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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자도 ‘내 뜻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면?
[무연고사 기획] 애도 되지 못한 슬픔, '처리'되는 죽음 ⑪
일본 사례 _ 가족 대신 NPO
등록일 [ 2019년01월28일 17시38분 ]

서울역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무연고사망자 장례에 참여해 함께 살던 쪽방 주민의 유골함에 손을 얻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나눔과나눔

 

- 가족, 그 환상

 

사람 대부분은 가족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에 대한 환상을, 그리고 가장 어려울 때 힘이 되는 마지막 보루인 가족에 대한 환상을 말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 가족은 이런 환상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적 안정이라는 것은 얼마나 쉽게 깨어지는가. 경제공동체가 깨어지고 혈연의 가족이 남과 다름없어지는 순간 각자도생의 삶이 시작된다.

 

경제적 이유 말고도 가족 내에는 다양한 가족사가 존재한다.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홀로 남은 사람, 가정 안에서 소외되거나 단절된 사람, 미혼모·미혼부·독거노인, 친구만이 유일한 비상망인 사람, 친인척이 이민 상태이거나 돌보지 않는 사람, 그리고 고아로 홀로 살아온 사람 등 다양한 개인사로 가족의 환상은 깨어진다.

 

서울시에는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지원하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에 80대 할머니가 전화했다. “혼자 살아. 결혼하지 않아 직계가족도 없어. 언니・오빠는 모두 돌아가셨는데 혼자만 여태 살아있네. 조카와 친척들이 있지만 내가 사기를 당해 가난해지니까 소식을 모두 끊고 왕래도 없고…… 죽으면 시신 기증을 해서 어떻게 장례라도 치르려고 했는데, 그것도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서…”라며 본인의 장례를 부탁했다.

 

안타까운 사연이다. 하지만 혈연 가족, 즉 가족관계증명서상의 연고자가 아닌 사람은 장례를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다. 장례와 사망신고는 원칙적으로 혈연 가족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은 무연고사망자 장례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실혼 관계로 20년을 살았던 남편은 본인 품에서 돌아간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싶었지만 무연고사망자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시장 상인들도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았던 이웃 상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장례를 치르고 싶었지만, 한국 사회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 약속을 했던 남자친구 또한 혈연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부탁한다’는 여자친구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 채 무연고사망자로 보내야 했다.

 

혈연이라는 가족의 테두리는 여러 삶의 과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죽음이라는 삶의 과정에서 혈연이라는 가족의 존재는 가장 필요한 순간인 듯하다.

 

- 혈연이라는 가족의 마지막 ‘특권’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85조에 따르면 동거친족은 사망 후 1개월 이내에 사망신고 의무가 있고, 그 외 친족·동거자 또는 사망 장소를 관리하는 사람, 사망 장소의 동장 또는 통·이장도 사망신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혈연관계의 연고자가 장례와 사망신고를 진행한다. 이러하다 보니 무연고사망자분들의 장례와 사망신고가 오랜 단절로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조카 또는 친척들에게 마치 ‘마지막 특권’처럼 주어진다.

 

이 대목에서 ‘가족이 누군지’ 생각해보자. 오랜 단절로 십 년도 넘게 연락 한번 하지 않았던 혈연 가족이 나의 가족일까? 아니면 나와 마지막 삶을 나누고 동고동락했던 사람이 가족일까? 현대는 가족 다양성에 대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혈연 친족만을 계속 가족으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의문이다. 1인 또는 2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대. 직계가족이 아니어도 나와 함께 삶을 공유하는, 내가 믿는, 절망 속에서 언제나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진정 가족이 아닐까? 이제 서류뿐인 가족 증명서로 누군가가 법의 사각지대에 버려지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고민할 시점이 된 것은 아닐까?

 

서울시는 2018년 5월부터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서울시 예산으로 광역단체 최초로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나눔과나눔


- 가족 대신 장례

 

한국과 법·제도가 유사한 일본은 어떨까? 2018년 8월 화우공익재단과 함께 ‘사후 자기결정권’ 연구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동경도청을 방문했을 때 복지보건국에서 발행한 생활보호 운용 사례집에 있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A시에서 주택 보호를 받은 독신자 등이 사망했지만 장례를 치를 부양 의무자가 없어 B시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 을(乙)이 장제를 하게 되었다. 을(乙)이 장제부조를 신청했을 경우, 그 실시 책임 및 보호의 필요 여부 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에 대해 동경도청 복지보건국에서는 일본 생활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1호에 따라 친구 을에게 장례 협조에 대한 결정을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은 A시가 지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근거는 한국의 기초생활보장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생활보호법의 장제급여 규정에 명시되어 있었다.

