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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의 투쟁으로 '수화언어법' 제정했지만..."농인의 삶, 변한 것 없어"
'한국수어=한국어' 담은 수화언어법 제정했지만 현실은 '정부도 무시'
장애벽허물기 등 장애인단체들, 한국수어법 제정 3년 맞아 법 개정 촉구
등록일 [ 2019년02월07일 18시27분 ]


 

한국수화언어법(아래 한국수어법)이 제정된 지 3년차가 되었지만 농인이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없고, 정부와 공공기관마저 지키지 않는 유명무실한 법으로 전락했다며, 장애인단체들이 실효성을 보장하는 법 개정과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아래 장애벽허물기) 등 장애인단체들은 7일 오후 2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하다고 명시한 '한국수어법'이 이러한 목적에 걸맞게 농인의 언어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장애벽허물기는 △농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법 개정 △수어 통역 지원 강화 및 수어 연구를 위한 농문화수어연구소 설치 △청와대의 한국수어법 준수 △손말이음센터 해고자 전원 복직 및 서비스 확대 등을 요구했다.

 

한국수어법은 지난 2016년 2월 3일 제정되었다. 이 법은 한국수화언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한국수화언어의 발전 및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농인과 한국수화언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농인과 한국수어 사용자들이 한국수어 사용을 이유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받지 않고, 모든 생활영역에서 한국수어를 통하여 삶을 영위하고 필요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벽허물기는 "한국수어법이 제정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수어법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들마저도 법률을 올바르게 준수하지 않고 있으며, 농인들의 삶도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수어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장애벽허물기는 "2011년부터 4년간, 농인들은 무더위와 강추위를 무릅쓰며 한국수어법을 만들었다"라며 "현재 일어나는 차별적 상황을 마주하려고 이렇게 싸워가며 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세식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농인인 김세식 씨는 한국수어법 제정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김 씨는 "(법 제정을 위해) 청와대, 교육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앞에서 열심히 싸웠고, 오늘 기자회견을 하는 이 자리, 세종대왕상 앞에서 2012년 6월 다양한 장애인단체들과 '수화언어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대식을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러한 노력으로 2016년 2월 3일, 드디어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실망이 너무나 크다"며 "4년간 힘들게 싸워 만든 법인데, 농인들이 느끼는 변화는 별로 없다"고 전했다.

 

김 씨는 "수어법을 만들었던 목적은 한국수어를 한국의 언어로 인정하고, 이를 통해 가정, 학교, 직장 등 사회 곳곳에서 농인이 받는 차별과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라며 "그러나 한국수어법이 이러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어로 발언하던 김 씨는 팔을 높이 들어 올려 "수어법을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싸웠듯, 올해는 그 법을 바꾸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크게 말했다.

 

황소라 지회장(왼쪽)과 이진경 씨(오른쪽).

 

한국수어법 제정 이후에도 농인의 의사소통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손말이음센터'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한국정보화진흥원(아래 진흥원)이 청각·언어 장애인의 전화 소통을 지원하는 수화중계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과정에서 직원 12명이 사실상 '무더기 해고' 당한 것이다. 이전까지 '손말이음센터' 사업은 케이티 자회사인 케이티씨에스(KTcs)에서 운영해왔다

 

황소라 케이티새노조 손말이음센터 지회장은 "40명 정원에 현재 18명의 중계사만이 남아있는데, 이들이 전국을 대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숫자"라며 "이에 우리 노조는 중계사 확대와 현재 서울에만 있는 센터를 전국 각 지역에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지회장은 "문제는 적은 인력과 센터 수뿐만이 아니라, 농인 중 손말이음센터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며 "2005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운영된 지 10년이 넘었고, 수어법이 제정되고도 3년이나 지났는데도 이 서비스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것은 국가가 농인들의 정보격차를 줄이려는 적극적 의지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손말이음센터 이용자인 이진경 씨 역시 센터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 씨는 "전화 통화에서 농인들의 입과 귀 역할을 하는 중계사를 대거 해고하는 것은 이용자들의 생존과 직결된다"며 "늦은 시간에 응급상황이 발생해 손말이음센터를 통해 병원에 연결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이용자도 있고, 무사히 아기를 출산한 이용자도 있었다. 센터가 없었다면 이들이 어떻게 되었겠나"라고 되물었다.

 

이 씨는 "센터 정상화를 통해 이용자들의 불편을 신속히 해결하겠다고 한 진흥원의 약속은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라며 "이용자의 한 명으로써, 일방적인 중계사 해고를 강하게 비판하며 신속한 정상화를 촉구한다"고 발언했다.

 

장애벽허물기 등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서울정부청사까지 행진했다. 또한, 한국수어법 개정과 제도 개선 요구서를 국무총리실과 수어법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손말이음센터를 관할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진흥원, 그리고 청각장애인 복지 정책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정부 부처들에 전달할 '한국수어법 개정 및 농인 권리 보장' 요구안을 들고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참가자들이 서울정부청사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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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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