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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배우, 오스카상 수상이 우리 목표예요”
‘발달장애인 배우의 예술적 주류화’ 추구하는 극단 ‘하이징스’
윌리엄스 대표 “‘대견한’ 작품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탁월한’ 작품 할 것”
등록일 [ 2019년01월18일 16시42분 ]

극단 하이징스의 연극 프레드(Meet Fred) 중. ©주한영국문화원
 

연극은 "쌀은 물이다(Rice is Water)"라는 비현실적인 가정과 함께 시작된다. 오직 이 무대 안에서, 앞으로 80여 분간만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장치이다. 한 스태프가 '프레드(Fred)'라고 쓰인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상자 안에서 꺼낸 것은 봉제 인형 하나. 얼굴도 없고 손가락 발가락도 없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인형이다. 곧이어 인형사 세 사람이 나와 각각 인형의 다리/등과 왼팔/머리와 오른팔을 잡아든다. 연극의 주인공 프레드가 생명을 얻는 순간이다.

 

그러나 프레드가 이제 막 상자 밖으로 나와 자유를 얻자마자 마주하는 것은 '인형생활수당(Puppet Living Allowance)'을 지켜내야 하는 현실이다. 이를 위해 프레드는 고용센터(Job Centre)에 가서 담당자가 제안하는 일자리 중 하나에 반드시 참여해야만 한다.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이음센터 아트홀에서 상연된 연극 '프레드'는 영국의 복지 대상자들의 삶을 연상시킨다. 자신이 6개월 후에도 '인형'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든가, 다른 일을 해서 소득 수준이 일정 정도 이상 넘어가면 수당이 끊길 위협에 처하게 된다든가, 고용센터가 말 그대로 '생명줄'을 쥐고 흔드는 줄거리는 영국 복지의 현실이자, 한국의 현실과도 무척 닮아있다.

 

연극에 이렇듯 현실적 장치가 담긴 것은 작품을 만든 극단 '하이징스(Hijinx)'가 가진 특징과 맞닿아 있다. 극단 하이징스는 영국 웨일스 지역에 기반을 둔 극단으로, 발달장애인 배우들을 양성하는 아카데미 5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배출된 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연극, 영화, 드라마, 음악 공연 등 다양한 예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일, 주한영국문화원과 장애인문화예술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음 해외 공연 쇼케이스: 영국'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극단 하이징스의 대표 클레어 윌리엄스가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윌리엄스 대표는 극단 하이징스가 걸어온 역사와 철학을 공유했다.

 

하이징스의 클레어 윌리엄스 대표가 극단 소속 배우를 소개하고 있다.
 

윌리엄스 대표가 화면에 하이징스 소속 배우들의 얼굴을 띄웠다. 잭, 랜시, 그리고 알리는 모두 20대 초반이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의 목소리와 연기,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는 전문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발달장애를 이유로 정규 배우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다. 윌리엄스 대표는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이 정규 교육을 마치고 19살이 되자마자, 마치 은퇴라도 하듯 세상에서 더 이상 갈 곳도, 할 일도 없어져 버린다"고 말했다.

 

극단 하이징스는 바로 이 세 사람과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전문적인 배우 교육을 받고, 나아가 자신의 경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고 지원하는 일을 5년째 해오고 있다. 2012년, 첫 시작은 7명의 발달장애인 청소년들이 참여한 수업이었다. 윌리엄스는 이 수업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발달장애인 청소년들이 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또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과 표현들을 봤어요. 저는 발달장애인을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과 굉장히 다른 뇌를 가졌습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과 우리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배우로서 정말 놀라운 재능이자 꼭 필요한, 환상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수업 첫날부터 '아카데미를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결단에 따라 극단 하이징스는 아카데미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5개의 아카데미를 웨일스 지역 전역에 세우게 되었다. 처음 7명에서 시작했던 발달장애인 훈련생은 3년 만에 70명으로 열 배 증가했다. 대기 인원도 많다. 하이징스 아카데미에 다니기 위해 잉글랜드에서 웨일스로 이사 온 사람까지 생길 정도이다.

 

아카데미는 1년 과정으로 진행된다. 배우들은 서커스부터 코미디, 즉흥 연기, 앙상블 연기, 노래, 현대무용 등 다양한 스킬을 배워간다. 교수진은 모두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연극 수업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대본을 나눠주고 연기 연습을 하는 일반적 수업이 아니라 놀이 방식을 통해 발달장애인 참여자들이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놓는 형태이다. 하이징스의 연극 작품들이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아카데미 과정 역시 다른 연극 학교처럼 ‘3년 과정 수료 후 구직활동’ 같은 조건이 없다.

 

“이것은 저희에게 맞는 모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는 언제까지든 자신이 원하는 만큼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받고, 영화나 드라마, 연극 등 외부로 오디션을 보러 갈 때는 저희 스태프들이 함께 가 지원을 합니다. ‘우린 이제 다 가르쳤으니 나가서 혼자 잘 해봐.’ 이런 식으로는 일하지 않아요.”

 

윌리엄스 대표는 극단 하이징스의 이러한 활동이 '복지'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이징스의 목표는 '예술적 주류화'이다. 윌리엄스 대표는 "2030년까지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등 주류 시상식에서 발달장애인 배우가 수상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이징스는 7가지 캐스팅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발달장애인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는 플랫폼(www.hijinxactors.co.uk)을 만들기도 했다.

