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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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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사람, 일본 승려 이야기
[일본탐방, 일본사회와의 마주이야기]
장례 지원하는 ‘배웅 모임(見送りの会)’ 스님을 만나다
등록일 [ 2019년01월24일 19시35분 ]

일본의 장례문화는 불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기 때문이다. 결혼은 기독교식으로 교회에서 했더라도,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르러서는 생전에 고인의 종교와 상관없이 불교사찰에서 불교식 장례를 치른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불교만의 독특한 특징인 장의불교(葬儀 佛敎)가 성립한 것이다.

 

오사카시 니시나리구(西成区)의 북부에 있는 가마가사키(Kamagasaki, 釜ヶ崎)에는 고령이 된 독신 일용직 노동자가 많다(관련해서는 일본탐방, 일본사회와의 두 번째 마주이야기 참조). 이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생활하다가 사망한다. 그리고는 가족 또는 친척과 연락이 닿지 않아 무연고사망자로 행정 매뉴얼에 따라 장례절차 없이 화장된다. 당연히 일반적 장례와 달리 스님도 안 부르고, 불경도 읊지 않는다. 또한, 고인을 위한 법명도 없다. 일본 ‘무연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곳에는 사회적 고립으로 ‘무연사’한 이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가마가사키 배웅 모임(釜ヶ崎見送りの会)’이 있다. 이 모임은 정토종 승려 스기모토 요시히로(杉本 好弘) 씨(74세)의 제안으로 2011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우연이겠지만, 나눔과나눔이 활동을 시작한 년도와 같다. 과연 일본에서는 어떻게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지원할까? 한국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궁금한 게 많았다.

 

일본 ‘가마가사키 배웅 모임’의 스기모토 요시히로 승려

 

- 승려가 되어 가마가사키로 오다

 

스님과는 NPO 법인인 가마가사키 지원기구(NPO 釜ヶ崎 支援機構)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은 가마가사키에서 제일 큰 NPO로 이곳에 온 스님이 장례지원을 처음 제안했던 곳이기도 하다. 인사를 나눈 후 놀랍게도 스님의 첫마디는 일본도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장례를 할 수 없습니다.”였다. 즉, 가족, 친척, 사망자의 집을 관리하는 사람, 이렇게 삼자만이 사망신고를 할 수 있고 친구나 지인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본인이 스님이 된 이야기를 해주셨다. 스님은 원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정년퇴직 후 여생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어릴 적부터 관심을 가졌던 불교를 다시 배우기 위해 불교 대학에 편입학하여 승적을 취득했다. 하지만 사회생활하던 사람이 승려가 되었다고 주지 스님이 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절의 주지가 되지 못한다면 승려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 시기 눈에 띈 곳이 바로 ‘가마가사키’었다. 가마가사키로 오게 된 것은 정식으로 승려 자격을 딴 이듬해인 2010년.

 

당시 이곳에서는 고령이 된 독신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생활하다 죽는 것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장례를 치르지 않고 바로 화장해서 시체만 처리되었다. 즉 망자를 기리는 것이 아니다. 망자는 ‘사자(死者)’가 아닌 ‘시체’가,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런 곳이다 보니 절에 공양을 드리는 사람도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여기라면 스님과 장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곳, ‘가마가사키’로 오게 됐다.

 

처음 가마가사키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어떤 이는 “이곳은 산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는 곳이고, 스님이 활동할 만한 곳이 아닙니다.”라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스님이 시작한 것은 ‘푸른 하늘 노래방’이었다. 그가 잘하는 아코디언 반주에 노숙하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하기 챠야 미나미 공원(萩ノ茶屋南公園, 통칭 삼각 공원)에서, 그리고 시의 공민관 같은 곳에서 아코디언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혼자 사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장례를 치러주는 활동을 하자’고 여러 곳에 제안하게 되었다.

 

- 드디어, 장례지원 모임 시작

 

2011년, 드디어 홀로 사망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자는 취지의 ‘가마가사키 여정의 모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장례지원은 쉽지 않았다. 혈연 가족이 아니면 장례식을 치를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기보다 사망신고를 낼 수 없으므로 발생하는 어려움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시신을 앞에 두고서 하는 진짜 장례식은 어려우니 사망한 이후라도 그 사람을 보내주는 ‘추도회’ 활동을 목표로 2011년 2월에 모임을 시작했다.

