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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도 쪽방, 죽어도 쪽방이오
[무연고사 기획] 애도 되지 못한 슬픔, '처리'되는 죽음 ④
쪽방에 사는 ‘예비’ 무연고 사망자들
등록일 [ 2018년12월07일 21시58분 ]

- 우리는 살아도 쪽방, 죽어도 쪽방이오

 

“내가 지금까지 이 동네 주민 한 팔십다섯 사람 장례 치러 줬을 거야. 싹 다 무연고자지 뭐, 나도 죽으면 그렇고.” 김정길 씨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가 앉아있는 곳은 동자동 새꿈희망 방범초소. 그는 쪽방촌이 있는 동자동의 방범대원이다. 명칭은 '방범'이지만 그가 실제로 하는 일은 범죄와 거리가 멀다.

 

"동네 사람 누가 한동안 안 보인다, 그러면 방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려보다가 대답이 없으면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혹시 죽었나. 얼마 전에도 한 사람이 방에서 죽어서 방치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어떤 때는 주민들이 우수수 죽어 나갈 때가 있어요. 그럼 한 번에 네다섯 명씩 장례해. 무지하게 바빠요.“

 

쪽방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 단절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이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김 씨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 가장 깊숙이 개입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무연고자의 죽음은 개죽음”이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죽으면 차(장의차)에다 싣고 가잖아요. 그런데 무연고자면 개죽음이요, 개죽음. 그냥 봉고차에다가 관을 물건 쌓듯이 세 개고 네 개고 쌓아서 화장터로 가는 거예요."

 

종종 관절이 굽은 채로 죽어버린 사람을 수습할 때도 있다. 관에 바로 뉘려면 뼈를 펴야 한다. 하지만 무연고자의 경우 이 절차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고 김 씨는 말했다. “그냥 관 문도 제대로 안 닫고 바로 태워버리더라고. 관 들고 화장터 들어가는 건 주민들 몫이잖아? 문 열려있으면 냄새가 확 나요. 그래도 어쩔 거야. 무연고자는 그런걸.”

 

지난 10월 17일, 서울시립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에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이 추모의 집 안에서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다. 양옆으로 추모의 집에 안치된 무연고 사망자들의 유골함이 보인다.
 

유골이 모셔지는 납골당도 무연고 사망자는 다르다. 지난 10월 17일, 홈리스행동과 조계종 등 빈민·사회·종교단체들이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를 치렀다. 이날 동자동 주민들도 위령제를 찾았다. '쪽방 같은 공간들‘. 무연고사망자들이 모여있는 납골당의 첫인상이다. 거대한 도서관 서고함같은 공간에 유골함이 숨 쉴 틈도 없이 들어차 있다. 어디에 어떤 유골함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거대한 서고함을 몇 개고 이동하면서 일일이 찾아야 한다. 김 씨는 “우리는 살아서도 쪽방, 죽어서도 쪽방이요”라고 짐짓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친하게 지내던 동네 주민 고(故) 김두천 씨(역시 이곳에 모셔져 있다)가 또 다른 홈리스를 기리며 썼다는 시를 읽다가 그는 기어이 눈물을 쏟았다.

 

진철이 (김두천 지음)

 

진철이가 갔단다

집 없는 진철이가 갔단다 어딘지 몰라도 갔단다

공원 맞은편 쓰레기통 옆에 허름한 텐트를 쳐놓고 살다

영영 저 세상으로 갔단다

두 겨울을 한뎃잠 자더니

마흔 갓 넘은 젊디 젊은 나이에 숨을 놓았단다

여비도 없을 텐데 어떻게 갔을까

 

간경화에 암이 번졌는데 거기다 대고

날마다 술을 퍼붓던 진철이가 갔단다

진철이가 갔는데 왜 이다지도 내 마음이 허전하고 울적할까

어저께는 우리 쪽방 사람들끼리 모여서

돈 몇천 원 몇만 원 호주머니 털어서 상을 차려 주었다

응곤이 형님, 만 원만 빌려주씨요

손에 만 원을 거머쥐고 진철이 영전에 절을 하고 지폐를 놓았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잘 가소

저세상에서는 술 먹지 말고 잘 가소

 

