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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일고시원부터 탈시설까지, 한국의 다양한 주거 현실 꼬집은 유엔주거권특보
지난해 한국 방문한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 주거권 특보 보고서, 유엔 공식문건으로 채택
"주거는 취약계층에게 여전히 긴급한 현안이라는 점에 우려...인권적 접근 필요해"
등록일 [ 2019년03월13일 19시16분 ]

지난해 5월 한국을 공식 방문한 레일라니 파르하 UN 주거권 특별보고관(아래 특별보고관)이 열흘간의 조사 후 작성한 보고서가 지난 4일 제네바에서 열린 제40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공식 문건으로 채택되었다. 이 보고서에서 특별보고관은 한국이 주거권 실현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주거의 질, 안정성, 부담가능성 등 여러 측면이, 특히 저소득가구와 취약계층에게 여전히 긴급한 현안으로 남아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12일, '주거권 실현을 위한 한국 NGO 모임'은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특별보고관이 발표한 영문보고서의 한글 번역본을 최초로 공개하고, 특별보고관의 최종 권고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평가와 한국 정부의 이행 방안을 제시했다.

 

12일 오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유엔 주거권특보 최종권고안 평가를 위한 기자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특별보고관이 주목한 한국의 홈리스와 강제퇴거 문제

 

특별보고관이 가장 강조한 내용은 홈리스에 대한 정부 정책과 제도의 문제점이었다. 특별보고관은 정부 실태조사에서 △'홈리스' 개념의 협소화 △홈리스에 대한 형벌화 △고시원, 쪽방 등 비적정 주거 문제 등을 지적했다.

 

특별보고관은 "한국은 홈리스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으나, 홈리스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홈리스에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적정 주거 선택권 보장을 위한 계획 역시 (한국 정부로부터)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별보고관은 또한 2011년 '서울역 노숙인 퇴거 조치'를 시작으로 기차역 내에서 홈리스의 취침을 금지한 것과 홈리스 퇴거를 위해 보안업체 경비원을 채용하고,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금지하며 일정한 주소지가 없는 경우 생계급여 및 주거급여에 접근할 수 없는 제도들을 지적하며 "거리 홈리스의 생활과 주거환경 개선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특별보고관은 지난해 11월 발생한 '국일고시원 화재사건'을 언급하며 비적정 주거지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 역시 촉구했다. 특별보고관은 "정부 관계자들이 비적정 주거지가 국제인권법에 따른 적정 주거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정부가 아직도 '지속가능한 발전 계획(SDGs)'에 따라 이러한 비공식 거처를 개선하고 거주자의 적정 주거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계획을 수립하지 않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2007년, 공공임대주택의 15%를 취약계층에 공급하는 주거지원정책이 도입되었으나 실제로는 2%만 공급되고 있다"라며 "정부는 이번 보고서에 대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 공공임대주택 41만 호를 즉각 제공할 것'이라는 답변을 했으나 실제로 LH공사에 확인한 결과, 작년과 같이 올해도 2천 호만 공급할 예정이며, 향후 이를 확대할 실질적인 조치도 없음을 확인했다"라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가장 우선적으로는 비적정 주거에 대한 최소안전기준을 만드는 작업부터 공공임대주택 제공 확대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개발 및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비인권적 문제 역시 특별보고관의 권고 대상이 되었다. 특별보고관은 퇴거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사업들에 있어서 주민들의 이주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익사업에 한해서만 이주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며, 재건축 같은 민간 개발 영역에서는 세입자에 대한 법적 대책이 전무한 상태임을 지적했다.

 

특히 특별보고관은 아현동에서 퇴거를 거듭하다 사망한 고 박준경 씨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강제퇴거는 주거권을 총체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로 절대 발생해선 안 된다"는 점을 보고서에 명시하며 재개발 및 재건축 관련 법률과 실행에서 국제인권기준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강제퇴거 제한에 관한 특별법안’이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계속 계류되어 있다”라며 “이 법안을 통과시켜 행정, 사법적으로 강제퇴거 금지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만약 법안 통과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 개발사업 계획수립 전 환경・교통 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것처럼 '인권 영향평가' 실시라도 조속히 재개발 및 재건축 관련 법률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왼쪽)와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오른쪽).
 

