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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죽고, 리프트는 살아있다
[2018 결산 기사] ⑤ 다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
여전히 벼랑 끝 계단 위에 올라서야 하는 장애인들
등록일 [ 2018년12월31일 23시49분 ]

2018년 연말을 맞아 비마이너가 보도한 올해의 주요 이슈를 되짚어 봅니다.

 

31년 만의 변화를 앞둔 장애등급제 폐지, 특수학교 폭력 사태와 장애아 부모 사망으로 올 한해 언론에 끊임없이 호출된 발달장애인, 지하철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로 다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더더욱 불법의 벼랑에 내몰린 활동지원제도,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비마이너가 주목한 올해의 결산 기사를 보도합니다.

 

[ 2018 결산기사 보기 ]

① 31년 만의 변화, 장애등급제 폐지의 근본을 톺아보다

②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10년 만에 다시 외치는 통합의 목소리

③ 지역으로 확산된 퀴어문화축제, 혐오로 얼룩졌지만 ‘우리는 여기 있다’

④ 국가가 양산하는 우범지대,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

 

2017년 10월 20일 오전 10시경, 전동휠체어를 탄 한경덕 씨는 신길역 1·5호선 환승구간에서 벼랑 같은 계단을 등지고 휠체어리프트 호출 버튼을 누르기 위해 휠체어를 왔다 갔다 했다. 왼손을 뻗으면 손쉽게 버튼을 누를 수 있지만, 베트남 상이군인인 그는 이후 교통사고까지 더해지면서 왼팔이 마비되어 있었다. 오직 오른팔만을 쓸 수 있던 그는 오른손으로 버튼을 누르기 위해 좀 더 버튼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그러나 휠체어 방향을 크게 돌릴 만큼 공간은 충분치 않았고,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던 그는 결국 전동휠체어와 함께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굴러떨어진 그의 몸은 병원에 실려 갔고, 추락한 자리엔 그의 낡은 전동휠체어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다음날 신길역은 한 씨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전동휠체어 치우세요.”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누워 있던 한 씨는 98일간 단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한 채 2018년 1월 25일, 일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고 이후 한 씨 가족은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의 책임을 물으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2017년 11월 14일 공사는 ‘기계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며 사과를 거부했다. 이에 2018년 3월 26일, 유가족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와 함께 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지난 8월, 고 한경덕 씨의 죽음에 대해 장애인 활동가들이 상복을 입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투쟁하는 모습. 두건(장례모자)엔 “서울시 공식사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휠체어리프트는 살인기계’, 법정에 선 장애인 이동권 

 

2018년 7월 6일, 신길역 휠체어리프트 추락사망 사건에 대한 첫 재판이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 유가족 측 소송대리인은 “공사에 휠체어리프트 설치 및 관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이유는 호출 버튼 위치 때문이었다. 한 씨가 세상을 떠나고 장애계가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시끄럽게’ 하고 나서야, 올해 6월 초 신길역은 호출 버튼을 계단에서 1m 떨어진 곳에 새로 설치했다. 유가족 측은 이에 대해 “기존에 설치한 버튼 위치가 위험했다는 것을 공사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공사는 장애인이 많이 이용하는 3·4호선 충무로역, 3·7호선 고속터미널역 등 환승 계단에 설치한 휠체어리프트 호출 버튼 위치도 바꿔 달았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경사형 휠체어리프트가 가진 그 자체의 심각한 안전상의 결함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른 주요 사고만을 보더라도, 1999년(혜화역, 천호역). 2000년(종로3가역), 2001년(오이도역, 영등포구청역, 고속터미널역, 발산역), 2002년(발산역), 2004년(서울역), 2006년(회기역), 2008년(화서역), 2012년(오산역) 등 장애인 휠체어리프트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단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할 뿐인데 장애인은 죽거나, 혹은 중증의 사고를 입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사는 “휠체어리프트 관련한 법적인 규정은 다 지켰다”면서 “한경덕 씨 과실이 90%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고인이 휠체어리프트를 타기 전에 일어난 사고이기 때문에 리프트 이용과 관련이 없다”면서 공사 측 책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은 네 번째의 변론기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와 함께 휠체어리프트의 위험을 부르짖는 장애계의 움직임은 차별구체청구소송으로 이어졌다. 지난 5월, 휠체어 이용 장애인 5명은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휠체어리프트만 있는 지하철 5곳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차별구체정구소송을 제기했다.