 

2월에 만들었던 모임은 안타깝게도 그해 여름부터 흔들리기 시작해서 가을이 되자 두 개로 갈라진다. 이유는 문제의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스님은 승려이니 문제의식을 ‘장례’에 두었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일상의 삶에 문제의식을 두었다. 어쩔 수 없이 두 개로 갈라져서, 남은 사람들끼리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자원봉사자든,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이든, 그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든, 모두 평등한 회원으로. 이름도 바꿔서 2012년 ‘가마가사키 배웅 모임(見送りの会)’을 다시 시작했다.

 

‘가마가사키 배웅 모임’의 스기모토 요시히로 승려가 일본 탐방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홀로 사는 이웃의 장례지원, 새로 역사를 쓰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작한 모임은 무엇보다 정체성부터 명확히 했다. ‘장례를 치르는 상호조합.’ 이렇게 ‘장례’를 함께 치르는 단체로 지향점을 결정한다. 사실 민간시장에도 이런 명칭의 조합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이름이 장례부조 상호조합일 뿐 실제는 회사와 계약자의 관계이다. 반면 ‘가마가사키 배웅 모임’은 진정으로 모두가 장례를 함께 치르자는 의미에서의 ‘상호조합’으로 정체성을 결정했다.

 

또한, 장례지원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장례를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모임 내에 법무사였던 분이 계셔서 ‘사후사무계약’을 맺자는 의견이 나왔다. 한 명 한 명의 회원과 대표가 1대1로 장례에 대한 임의계약을 맺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 장례를 치를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군가가 장례를 치러 달라고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셨을 때 사망 정보를 배웅 모임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실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장제급여를 행정에 신청하는 것이었다.

 

초창기에는 아파트 관리인이나 행정 쪽에, 우리 회원이 사망하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사망은 중요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제3자에게는 제공할 수 없다며 계속 거절당했다. 그래서 모임 내에서 논의했던 ‘사후사무계약서’ 초안을 만들어서 2013년 11월 7일에 니시나리구청 생활원조담당 과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때 요청했던 것이 ‘생활보호수급자의 사망 정보의 제공에 대해서’였다. 다시 말해 배웅 모임 회원이 사망하면 생활원조담당과에서 배웅 모임에 사망 소식을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면담은 성과가 있었다. 구청은 장례에 관한 위임계약이 있다는 전제하에 사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첫째는 장례를 치를 연고자가 있는 경우에는 장례 일시와 장소를 모임에 연락하고, 둘째는 장례를 치를 연고자가 없는 경우 장의업체 또는 장례 일시와 장소에 대한 정보를 모임에 제공하는 것에 대한 검토였다. 다만, 구에서 재량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니 오사카시의 관계기관과 협의한 후 정보제공 여부를 최종판단하겠다고 통보했다.

 

그 후 12월 25일에 반가운 답변이 전해졌다. 오사카시 관계기관이 ‘가마가사키 배웅 모임(釜ヶ崎見送りの会)’에 사망자 정보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위임계약서 사본, 배웅 모임의 회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회원증 사본, 그리고 이 사본이 원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문서, 이 세 서류를 구청의 케이스워커(사회복지사)에 제출하면, 배웅 모임 회원의 ‘생활보호수급자 카드’에 사망 시 긴급 연락처로 배웅 모임 담당자의 휴대전화번호를 추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만약 병원에서 사망하지 않고 경찰이 사법해부(사인을 규명하기 위한 해부)를 하게 될 때도 똑같이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활보호 수급자가 아닌 회원의 경우에는 검토 결과 어렵다고 했다.

 

배웅 모임은 이렇게 기초생활수급자 장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니시나리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장례를 요청하면 장례를 지원할지가 고민스러웠다. 일례로, ‘미야코지마구’에 사는 회원이 ‘나는 미야코지마구 주민이지만, 미야코지마구에서도 니시나리구처럼 똑같이 해 달라’라는 이야기를 시에 했다. 미야코지마구에서도 검토한 결과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배웅 모임 입장에서는 이렇게 활동 범위를 늘릴 역량이 없으므로 ‘니시나리구’를 중심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마가사키 배웅 모임’의 활동 모습. 왼쪽 위에 있는 사진은 스기모토 요시히로 승려 사진.

