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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차별에 분노하는 내게 사람들은 ‘당사자냐’고 물었다
2016년 여름, 키 140cm에 목발 짚는 재원과 결혼하였다
재원이를 통해 확장된 세계, 나를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등록일 [ 2019년03월08일 16시44분 ]

2016년 여름, 키 140cm에 목발 짚는 재원과 결혼하였다 (사진 제공 : 이가연)


2016년 여름, 나는 키 140cm 정도에 목발을 짚는 재원이와 결혼했다. 나는 재원과 함께 있을 때면 키가 작아 내 가슴에 닿는 그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껴안거나, 볼에 뽀뽀하곤 한다. 나와 결혼한 지 2년이 넘은 그를 여전히 너무 사랑해서 그러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재원의 머리를 껴안으며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우리더러 참 보기 좋은 남매라고 했다. 재원이는 굳이 정정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나는 그때마다 짚고 넘어가야 하기에 아주머니께 우리는 결혼한 커플이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당황해하며 서로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몰랐다면서 대뜸 아내가 참 대단하다고 하셨다. 우리가 비슷하게 생긴 것과 내가 대단한 것의 상관관계는 없었다. 그저 아주머니는 장애가 있는 키 작은 남성을 머리 하나만큼 키 큰 여성이 껴안고 있는 것을 보고 동생을 잘 돌보는 누나쯤으로 생각해 그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이런 식의 경험은 재원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매우 비슷하게 주기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다. 재원이에게 교통사고가 나서 간 병원에서 내게 가족관계를 물었을 때, 그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나와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친구를 만나 그를 소개할 때 등 많은 순간 속에서 우리의 관계를 전해 듣고 반응하는 그들의 미묘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항상 재원과 나를 사랑하는 연인관계로 보기보다는 사이좋은 오누이나 장애인과 도우미의 관계로 보았다. 다소 짜증은 나지만 이 정도의 시선쯤은 참을 수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타인이 나와 그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 것은 상관없기 때문이다.
 
- 고장 난 엘리베이터, 목발로 계단을 오르며 땀에 젖은 그의 등을 보았다 

 

그러나 실질적인 차별을 겪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재원과 지하철을 탈 때 엘리베이터가 종종 고장 나 있는데, 이럴 때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역무원을 불러 휠체어리프트를 타고 계단을 오를 것인가, 아니면 재원의 오른쪽 다리와 목발에 의지하여 그 길고 긴 계단을 오를 것인가. 연애 초에는 리프트가 얼마나 위험하고 불편한지 모르고, 재원의 다리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리프트를 타자고 했다. 그러나 휠체어 없이 리프트를 타는 일은 더 위험했고, 재원이 또한 무서워하며 절대로 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계단으로 걸어가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는 재원의 뒷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그 누구도 재원이에게 직접적인 차별을 가하지 않았지만,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에 큰 글씨로 쓰여있는 ‘고장’ 표시, 역무원에게 연락했을 때 다른 역 엘리베이터는 이용할 수 있으니 그 역에 내리라는 무책임한 말들은 명백한 차별이었다. 이런 비장애인 중심적 차별의 경험이 재원과 함께 다니면서 늘어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누군가의 뒤에서 침묵하는 성격에서 능동적으로 항의하고 요구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물론 나의 화를 주체하지 못해 그때그때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많아지자, 재원과의 갈등도 덩달아 많아지게 되었다. 재원이는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 당사자로서 이런 차별을 자주 겪고 있기에 모든 차별마다 항의하는 일에 매우 피로함을 느낀다. 그래서 가끔은 재원이도 부당함을 알지만, 그 차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참고 넘길 때가 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차별에 항의하는 바람에 재원이가 곤란해져 버린다. 나는 도와준다고 행동하는 것인데, 재원의 입장에서는 이미 충분히 피곤한 날에 스트레스가 더 생겨버린 것이다. 이런 갈등이 생기면서 나는 재원이가 원하지 않는 이상 모든 일에는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또 다른 재원이’에게 일어나는 차별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재원을 너무 사랑하기에 그에게 일어나는 차별에만 특별히 분노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시선과 분노는 어느새 확장되어 있었다. 재원 없이 홀로 다닐 때도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일에, ‘또 다른 재원이’가 차별받는 모습을 인지하게 되면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휠체어 탑승 장애인을 새치기하며 먼저 탑승한다든지, 공중 장애인 화장실의 문이 이유 없이 잠겨있을 때, 내가 다니는 학교 건물에 장애인 엘리베이터가 없을 때 등 수많은 일에서 나는 재원이가 없어도 분노했으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상대방은 여지없이 나에게 무슨 관련이 있어서 항의하는 건지 물었다. 물론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면 항의를 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나는 재원과 함께 있을 때면 키가 작아 내 가슴에 닿는 그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껴안거나, 볼에 뽀뽀하곤 한다. (사진 제공 : 이가연)
 

