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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문제에 복잡한 서류 절차까지… 대책 절실한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
[무연고사 기획] 애도 되지 못한 슬픔, '처리'되는 죽음 ⑤
국내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 장례
등록일 [ 2018년12월11일 18시18분 ]

2016년 2월 29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러시아 국적인 고인분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있었습니다. ⓒ나눔과나눔
 

2016년 2월의 마지막 날,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도착한 서울시립승화원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사람들의 검은 옷 색깔과 대비되어 하얗다기보다는 차가운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흑백의 풍경보다 이날 장례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장례를 치른 분이 바로 러시아 국적의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1961년생 고(故) 슐라예바 루○○○(Shulayeva Lu*****)라는 이름을 한글로 적은 위패를 들고 운구차 앞에 서있는 경험은 무척이나 낯설었습니다. 고인은 경기도의 한 도시에 거주하다 2015년 12월 말 심폐부전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연유로 머나먼 한국 땅에 오셨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망 후 러시아에 거주하는 유가족들이 시신을 인수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의 손에 들려진 고인의 이름은 하얗게 덮인 승화원의 풍경과 왠지 모르게 어울렸고, 그건 아마도 러시아가 배경인 영화 속에서 ‘눈’ 덮인 동토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고인은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장례를 치렀고, 고향으로 되돌아가듯 눈 내리는 날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2016년부터 ‘나눔과나눔’에서 활동하면서 만남과 이별을 경험했습니다. 공문 속 ‘무연고 사망자’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나 보통 이틀 만에 장례를 치르니 고인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이틀 정도입니다. 이렇듯 짧은 시간 안에 만난 고인은 이미 800분이 넘었고, 800번이 넘는 이별을 경험하면서 유독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름들은 바로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들입니다.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 한국사회 적응 못 해 비극적 선택

 

나눔과나눔 활동가가 되기 전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자원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015년 12월 29일 오후 2시 영등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만난 고(故) 위○○ 님은 화교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중국집을 운영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고, 한때는 부유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친의 사망 후 가족들의 생활은 급격히 어려워졌고,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위○○ 님은 가게 운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중국집을 그만두고 울타리 밖으로 나간 위○○ 님은 언어라는 커다란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게 안에서 주로 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어를 쓸 기회가 없었고, 서툰 언어로 사회에 나온 10대 후반의 청년에게 사람들은 상처를 주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품 안에 숨어버린 위○○ 님은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 기초생활수급비로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주인으로부터 월세를 올려주지 않으면 방을 빼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위○○ 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삶을 포기했고, 여동생은 형편이 어려워 오빠의 시신 인수를 포기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여동생은 고인이 생전에 사회부적응자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오빠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낯선 땅에 정착하는 ‘중도입국 청소년’, 사회적 고립이 위험성 높여


장례를 치른 후 머릿속에 한 소년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2013년부터 한국에 사는 이주 청소년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악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들 중 ‘중도입국 청소년’으로 분류되는 친구들의 문제가 2015년 당시 뉴스에 간간이 보도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집안 사정(국제결혼, 결혼 이민 등)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사는 14~24세 사이의 학생, 청소년, 성인들을 통칭하여 ‘중도입국 청소년’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본국을 떠나 낯선 땅에 와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데 가장 큰 문제는 한국어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초등학생의 경우 학교 진학이 가능해 쉽게 적응할 수 있지만, 중학생 이상은 곧바로 학교에 진학해 적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부모님이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집안에 방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년 중 한 중국인 친구 역시 ‘중도입국 청소년’으로 어릴 적 부모님이 한국에 취업하느라 중국에 홀로 남겨졌다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주로 중국 친구들과 대화하는 편이라 다른 국적의 친구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수업 중에도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친구들과 달리 잠을 자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어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리하시는 선생님을 통해 그 친구가 학교 두 군데를 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주로 본국으로 다시 돌아가 친척들에게 맡겨지거나 다시 한국에 재입국하여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취업하지도 못하고 방치되는 상황에 처해지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 산하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등 중도입국 청소년들의 정착을 위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곳을 거치면서 순조롭게 적응한 청소년들은 이후에도 대학 진학과 취업 등의 기회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지내다 가족들과의 갈등을 겪고 가출을 하는 등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양부모 사망으로 다시 친부에게… 그러나 ‘가족 갈등’으로 단절 후 무연고사

 

2018년 7월 고(故) 이○○(Li *****) 님의 장례에 20대 초반의 아들이 참석했습니다. 부자의 사연은 남달랐습니다. 아들은 어릴 적 한국에 입양되어 살다가 양부모가 사망하면서 친부인 이○○ 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입양을 보낸 아버지는 목수 일을 하면서 근근이 살았는데, 어느 날 다시 돌아온 아들과 자주 갈등을 빚었습니다. 문제는 도박이었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19세에 독립을 했고, 인쇄소에 다니면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만나기는 했지만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아들은 기어이 연락줄마저 끊고 살았습니다. 2018년 6월 이○○ 님은 거주지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고, 중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들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장례를 치를 형편이 되지 않아 아버지의 시신을 위임해야만 했고 이에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올해 7월, 중국 국적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무연고자 전용 빈소. 형편이 어려워 시신을 위임했지만 아들이 참석해 종교의식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눔과나눔
 

