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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기 진짜 너무 싫어!” 어느 뇌병변장애인의 병원 수기
‘정상 신체’만을 위한 의료 환경, 장애인은 매우 불편하다
장애와 의료, 장벽 없는 병원을 위하여
등록일 [ 2019년02월18일 21시04분 ]

병원에서 의사들이 수술하는 모습 ⓒ픽사베이

-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새해가 밝은지 두 달이 넘었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 때마다 몸의 반응이 다르고, 늙어가는 속도도 다르게 느껴진다. 이러한 느낌을 사람들에게 말하면 “아직 한창때인데 엄살 피우지 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야. 마음을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달라.” 등의 말들이 쏟아지곤 한다. 과연 이 말들이 내게도 해당하는 걸까?

 

몇 년 전, 한 대학병원에서 골다공증 검사를 했다. 나의 담당 주치의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보며 골다공증 위험이 높으니 건강관리를 잘해야겠다고 조언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중증장애인은 신체 활동에 제약이 많아 비장애인보다 나이 듦의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당시 나는 ‘이 말은 의학적 견해일 뿐이고, 원래 잔병치레가 많았던 내가 여기서 더 늙는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 들수록 주치의의 조언이 온몸에 문신처럼 계속 박히는 것 같다. 주치의의 말은 예언이 되어 내 몸은 ‘늙어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피부가 생기를 잃고 뱃살이 축축 처지는, 그런 눈에 보이는 차원이 아니라 장애 상태가 진행되고 몸속에 있는 장기들이 이상 신호를 보내는 횟수가 많아짐을 뜻한다. 이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내게 ‘주 5일 출근’이 점점 버거워짐을 뜻하기도 한다. 지금 나는 의료적 치료에 기대어 병원 방문이 잦고, 진료를 보는 진료과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 병원에서 상처받지 않을 권리

 

한동안 나는 고정적으로 다니는 물리치료나 심한 독감에 걸리지 않으면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러다가 재작년부터 병원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입원까지 하면서 말이다. 사실 중증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복잡하고 불편한 일들을 감수해 내야 하며 차상위 계층이 아니면 의료비 부담까지 떠맡아야 한다.

 

장애인과 의료는 매우 밀접해 보이지만 실제 병원 시스템은 장애와 무관하다. 의료는 어떤 ‘정상’적인 기준에 맞춰져 있기에 정상 기준에 미달한 장애를 가진 몸들은 유령처럼 떠돌게 된다. 심지어 병원 내 의료 장비 중 내 몸에 맞춰진 건 없다. 특히 나는 쿠션감이 없는 맨바닥에 눕거나 앉으면 뼈가 살을 관통해서 나오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데, 엑스레이를 찍을 경우가 그렇다. 또한 경직이 있어서 좁은 공간의 침상에 누우면 바닥으로 떨어질 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히는데 엑스레이를 찍을 때면 낙상에 대한 생각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린다.
 
특히 입원하게 되면 나의 장애에 맞게 가꾸어 놓은 일상이 없어지고 병원 환경에 맞게 새로 적응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환경적인 변화가 아니다. 장시간 휠체어 사용으로 다리에 통증이 있어 자다가도 몇 번씩 자세를 바꿔야 하는데 병원용 싱글침대는 자세를 바꾸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낙상 위험 때문에 올려놓은 양쪽 안전바는 경직된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부딪혀 멍이 시퍼렇게 든다.

 

병원 의사와 간호사의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도 병원마다 다르고 진료과마다 다르다. 어느 진료과 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로 대하거나,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보호자가 아닌 활동지원사임에도 불구하고 활동지원사와 전적으로 소통하는 경우도 많다. 아픈 건 ‘내 몸’인데 아픈 증상을 활동지원사에게 물어보면 어쩌라는 말인가?

 

복도에 휠체어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픽사베이
 

- 또다시 수술대에 오르다

 

몇 달 전,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맹장염이라고 해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11년 전에 목숨이 위태해질 수 있을 정도의 큰 수술을 받아봐서 맹장염 수술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도 별거 아니라고 해서 동행한 친언니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막상 수술 전 검사를 한다며 주삿바늘들이 몸 곳곳에 꽂히고 의료 장비들이 하나씩 내 몸을 걸쳐갈 때마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검사 후, 수술을 위해 이동용 침대에 옮겨 누우면서는 이제부터 내 몸에 대한 권한은 내게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동용 침대에 이끌려 수술 대기실 같은 곳에 도착하자, 병원 내 이동팀 관계자는 ‘잠시만 기다리면 수술하러 들어갈 것이다’라는 말만 남기고는 사라졌다. 그 사람이 가고 나서 나는 꽤 오랫동안 혼자 있었다. 혼자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인적도 없는 폐쇄된 공간에 외부와 연락할 수단 하나 없이 누워 있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의사들이 수술을 잊은 것은 아닐까?’, ‘이대로 형광등 불마저 꺼지면 어쩌지?’ 등 잡다한 생각과 공포가 발끝부터 머리까지 채울 때쯤 누군가 와서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이 나는 수술대에 눕혀졌다.

 

수술대에 오른 후엔 바로 전신마취를 하여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자 의식은 돌아왔지만 눈은 떠지지 않았다. 곧이어 의사와 간호사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마취에서 조금 더 일찍 깼어야 했는지,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그들은 나의 몸을 흔들고 볼을 때리는 등의 행동과 함께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며 “이 환자 뇌성마비 장애인이라서 그런가? 왜 이리 못 깨지?” 등의 말을 했다. 비록 눈은 못 뜨고 있었지만 순간 뉴스에서 접한 사건이 생각났다. 전에 마취 중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를 두고 나누는 여러 비하적인 말들이 담긴 영상이 공개된 적 있었는데, 나도 그 환자처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 곧바로 눈이 떠져서 말소리는 중단되었다.

 

- 아픈 몸, 또 다른 걱정들

 

수술은 잘 끝났다고 담당 의사는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수술하고 나서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남들은 이틀이면 퇴원한다는데 사흘이 지나도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의 걱정은 시작되었다.

 

요즘 병원마다 시범 사업으로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면 간호·간병서비스를 통합해서 받을 수 있다. 밤에 간병할 사람이 없는 나는 그 병실에 입원했다. 그러나 간병을 지원하는 분들은 대부분 장애를 가진 몸을 접해보지 않아서 모든 지원이 불편했다. 화장실 한 번 가고자 했을 때 두 사람이 지원해도 나를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낮에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활동지원 서비스는 30일 넘게 병원에 입원해있으면 서비스가 중단되며, 퇴원 후에도 곧바로 이어서 지원받기가 어렵다. 따라서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불안감도 늘어간다. 이 불안감은 활동지원 서비스 중단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건강보험 외에는 의료비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는 나는 검사 항목이 늘어날수록, 입원이 장기화 될수록 의료비 부담이 상당하다. 이처럼 아파도 아픈 몸에 집중할 수가 없고 마음 놓고 회복에 전념할 수가 없다. 아픈 몸은 아픈 몸대로 고통을 느끼며 다른 걱정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활동지원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을까 달력을 살피게 되고, 의료비는 얼마나 나올지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계산기를 두들겨야 한다. 다행히 이번엔 4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걱정이다. 병원 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고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나는 15년 넘게 임금 노동을 하고 있지만 의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일을 중단하고 차상위 계층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미 급여에서 활동지원 본인부담금만 11% 넘게 내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의료비도 만만치 않다. 내가 이대로 얼마나 버티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의 일상은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예측 불허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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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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