- 장애 차별에 분노하는 내게 사람들은 ‘당사자냐’고 물었다

 

그런데 당사자성은 정말 중요한 것일까? 내 학위 논문마저 장애인의 기본권에 대한 내용으로 작성 중인 만큼 나의 인생에서 장애 이슈는 더는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장애인 남성과 결혼한 비장애인 여성일 뿐이다. 가끔은 내가 장애 이슈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것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사자도 아니고, 혈연관계도 아닌데 장애에 대해 큰 관심을 두는 것은 결국 아내로서 남편에게 상당히 귀속되어 버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가부장제 환경에 노출되는 결혼 제도 속에서 나는 명절에 시댁에서 제사를 도와야 하는 상황과 부딪혔으며, 사회에서 이른바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강요받는 것에 부당함을 느낀다. 몸이 불편한 재원이를 대신하여 내가 더 많은 집안일과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관계에 있어 고정적인 성 역할로 자리 잡은 건 아닌지 혼란이 올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에 대한 나의 관심이 재원이로부터 시작된 것에 대해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 나에게 있어 장애 이슈는 단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다.

 

사실 정확히 언제부터 장애에 대한 고민이 이렇게 커졌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재원이가 일부러 나에게 장애인은 각종 차별을 겪으며 살고 있으니 잘 알도록 하라며 장애인식 개선 교육 같은 것을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장애로 인해 그에게 창피한 일이 생길 때마다 부끄러워했고 감추려 했다. 가령, 첫 데이트 때 중고 서점에 같이 갔다가 나에게 멋들어진 말을 건네며 계단을 오르려는데 그만 넘어졌다든지, 처음 자신의 몸을 나에게 보여주는 날에도 매우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 그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주변에서는 나와 재원의 관계를 알게 됐을 때 크게 축복했으며, 나더러 대단하고 착하다며 칭찬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아무 말도 없이 옆에 있어 주는 이유만으로도 나를 아름답다고 했다. 어떤 택시기사는 나와 재원이가 결혼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는 우리에게 택시비도 안 받고 자신의 지갑에서 몇천 원을 꺼내 주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정말 착한 사람인 줄 알았으며, 사람들의 칭찬이 듣기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재원이만 사랑했을 뿐인데 나보고 대단하다고 하다니!
 
그런데 그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들은 내가 마치 손해라도 보면서 재원이와 결혼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재원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장애를 초월하는 이상적인 마음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있어 장애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초월적인 마음가짐’ 없이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간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두는 내게 장애당사자인지 물어보거나, 아니면 나를 헌신적인 사람쯤으로 보았던 것 같은데 나는 초월적이지도, 헌신적이지도 않다. 처음 결혼을 생각했을 당시에도 재원이와 같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자연스레 결혼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의 장애를 감수하면서 결혼해야 할까’하는 심각한 고뇌조차 해본 적 없다. 나는 그저 장애를 가진 재원이 그 자체가 좋아서 함께 살고 싶었다.

 

결국, 그들이 당사자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들 상식에서 장애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함께할 수 없는, 너무 멀기만 한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당사자만이 부당함을 주장하기에는 세상에 너무나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새로운 감각을 얻은 것 마냥 다른 장애인의 고통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일상 속에도 수많은 부당한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장애인의 주변인으로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장애 이슈에 개입하기 시작하였고, 어느 순간 나를 착하다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다른 이들이 겪는 차별에 항의하는 일에 당사자인지, 관련자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렸을 적, 아빠와 영화 ‘그린 마일’을 보고 극 중에 나오는 ‘존 커피’라는 인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아빠는 ‘존 커피’와 같이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고 아플 수 있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존 커피’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함께 덜어주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이는 호의적 차원의 ‘배려’와 ‘봉사’와는 다른 문제이다. 그 고통은 이미 나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고통을 함께 없애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것이다. 비록 나는 장애인 당사자가 느끼는 그대로의 고통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이들의 불편함과 고통을 침묵하지 않고 함께 투쟁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나의 투쟁에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비장애인 중심적 사고와 편견에 스스로 맞서 싸우는 과정도 포함된다. 재원이로부터 시작한 장애에 대한 나의 관심이 계속해서 다른 장애인과 소수자에 대한 연대로 더욱 확장되기를 바란다.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지금의 불편한 마음과 시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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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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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정상, 나는 비정상. 나는 늘 침묵 당했다 (2019-03-05 17:3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