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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를 달리는 휠체어, 그러나 ‘우리의 이동’이 곡예가 되지 않으려면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사고 당해
전동휠체어가 갈 수 없는 인도, 차도로 갈 수밖에… 책임은 누구에게?
등록일 [ 2019년03월04일 16시22분 ]

인도 위에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의 앞 인도가 공사 중으로 막혀 있다. 사진 박승원.

 

몇 년 전 일이다. 병원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가는 저상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기 전에 본 하늘은 비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찌뿌둥한 날씨여서 그런지 저상버스는 골골대며 리프트를 내렸다. 불안이 엄습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나와 동행했던 어머니도 창밖을 보고는 혼잣말로 “집에 갈 때까지 비가 안 와야 될 텐데.”라고 연신 읊조렸다.

 

불안이 현실로 되기 때까지 수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버스에 승차한 뒤, 차체 안으로 힘겹게 들어가던 리프트가 뚝 멈췄다. 그것은 좀체 들어갈 줄 몰랐다. 버스 기사가 여러 번 시도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정류장이 대학가와 가까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출발이 지연되자 사람들은 버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살피는 듯한 눈치였다. 마침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어느새 사선을 그으며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도 이런 일은 처음 겪었는지 “이게 왜 이러지”, “허허 참” 등의 탄식을 내뱉으며 리프트 장치를 툭툭 차거나 직접 손으로 리프트를 넣으려 했다. 곧이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들이 클랙슨을 울렸다. 정류장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휠체어석에 자리 잡은 나와 어머니는 좌불안석이었다. 애매한 위치에서 리프트가 멈춘 바람에 다시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대놓고 불만을 늘어놓는 승객들은 없었지만 아무 말 없이 접히지 않는 리프트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듯했다. 보다 못한 남자 승객 몇몇이 밖으로 나와 기사와 함께 완력으로 리프트를 집어넣으려 했다. 곧 기사와 남자 승객들의 등짝 부분이 빗물로 흥건해졌다. 하지만 리프트는 마치 태업이라도 하는 듯이 미동조차 없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기사가 버스에 오르더니 승객들에게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버스를 고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지불하신 요금은 환불해드릴테니 다른 노선의 버스나 교통수단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와 어머니도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승객들의 카드 찍는 소리가 날 때마다 내 가슴은 왠지 모를 수치심에 한 박자 한 박자 내려앉았다. 기사는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버스에는 운전기사, 나와 어머니,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만이 남았다. 어머니가 지켜보다 못해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정비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버스 시동을 껐다 다시 켜보시는 건 어때요?”

 

기사는 퉁명하게 “그렇다고 그게 되겠어요?” 내뱉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했는지 운전석으로 가더니 시동을 껐다가 다시 켰다. 그러자 정말 감쪽같이 리프트가 다시 작동되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쌩쌩하게 작동되는 리프트를 보고 있노라니 배신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렇게 정류장에서 한 시간가량 멈춰 있었던 버스는 새로운 손님을 태우면서 내가 사는 동네로 향했다.

 

그런데 해프닝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버스가 동네 정류장에 다다르자 기사는 짐짓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어머니는 피곤에 지쳐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버스 출입문에 서 있었다. 기사는 버스를 정류장에 정차시키더니 출입문을 열고 운전석에서 빠져나왔다. 리프트는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뭔가 착오가 있나 싶어 리프트 장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사는 완강히 고개를 젓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직접 휠체어를 들어서 내려드릴게요. 리프트 내렸다 또 고장 나면 어떡합니까?”

 

황당한 선언이었다. 우리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무조건 전동휠체어를 들겠다니. 한 번이라도 전동휠체어를 손으로 밀어보려고 한 사람은 알 것이다. 이 물건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무게를 갖고 있는지. 전동휠체어는 기본 100킬로그램은 족히 나간다. 더군다나 몸무게가 40에서 50킬로그램이 나가는 사람만 타도 그 무게의 합은 150킬로그램 이상이다!

 

