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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만의 변화, 장애등급제 폐지의 근본을 톺아보다
[2018 결산 기사] ① 장애등급제 폐지
‘등급제 폐지 투쟁’은 왜 복지예산 확대 투쟁이 되었나
등록일 [ 2018년12월26일 11시22분 ]

2018년 연말을 맞아 비마이너가 보도한 올해의 주요 이슈를 되짚어 봅니다.

 

31년 만의 변화를 앞둔 장애등급제 폐지, 특수학교 폭력 사태와 장애아 부모 사망으로 올 한해 언론에 끊임없이 호출된 발달장애인, 지하철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로 다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더더욱 불법의 벼랑에 내몰린 활동지원제도,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비마이너가 주목한 올해의 결산 기사를 보도합니다.

 

내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장애등급제 폐지를 앞두고 올 한 해 장애계는 치열했다. 장애계와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를 꾸렸으나 이는 사실상 형식적인 논의 테이블에 불과했고, 복지부는 장애계 요구와 맞지 않는 안들을 지속해서 내놨다. 결국 장애등급은 중·경증으로, 활동지원에 대한 인정점수표는 종합조사도구로 바뀌었을 뿐, ‘장애등급이 아닌 욕구에 따라 복지서비스를 지원하라’는 근본적 요구는 무시당했다. 이에 분노한 장애계는 올 한 해 예산 확대 투쟁을 거세게 했으나 결국 국회 파행으로 내년도 예산은 크게 증액되지 못했다. 2010년 장애등급 재심사 의무화로 촉발된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의 기원과 흐름을 되짚으며, 내년도 예산을 통해 2019년도 상황을 예측해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활동가 30여 명이 지난 11월 5일, 국회의원회관 앞에서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고 “예산 없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사기”라며 국회에 내년도 장애인 복지 예산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 2010년 등급 재심사가 촉발한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

 

1988년 도입된 장애등급제는 장애인복지의 당연한 패러다임으로 인식됐다. 이 당연한 것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장애등급 재심사가 도입되고 나서부터다. 2007년 도입된 등급 재심사는 2010년부터 의무화됐다. 당시 복지부 보도자료(2010.6.17)를 보면, 2007~2010년 3월까지 총 9만 2817명을 대상으로 등급 재심사를 한 결과, 등급이 오른 경우는 0.4%(352명)에 불과했고, 등급이 하락한 경우는 36.7%(3만 4064명)에 달했다. 이 중 1급에서 2급으로 하락한 경우는 25.6%(7878건), 2급에서 3급으로 하락한 경우는 28.2%(1만 6338건)였다.

 

등급 하락은 활동지원 탈락으로 직결됐다. 2010년 7월 30일, 장애인연금법이 시행되면서 1~중복3급 장애인에게 장애인연금이 지급됐다. 장애인연금을 신청하기 위해선 등급 심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는데, 등급 하락이 속출하는 분위기 속에서 장애인연금 15만 원(기초생활수급자 기준)을 받기 위해 등급 재심사를 선택하는 건 무모했다. 등급이 하락하면 활동지원(1급)가 끊기고, 장애인콜택시(1~2급) 이용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장애계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사회서비스 권리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른바 장애등급제폐지공대위)’를 꾸리고, 그해 9월 등급 심사 폐지를 요구하며 장애심사센터를 기습 점거하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다.

 

이들은 등급 재심사가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의 신체를 자르고 늘렸던 그리스 신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다고 분노했다. 정부가 복지 욕구를 반영해 예산을 책정하는 게 아니라, 예산에 맞춰 ‘중증장애인 수’를 늘렸다 줄였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엔 병원 의사가 장애 정도를 판단해 등급을 결정했다면, 복지부가 등급 재심사를 의무화하면서 의사는 소견서만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공단의 장애심사센터가 등급을 결정하게 되었다. 장애등급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가 정부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장애계는 “활동지원과 장애인연금으로 장애인복지예산이 점차 확대하자 중증장애인 수를 축소해나가기 위한 명목으로 정부가 등급 재심사를 도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활동지원과 장애인연금이 도입되기 전 2006년 장애인정책국 일반회계 예산은 1935억 원(보건복지부 일반회계의 2%)에 불과했으나 올해 2018년 장애인정책국 예산은 2조2천억 원(보건복지부 일반회계의 5.9%)으로, 12년 사이 보건복지부 예산에서 장애인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늘었다.

 

예산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활동지원과 장애인연금이다. 2018년 기준 활동지원 예산은 6716억 원, 장애인연금은 6355억 원으로, 장애인예산의 각각 30.3%, 28.7%를 차지한다. 즉, 활동지원과 장애인연금이 도입되고 예산이 큰 폭으로 증가하자 정부는 이를 통제할 무엇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등급 재심사를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장애등급이 복지 수급을 결정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아니라 실은 통제의 수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 5년의 광화문 농성 끝에 복지부와 논의 시작… 그러나 가시밭길

 

급기야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장애인단체들은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다. 끝이 보이지 않던 싸움은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희미하게 물꼬가 트이는 듯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명령 1호로 장애등급제 폐지를 선정하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임명 후 광화문 농성장에 찾아와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단계적 폐지를 약속했다. 이를 성과로 1842일 만에 농성은 중단됐다. 이후 꾸려진 복지부와의 민관협의체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가 본격적으로 오갔으나 순탄치 않았다.

 

지난 2017년 8월 25일, 광화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촉구하는 광화문 농성장에 박능후 장관이 방문해 이로 인해 희생된 이들 영정 앞에서 묵념하는 모습.
 