 

발달장애인 배우 캐스팅을 위한 하이징스의 7가지 제안
 

1. 다양성을 반영할 것(Reflect Diversity)
2. 편견을 피할 것(Avoid Stereotype)
3. 장애인 배역에 당사자를 캐스팅할 것(Cast Authentically)
4. 제대로 오디션을 볼 것(Audition Appropriately)
5. 파트너쉽을 가지고 일할 것(Work in Partnership)
6. 훈련에 투자할 것(Invest in Training)
7. 경험을 제공할 것(Provide Experience)

 

또한, 하이징스는 2014년부터 펀치드렁크(Punchdrunk), 블라인드 서밋(Blinkd summit Studio), 클루이드(Theatr Clwyd), 스파이몽키(Spymonkey) 등 대형 극단들과 협업을 했다. 윌리엄스 대표는 대형극단과의 협업이 ‘주류화’에 대한 분명한 목표 의식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장애 예술가들'끼리 모여서 히스테릭하고, 뭔가 어색하고, 낯선 것들을 해보겠다고 극단을 만든 게 아니에요. 우리는 주류에서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극단'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발달장애인 배우들을 향한, '아이고 잘하네, 사랑스럽네, 훌륭한 기회를 얻어서 무대에도 서보네'라는 인식을 깨고 싶은 거죠.

 

우리는 비주류로 머물고 싶지 않고, 우리가 배우로서 얼마나 훌륭한 연극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대형 극단과 협업을 했고, 성공했죠. 예를 들어 사람들은 '펀치드렁크'의 공연을 보러 왔다가 이전에는 전혀 본 적이 없는 발달장애인 배우의 연기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관객들은 처음에는 놀라지만, 장애인 배우가 함께하는 공연도 감동적이고 재미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대형 극단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제는 하이징스의 공연을 보려는 관객들이 생겨났어요.”

 

극단 하이징스의 클레어 윌리엄스 대표.

 

주류화를 향한 극단 하이징스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진짜 세상(Real World)'을 향한다. 마치 연극 프레드가 상자 안에서 시작해 무대를 거쳐 극장 문 바깥을 향하듯이. 실제로 하이징스는 장애-비장애 통합 예술(Inclusive Art)을 극장 바깥, 사람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거리로 옮겨가기도 한다.

 

'실외소형극(Pods)'은 하이징스 아카데미 소속 배우 모두에게 대중 앞에서 자신의 연기를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고자 시작되었다. 대표적 작품인 '몽유병자들(Sleepwalkers)'은 몽유병을 가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마을을 누비며 사람들과 만나고, 잠들었다 깨어나는 설정으로 진행되는 즉흥극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거리에서 발달장애인 배우들과 만나고, 이들이 주도하는 작품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몽유병자들’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 내 다양한 국가에서 해당 지역 단체들과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기도 했다.  

 

'진짜 세계'에서의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하이징스 소속 배우들은 경찰, 의사, 공무원, 엔지니어, 변호사 등과 역할극을 통해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 방법을 알려준다. 윌리엄스 대표는 "웨일스 지역에서는 발달장애인 배우들과의 역할극 프로그램을 이수해야만 의사 면허증을 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역할극의 효용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엇보다 하이징스의 배우들이 출연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배우고 훈련한 것으로 직접 돈을 버는 것은 배우 활동을 지속하고 훈련에도 더 열심히 참여하게 만드는 훌륭한 동기부여입니다. 또 한 가지는, 사회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들을 배우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 공항 보안요원들이 몸수색을 하는데,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굉장히 놀라거든요. 역할극을 통해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하고,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하이징스에도 여전한 숙제가 있다. 장애-비장애 통합을 지향하면서도 장애인 배우만을 모아둔 캐스팅 플랫폼을 만든 것은 배우들이 가진 다양한 면모를 오직 '장애'라는 정체성만으로 압축시킬 위험이 있다는 고민이다. 또한, 대형 극단들과의 협업이 성공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여전히 '장애인 극단'과 협업해서 정부 지원금을 더 받으려는 계산을 가지고 있다든지, 장애인 배우들에 대한 기대치를 낮게 잡아 동료로 인정하지 못한다든지, 장애인과 함께 작업했다는 개인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이징스에 협업을 요청해오는 곳들도 많았다. 윌리엄스 대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현실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는 태도를 가지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대형 극단이나 유명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할 때 성공한 사례도 있었지만 하이징스와 장애인 배우들을 자신들의 도구로 이용하려고만 한 경우도 분명 있었습니다. 정말 많이 경험했어요. 또한 캐스팅 플랫폼에서도, 분명 비판적으로 바라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배우들이 에이전트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다른 여러 비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캐스팅 리스트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저희 배우들을 좀 더 잘 알리기 위한 플랫폼이 필요했던 거죠.

 

하지만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극단과 캐스팅 담당자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래서 발달장애인 배우들이 가진 훌륭한 재능을 감춰두고, 발달장애인이 아닌 배우들이 발달장애인 연기를 하는 부조리가 없어질 수 있도록 이요. 저희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작업이 분명 더 나은 예술작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건 정말 확실한 사실이예요!”

 

<극단 하이징스의 2019년 작품, '빛 속으로(Into the Light)' 홍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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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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