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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교차하는 장소로서의 장애, 장애예술
언리미티드 페스티벌 참관기 ②
등록일 [ 2018년12월05일 18시44분 ]

>> 언리미티드 페스티벌 참관기 ① 이어서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런던 템즈강 유역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개최된다.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이고 런던의 중심이기도 하다. 유명한 관람차인 런던 아이(London Eye)가 코앞에 있고 길을 건너면 대표적인 관광지인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빅뱅이 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엔 관객들로 사우스뱅크 센터가 가득 찬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수어(수화언어)로 대화하며 사우스뱅크 일대를 활보한다. 언리미티드가 소위 장애예술 ‘주류화’의 성공사례로 불리는 이유다.     

 

언리미티드의 성공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짧은 기간 관찰 결과, 다음의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첫째,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장애인’들의 예술축제가 아니라 ‘장애’라는 이름으로 묶인 소수자들 모두의 축제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소외된 정체성들이 장애라는 장소에서 상호교차한다. 둘째, 언리미티드는 런던 혹은 영국의 장애예술축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장애라는 수평적 정체성(horizontal identities)의 축제다. 아쉽게도 이 두 가지는 우리나라 장애예술계가 모두 가지지 못한 것이다. 하나씩 더 자세히 살펴보자.

 

런던에 위치한 유니콘 극장. 로고가 쓰인 정문 사진이다.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을 소개하는 입간판이 화면 오른쪽에 서 있다
 

- 성소수자, 색맹, 난독증이 모이는 장소로서의 장애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 런던의 유니콘 극장(Unicorn Theater)에서 열린 오리엔테이션과 심포지엄 동안, 발표자들 대부분은 자신을 장애가 있다(“I am disabled”)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장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난독증이 있다거나, 색맹이 있고, 뇌전증이 있고, 우울증이 있었거나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을 장애인으로 지칭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 상태들은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라면 법률적인 장애 개념에 포함될 여지가 있지만, 개인들이 스스로 이 상태들 때문에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규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처럼 언리미티드에서 장애는 아주 넓은 인간 신체, 혹은 정신 경험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편, 공연에 참여하는 예술가 중에는 성소수자들이 많다. 난민 부모 아래에서 자랐고 트렌스젠더인 예술가의 공연도 열린다.

 

함께 언리미티드를 참관하고 온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의 오세형 팀장은 이 다양성에 대해 이렇게 쓴다.

 

“발표자들은 모두 다중적 정체성(Multiple Identities)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자인 소냐 다이어(Sonya Dyer)가 정체성의 상호교차성(Multi-sectionality)을 화두로 던지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아트센터 관장인 마를렌(Marlene Le Roux)은 장애인, 여성, 흑인으로서 살아왔던 복합적 정체성의 갈등과 투쟁의 역사를 카리스마 있는 어조로 풀어놨다. 영국의 말로우 극장에서 축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타릭(Taric Elmoutawakil)은 알제리 이주자, 퀴어, 유색인종, 장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은 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 사는 샌디(Sandie, Chun-Shan)는 선천적으로 손가락이 두 개인 장애를 가졌는데, 미국에서는 소수인종이자 유색인이고 대만에 돌아가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은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공유했다. 오히려 빈에서 활동하는 안무가이자 퍼포머인 마이클(Michael Turinsky)이 자신은 언어장애(뇌성마비)만 가지고 있는 너무 단조로운 예술가라고 자조할 정도였다.” (오세형, “장애예술축제, 문화적 영향력 확장의 최전선에 서다”, 웹진 이음 http://ieumzine.kr/archives/72984)
 

페스티벌 시작 전 진행된 심포지엄의 토론행사 모습. 화면 오른쪽에 수화통역사가 있고, 왼쪽부터 세 명의 예술가, 기획자들이 앉아 의견을 말하고 있다

장애예술을 어떻게 정의할지는 오래된 과제이다. 일반적인 예술과 ‘장애’예술을 굳이 구별할 이유가 있을까? 있다면 이때 말하는 ‘장애’의 개념은 무엇인가. 이에 관한 논쟁은 영국도 동일한 듯 보이지만, 적어도 예술 영역에서 영국은 장애의 개념을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위치시키는 하나의 장소로 이해하는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장애를 위치시키는 일에는 여러 부담이 따른다. 예를 들어, 약한 수준의 난독증이나 색맹이 있는 사람이 장애인임을 자처한다면, 정말로 사회적 차별과 빈곤에 시달리는 장애인의 현실이 그저 ‘약간 불편하지만 다양한’ 정도의 경험으로 희석되는 것 아닐까? 반대로, 난독증이나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이 ‘장애인’이라는 집단에 포함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논란이 영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까지 조사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점은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넓은 장애 개념을 인정하고, 장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사회적 조건에 놓인 사람들(성소수자, 만성질환자 등)의 경험이 교차한다는 점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장애예술이라는 개념을 긍정하되 장애의 경험을 넓게 이해하고, 장애예술 페스티벌을 인정하되 장애인에 해당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들을 포용하는 형식을 취하는 셈이다.