장애인, 이주민, 빈곤층, 성소수자..."사회적 취약계층의 주거권 보장 필요"

 

이번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주거권 보장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특별보고관은 우선 빈곤층이 부담해야 하는 주거비용이 과도하게 높은 반면, 주거급여는 너무 낮아 결국 생계급여 중 일부를 사용하거나 비적정 주거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지적했다. 또한 주거급여에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수급 빈곤층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우려하며, 주거급여 대상자를 중위소득 50% 이하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러한 권고안에 대해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정부는 작년 10월부터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 것을 굉장한 성과로 평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라며 "정부는 약 54만 가구가 주거급여 신규 지원을 받게 되리라 예측했지만 2019년 1월 기준 13만 가구밖에 늘어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윤 활동가는 "급여 신청 과정은 너무나 복잡한데 급여는 너무 적은 것이 신규 진입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며 "주거급여를 5만 원 미만 받는 가구가 10.4%, 5~10만 원을 받는 가구가 36%로 절반 가까운 가구가 수급자 선정이 되어도 10만 원도 안 되는 급여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상황이 이런데도 가장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공임대주택은 수십 년간 거의 재고 변동이 없고, 올해도 영구임대주택 예산은 2.2%에 불과하다"라며 "특별보고관의 권고안대로 주거급여를 현실화하고 대상을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정적 주거 형태를 확장하기 위한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특별보고관은 장애인의 주거권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지만, 현재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3만 명이 넘고, 정신병원에 거주하는 정신장애인 역시 7만8천 명에 이른다"라며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는 만큼, 2019년 7월부터는 장애인의 개인적 특성, 상황과 환경, 욕구에 따라 생활 지원 서비스 요건을 설계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특별보고관은 특히 장애인 주거권에 대한 보고서(A/72/128)를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인권에 기반을 둔 존엄, 실질적 평등, 접근성, 참여, 자원의 최대 활용 권리, 권리 청구권, 적정 주거에 대한 권리 보장을 강조한다.

 

최재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특별보고관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장애인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적절한 기회로 보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며 "등급제 폐지로 인해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아 서비스의 양적, 질적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활동가는 "예산 확보가 되지 않는다면 이는 '진짜' 등급제 폐지가 아니라 단순히 제도의 명칭만 변경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 활동가는 "특별보고관의 권고대로, 정부는 적극적 탈시설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탈시설 장애인의 주거 모델을 마련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 등을 통해 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를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왼쪽)와 최재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오른쪽).

 

그밖에도 특별보고관은 비닐하우스 등 최소한의 적정 주거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이 개선될 수 있는 국가 전략 수립, 외국인 거주자에게도 사회보장급여 및 주거급여 적용 등을 권고했다. 또한 성소수자가 한국에서 겪는 일상적 차별 가운데 주거권을 향유하기 어려운 점 역시 지적했다. 특히 파트너 사망 시 다른 파트너에게 임차권이 보장되지 않는 점, 주민등록상 성별 변경을 하지 못한 트랜스젠더가 집을 임대할 때 마주하는 어려움, 가정폭력으로 인해 집을 떠난 트랜스젠더・젠더비순응 청소년들이 성별 분리된 쉼터 접근이 어려워 홈리스가 되는 위험 등을 언급했다.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보고서에는 다양한 의제가 풍부하게 담겨있는데, 주거권 문제에 있어 이 모든 의제는 사실상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라며 "보고서가 한국에 긴급하게 필요한 권고들을 담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한 정책을 조속히 수립하고 이행해가야 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계속해서 감시하고 제언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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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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