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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에게 권한다
[서평] 『어쩌면 이상한 몸: 장애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
책이 되어 전하는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의 초대장
등록일 [ 2019년02월19일 17시46분 ]

『어쩌면 이상한 몸』, 장애여성공감 지음 ⓒ오월의 봄

페미니스트로서의 나를 키운 8할은 ‘언니들’이다. ‘네가 나를 키웠노라’ 말하면 질겁할 얼굴들이 그려지지만, 나는 꿋꿋하게 100명의 언니들 노래도 부를 수 있다. 지분으로 따져보자면 2015년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사업을 하며 인연이 닿아 교류하며 지내온 장애여성공감은 나의 대주주임이 분명하다. 장애여성공감은 아직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느닷없는 고백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장애여성공감에서 ‘어쩌면 이상한’ 몸의 감각을 교접하였고, 이상하지만 존엄하며, 좌절하지만 명예로운 이 감각의 전도사가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장애여성공감이 각기 다른 유형과 정도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여성 10명의 삶을 정교하고 대담하게 담은 책을 빚어냈다. 존경하는 두 활동가의 글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실려있어 이 책을 만들게 된 기획, 그 과정과 고민, 나아가 여성운동과 장애운동의 정치성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함께 담고 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행운(6p.)”이라는 추천사는 더없이 정확하며, 동시대의 페미니스트이자 동료 사람들에게 이 행운을 전하고 싶다. 
 
- 장애는 무엇일까? 장애는 유니콘이 아니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특정한 구도로 ‘장애’가 논쟁의 중심이 되는 상황을 목격할 때가 있었다. 어떤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장애’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고려하였는지가 페미니스트의 정치적 정당성(political correctness)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등장했다. 어디서는 여성 인권을 주장하는데 장애인 인권을 가져와서 두 이야기를 ‘쓰까’지 말라고 했고, 또는 어딘가는 장애인을 전적으로 나와 ‘다른’ 존재로 정의하고, 이를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것을 계속해서 사과하는 것이 비장애인 페미니스트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장애의 경험이 자신의 어떤 경험과 온전하게 등치될 수 있다는 생각도, 또는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을 가정하고 고통을 위계화하는 목소리도 공허하게 느껴졌다.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people who live with disability)의 다양함과 장애의 변화무쌍함에 대한 성찰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애는 유니콘이 아니다. 장애는 다양하며, 변화하며, 누구와(함께), 어떤 방식(지향)으로, 무엇을 하며(통해) 살아나가는지에 따라 이동하며, 사적이나, 공간, 제도, 자원, 기술 등과 관계적이다. 
 
풍부함과 다양성, 차이의 영역을 보장받지 못하고 문화적 규정이 할당한 타자화된 공간에 박제되는 것이 소수자의 사회문화적 지위임을 고려할 때, 장애여성의 경험을 대안적 언어로 고민하는 ‘어쩌면 이상한 몸’의 여성들의 도전은 정치적이다. 조미경은 자신이 경험하는 골형성부전증을 ‘진화’라는 키워드로 설명해낸다. 조미경에게 장애의 경험은 뼈가 쉽게 부러지는 고통(pain)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안정한 상태가 불안감이 되는(43p)” 구조 속에서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수고와 점차 빨라지는 진화의 속도감, 몸의 변화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허상과의 대립이 함께 감각된다. “어중간한 장애인이라서 자꾸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을 패스하게 된다고(81p)” 자신을 표현하는 배복주는 ‘절면서 걸어가는 자신의 몸’과 신체적으로 여성의 몸이 상호교차적(intersectional)으로 만나 어떠한 심리적 위축과 사회적 고립, 실질적 폭력이 번지는지 톺아본다. ‘춤추는 허리’의 연출이자 배우인 서지원은 동료 및 관객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는 연극이라는 매체와 자신의 언어장애 사이의 갈등과 협상을 전한다. “‘언어장애는 무엇일까’ ‘비언어장애인처럼 아무 장치 없이 소통할 수 있을까?’ ‘언어장애가 있는 연출과의 소통은 외부 스텝들에게 도전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춤추는 허리, 그리고 장애여성 극단이 던지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화두이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장애여성운동을 이끌어온 장애여성공감이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책 『어쩌면 이상한 몸』 북콘서트가 지난해 11월 20일 열렸다. 사진 박승원 기자.
 