 

발달장애인 예술가의 작업(흰색, 노란색, 분홍색의 끈들이 아래로 늘어뜨린 설치물) 아래서 필자가 왼팔을 들어 올리고 오른팔은 반대로 내린 채 자세를 뒤로하고 신나있다
 

이렇게 ‘열린’ 장애개념 및 페스티벌의 형식을 취할 때의 장점은 대중적 성공이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만큼 예술의 형식과 주제도 다양하고, 참여 가능한 역량 있는 예술가들의 숫자도 더 커진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문제도 발생시킨다. 제도권 예술교육에서 소외되기 쉽고, 주류적인 예술적 감수성을 가진 관객들에게 외면받기 쉬운 중증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의 참여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언리미티드는 이를 절묘하게 절충하고 있다. 1편에서 소개한 줄리 클레비스(Julie Cleves)는 분명 우리의 이해에서도 ‘중증’ 장애여성이지만 그녀는 이 축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발달장애인 예술가들도 언리미티드 페스티벌 행사장 곳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발표한다. 물론 제2, 제3의 줄리 클레비스가 등장할 기회를, 제도권 예술 교육을 받은 성소수자 연극배우가 차지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한국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장애예술 축제는 아직 초기단계기는 하지만, 적어도 ‘장애인’이라고 복지카드가 증명하는 장애인들의 축제로 제한되고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어려운 조건에서 예술가로서 성장의 계기를 얻고자 하는 (중증) 장애인 예술가들이 더 많은 참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반면 주류예술과 분리된 ‘장애인들의 축제’라는 시각을 강화할 위험이 있고, 참여가능한 예술가들의 수도 제한되어 공연의 전체 질이나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을 위험도 있다. 이는 분명 장·단점이 분명한 문제인데, 한국의 경우 아직 장애인 예술가들이 제도권 교육은 물론 다양한 예술복지정책에서도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우리나라의 장애예술 축제나 기획이 취하는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점은 지적하고 싶다. 우리나라 장애예술 관련 기획들이, 이를테면 ‘성소수자’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들이 장애인들과 함께 ‘묶이는’ 이 기획을 기꺼이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가 더욱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 인권, 예술 분야에서 오랜 기간 노력해온 주축들은 과연 자신의 특정한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고 장애를 다른 소수자들과 연결된 상호교차적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동안 헌신해온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다른 소수자들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하는 장애계 리더들이 있음을 보아온 터라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 국경과 사회를 가로지르는 정체성의 향연

 

런던에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몰려온 장애가 있는 예술가들이 다수 살고 있다. 언리미티드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지체장애 여성 샌디(대만 출신)와 오스트리아에서 온 무용수 탄야(Tanja)도 런던에 살며 예술 작업을 한다. 페스티벌에는 핀란드, 스위스 등 유럽국가뿐만 아니라 짐바브웨에서 온 브레이크 댄서,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한국, 스리랑카 등에서 언리미티드를 보러 온 참여자들로 북적인다. 런던은 국경을 가로지르는 장애인 예술가들이 집중하고 교류하는 거점이 되었다.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에 전시된 페인팅 작품의 하나. 창조적 탁월성을 위해 장벽을 제거하기, 권익옹호(어드보커시)를 훈련하기, 협동을 촉진하기 등의 표어들이 참가자들의 캐리커처와 함께 그려져 있다
 

내가 런던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영국 장애인들은 르완다,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영국 장애예술운동을 전파하고 공연을 함께 기획하는 일에 참여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들의 작업이 한국의 장애예술가들에 비해 엄청나게 뛰어나거나 독창적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런던이라는 국제교류의 중심지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로 전 세계로 활동영역을 넓힌다.

 

한국어를 사용하고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활동으로 나아가기 무척 어렵다. 특히 장애인들의 상황은 더 제한적이다. 제도권 예술교육에서 소외될 뿐 아니라 장시간 비행에 필요한 신체적 조건과 경제적 여건을 가진 경우도 드물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은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원활하게 사용할 정도의 교육기회나 국제경험을 하기가 어렵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장애인들은 소외되어 있지만 소외된 그 사람 중 일부는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수평적으로 저 멀리 떨어진 다른 장애인들과 손을 잡고 연대한다. 우리는 그러기에 무척 불리한 위치에 있다.

 

이 점이 언리미티드를 보며 내가 느낀 가장 커다란 답답함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만난 장애인 예술가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사회운동과 공연예술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며, 수준 높은 음악적, 미술적 성취를 이루어내는 장애예술가들이 이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고립 상태에서 벗어나 세상과 교류하고 협력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장애예술의 이른바 ‘리더’들, 정책결정자들의 상상력과 투자는 더 먼 곳으로 향해야 할 것 같다.

 

영국의 한 지도전문서점의 바닥을 찍은 사진이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의 서부와 카자흐스탄 등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이 보이는 지도가 바닥에 깔려있고, 양편으로 책꽂이의 아랫부분이 보인다
 

그러나 내가 본 세계는 전 세계 장애인들의 삶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보다 훨씬 더 고립되어 있고, 소외된 수천만 명의 장애인들이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에 온 그 장애인들은, 어쩌면 세상의 극히 단면만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장애예술이 ‘주류’의 척도를 문제 삼고, 늘 소외된 영역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지향을 놓지 않는다면,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이 보여주는 다양성과 교류로부터 소외된 거대한 세상의 나머지 부분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영역일지 모른다. 나는 영국의 예술가들과 한국의 예술가들이 더 많이 교류하기를 바라지만, 다른 한편 우리가 중국, 네팔, 몽골, 스리랑카, 짐바브웨, 르완다, 코스타리카, 나아가 북한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과 더 많이 만나 인권, 예술,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려는 시도들을 꿈꿀 방법은 무엇인지가 더 궁금하다.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비마이너 출범부터 함께 했지만 1년에 글 두 개 쓰는 게으른 칼럼니스트.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을 썼다. 법, 장애, 예술에 관심을 두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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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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