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4월21일sun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문화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완전하지 않은 신체’의 시간
[공연] 댄 도우(Dan Daw)의 ‘조건(On One Condition)’
등록일 [ 2019년01월24일 20시09분 ]

댄 도우의 ‘조건(On One Condition)’ ⓒFoteini Christofilopoulou


한 남성이 객석 뒤에서 극장 조명을 끄고, 무대를 향해 걸어 들어온다. 극장 조명을 그 스스로 끄는 순간, 극장이라는 공간은 그의 통제권 안에 들어온다. 그는 하얀 팬티만을 입고 있다. 무대 위에 선 그가 제일 처음하는 행위는 양말을 신는 것이다. 선 채로 오른발을 들어 양말에 발을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매번 몸의 무게중심은 무너진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야 그는 겨우 발가락 끝에 양말 끼우는 것에 성공한다. 이어 발끝에 간신히 걸린 양말을 발꿈치를 들어 잡아당겨 신고는 다시 한번 무릎 아래까지 양말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오른발 양말신기가 끝났다. 이제는 왼쪽 양말을 신어야 한다. 비슷한 행위가 반복된다.

 

주한영국문화원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공동주최한 '이음 해외 공연 쇼케이스: 영국' 초대작 중 하나로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이음센터에서 공연된 ‘조건(On One Condition)’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극의 주인공은 댄 도우(Dan Daw). 그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늘림으로써 동작을 분절시키고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로써 그의 ‘장애’는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그는 경증의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다.

 

양말을 다 신은 댄은 이제 바지를 입는다. 오른발을 넣고 왼발을 넣는다. 무게 중심은 또다시 번번이 무너져 수차례의 시도 끝에야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와이셔츠를 입는다. 작은 단추를 끼우는 섬세한 작업은 더딜 수밖에 없다. 몸의 장애로 인해 어떤 행위들은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이러한 지연된 시간과 시간의 격차는 그의 일상세계를 구성한다. 댄에겐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 행위이나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선 ‘일상’으로 상상되지 않았던 행위들이 70분간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보임으로써 ‘있음’을 드러낸다.

 

신체적 다름을 이유로 장애인이라고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댄은 바로 그 신체를 쓰는 춤을 전문 직업으로 하는 무용가다. 댄은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가 내리는 행동을 반복하며 말한다. “저는 지금 현대무용을 하고 있어요.” 이어서는 ‘발레 같은 동작’을 하는데 곧 이어진 그의 말은 이렇다. “전 지금 클래식 발레를 하고 있어요.”

 

무용은 규격화된 동작이 있고 이를 기술적으로 탁월하게 표현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이때 ‘잘 표현된 춤’에서 요구되는 것 중 하나는 ‘몸의 완전성’인데 댄에겐 애초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댄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증 뇌병변장애가 있는 댄이 ‘현대무용’과 ‘발레’를 추는데 그것은 우리가 알던 현대무용과 발레가 아니다. 이때 관객은 어떠한 미끄러짐 속에서 실소를 터뜨린다. 그러나 그 웃음이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은 웃음 뒤에 남는 질문 때문이다. 이것은 왜 ‘현대무용(혹은 클래식 발레)’이 아닌가? 댄의 신체는 ‘완전하지 않은 신체’라는 것인가?

 

비장애인 기준으로 구성된 척도 속에서 그 기준에 애초 고려되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수행할 때, 척도의 불완전성은 드러난다. 그렇다고 현재의 척도를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댄은 그저 질문만을 던질 뿐이다.

 

댄 도우의 ‘조건(On One Condition)’ ⓒTony Virgo
 

공연은 댄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 공연하러 갔으나 수많은 계단 앞에서 그 어떤 이도 부축해주지 않아 엉덩이를 끌며 계단을 내려왔던 일, 학창시절 선생님이 댄에겐 ‘쉬운 시험지’를 내밀었던 일,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기억…. 그 자전적 이야기 속엔 댄의 사랑과 연애도 있다. 게이인 댄은 그의 첫 경험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공연 속에서 댄의 성정체성은 장애만큼 중심에 두고서, 전면적으로 다뤄지진 않는다. 이 사회에서 하나의 정체성이 어떠한 층위에서 다뤄지는가는 당사자의 정체성 수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댄에게 장애정체성이란 어떠한 의미일까.

 

호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댄은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것에 제약을 느끼자, 호주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한다. 영국에서 칸두코 댄스컴퍼니에서 작업하며 장애인 예술가들을 만나고 이번 작업을 연출하게 된 그레이엄도 만나게 된다. 댄은 “장애정체성이란 사회가 붙인 꼬리표”라면서도 “그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부터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꼬리표를 마음대로 붙일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하지 않고 장애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결과물로서의 예술작업물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그는 ‘장애가 있는’ 몸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고, 그 몸을 쓰는 춤/공연은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그는 세계에 끊임없이 말을 건다. ‘없음’을 ‘있음’으로 드러내며 ‘자신의 시공간’에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댄에게 장애는 주요한 화두인 듯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댄은 “장애와 상관없이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예술 그 자체인데, 자신의 예술을 보는 것은 두 번째로 밀리고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요인이 자신을 판단하는 첫 번째 요인이 된다는 것에 답답하다”고도 한다. 장애를 전면에 내세우나 ‘장애예술’만으로 한정 짓지 않는 것, 예술 그 자체로서 인정받길 원하는 욕구. 그리하여 장애예술, 예술 안에서의 장애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올려 0 내려 0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신간 소개] 영화로 장애인권 다룬 책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2019-02-19 17:54:48)
“발달장애인 배우, 오스카상 수상이 우리 목표예요” (2019-01-18 16:4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