 

- 장례는 추모뿐만 아니라 참석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

 

스님은 배웅 모임 최초 결성에서부터 구청에 협조를 요청, 회원이 사망한 경우에는 연락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제 배웅 모임의 회원 수는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사망 소식을 받으면, 이 회원 모두에게 부고를 알리고 장례 준비를 시작한다. 장례식 참석자는 50명에 이른다. 그중 일부는 고인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장례식이 열린 것에 고마워한다. 이제는 “장례는 사망자 추모뿐만 아니라 참석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라는 배웅 모임의 이념을 구현한 장례식이 되었다. 배웅 모임은 최후를 맞이하는 때뿐만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불안도 제거하는 모임이 된 것 같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눔과나눔의 ‘인기척’이 떠올랐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살아가는 힘이 생겨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 힘은 한국과 일본이 다르지 않다. 이 힘을 믿는 사람이 한국에서 그리고 일본에서도 더 늘어 가기를 희망한다.

 

- 추가 질의응답

 

[일본 탐방팀의 질문] 생전의 복지 문제와 사망한 후의 장례 지원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문제가 돼서 같이 하려던 분들이 두 파로 나눠서 조직이 분해되었다고 얘기하셨어요. 사실 나눔과나눔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에서 보는 시각이 두 개가 있거든요, 생전의 문제를 더 우선해서 지원해야지 무슨 사후 장례 문제를 얘기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어요. 6개월 가까이 내부에서 그에 대해 논쟁을 많이 하셨다면 스님께서는 이에 대한 본인 생각이 굳어졌을 거 같아요. 스님께서는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고 본인이 생각하는 사후 장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스시모토 스님 답변]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니시나리에는 살아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단체는 매우 많아요, 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곳은 없었어요. 지금도 우리 모임의 회원이 아닌 사람 중에는 ‘만’ 단위로 셀 수 있는 생활보호 수급자가 니시나리에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회원은 100명밖에 없어요. 그들은 우리 모임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바로 화장되어 버리죠. 저는 승려니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마지막까지 유지하고, 또 제가 승려기 때문에 우리 회원 중에는 내 장례를 제대로 치러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안심하고, 그것으로부터 살아갈 힘을 갖게 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이쪽은 산 사람 저쪽은 죽은 사람, 이렇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죽을 곳이 제대로 보장된다면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고 제가 오히려 배우게 되었습니다.

 

[일본 탐방팀의 질문] ‘장례’가 아니라 ‘사망신고’가 문제라고 하셨어요. 장례를 마친 다음에 사망신고를 누가 하는지, 직접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스시모토 스님 답변] 장례 실무는 장의업체에 부탁합니다. 사망신고도 실제로는 장의업체에 부탁합니다. 사망신고서를 낼 수 있는 것은 가족, 유족, 거택관리자인데 거의 거택관리자가 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으로 신청합니다. 배웅 모임은 신청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장의업자 이름으로도 사망신고는 할 수 없으니까, 가족도 없고 친족도 안 한다면 거택관리자 이름으로 냅니다. 그래서 가끔 거택관리자 중에서 ‘그쪽에서 장례를 하니까 저는 협력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지역 민생위원에게 부탁합니다. 거기서도 안 되면 구청장이 하는 거죠. 대부분은 거택관리자 수준에서 하고 있습니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례가 있었어요. 장례를 치르는 ‘사후 사무 위임계약’과 같이 임의계약을 맺고 있는 경우에는 장례 할 수 있는 위임사항이 임의계약에 명시되어 있으면 유효하다는 판례가 있으므로, 그 수임자가 장례 신고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청구한 적이 있지만 거절당했어요. ‘운동’ 측면에서는 임의계약의 수임자가 전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글은 일본탐방에 동행했던 서울대학교 박지숙 박사가 정리한 녹취록을 바탕으로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가 정리했습니다. 일본 현장 인터뷰에서 경희대학교 정현경 교수님과 서울대학교 박지숙 박사님께서 통역을 지원해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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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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