- 소수자 정치에 대한 논쟁적인 질문들을 던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생생하여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를 알고 있는 이라면, 그이의 표정이나 몸짓, 음성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장애여성을 “초지일관 동정 또는 장애 극복 대상으로만(27p)” 바라보는 이들을 마주했을 때의 초탈한 표정이나, “누워서 대사를 하고 꼬인 몸으로 ‘장애를 하나의 장치로 만드는(163p)” 춤추는 허리의 몸짓, 4·20 집회 현장에서 경찰들이 쓴 모자를 가리키며 “그 모자 내가 만든 거다!(178p)”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변화무쌍한 장애’와 함께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처음인 삶을 투쟁하고, 협상하고, 부정하고, 긍정하며 살아간다.
 
솔직하고 풍성한 타인의 서사를 읽는 즐거움 다음으로 이 책의 장점을 꼽아보자면, 사실 이 이야기들은 소수자 정치에서 간과할 수 없는 논쟁적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소수자를 일정한 문화적 규정성 안에 박제하는 구조는 장애인을 고통을 경험하는 존재,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 독립할 수 없는 존재, 비생산적인 존재에 위치시킨다. 이는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는 제도나 사회가 장애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요구하는 장애인의 모습이다. ‘영감 포르노’에 출연한 레드의 경험은 이러한 구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장애인의 몸과 고난, 노력을 비장애인에게 삶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형태로 가공하는 영감 포르노 안에서 레드의 삶은 ‘사람답지 못한’, ‘잃어버린 삶’으로 수식되었다. 그렇지만 레드는 “‘사람답지 못했던’ 시절에도 밥을 먹고, 대학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고, 누군가와 섹스를 했다(69p).” 이 책은 삭제된 이야기를 복구하려는 노력이다.
 
소수자의 영토를 제한하는 구조 안에서 장애인의 존재를 정형화하는 것을 통해 국가와 사회는 핵심적 이익을 누린다.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의 위치와 특성을 고정함으로써 정상과 비정상을 규율하는 사회적 구조를 성찰하고, 평등을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책임에서 벗어난다. 어쩌면 이상한 몸들의 퀴어함은 이러한 구조 너머를 욕망한다. 정상성이라는 틀, 독립된 개인이라는 환영에 선명하게 도전하며, 동시에 욕망되어지지 못한 욕망들과 현존하지만 삭제되는 것들에 대한 정치적 질문을 던진다. : 육체의 경계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고통은 고립을 의미하는가? 부정당하는 몸을 긍정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독립이라는 영역과 경계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노출되고, 드러나는 공적 공간은 장애여성과 어떻게 만나 구성되는가? 공적 공간에서 장애여성의 리더십은 무엇인가? 장애인 운동의 당사자란 누구이며, 장애여성운동은 어떠한 정치성을 갖는가? 장애를 물려주는 것은 왜 삶의 지혜를 물려줌이 아닌가? 성공한 장애여성은 어떤 의미인가?

 

제도적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장에서 답으로 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드러내고 책으로 엮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해낸 것은, 이 책이 국가와 사회, 운동 사회와 페미니스트 동료들에게 지금 여기서 소수자 운동의 의미를 함께 새로 써나가기를 요청하는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의 초대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 짐작한다.
 
- 장애와 퀴어가 연대하는 이유
 
2018년은 장애여성공감의 20주년이었다. 장애여성공감의 발달장애여성합창단 ‘일곱빛깔무지개’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모임 게이코러스 ‘지보이스(G-voice)’와의 콜라보 공연은 여러 가지 의미로 화제가 되었다. 나는 그 연대를 부정한 사람들은 장애에도 퀴어에도 어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와 장애인은 그저 모두 소수자이기 때문에 연대한다’는 것은 사회 정의의 문제를 케이크를 나누는 문제처럼 사고하는 방식에 기반한다. 누가 소수자인지, 어떤 집단이 ‘더’ 소수자인지, 경쟁하는 사고방식은 모욕적이다.
 
소수자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소수자 정치는 무엇을 해체하고 도전하는지, 소수자로서 우리는 어떤 지점을 포착하며, 이를 어떻게 새롭게 갱신하는지에 주목할 때 장애와 퀴어가 연대하는 이유는 선명해진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 페미니즘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불구의 몸’에 주어진 규정성을 박차고, ‘불구의 몸’을 스스로 정의함으로써 퀴어가 된다. 책은 프롤로그에서 “우리의 퀴어함이 자랑스럽고, 퀴어한 존재들과 동료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러한 선언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 나의 페미니스트 동료라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스럽다. 페미니스트 정치란 무엇인가, 고민한다면 이 책이 그 방향을 노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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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림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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