젊은이들이 자꾸 떠난다

올겨울엔 또 누가 갈까

술 한 잔 들고 나니 눈이 발개졌다

아하,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단 말인가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든 것은 김정길 씨뿐만이 아니다. 김 씨는 “사람들이 (무연고 사망자 화장 및 장례에) 한 번 왔다가 그다음부터는 잘 안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늘(합동 위령제)도, 어제까지는 분명 예닐곱 명 더 오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아침 되니까 ‘아이고, 형님 나 도저히 못 가겠소’하고 그냥 안 와버려. 왜냐고요? 아무래도… 보기가 힘들지 이런 모습을.” 이러한 감정들은 살아생전 나와 함께 살았던 이의 죽음이 대충 ‘처리’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더불어 바로 나의 죽음의 모습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거의 100%에 가까운 확신에서 비롯한다.

 

지난 10월 17일, 서울시립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 앞에서 열린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에 참여한 동자동 거주자 한 사람이 무연고 사망자들에게 헌주한 후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내 삶에도 소중한 조각이 있다

 

"동자동에, 워낙 풍파 겪고 흘러온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다 보면, 사회에서 밀려난 약한 사람들이지. 우리한테야 소중한 것들이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겠습니까.“ 동자동 주민 김정호 씨가 웃으며 말한다. 주민들 살림살이며 건강까지 살뜰히 챙기는 김 씨는 동자동 사랑방 교육이사로 선출되기도 했다. 김 씨 역시 동자동 주민들이 사망한 경우 시신을 수습하고 방을 정리해본 경험이 많다.

 

“사람들 죽어서 짐정리하러 들어가 보면, 그 작은 방 안에 나름 자기 추억이 있는 물건들을 다 감춰놓고, 소중하다고 모아놓더라고요. 하다못해 아파서 병원에서 입던 환자복도 깨끗하게 빨아서 개어놨더라고. 청소하는 우리야 쓰레기라고 다 버리지. 그런 걸 보면, ‘우리한테는 나름 소중한 삶이고 기억인데 이게 결국은 쓰레기 되는구나’싶어요.”

 

김정호 씨 역시 무연고 사망자들이 ‘처리’되는 방식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김 씨는 “무연고자 관은 기분 나쁘면 턱 놓고 좋으면 살살 놔요. 보자기 하나 덮기도 하고 옷 입은 채 그냥 화장하기도 하고. 없는 사람들은 죽어서도 홀대를 받는다고 할까”라고 말했다. 이어 “혼이라는 게 정말 있다면 돌아가신 분들이 이 모습 보고 참 어떻게 생각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씨는 “약자는 아무리 날고 기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약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이야기 오래 하면 텁텁해요”라며 먼 곳을 바라보던 김정호 씨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갑자기 생각났다”며 자신이 쓴 글을 읽어준다.

 

“행실만 달랐지 나 자신도 언젠가 똑같이 버림받고 쓸모없이 될 텐데. 쓰레기를 그렇게 모질게 짓밟는가. 쓰레기도 편히 쉴 곳에 버려주면 안 될까. 이 세상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동자동에선 추석 등 명절 때 고인의 영정을 모신 차례상을 차리며 제사를 지낸다. (사진 제공 : 김정호)
 

- 죽음이 가까운 사람들

 

모든 사람에게 한 번의 삶이 약속되었듯, 한 번의 죽음 역시 약속되었다지만 그 죽음이 더 가까운 이들은 분명히 있다. 쪽방과 고시원, 거리노숙을 하는 이들의 건강상태는 매우 좋지 않다.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그렇다.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신체의 병으로 죽고, 나머지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김정길 씨는 “암인지도 모르고 참다가 죽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자살하는 사람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통계적으로도 뒷받침된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2016년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쪽방 거주자 중 자신의 건강 상태가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은 66.6%였다.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2.9% 있었으나, 25.5%가 치료를 받지 못했다. 고혈압과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이 42.9%, 심장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도 11.5%에 달했다. 우울증 역시 두드러졌는데, 쪽방 거주인 중 82.6%가 우울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아플 때 한 번이라도 병원에 가지 못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쪽방 거주자의 29.7%가 '있다'고 답했고, 그중 가장 많은 비율인 71.2%가 병원비 때문에 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하는 정승희 씨(가명)는 요즘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소화기관이 좋지 않아 밥 반 공기도 채 못 먹는다. 복지관에서 배달받는 도시락을 조금씩 아껴 먹다 보니 상하거나 곰팡이가 피어도 그 부분만 걷어내고 먹는 탓일 거라고 정 씨는 추측한다. “그래도 하는 수 있나. 집세는 못 깎지만 내 입에 들어가는 건 아낄 수 있잖아요”라며 정 씨는 웃어 보였다. 치아가 몇 개 빠졌지만 치과 치료비가 워낙 비싸니 인공 치아는 엄두도 못 낸다. 지금보다 젊을 때 식당일이며 공사장이며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온몸의 관절도 다 망가졌다. 계단을 더 이상 오를 수 없게 된 정 씨는 하는 수없이 월세가 더 비싼 1층으로 방을 옮겼다.

