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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던 모습 그대로 삶이 정지되다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2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19년03월08일 18시02분 ]

설날,
누군가에게는 복을 받으라 빌고
또 누군가에게는 건강을 빌어주는 시간,
새로운 해가 떠오르고
그 기운을 받아 서로의 안복(安福)을 빌어주는 고마운 시간,
까치가 우니 문밖을 내다보고
혹시라도 그 복을 받으러 오는 이가 있기를
기원한다.

 

시신처리위임서
 

- 오빠의 사망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다

 

2월 중순 한 남성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님이 자신의 처남으로,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치를 형편이 안 되어 무연고로 위임을 하셨는데, 화장일이 언제인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장례일정을 안내해 드리니, 매제인 본인은 지체장애인이라 참석이 어려운 사정을 살펴달라며 대신 잘 모셔달라는 부탁을 전했습니다.

 

장례 당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이○○ 님의 두 여동생을 만났습니다.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오신 동생들은 7년 동안 보지 못했던 오빠의 사망 소식에 많이 놀랐지만 장례를 치를 엄두가 나지 않아 무연고로 보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빠는 젊었을 때부터 정신적 질환을 앓았고, 집을 자주 나갔어요. 우리가 그럴 때마다 오빠를 어렵게 찾아서 집에 데려다 놓으면 집안에 쓸모없는 물건들을 잔뜩 주워다 놓곤 했어요. 오빠의 가출은 그 이후로도 반복되었고, 한번은 겨우 찾아서 병원에 보낸 적도 있었어요.”

 

삼남매의 어머니는 25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여 큰딸의 집에 누워서 지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오빠는 자주 가출을 했고, 어렵게 찾아 집에 데려다 놓기를 여러 번 하다 마지막 7년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8개월 전부터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큰딸은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하던 곳도 그만둬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어머니 간호를 해야 했고, 남편도 몸이 불편한 상황이어서 오빠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어요. 상태가 그랬으니 어디서 해코지라도 당해서 쓰러져 있으면 어쩌나 걱정스럽고, 길을 걷다 허름한 옷 입은 남자만 보면 저도 모르게 그 뒤를 쫓아간 적도 있었어요.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오빠를 걱정하셨어요.”

 

지난 2월 이○○ 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는 울컥했지만 끊고 나니 동생은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남들처럼 멀쩡하게 살지 못했을 오빠를 생각하면 찾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어디 가도 제 사는 이야기 꺼내놓고 할 수도 없었어요.”

 

화장이 끝나고 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서 오빠의 유골을 뿌리면서 동생들은 “잘 가, 좋은 곳으로 가.”란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7년간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오빠의 장례에 참석한 동생의 뒷모습
 

-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무연고자가 되다

 

●●● 님은 지난 1월 한 숙박업소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습니다. 누나와 동생이 있었지만 단절을 이유로 시신인수를 거부하여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을 통해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던 누나분이 ‘비록 시신 인수는 포기했으나 수의를 해주고 싶다’고 한 바람을 전달받았지만, 화장예약이 공문을 받은 다음 날 급하게 이루어지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장례에 한 여성분이 참석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5년 전에 아는 언니를 통해 ●●● 님을 만나 3년간 함께 살았던 여자 친구라고 밝혔습니다. ●●● 님은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돈을 많이 벌면 집을 마련해서 함께 살고 싶다며 여자 친구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오빠는 장애가 있는 저를 많이 아껴줬어요. 오빠한테 누나랑 동생이 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부터 사이가 안 좋아져 헤어진 지 오래되었대요. 나중에는 화해하고 같이 잘 지내고 싶다고 했어요.”

 

●●● 님은 뇌경색 증세가 있었지만 여자 친구가 신경을 쓸까 봐 아픈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 님은 지난 2018년 11월 갑자기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여자 친구분은 마음이 아팠지만 뜻을 따르기로 했고, 보고 싶은 마음에 12월에 전화했지만 잘 지낸다는 이야기만 듣고 끊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헤어진 시간은 흘렀고 올해 1월 중순 다시 연락했을 때 전화를 받은 이는 ●●● 님이 아닌 경찰이었습니다.

 

“아프다고 이야기를 안 했는데, 사실은 많이 아파서 저한테 헤어지자고 했나 봐요. 마지막 모습은 보지도 못했는데…… 너무 보고 싶어요.”