 

제18조 ① 상제부조(葬祭扶助)는 곤궁에 의해 최저한도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에 대해, 다음에 제시한 사항의 범위 내에서 행한다.

1. 검안

2. 사체의 운반

3. 화장 또는 매장(埋葬)

4. 납골, 그 외의 상제를 위해 필요한 것

 

② 다음에 제시한 경우에 있어, 그 상제(장례)를 행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그 사람에 대해 전항각호의 상제부조를 행할 수 있다.

1. 피보호자가 사망한 경우에 있어, 그 사람의 상제를 행하는 부양의무자가 없는 경우

2. 사망자에 대해 그 상제를 행하는 부양의무자가 없는 경우에 있어, 유류된 금품으로 상제를 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이처럼 최소한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고인의 종전 보호기관 즉, 지방자치단체가 그 실시 책임을 지고 장례를 할 수 있도록 장제급여를 지급한다. 이것이 고인을 존엄하게 보내는 것이지 않을까. 장례를 치르겠다는 사람이 있는데도 굳이 무연고사망자로 국가가 나서서 시신을 처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국가는 단지 ‘혈연의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는데, 이러한 현실은 한국 사회가 장례를 불허하고 무연고사망을 조장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 내 뜻대로 장례

 

내가 죽은 이후 나의 장례를 비롯해 소셜미디어 계정 정리, 반려동물에 대한 조치 등 삶의 마무리를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있을까? 이것을 권리 담론으로 표현하면 ‘사후 자기결정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후 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는 아직은 생소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사후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내 뜻대로 장례’를 지원하는 NPO 단체 등 사업자가 100여 개 정도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자들은 주로 독거・무의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신원보증 및 일상생활 지원, 장례와 같은 사후사무 등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는 일본의 가족구조 변화에 따라 나타났다. 고령자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이들에 대한 노후 간병뿐 아니라 그다음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어지는 사회적 배경에 의해 등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 사회의 가족구조 및 생활환경 변화에 따라 돌봄과 장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가족이 아닌 제삼자에게 자신의 돌봄과 장례까지 해줄 수 있는지 요구하면서 민간에서 먼저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도 아직 관련 법은 없다. 서비스 역시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민간이 담당한다. 대부분 사업자가 사단법인, NPO 등 비영리 단체이기는 하지만 일정 정도 서비스 인원 등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게다가 서비스 특성상 비용을 미리 내는 예약금이 있다. 문제는 이 예약금이다. 사업자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NPO 법인 ‘인연의 모임’은 190만 엔(약 1,900만 원), NPO ‘LISS 시스템’은 102만 엔(약 1,020만 원)을 내야 하며 매월 회비도 있다. 물론 분할 납부도 가능하지만 천만 원 이상의 금액을 미리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연금으로 생활이 안정적이고 고도성장기를 거친 일본의 노인을 떠올려보면 그들에게는 선택 가능한 또 다른 민간 사회보장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예탁금액이 높은 이유는 일본 사회의 보증제도 때문이다. 신원보증인이 없으면 병원 입원도 시설 입소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엔 신원보증 및 생전사무위임계약이 포함되어 있다. 예탁금에서 장례서비스 비용만 따로 추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홈페이지와 홍보 책자 등을 통해 장례에 드는 직접 비용만을 산출해 보면 약 5~6백만 원 정도로 파악된다. 일본의 평균 장례비가 300만 엔(약 3,000만 원) 이상이라고 하니, ‘내 뜻대로 장례’의 경우 정형화된 일반장례와 달리 생전계약을 통해 희망에 따른 옵션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간소하게 준비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평균 장례비는 1,300만 원 정도다.