장애계는 장애등급제를 완전 폐지하고 욕구에 따른 복지 지원을 요구했으나, 복지부는 이를 무시한 채 1~3급은 중증으로, 4~6급은 경증으로 이원화한 중·경증 단순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복지부는 장애등급제를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며 당장 내년 7월부턴 일상지원서비스에 한해서만 등급제 폐지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장애계 요구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복지부가 밝힌 일상지원서비스란 ①활동지원서비스 ②거주시설 입소 ③보조기기 ④응급안전서비스(야간순회, 응급알림e), 이 네 가지인데 이 중 ‘거주시설 입소’가 문제시됐다. 복지부가 장애인거주시설 입소를 장애인 일상을 지원하는 복지서비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애계는 시설 입소 삭제와 더불어 신규입소 금지 및 시설폐쇄법 제정과 같은 탈시설 정책 추진을 정부에 요구했으나 정부는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복지부가 새로운 서비스 평가도구로 제시한 종합조사도구에 대해서도 장애계는 분노했다. 종합조사도구는 ①기초상담 ②복지 욕구 조사 ③서비스 필요도 평가, 이 세 개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복지 욕구는 조사만 할 뿐 실제 지원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예산 확대를 통해 전체 복지서비스양을 늘리고 신규 서비스 개발을 할 때만 가능한데 예산 확대 계획이 없으니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서비스 필요도 평가’는 현재의 활동지원 인정점수표와 매우 유사한데, 이는 장애등급제 폐지 영향을 받는 일상지원서비스가 실은 활동지원서비스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는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며 장애인복지 전달체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내년에 실제 변하는 것은 고작 ‘종합조사도구를 통해 활동지원 시간을 현재보다 얼마나 더 받을 수 있느냐’는 것뿐이다. 이는 예산을 통해 결정되나, 내년도 예산이 자연증가분만이 반영된 것을 고려하면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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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예산 투쟁, 그러나 국회 파행으로 물거품

 

장애등급제 폐지의 근본적 요구가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제공하라’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등급제 폐지 투쟁은 결국 예산 확대 투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올 한 해 장애계는 치열하게 싸웠다. 이들은 광화문역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5년간 농성한 짐들을 그대로 싸 들고,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이어나갔다. 올해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엔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하기도 했다.

 

예산이 복지부의 손을 떠나 기획재정부로 넘어갔을 땐 김동연 기재부 장관 집까지 쫓아다니며 예산 확대를 촉구했다. 복지부가 아무리 예산을 증액하여 올려도 기재부에서 삭감하여 국회로 넘겼기 때문이다. 기재부를 떠나 국회로 공이 넘어간 뒤에는 국회 앞에서 예산 증액을 촉구하는 농성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농성뿐만 아니라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고 국회 의원회관을 기습 점거하고, 국회 앞 8차선 도로를 막아서는 등의 시위를 거듭하며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 확대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나갔다.

 

지난 11월 14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고 국회 정문을 막아선 채 국회에 장애인 복지 예산 확대를 촉구하며 원내교섭단체 3당 대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치열한 투쟁 결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아래 복지위)는 정부안 2조 7천억 원보다 5517억 원가량 더 확대된 약 3조 2500억 원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아래 예결위)에 올렸다. 이는 장애계가 애초 요구한 3조 5천억 원엔 못 미치나, 이 예산이라도 예결위에서 무사통과한다면 내년에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장애계는 각 당의 원내대표와 정책위원회, 예결위 간사를 만났고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평화민주당, 정의당으로부터 적극적인 예산 반영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당파 싸움으로 국회 예산안 처리가 파행을 거듭하며 법정 시한을 넘기면서 복지위안이 아닌 정부안으로 예산이 논의됐고, 결국 정부안보다 444억 원밖에 증액되지 않은 채 국회를 통과했다. 두 달여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활동지원 예산은 올해 6900억 원에서 내년엔 1조 원으로 대폭 증액됐으나 실은 최저임금 인상 영향으로 서비스 단가가 1만 760원에서 1만 2960원으로, 장애인 이용자 수는 7만 1천 명에서 8만 1천 명으로, 최중증장애인 활동지원 가산급여는 690원에서 1000원으로 늘어난 것에 의한 자연증가분일 따름이다. 활동지원 ‘하루 24시간 보장’은 이번에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용 시간도 109시간으로 동결됐다. 활동지원 예산 확대와 함께 장애계가 강하게 요구한 것은 장애인연금 대상자를 중복3급에서 3급까지 늘리라는 것이었지만 이 역시 수용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는 신규 사업으로 76억 원이 새로이 책정(월 88시간, 2500명 대상)됐고,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금은 올해보다 지원 센터가 9개소 증가한 71개소를 대상으로 43억 원이 책정됐다. 이 외에 장애계가 요구한 장애인 탈시설 지원금, 대구시립희망원 범죄시설 폐쇄 및 탈시설 시범사업 예산 등은 전액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내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고 하나, 실제 장애인의 삶은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활동지원시간도 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복지 자원이 적으니 장애인은 거주시설 입소를 하나의 대안이라 믿으며 입소하고, 장애로 일할 수 없어 빈곤에 처해도 소득 여부와 상관없이 장애3급(경증)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연금은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이니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과 큰 변화가 없는데 굳이 등급제를 폐지해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등급 하락이 곧 서비스 탈락으로 이어졌던 장애등급제 폐지 싸움의 시작을 상기한다면, 등급이 없어졌다는 것(실은 6개의 등급이 중·경증이라는 2개의 등급으로 축소된 것이지만) 자체는 큰 변화이기도 하다. 다만, 이것이 정말로 의미 있으려면 장애인복지 예산이 OECD 평균 수준으로, 즉 현재보다 5배 더 증액되어야 한다. 앞으로 ‘장애인복지예산 확대’라는 본격적인 싸움이 우리 눈앞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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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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