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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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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죽음이 남긴 것들
1월 장례이야기
한 사람으로 맺어진 관계
등록일 [ 2019년02월08일 16시41분 ]

살아서의 관계는 죽어서도 영향을 끼칩니다.

무연고자의 죽음 이면에는 관계의 단절이 있었고,

그 죽음으로 인해 다시 관계가 이어지길 원치 않는 누군가의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오롯이 혼자가 아니었고,

살면서 맺은 인연은 같은 시간이 다르게 기억되었습니다.

끊어진 관계는 다시 이어지기 힘들어도

‘한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진 관계’는 새로운 이야기를 예고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서 예고치 않은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대물림된 단절… 무연고 장례식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자

 

1월 중순 앳된 목소리의 20대 남성분으로부터 ○○○ 님의 장례에 참석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고인의 사진이 있는지 물었을 때 남성분은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많은 사례 중 비슷한 경우가 있어 대강의 스토리가 짐작되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묻지 못했습니다.

 

장례 당일 아들의 전화를 받고 서울시립승화원 2층 무연고 전용빈소에서 만났을 때, 예상치 못한 분들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 님의 어머니와 이복동생들이었습니다.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재가한 어머니는 오랜 세월 동안 죄인의 마음으로 살다 어느 날 아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병마와 싸우고 있었고, 병명은 위암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증오하며 살아왔던 아들은 다시 만난 어머니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용서를 빌었고, 이복여동생은 늦게나마 만나게 된 오빠를 자신의 집으로 옮겨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했습니다. 병이 나으면 다 같이 여행을 계획했을 만큼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었지만, ○○○ 님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유언으로 ○○○ 님은 폐를 끼치기 싫으니 무연고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 님에겐 아들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이혼을 할 당시 생후 6개월이었던 아들은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고, 장례를 치를 형편이 안 되어 시신인수를 포기했습니다. ○○○ 님은 무연고로 확정되었고, 아들은 무연고 사망자 담당 주무관으로부터 고인의 어머니가 계신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은 아버지의 장례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에서 비로소 손자와 할머니 사이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숨을 끊어야 했던 형님

 

무연고로 보낸 동생의 장례식에 참석한 형님

 

서울시 종로구의 한 쪽방에서 사셨던 ●●● 님은 얼마 전 사우나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심근경색으로 중환자실에 계셨고, 병원에서는 가족들을 찾았습니다. ●●● 님의 형님은 병원으로부터 쓰러졌을 당시에 응급처치만 진행했어도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님은 의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님과 형님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았습니다. 두 분은 모두 쪽방에 살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어렵게 사셨습니다. 젊었을 때 ●●● 님은 택시를 운전하며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하면서 급격하게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경제적인 상황보다도 ●●● 님을 힘들게 한 건 절망감이었습니다. 형님은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며 스스로 망가져가는 동생의 모습을 보는 게 힘들기만 했습니다. 밥이라도 잘 챙겨먹는지 확인하러 갔을 때 동생은 술에 의존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고,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러다 동생은 사고를 당하여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고, 병원에서는 여러 차례 형님에게 연락을 해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형님은 병원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고, 여러 날 고민 끝에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했습니다.

 

장례식에서 무연고자로 동생을 보내는 형님은 스스로 동생의 숨을 끊어 놓았다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집안이 살만해 서로 의지하며 살았는데, 늙어서 가난해지고 나니 가족도 형제도 챙길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형님은 자신의 미래도 똑같아질 거라며 희망 없는 눈빛으로 화장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머물다 간 자리, 누군가의 마지막 자리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일상적인 공간이 무연고자의 마지막 자리가 되곤 합니다.

 

몇 년 간 무연고 장례를 진행하면서 무연고자의 마지막 자취를 찾기 위해 주소지를 검색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공문에 남은 주소지는 주택이거나 고시원, 혹은 병원과 시설 등입니다. 그곳은 사는 곳이기도 혹은 사망한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생전에 마지막으로 머문 자리’는 고인의 삶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되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무연고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쓸쓸한 뒤끝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월에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중엔 집이 아닌 곳에서 사망한 분들이 계셨고,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정○○ 님은 서울시 서초구의 한 지하철역 승강장에 쓰러졌고, CCTV를 통해 이 장면을 목격한 승무원이 119에 신고했지만 병원에 이송된 후 돌아가셨습니다. 외람되지만 몇 달에 한 번씩 이와 비슷한 뉴스를 접할 때가 있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의인이 나타나 심폐소생술 끝에 쓰러진 이가 살아났다는 반가운 결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정○○ 님은 45년 이상 가족과 단절되어 살았고, 자녀들은 시신인수를 거부해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이○○ 님은 50대 중반으로 2018년 12월 초 공공건물 한쪽 흡연부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 정겨운 분위기의 무리들 속에서도 한두 명씩은 혼자인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군중 속에서 혼자였을 것이고, 마지막 한 모금의 연기를 내뱉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의 무리를 빠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머물다 떠난 자리, 이○○ 님은 그곳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이미 숨은 끊어져 있었습니다.

