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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걸 알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는 ‘쌀국수’
아픈 사람도 ‘권장 식사’만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등록일 [ 2019년03월11일 20시31분 ]

아, 쌀국수. 나는 오늘도 쌀국수를 먹었다. 나는 몸이 안 좋거나, 속이 불편하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꼭 쌀국수를 먹는다. 쌀국수가 나의 ‘소울 푸드(soul food)’가 된 건 그때부터였다. 2014년 4월의 그 날부터.

 

- ‘에일리언 알’이 내 목구멍을 에워쌌다

 

나는 2014년 4월에 항문주위농양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이후에 문제가 된 건 계속해서 고름이 나오는 수술 부위만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 어릴 때부터 구내염이 자주 생겼다. 너무 피곤하거나, 밥을 신나게 먹다가 실수로 입안을 씹으면 꼭 움푹 파인 허연 염증이 생기곤 했다. 어릴 때부터 구내염이 자꾸 나서 구내염을 방지하는 방법도, 생긴 구내염을 빠르게 치료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의 종류는 지금도 다 꿰고 있다. 어느 날 비타민제를 먹기 시작하면서 구내염의 발생 빈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그런데 농양 제거 수술을 받은 이후에 갑자기 물도 마시기 힘들 정도로 입과 목구멍이 아팠다. 당시에는 너무 아파서 그저 머릿속에 ‘아, 아파, 악, 목말라.’ 정도의 단어만 떠올랐다. 머릿속에 내내 단말마의 비명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때 어머니는 내 목구멍을 보고 “영화에 나오는 에일리언 알” 같은 게 목구멍에 가득하다고 하셨다. 한두 개도 아니고 7개의 구내염이 나란히 목구멍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아 집 근처 치과로 갔지만, 알보칠뿐이었다. 구내염 7개에 알보칠이라니.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목 안에 식도 대신 알보칠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염증이 낫지도 않았다. (알보칠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은 검색해 보라.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 것이다.)

 

벌린 입이 있다. 여기까지는 흑백이다. 입 안에는 빨간 실금이 그려져 있고, 하얀색 점이 7개 늘어져 있다. ⓒ안희제
 

수술 이후의 내 일과는 대략 이랬다. 원래 침대가 불편해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데, 수술 부위가 항문이다 보니 딱딱한 곳에 앉거나 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주 푹신한 소파에서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소파가 내 무게에 눌려서 내가 소파에 어느 정도 빨려 들어가 있었다. 푹신한 곳에 누웠을 때의 문제는 내가 일어날 때 딱딱한 바닥에서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말을 하려는데, 말이 안 나왔다. 아주 잠깐이라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식염수를 입에 넣고 목으로 가글하기. 그렇게 해서 아주 잠깐 말할 수 있을 때 나는 물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물을 마시니까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물을 못 마실 만큼 아프다는 건 나에게 완전한 절망이었다. 심지어 침을 삼키는 것마저 아팠다. 어쩌면 아직은 크론병 진단을 받기 전인 그때부터 이미 내 몸이 나를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크론병 진단을 받은 후에야 나는 그 염증들이 소장으로부터 소화기를 타고 올라온 것이었을지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 침만 삼켜도 아팠는데, 쌀국수 국물은 오케이

 

구내염은 치과를 다녀와도 해결이 안 되고, 집에서 해결할 방법은 더더욱 없으니 너무 난감했다. 목구멍에 염증이 가득하니 수술을 받은 항문외과에 다시 갈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한의원으로 향했으나 젤리, 푸딩, 요거트 등 미끄럽거나 부드러운 음식마저도 아팠으니 사실상 희망은 없었다.

 