 

장례 내내 여자 친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 님은 숙박 시설에서 6년 넘게 지냈습니다. 고된 일을 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몸부림쳤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고, 자신에게 생긴 병을 알고부터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마흔다섯 안타까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 님은 결국 무연고자가 되어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여자친구
 

- 살아가던 모습 그대로 삶이 정지되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는 사진이 없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사진이 있을 때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참석했을 경우로, 미리 부탁해서 받은 신분증이나 단체사진 속 작은 사진을 확대해서 출력해 화질이 많이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사진이 있으면 그 장례는 남다르게 기억이 되곤 합니다. 무연고 사망자 공문 속 이름, 나이, 사망 일자, 사망 장소, 사인 등에서 알 수 없는 선명한 대상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월 하순 운구 업체로부터 무연고 사망자 시신 입관 부탁을 받았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의 장례지원이 주가 되는 활동이지만 이전에도 입관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안치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시신의 상태를 보고 놀라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점점 심장박동이 빨라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신을 마주하고 나면 오히려 고인의 마지막 표정에 시선이 고정되어 흥분이 가라앉는 남다른 경험을 합니다.

 

무연고 사망자 박○○ 님, ●●● 님의 입관. 두 분 모두 고시원에서 지내다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각각 ‘상세불명의 ○○계, ●●계 질환’이었습니다. 1957년생 박○○ 님은 아들이 있고, 1973년생 ●●● 님은 어렸을 때 헤어진 어머니가 있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숨을 들이쉰 듯 벌어져 있는 입 모양, 영양 상태가 충분치 못해 말라있는 볼살. 사망한 지 한 달 반가량이 지나 한 분의 얼굴은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두 분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습니다. 마지막 생존 장소, 상세하게 규명할 수 없는 사인, 끊어져 버린 관계(무연고), 같은 날 화장이 진행되고, 장례를 치른다는 점까지 두 분의 공통점은 이미 공문을 받은 후 담당 공무원을 통해 확인한 사실로도 충분히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힘겨운 순간을 견디고 있는 듯한 두 분의 표정은 그 어떤 공통점보다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살아가던 모습 그대로 죽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힘겨웠던 두 분의 표정에서 힘겨웠을 지난한 삶을 읽고 말았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시신 운구 장면
 

- 무연고 사망자를 문제를 바라보는 유감스러운 시선

 

2월 중순 한 언론사로부터 무연고 사망자 관련하여 인터뷰 요청을 받았습니다. 전화로 이루어진 그 시간 동안 기자는 준비된 질문을 했고, 다음날 장례식을 취재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지 10여 분이 지나 같은 기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녹음파일이 훼손되어 다시 인터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던 ###은 ***이라고 하셨죠?”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첫 번째 인터뷰 때 말했던 사실과 다르게 해석한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이상한 인터뷰가 계속되는 괴로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정확한 사실을 보도할까 우려가 되어 자세한 내용은 나눔과나눔 홈페이지 게시물을 참조하여 사실 확인을 하도록 한 번 더 부탁드렸습니다. 다음날 그 기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 인터뷰한 사람의 이름을 물어왔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사항들을 전화로 묻고, 인터뷰 대상의 이름도 확인하지도 않아 이른 아침부터 전화로 확인하는 기자의 안일한 태도에 다분히 기분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보도된 기사였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대~60대로 평균연령보다 20~30년 먼저 사망하는 상황이 문제이기에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다르게 기사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층의 증가 폭에 주목했고, 2018년 무연고 사망자 통계가 발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추정치’를 보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청년 고독사(고립사)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어 대한민국 전역에서 예방 차원의 대책들이 마련되고 그 대상도 50~60대에 집중하고 있는 시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문제를 노인 문제로 한정시키는 것은 본질을 흐려 독자들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우려를 낳을 수 있습니다.

 

더욱더 심각한 건 고인의 실명을 그대로 게재한 것입니다. 고인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았고, 유가족에 대한 악의적인 댓글이 양산되었습니다. 인터뷰 대상의 이름이 잘못 표기된 부분에 대한 수정요구에 대해서도 기사는 정정되지 않았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문제에 초점을 흐리고, 대안 제시도 없이 논란만 부추기는 기사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봄이 오나 봄

 

작년 한 해 서울시는 광역단체 최초로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전업체를 선정하고 서울시립승화원에 무연고전용 빈소를 마련하여 장례를 지원했습니다. 공영장례제도의 첫발을 내디뎠고, 그 결과와 내용도 긍정적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3월부터는 서울시에서 선정한 업체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운구와 장례, 그리고 저소득층 장례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인 장례지원이 이루어지게 될 전망입니다. 나눔과나눔도 이와 결을 같이하여 ‘서울시 공영장례 통합 콜 상담센터’로 한 단계 발돋움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족이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저소득층 시민이 공공의 지원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나눔과나눔이 그 역할을 할 시점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2월 무연고사망자
구초남, 김진태, 김민기, 한현수, 박성남, 이은영, 유동명, 이윤근, 윤춘자, 무명김경철, 이종남, 강수연, 이동천, 오현용, 이용남, 홍정의, 오남열, 박철원, 이대철, 이종일, 유학준, 이강준, 박금래, 한경기, 한상수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스물다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 출처 : 마리몬드)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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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나눔과나눔 전략사업팀장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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