10년이면 통일이 될까요? 무연고자가 될 수밖에 없는 탈북민들

 

2017년 8월 무연고 사망자 고(故) 이○○ 님의 장례가 진행되고 있는 가족대기실 안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던 분들은 이○○ 님과 함께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온 분들이었습니다. 이○○ 님은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하여 죽을 고생을 하다 태국 방콕에 있는 감호소까지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님은 당시 병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자택에서 돌아와 계시다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탈출 과정에서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해 몸이 망가진 상태로 입국해 면역력이 낮아 병을 이길 체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분들은 “살기 위해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고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열했습니다. 탈북민 중 한 분이 고인의 유골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습니다. 10년 동안 ‘무연고 추모의 집’에 안치되었다가 이후 땅에 묻힌다는 이야기를 드렸을 때 들은 한 마디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가족들이 찾아와야 하는데, 10년 안에 통일이 되겠습니까?”

 

외국인이면 병원비도 비싸, 감당할 수 없어 유족은 ‘시신 포기’ 

 

2018년 1월 무연고 사망자 고(故) 문○○ 님의 장례에서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문○○ 님의 유가족들은 전날 서울시립승화원을 찾았다가 화장일이 다음 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날짜를 잘못 알려주어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문○○ 님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2017년 12월 말 한 병원 응급실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세 시간 만에 병원비가 500만 원이 나왔습니다. 가족들은 병원비가 많이 나와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문○○ 님은 가족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이튿날 아침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사이 병원비가 800만 원 가까이 나온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유가족들은 그 이유가 외국인이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문○○ 님은 중국인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은 병원에 사정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시신 인수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고인의 어머니와 딸은 형편이 어려워 장례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마음만 아파해야 했습니다.

 

돈 문제 해결해도 복잡한 서류 절차에 결국 좌절

 

이처럼 외국인이 한국에서 사망했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병원비, 안치실 비용, 그리고 장례 및 시신 운구에 필요한 차량 비용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어 유가족이 장례를 치를 경우 입국 절차에 필요한 서류로 사망진단서(또는 사체검안서)와 공증 서류들, 대사관의 사망 확인서, 사체 인도서 등이 필요하고, 화장한 유골을 해외로 보내는 경우에는 화장증명서를 해당 국가의 국어로 번역하여 공증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만약 유가족이 없거나 시신을 위임하여 무연고자로 처리해 화장할 경우 사망진단서(또는 사체검안서), 국내거소확인증(외국인 등록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 등이 필요하고, 만약 불법체류자일 경우에는 대사관에 화장허가증이 필요합니다.

 

올해 9월,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대만 국적의 어르신 장례. 한쪽 벽면에 마련된 추모 공간엔 생전에 어르신을 만났던 마음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눔과나눔
 

2018년 9월 나눔과나눔에 한 지역 복지단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해당 단체의 돌봄 어르신 한 분이 사망하여 장례를 치르고 싶은데, 알고 보니 한국에서 태어나 고아로 자라다 대만 국적의 양부모에게 입양이 된 특이한 이력의 분이었습니다. 형제자매가 계셨지만 가족관계가 단절되어 지역의 한 쪽방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건강이 악화하면서 가족과 연락이 닿았지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가족들은 어르신의 사망 소식에 장례 없이 바로 화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복지단체는 어르신의 장례를 꼭 치르고 싶어 했고, 그러기 위해선 우선 가족들을 설득해야만 했습니다.

 

어렵게 가족 허락을 받고 나자, 장례식장은 화장에 필요한 서류인 외국인 국내거소 확인증 원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민센터에 방문해 확인증을 발급받으려 하니 담당 공무원은 가족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인은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가족관계증명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동생분이 대사관에서 외국인 가족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모든 서류가 갖춰지고 난 후에도 구청과 출입국 관리소에 전화를 걸어 화장에 필요한 국내거소 확인증을 발급해줘도 되는지 확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요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관공서 업무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확인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고 장례식장에 서류 발급 사실을 확인시킨 후 화장 예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점점 늘어가는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 대책 절실

 

2017년 기준으로 3만 명을 넘은 탈북자와 2008년 이미 100만 명을 넘은 이주노동자(미등록 경우도 25만 명 추산) 등이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상당수는 가족과 떨어져 국적, 비자 문제 등으로 아파도 제대로 된 의료 수급을 받지 못하고, 협소한 관계망 등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소외되어 죽음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극적으로 살다가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사망하는 숫자는 점점 늘어, 나눔과나눔도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한 2015년 이후 2018년 현재까지 국외 국적자 및 탈북자의 무연고 장례를 치른 경우만 30여 건입니다. 물론 사회공헌 측면에서 이주노동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상조회사나 국제장례지원센터 등 이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활동이 있지만, 점차 사회문제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사회적인 관심과 대안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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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나눔과나눔 전략사업팀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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