 

고 한경덕 씨가 사망한 신길역 휠체어리프트. 리프트 위에 ‘살인기계 리프트 철거하라’는 팻말이 놓여 있다.
 

- 2001년부터 시작된 오래된 싸움, 장애인 이동권 투쟁

 

휠체어리프트는 1988년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개최 시, 외국에서 온 손님에게 보여주기 위해 2호선 종합운동장역에 급하게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역에도 확산됐다. 이 리프트는 수동휠체어에 맞춰 설계되었는데 2000년대 넘어서 장애인들이 점차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를 이용하기 시작하자, 리프트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사고는 더욱 빈번해졌다.

 

지하철 휠체어리프트로 인한 장애인 사망사고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1년 1월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가 기점이 됐다. 당시 설치한 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오이도역 수직형 리프트가 철심이 끊어져 5m 아래로 추락하면서 70대 여성이 사망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계는 ‘오이도역 장애인 수직형리프트 추락참사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대대적인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나선다. 이들은 그해 2월, 몸에 쇠사슬을 걸고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지하철을 기어코 멈춰 세운다. 이들의 요구는 단 하나였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이는 훗날 장애계를 넘어 시민사회계까지 합세한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로 발돋움하여, ‘장애인 이동권’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이들 투쟁은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정이라는 성과로 이어지는데, 이는 전에 없던 ‘이동권(이동할 권리)’이라는 법적 권리를 장애인 당사자의 힘으로 ‘발명’해내고, 나아가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 도입,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 가시적인 변화까지 이끌어낸다.

 

상복을 입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투쟁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관에 ‘장애인 리프트 살인기계’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고 한경덕 씨 죽음으로 내몬 리프트, 사망 1주기 때에도 살아 움직여

 

그러나 2001년 이후에도 이어진 휠체어리프트 추락 사고가 보여주듯 사회의 변화는 더뎠고, 장애인은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지속해서 싸워왔다. 그 결과, 2015년 12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통해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면서 단계적 실천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고, 약속의 지연은 또다시 장애인을 죽였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장애인들의 거센 투쟁은 2018년, 또다시 재현됐다. 휠체어 탄 장애인들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죽음을 선포하며, 상주가 되어 상복을 입고 관을 들고서 지하철 연착 투쟁을 벌였다. 폭염이 쏟아지던 8월, 장애계는 고 한경덕 씨 추락사고 1주기가 다가오는 10월 20일까지 68일간 매주 화요일마다 지하철 연착 투쟁을 하며 서울시 공개 사과와 지하철 엘리베이터 1동선 100% 설치,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 등을 요구했다.

 

지하철 연착 투쟁과 서울시의회 기습 점거 등 여러 투쟁 끝에 참사 327일 만인 9월 11일,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유가족에게 사과한다. 그러나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은 “공사는 사과만 했을 뿐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 따른 ‘모든 지하철 역사에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와 ‘안전인력 지원’에 관해서는 분명한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라며 “반쪽짜리 사과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공사는 유가족을 상대로 한 소송 또한 철회하지 않았다.

 

올해 10월 20일, 장애인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분노하며 고인이 사망한 자리에서 신길역 참사 1주기 추모제를 진행했다. 그런데 덜컹, 이날도 휠체어리프트가 공중에서 멈추고야 말았다. 그 리프트엔 고 한경덕 씨의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리프트를 통해 계단을 올라오던 장애인 당사자가 있었다. 고인을 죽인 ‘살인기계 리프트’는 철거되긴커녕 지금도 죽음을 실어 나르고 있다. 

 

고 한경덕 씨 사망 1주기 추모제가 지난 10월 20일, 또다시 휠체어리프트가 공중에서 작동 중에 멈췄다. 이날 추모제를 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리프트 철거를 촉구하는 종이를 붙여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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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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