 

가족 대신 장례를 지원하는 LISS시스템을 만든 마츠시마요카이(松島 如戒)씨가 LISS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눔과나눔


사업자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993년에 설립된 NPO ‘LISS시스템’(LISS는 Living · Support · Service의 약자)이다. LISS시스템은 일본 내에서 ‘계약가족’, ‘생전계약’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곳이기도 하며, “끝까지 자신답게 살아, 자기 책임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사회 보장 시스템”이라고 단체를 소개한다. LISS시스템이 현재와 같은 서비스를 하게 되기까지는 일본 역시 가족 중심의 혈연이 중요한 사회이기에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재와 같은 ‘내 뜻대로 장례’를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두 개의 법률적 변화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LISS시스템이 ‘사후 사무 위임계약’을 체결하고 장례를 지원할 수 있게 된 토대다. 사후 사무 위임계약이란 사망 후 사망신고서 제출, 화장과 납골 등을 비롯해 사망자의 연금, 보험 자격 상실 절차, 거주하던 집 처리에 관한 법적 절차와 소지품 등의 정리와 처분 등에 대한 업무의 일부 또는 전부를 LISS시스템에 위임하는 것이다.

 

일본도 민법 제653조(위임의 종료 사유)에 따라 ‘위임자 또는 수임자의 사망’에 의해 위임계약이 종료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죽은 이후의 ‘사후 사무’를 타인에게 위임하는 계약은 이제까지 무효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1992년 9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민법 제653조는 강행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이기 때문에 위임계약의 사후 유효성과 관련하여 특약이 있다면 사후에도 유효하다’고 판결하면서 ‘사후 사무 위임계약’이 가능해졌다.
 
두 번째는 2000년 4월 일본에서 「임의 후견 계약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것이다. LISS시스템은 ‘계약가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데 이는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 등이 ‘계약’으로 LISS시스템과 ‘가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LISS시스템은 혈연가족처럼 살아생전엔 병원 입원이나 요양원 입소 시 필요한 신원보증의 역할을 해주고, 죽음 이후엔 장례 지원 등 토털 서비스 제공을 약속한다.

 

‘계약가족’에서 임의후견계약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생전사무위임계약을 근거로 신원보증 서비스를 시행하던 중, 계약자의 판단 능력이 결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하자. ‘계약가족’은 어디까지나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을 체결하거나 지속할 능력이 없다면 그 계약은 이어질 수 없다. 그러나 「임의 후견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엔 임의후견계약 발효 절차를 개시하여, 임의후견인으로서 서비스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LISS시스템은 생전/임의 후견/사후, 이와 같은 3가지 계약에 의해 ‘살아있을 때’에서 ‘만일 판단 능력을 잃어버린 때’, 그리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까지를 일관되게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LISS시스템은 ①지금까지 가족이 담당했던 일상생활 지원 ②양로원이나 임대 주택의 입주 보장, 병원 등의 입원 · 수술의 시중이나 신원 인수 보증 ③치매 등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지원(임의 후견 계약 · 법적 보호자의 위탁) ④사후에 발생하는 각종 업무 및 사무 처리의 인수(장례식 상주와 유품 정리 지원 포함)를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다. 단체는 예탁금을 받아 운영하는 만큼 감독기관과 자금관리기관을 통해 감독과 투명한 운영을 담보하고 있다. 즉, 계약자는 이 서비스를 받기 위해 LISS시스템과 감시기관, 자금관리기관 세 곳과 계약을 체결하고 아래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를 받게 된다.

 

'LISS시스템'의 계약 구조 ⓒ나눔과나눔
‘사후 자기결정권’은 아직 한국 사회에 낯설다. 이것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15년 이후 1인 가구가 한국의 주된 유형의 가구가 되면서 더는 혈연 가족에게 죽음을 부탁하는 것이 어려워진 현실을 고려한다면, 법․제도에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죽으면, 죽는 그 순간부터 ‘이 별’과의 이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시신을 인수해 삶의 마지막을 동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혈연 가족이 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점점 가족에게만 의지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만약 나의 죽음 이후 삶의 마지막 과정을 내가 생전에 결정하고,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도 맡길 수 있다면 편안하게 눈 감을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가족과의 단절 등의 이유로 가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할 때 친구나 지인이 장례를 할 수 있다면 삶의 마지막이 조금은 덜 불안할 수 있을 것이다. ‘사후 자기결정권’. 이제부터 함께 이야기해보자. 다만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민간이 아닌 공공의 사회보장서비스로 상상해보면 어떨까.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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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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