 와도 별 소용이 없다고 했어요. 법. 법. 구청장을 직접 만나서 내가 유골을 달라고 말하면 들어 줄까요. 그럼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구청장이 그걸 함부로 해줄 수 있나.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다 해주지.

 

마누라 뼈가 아직 용미리 추모의 집에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 있어요. 내가 한이 맺혀요. 추모의 집은 자물쇠로 잠근대요. 왜 내가 못 가져오게 하는 거죠? 시신 가지고 장난치는 건가요. 거기 있는 그 사람, 불쌍해요. 아냐, 불쌍할 것도 없죠. 이미 죽었는데요 뭐. 그런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10년 안에 유골을 찾을 거예요. 돈을 1억 줘서라도요. 그 사람 찾아서 수목장을 하고 싶어요. 절이 있는 고요한 곳을 봐뒀는데 거기에 묻고 싶어요. 그게 제일 좋을 거 같아요. 마누라 유골함을 받아 들게 되면 “여보, 좋은 데 가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이야기밖에 없어요. 아직도 내가 장례를 못 치르고 유골을 찾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한이 맺혀 있어요. 오죽하면 집에 가면 “여보, 내가 좋은 데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해요. 우리 집에 내가 인사를 한다니까요.

 

그 사람 죽고 옷은 다 버렸어요. 자주 쓰던 핸드백 하나는 버리기가 힘들어서 놔뒀어요. 이것도 방 안이 아니라 거실에 뒀어요. 생각이 나서 잠을 못 자요. 또, 내가 불을 끄고 자지를 못해요. 마누라가 올 거 같아서요. 불을 꺼두면 그 사람이 집에 못 들어오잖아요. 나는 지금도 마누라 생각나서 미치겠어요. 주위 사람들이 위로해도 와 닿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는 미우나 좋으나 그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해요. 왜 이렇게 빨리 이렇게 죽었는지, 장례는 왜 못 치렀는지. 그 사람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새벽이면 생각이 나요. 제 심정을 아세요?

 

서울시립 용미리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 안치된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함.
 

- 살아생전 ‘부부’였던 당신과 나, 죽음으로 남이 되었다

 

김 씨는 말을 할 때마다 자신이 아는 모든 단어를 동원해 고통을 표현했다. 그는 20년간 같이 살았던 부인의 죽음과 더불어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는 죄책감,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사실, 부인의 유골이 무연고 추모의 집에 있다는 것 등을 견뎌내지 못하고 있었다. 김 씨는 “법이 이런 것을 어떡하냐”는 포기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방법을 찾아보려 구청에 또다시 전화한다. 그러면 구청에서는 김 씨가 ‘연고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반복한다.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인의 유골조차 인수하지 못한다. 강 씨의 유골은 용미리 추모의 집에 10년 동안 안치된다. 유골함은 법적 연고자만이 찾을 수 있으나 그의 법적 연고자는 찾아지지 않고, 그의 유골함을 찾고 싶은 이는 법적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찾을 수 없다. 살아생전 ‘부부’였던 이들은 죽음 이후 제도의 미세한 틈에 빠져 영영 남이 되어버렸다. 또다시 이별이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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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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