 

지하철역, 공공건물, 시민공원, 광장 등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는 그렇듯 혼자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고, 투명인간처럼 사람들의 시선 밖에서 머물다 사라졌습니다. 공문에 적힌 지하철역의 이름은 그가 살다간 마지막 자리로 기록되었고, 누군가는 흡연부스 위를 떠오르는 담배연기처럼 무연고자가 되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끝내 듣지 못한 사과

아픈 기억 너머 나비가 되어 날아가다

 

여성 인권활동가 김복동님의 장례

 

1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루에 두 분의 할머니의 타계소식은 많은 사람들에 충격을 주었고, 일본정부로부터 끝내 사과를 받지 못한 데에 분노했습니다. 아픔의 역사를 숨기고 살았지만 피해사실을 세상에 당당하게 외쳤고, 인권운동가로의 세계를 누비신 김복동 할머니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해야 할 많은 것들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장례가 무연고 장례가 아니었던 이유?

 

나눔과나눔은 이○○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 장례를 지원했고, 빈소를 지키며 많은 분들의 발걸음을 지켜보았습니다. 두 분의 장례를 치르며 나눔과나눔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겠지만, 두 분의 할머니는 사실은 무연고자였습니다.

 

‘장사등에관한법률(이하 장사법)’에 따르면 무연고자가 되는 경우는 1. 연고자가 없거나 2. 연고자가 있지만 찾기 힘든 경우 그리고 3.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인수를 포기하여 무연고자가 되는 경우, 이 세 가지입니다. 여기서 ‘연고자’란 ‘장사법’ 제2조 제16호에 따라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의 직계비속, 부모 외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사망하기 전에 치료·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의 장, 시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입니다.

 

두 분의 할머니는 연고자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무연고자가 되겠지만, 이○○ 할머니는 비공개로, 김복동 할머니는 많은 분들의 배웅 속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장례가 가능했던 이유는 ‘장사법’ 제2조 제16호 아목의 ‘시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에 따라 ‘정의기억연대’ 등이 그 연고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근거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정의기억연대’ 등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장례를 치르는데 반대가 없었던 데에는 사회적인 용인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법률조항은 있지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담당자가 있었다면 이 또한 재량권이 발휘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가족 대신 장례 필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85조(사망신고의무자) ① 사망의 신고는 동거하는 친족이 하여야 한다. ② 친족·동거자 또는 사망장소를 관리하는 사람, 사망장소의 동장 또는 통·이장도 사망의 신고를 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례들을 보면서 법률의 적용범위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재량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일반적인 무연고자의 경우 지인들이 법률상의 연고자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있음에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눔과나눔은 2015년부터 무연고 장례를 치르면서 사실혼 관계의 부부가 서류상의 부부가 아닌 경우 그리고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가 고아였던 여자친구를 무연고자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경우 등 혈연관계가 아닌 경우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치를 수 없었던 사례들을 보았습니다. 혈연 가족, 즉 가족관계증명서 상의 연고자가 아닌 사람은 장례를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장례와 사망신고는 원칙적으로 혈연 가족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가족들이 해체된 지금의 상황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법률상에는 있지만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조항들은 이제 실제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 한 방편으로 ‘가족대신장례’, ‘사후자기결정권’에 관한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이제 가족의 역할을 넘어 사회가 장례를 책임짐으로써 존엄한 삶의 마무리의 기반이 마련되길 기대해 봅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서 헌화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 1월 무연고사망자

퀸톤탓(Qyunh Ton That), 정진규, 홍성구, 주병학, 정해만, 박화원, 이상훈, 황대연, 이동훈, 갈병노, 오태경, 최돈진, 유득환, 김진배, 윤세민, 정재수, 이봉현, 이광호, 김기환, 이상화, 노광열, 최덕규, 이복구, 이삼석, 서경성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스물일곱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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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나눔과나눔 전략사업팀장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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