나와 어머니는 그러지 마시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기사는 이미 남자 승객 몇 명을 섭외해 놓은 상태였다. 남자 승객들은 벌써부터 외투를 벗거나 팔을 위아래로 돌리며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부디 그들의 근육이 놀라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남자 여섯 명이 전동휠체어 앞뒤로 둘러섰다. 그리고 각자가 들 전동휠체어 부위를 정하더니 힘차게 하나둘셋을 외치면서 버스에서 전동휠체어를 내리는 데 안간힘을 썼다. 그때 나는 내가 마치 차력사가 부리는 물건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완력에 반드시 구부러져야 하거나 강제로 끌어져야 하는 물건 말이다. 여섯 방향에서 사람들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는 진동을 느껴보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어쨌든 나는 한 시간 반 만에 버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인지 뭔지 모를 한숨을 길게 뿜어낸 찰나,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버스 기사는 무슨 이유인지 평소 정차하던 자리가 아닌 그보다 못 미치는 자리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그런데 그 자리로부터는 5미터도 안 가서 도로 표지판을 지탱해주는 커다란 돌이 있었다. 그 돌은 엄청나게 커서 인도(人道)의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겨우 사람 하나가 지나갈 수 있는 폭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지나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고도의 운전 테크닉을 써도 전동휠체어가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도를 내려오면 차들이 다니는 도로였는데 우리가 가려는 방향의 역으로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비가 꽤 오는데도 불구하고 차들은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다. 나는 열두 살 때부터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녔지만 그날만큼 이동에 제한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볼까 생각했지만 비 오는 날에 콜택시를 타는 것은 길에서 금반지를 줍는 것보다 어렵기에 그 선택지는 일찌감치 제쳐두었다.

 

결국 우리는 차도로 내려가기로 했다. 차들이 달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지만 더 이상 비를 맞고 있다간 뭔 사단이라도 날 것 같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나는 집에 돌아가는 일에도 차 사고를 당하지 않을 운 따위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더군다나 어머니와 함께여서 더더욱 조심히 길을 갔다. 차선에서 보행자가 갈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를 확보해줄 목적으로 그어진 노란색 선을 외줄 삼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노란색 선을 타면서 느꼈던 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롭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집을 떠난 지 반나절 만에 초주검 상태로 돌아왔다.

 

지난 2월 26일,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택시와 부딪혀 어머니는 숨지고 아들은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련한 KBS 뉴스 영상 캡처.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며칠 전 인터넷을 보다가 너무 또렷한 기시감이 드는 사건과 마주쳤다. 지난 2월 26일 부산 영도구에서 전동휠체어와 택시가 부딪쳐 사고가 났는데 전동휠체어에는 청각장애 4급인 어머니 이아무개(67) 씨와 지체장애 5급인 아들 손아무개(44) 씨가 함께 타고 있었다. 둘은 하나의 전동휠체어를 타고 차도를 역주행하다가 좌회전하려는 택시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어머니 이 씨는 병원으로 옮겨진 후 숨졌고 아들 손 씨는 중상을 입었다. 실제 사고가 난 택시 블랙박스를 보면 자정이라 시야가 어두웠고, 택시가 좌회전하는 동시에 전동휠체어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기사로서는 사고를 피할 도리가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1인승 전동휠체어에 두 명이 타고 차도를 역주행한 모자도 일정 부분 과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누구의 잘못이 더 중한지를따지기보다는 그 모자가 왜 위험한 차도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짐작건대 그 모자가 다니려고 한 길은 전동휠체어가 도저히 갈 수 없는 환경이지 않았을까? 실제 이후 보도를 보면, 이곳 인도는 전동휠체어로서는 도저히 다닐 수 없는 구조였다. 인도에 설치된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했고, 심지어 보도블록이 빠진 곳도 있었으며, 인도 곳곳에 가로수나 벤치가 있어 전동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있는 폭이 아니었다. 횡단보도에도 턱이 깎여있지 않아 횡단보도에서 인도로 진입하기도 어려웠다. 모자에게 그 길은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서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휠체어를 타고 길을 가다 보면 약 60%의 확률로 경사로가 없거나 혹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경사로에 승용차를 세워놓아 경사로로 갈 수 없는 광경을 맞닥뜨린다. 그러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왔던 길을 돌아가서 차도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휠체어를 돌려서 후진으로 턱에서 내린 후 차도로 가야 한다. 이때 사고가 날 확률은 대단히 높다. 그렇다면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휠체어를 미처 보지 못한 운전자일까? 아니면 차도로 간 휠체어 이용자일까? 혹시 인도로 휠체어 이용자가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경사로가 없는 길을 낸 지자체의 책임은 없을까? 경사로에 차를 주차해서 휠체어나 유모차가 가지 못하게 만든 차량의 운전자 책임은 얼마나 될까? 대단히 난감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선별적으로 이동권을 부여하거나 제한하는 사회의 구조나 관습에 대해서는 우리가 논해볼 수는 있겠다. 끈기 있게 논의를 이어가다 보면 최소한 계단 위에 경사로가 지어져 있어, 계단부터 오르고 경사로로 가라는 식으로 설계된 황당한 건축물은 다시 마주치지 않아도 될 터이다. 그 어떤 이의 이동도 곡예가 아니니까 말이다.

 

필자 소개.

 

홍성훈. 뇌병변 1급 장애인. 서정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열등감이었다'. 일반 초중고에서 비장애인 친구들과 공부했고 친구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으나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려고 한다.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인정투쟁이 아닌 또 다른 논리로 소수자를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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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훈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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