진료가 끝난 후엔 베트남 쌀국수를 파는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못 먹는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나는 쌀국수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쌀국수가 나왔고, 나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차를 조금 마셔 보곤 포기하고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권유를 받고 거절하다가 결국 쌀국수 국물을 딱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세상에나, 안 아팠다! 정말 그때 당시에도 믿을 수 없었고 다시 돌이켜 봐도 황당한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푸딩, 흰죽, 물, 침에마저 반응하던 구내염들이 쌀국수 국물에는 반응하질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쌀국수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쌀국수, 쌀국수, 나는 왜 이걸 그때 처음 먹었단 말인가. 난데없이 등장한 나의 구원자 쌀국수, 그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래, 그 이후로 나는 아플 때마다 쌀국수를 먹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도 우리 가족은 이대 후문 근처로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그리고 나는 사방의 쌀국수 맛집을 꿰고 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러니까 쌀국수 국물이 나의 염증 위로 매끄럽게 넘어가던 그 순간에 나를 포함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기쁘기보다는 놀랐고 황당했다. “도대체 왜? 물도 안 되는데 왜 쌀국수만?”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이건 나의 아주 일상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내가 먹어도 되는 음식과 피해야 하는 음식은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나는 원래 자극적인 음식, 특히 매운 음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아플지도 모르지만, 종종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모험을 감행하곤 한다. 이때 항상 문제는 이거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 대체 어느 정도면 괜찮은 걸까? 똑같은 곳에서 주문한 떡볶이가 어느 날에는 괜찮고 어느 날에는 아프다. 똑같은 라면이 어느 날에는 괜찮고 어느 날에는 아프다. 이런 경우는 아주 다양하다. 최근에는 가능한 한 안전한 식단을 짜서 먹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씩의 모험은 포기할 수 없다.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적잖이 제한적인 나의 인생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쌀국수 ⓒ픽사베이
 

- 아플 걸 알면서도 먹게 된다, 맛있는 음식!

 

그래서 한동안 나는 식단 일기를 썼다. 최근에도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몇 달을 쉰 이유는 일기 쓰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몸 상태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었기에 문제는 식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최근에 다시 내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몸 상태가 안 좋을 때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인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꼭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록하는 식단들이 매일 나의 몸에 영향을 주고 나의 몸을 변화시킨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음식도 몸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긴 하지만, 그 몸 상태를 만드는 건 이전에 먹은 음식이다. 같은 음식도 쌓이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사실 식단 일기를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참고할 자료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나는 네이버 카페 ‘크론환우회’에 가입했고, 가끔 들어가서 카페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살피곤 하지만 무엇에 관해서든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자기 자신의 몸에 맞는 걸 찾아라.” 식단도 마찬가지다. 공지에 권장 식단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고 적혀 있고, 각자가 자신의 몸에 맞는 식단을 찾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각자 개인의 증상을 살피면서”, “상태를 잘 관찰하며” 등의 표현을 통해 크론병 환자에게 보편적으로 권장할 만한 구체적인 식단이 아직 없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최대한 안전하게 한다면 “이것만 먹으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의 존재 이유가 단지 통증을 완화하기 위함은 아니지 않나. 아픈 사람도 사람이고, 아픈 사람도 맛있는 걸 먹고 싶다. 심지어는 조금 아프더라도 말이다. 가끔은 뻔히 아플 걸 알면서도 술을 한 입 마시고 곧 화장실로 뛰어가기도 하고, 아플 걸 알면서도 기름진 음식을 마다하지 않기도 한다. 먹고 싶으니까, 내 삶의 목표는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 유지’가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거니까.

 

만성질환자의 식단은 정말 다양하다. 나는 완전 채식을 시도한 지 열흘째 되던 날 머리가 핑 돌면서 쓰러질 뻔했다. 내가 메뉴 선정을 잘못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후로 나는 여러 끼니를 연달아 채식으로 해결하는 게 두렵다. 그래서 적어도 생선이나 달걀은 포함된 식단을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기름기가 많은 걸 먹으면 아프니까 튀김 종류나 붉은 ‘고기’는 가능한 한 피하려고 노력한다. 반면에 어떤 만성질환자는 완전 채식으로만 먹어야 하고, 어떤 만성질환자는 과일과 붉은 고기만 먹기도 한다. 같은 크론병 환자도 식단이 다를 수 있고, 만성질환의 종류에 따라서도 정말 다양한 식단이 존재한다. 나에게는 어처구니없게도 쌀국수가 가장 안전한 음식이다. 우선 면이 쌀이니까 글루텐이 없다는 게 한몫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에 자주 아팠지만, 특히 떡볶이와 피자를 먹고 많이 아팠지만 나는 모험을 멈출 생각이 없다. 지금 잠시 쉬고 있기는 해도, 나는 나의 즐거운 식사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먹을 수 있을 때, 증상이 적을 때 실컷 먹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며칠 뒤에 또 쌀국수를 먹을 것이다. 오늘 먹은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쌀국수를 먹으러 가야지. 당신도 당신만의 영혼의 닭고기 수프, 당신만의 ‘쌀국수’를 찾길 기원한다. 아플 때마다 마음 편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말이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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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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