 

그는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에서 용종이 다수 발견됐다. 주변 사람들은 ‘대장암 된다’며 어서 병원에 가보라고 걱정하지만, 정 씨는 “알아봤자 돈도 없어서 치료 못 받는다”며 제대로 검사받을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건강 상태를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볼수록, 정 씨에게 걱정되는 것이 있다. 가족에게 자기 죽음이 알려지는 것이다.

 

동자동에선 주민이 사망하면 부고를 붙여서 주민들에게 알린다. (사진 제공 : 김정호)
 

- 삶은 죽음 이후 다시 한번 전시된다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부고를 알리는 것은 곧 그 삶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2016년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쪽방 거주인의 67.6%가 가족이나 친지, 즉 법적 연고자 중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삶은 죽음 이후에서야 가족들에게 알려진다. 죽음을 드러내는 것은 곧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 부고를 접하고 찾아온 가족들에게 보이는 것은 시신뿐만이 아니다. 고인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얼마의 재산과 빚을 가지고 살았는지까지 낱낱이 ‘전시’된다.

 

정 씨의 가장 큰 걱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보다 못한 관계’였던 이들이,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자신이 살았던 모습을 알아야 하는지, 정 씨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죽었는데, 그쪽(가족)에서 만약에 누가 찾아왔다. 그러면 내가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거 같아서. 연락이 안 갔으면 좋겠어요. 그냥 여기 동네 주민들이 알아서 정리해주면 좋겠는데. 차라리 주민들은 '아이고 정 씨가 죽었대‘, '아이고 혼자 안됐네' 하고 말 텐데. 가족들은 죽었다는 소식도 내 소식이라고 듣기 싫다고 할 거 아녜요.”

 

정 씨의 어머니는 ‘두 번째 부인’이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정 씨는 '큰어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고, 배다른 형제들의 무시와 차별을 겪어야 했다.

 

“아주 말도 못 해요. 가족들 이야기는 별로 안 하고 싶어. 부모님 돌아가시고 거의 수십 년간을 안 봤는걸요. 다시 봐야 한다고 하면 도망갈 거야. 그러니 내가 죽으면 가족한테 연락이 간다,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요. 아이고 절대로 연락이 안 가야 할 텐데.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몸이 자꾸 안 좋아지니까 죽는 게 제일 큰 걱정이 되더라고요. 아주 자나 깨나 그걸로 머리가 터져요. 연락도 오래 안 했는데 가족이라고 연락 가는 법 좀 제발 좀 없어졌으면 좋겠구만은.“

 

정 씨의 소망은 단순하다. 자신이 사망했을 때, 연고자에게 연락하지 않고 동네 주민들이 ‘조용히’ 자기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다. “사람들 많이 오지 않아도 돼요. 그냥 조용히 화장해서 뿌려줬으면 좋겠어요.”

 

쪽방 주민들은 살면서 많은 차별을 경험한다. 자신의 피가 묻자 ‘더럽다는 듯이’ 얼굴에 피를 문질러 닦는 간호사에게 항의의 말을 삼키고(정승희), 유통기한 며칠 남지 않은 음식을 동자동에 ‘기부’한다고 온 이들이 웃으며 사진 찍어가는 것을 본다(김정호). 쪽방에 산다고 지키고 싶은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건만, 사회는 이들의 삶을 싸잡아 납작하게 만들기 일쑤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 나의 존엄한 죽음을 쥐고 있다는 막막함과 ‘짐짝’처럼 취급되는 이웃의 시신에서 반드시 도래할 나의 죽음이 어른거릴 때, 이들은 죽음 이후에도 지긋지긋하게 이어질 차별을 감지한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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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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